270화
고요한 분위기 속.
진한 갈색의 중역 책상을 바라보고 높고 푹신한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는 사람.
코리아 메디컬의 임정준 사장이었다.
그는 못마땅한 얼굴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팔짱을 끼고 소리쳤다.
“확실한 거야?”
임 사장의 호통에 놀란 임 차장은 몸을 움찔거리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아. 임 차장. 내가 너한테 너무 어려운 지시를 내렸니?”
“그게 아니라…….”
임 차장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작게 읊조렸고.
임 사장은 그의 말을 툭 잘라 내며 큰 소리를 냈다.
“내가 너보고 총판을 빼앗아 오라고 했냐, 아니면 총판 물건을 빼돌리라고 했냐?”
다소 흥분한 임 사장은 기대고 있던 등을 떼어 냈다.
“그냥 허점. 그거 하나 찾으라고 했잖아. 민지훈의 허점도 아니고, 민지훈이 놓친 부분. 그거 하나 찾아오라고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그게…….”
“너 말 똑바로 못해?”
그의 외침에 임 차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삼촌, 나는 분명히 찾았어. 바로 저번 주에 말했잖아. 거기서 분명히 충청권에 조금, 그리고 호남권에는 빈틈투성이였다고.”
임 차장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고.
그의 말에 임 사장은 자신의 검지를 코에 가져다 대며 답했다.
“조용히 해. 회사에서 삼촌이라는 호칭 이제 안 쓸 때도 되지 않았냐?”
“알겠어…요. 아무튼, 분명히 사장님도 보셨잖아요. 호남권에는 영업하지 않은 병원이 수두룩했단 거.”
오래된 일도 아니었다.
불과 일주일 전.
임 사장의 지시를 받은 그의 조카이자 직원인 임 차장은 민지훈이 판매하는 총판.
그러니까 줄기세포 복원 주사의 영업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고 병원에 알아보며 조사를 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충청권에 영업이 부족한 점과 호남권에는 영업이 전혀 되지 않은 점을 발견했다.
보고 받은 내용을 토대로 임 사장은 자신의 제품의 영업 지도를 세워 갔었다.
당연히 민지훈이 놓친 것 같은 충청과 호남으로 말이다.
“그 자료 조사 똑바로 한 거 맞아?”
“당연하죠.”
“근데 일주일 만에 충청도, 그리고 그렇게 빈 병원이 많던 호남도 전부 영업을 했다는 게 말이 되는 거냐고!”
임 차장이 자료 조사를 했던 결과를 못 믿는 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에, 그리고 민지훈이 자신의 계획을 막았다는 사실에.
임 사장은 분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화가 났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임 차장을 향해 연달아 소리쳤고.
“삼촌… 아니, 사장님. 아무리 생각해도 일주일, 이주일 되는 사이에 이 많은 병원을 영업했다는 게 안 믿기지 않습니까?”
임 차장의 말에 임 사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혹시 사장님이 계획하던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간 건 아닌가 해서요.”
그의 말에 임 사장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굳이 누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내뱉던 임 사장은 순간 자신의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는 번뜩 떠오르는 생각에, 임 차장을 보며 말했다.
“백 이사 좀 들어오라고 해.”
“네.”
잠시 뒤.
똑똑.
임 사장의 방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어, 들어와.”
그리고 이내 문이 열리며, 백 이사가 들어왔다.
그는 영문도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을 껌뻑이며 들어왔고.
“부르셨습니까, 사장님?”
“어. 백 이사 잠깐 이쪽으로 앉게.”
임 사장과 임 차장, 그리고 백 이사는 함께 사장실 안에 마련된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임 사장은 밝은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백 이사, 요즘 진행하고 있는 영업 건은 무리 없이 잘되고 있는 건가?”
“네. 월요일 회의 때 말씀드렸다시피, 중구 쪽에 있는 거래처는…….”
영문을 모르는 백 이사는 자신의 영업에 대한 보고를 시작했고.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임 사장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입을 열었다.
“그리고 백 이사.”
“예, 사장님.”
“민지훈이랑은 자주 연락하고 지내나?”
그의 말에 백 이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아니요. 그때 퇴사한 이후로 초반에 안부 인사차 연락하고, 그 이후로는 딱히 없었습니다.”
“그래? 최근에는 연락 안 했고?”
“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백 이사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임 사장에게 물었고.
대답은 임 사장 대신, 임 차장이 입을 열었다.
“백 이사님. 혹시 저희 회사 내부 일, 민지훈한테 이야기하시는 거 아니죠?”
그의 말에 백 이사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백 이사님이랑 민지훈이랑 친했던 거, 아마 우리 회사 사람들은 다 알 텐데. 혹시 민지훈이 우리 회사 일에 대해서 알고 있으면, 그건 백 이사님이 이야기하신 거 아닐까 싶어서요.”
임 차장의 말이 황당하다는 듯 백 이사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회사에서 어떤 이야기가 새어 나가, JH 메디컬에서 선수를 쳤는지 모르겠지만. 그것 때문에 지금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그의 말에 임 사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 백 이사가 그럴 사람은 아니지. 그렇지?”
되묻는 임 사장의 말에는 가시가 수십 개는 돋친 듯 보였다.
백 이사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아무리 지훈이랑 친분이 있었다고 한들, 저는 코리아 메디컬 사람입니다.”
그의 표정을 빠르게 스캔한 임 사장은 한숨을 삼켜 내며 말했다.
“그래, 맞지. 바쁠 텐데, 얼른 나가서 일 봐.”
백 이사는 임 사장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인 후, 임 차장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사장실을 빠져나갔다.
다시 둘만 남은 임 사장과 임 차장.
임 사장은 입술을 움찔거리며 생각에 잠긴 듯 보였고.
임 차장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임 사장을 향해 말했다.
“사장님. 그럼 이제 줄기세포 복원 주사는 어떻게 할까요? 당장 다음 주에 물건 출시되지 않습니까?”
“어, 그렇지.”
“그럼 그냥 이미 영업이 다 되어 있는 병원이라도 가서 저희 제품을 어필할까요?”
그의 말에 임 사장은 쓰읍 소리를 냈다.
“우리 제품이 JH 메디컬 제품보다는 확실히 치료가 더뎌. 아마 제품으로 어필하면 먹히지 않을 거야.”
“하긴, 저희가 그 제품을 보고 만든 거라 아직 품질이 부족한 건 사실이니까요.”
임 차장은 그렇다 할만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듯 보였다.
“품질이 민지훈네 제품보다는 못하지만, 저희가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겠습니다.”
그의 말에 임 사장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애초에 그 제품과 우리는 비교군으로 묶어서는 안 돼.”
“…네.”
“비슷한 결의 제품이라는 말로 시작해서, 우리의 강점을 어필하면. 분명 민지훈네 거와 비교가 되고 말 거야.”
임 차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눈썹을 들썩이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우선 오늘 오후에 회의 잡아.”
그의 말에 임 차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다이어리에 받아 적어 갔다.
“전체 회의로요?”
“아니, 차장들까지만.”
“네, 그럼 오후 4시에 회의 잡아두겠습니다.”
임 사장은 팔꿈치를 책상에 올린 채, 깍지를 낀 손에 자신의 턱을 괴며 읊조렸다.
“빈틈이 없다면… 플랜 B로 가자……!”
* * *
모두가 퇴근한 금요일 저녁.
나는 빈 회사 안에서 아직 퇴근을 하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았다.
당장 주말이 지나고 나면, 코리아 메디컬의 줄기세포 복원 주사의 제품이 출시될 터.
이미 나는 코리아 메디컬 임 사장의 계획을 막기 위해, 전국에 최대한 빈틈이 없도록 메꾸는 작업이자 영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빠르게 빈틈을 막아 낼 수 있었지.
호남권을 광주 메디컬에서 모두 영업한 덕에, 거대 메디컬은 충청권 하나만을 수월하게 잡아냈다.
나는 우리 제품이 깔린 병원 지도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제조한 제품은 아니지만, 총판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
우리 제품이 전국 내로라하는 병원에 모두 판매가 되고 있다는 건, 너무나 행복한 일이니까.
흐뭇하게 미소를 짓던 것도 잠시.
나는 얼굴의 환함을 지워 내며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마냥 행복해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분명 임 사장이라면, 이 사실을 알고 짜증만 내며 가만히 있을 인물이 아니니까.
내가 임 사장의 입장이라면, 나 역시 다른 플랜을 떠올리고 있겠지.
방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당장 3일 뒤, 물건이 출시되면 어느 병원, 지역부터 영업이 시작될지 예상을 할 수가 없었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내가 아는 임 사장은 빈틈이 없다고 하더라도, 절대 주춤하지 않을 터.
곧바로 다른 방법을 찾아 준비 중이거나, 혹은 이미 진행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저 내가 전국 빈틈없이 영업한 것은 그의 가장 좋은 수를 막은 것일 뿐.
“어쨌든, 가장 좋은 방법을 막아 놨으니까 애 좀 먹겠지.”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내가 임 사장이라면… 이쯤에서 어떤 패를 꺼낼까…….”
아직 그들의 제품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기에, 코리아 메디컬 제품의 특징을 알 수는 없었다.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건 있었다.
우리 제품이 압도적으로 좋은 제품이라는 것이다.
원조라는 이름이 붙는 건 모두 이유가 있었다.
애초에 NA 바이오에서 가져온 이 제품의 질만큼 한국에서 구현해 낼 수 있었다면.
제품을 수입하려 애를 쓰지도 않았겠지.
그걸 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전국 병원, 메디컬에서 NA 바이오 제품을 갈망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제품을 수입하자마자 총판 요청과 구매를 하겠다는 줄이 늘어섰던 거니까.
이 제품을 비슷하게나마 따라 했다고 한들.
단가가 낮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종이 위에 숫자를 손으로 써 내려가며 예상 금액을 추측했다.
“단가가 엄청나게 낮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만들 수가 없으니까.”
과연 어떤 강점을 가지고 나와 어필을 하고, 내 제품을 밀어내려고 할까?
무리하게 저렴한 가격으로 손해를 보면서까지 판매를 하지는 않을 터.
저렴하다는 건 당연히 품질이 떨어진다는 말이니까.
내 제품을 잡으러 나온 것이면, 분명 품질이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하게 흉내라도 냈을 텐데…….
나는 그렇게 밤이 깊어 가도록 임 사장의 생각을 읽으려 애를 썼다.
* * *
월요일 아침.
나는 병원이 문을 열기도 전인 이른 시간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코리아 메디컬의 제품이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혹시나 내 물건을 깎아내리거나,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며 흠집을 낼까 걱정이 되는 것이지.
내가 가장 먼저 찾은 병원은 내게 정보를 준 하 원장이 있는 왕십리 종합병원이 아니었다.
물론 왕십리 종합병원 하 원장이 내게 고마운 사람은 맞지만.
내가 임 사장이라면, 절대 왕십리 종합병원부터 가지 않았을 테니까.
똑똑.
“안녕하십니까.”
병원 진료 시간이 되기도 전, 가장 먼저 찾아간 곳.
다름 아닌 리본 종합병원의 강 원장 진료실이었다.
서울 정형외과 중 가장 큰 병원 중 한 곳인 이곳.
내가 임 사장이라면, 서울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병원부터 찾았을 테니까.
나는 허리를 접으며 강 원장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는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민 대표,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야?”
“원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강 원장은 내게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우선 앉아.”
“네, 아침 일찍부터 원장님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하하.”
내 말에 그는 옅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코리아 메디컬 때문에 온 거지?”
그의 말에 나는 흠칫 놀라 미간을 찌푸렸다.
“예?”
“코리아 메디컬, 줄기세포 복원 주사 얘기로 금요일에 다녀갔는데 그것 때문에 온 거 아니야?”
“오늘이 아니고, 지난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