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65화 (265/339)

265화

“그게…….”

한 과장은 대답을 망설였고.

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그녀에게 물었다.

“왜요. 반응이 별로예요?”

내 말에 한 과장은 쓰읍 소리를 내며 답했다.

“사실 호남권에서 매출이 좀 안 나오는 편이에요.”

의외였다.

내가 광주에서 영업할 당시.

광주, 전주, 익산, 순천, 여수 등 빠짐없이 줄기세포 복원 주사를 원하고 있었으니까.

한 과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유는요?”

내 말에 그녀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답했다.

“저희 지사가 강원, 부산, 대전 지사가 있는데. 대전 지사에서 호남권까지 관리하다 보니, 영업이 잘 안 되는 것 같더라고요.”

우려했던 결과였다.

호남권 지사가 없던 거대 메디컬.

하지만 그녀가 내게 제안했던, 영업 매출에는 충청권과 호남권의 매출도 상당한 편일 거라고 했었다.

실전에 들어가니, 대전 지사에서 충청과 호남을 모두 섭렵하기가 힘들었던 모양.

“그럼 충청권은요?”

“거기는 그래도 매출이 꽤 나오는 편이에요.”

“아… 그럼 호남권이 지금 영업이 안 되고 있는 거죠?”

내 말에 한 과장은 고개를 잘게 끄덕였다.

“그래도 곧 대전 지사에 직원 수를 늘려서…….”

나는 그녀의 말을 잘라 내며 답했다.

“그러기에는 늦을 수도 있어요.”

“네?”

며칠 전.

조 차장에게 들었던 코리아 메디컬의 줄기세포 복원 주사 대체품.

그 제품이 나온다면, 서울에 홍보는 물론이고.

지방까지 홍보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특히, 거대 메디컬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을 찾아내겠지.

그렇게 해서 충청과 호남에서 코리아 메디컬 제품에 정착해 버린다면, 다시 내가 가진 제품으로 영업하는 게 힘들어질 터.

물론 내가 그들에게 매출을 빼앗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보다 힘을 들여 영업을 해야 한다는 게 걸릴 뿐이지.

내가 미간을 찌푸리자, 한 과장이 입을 열었다.

“혹시 코리아 메디컬 때문이신가요?”

조 차장과 같은 회사인 그녀가 모를 리가 없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래도 그 제품이 아직 출시는 안 됐고, 부풀려서 조만간 출시라고만 했을 수도 있으니까… 저희 측에서 최대한 제품 영업에 나서겠습니다.”

나와 한 과장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고.

나는 정이 아닌,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 과장님.”

“네, 민 대표님.”

“제가 거대 메디컬을 총판으로 선택했던 건, 한 과장님 그리고 거대 메디컬의 영업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드렸던 부분이 이행되고 있지 않아서요.”

딱딱한 내용의 대화였지만.

서로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

“혹시 충청이나 호남 쪽으로 지사를 더 내실 수는 없는 거죠?”

그녀는 내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지사를요?”

“네. 물론 지사를 새로 내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쭤보는 겁니다. 저희 제품 때문이 아니라, 기존에 그쪽에 지사를 또 내시려고 했던 계획이 있는 지를요.”

한 과장은 입술을 말아 넣은 채, 대답을 망설였다.

그때.

[지방 지사는 관리도 힘들고 매출도 안 된다고 했는데……. 아빠를 다시 설득해 봐야 하나? 아니지, 우리 아빠 고집을 누가 꺾어.]

들려오는 그녀의 속마음.

여전히 대답을 미루고 있는 그녀의 마음.

그러니까, 거대 메디컬 대표의 계획을 알아차릴 수 있었고.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한 과장님?”

“아, 네. 그게… 우선 제가 회사에 확인을 해 보고…….”

“아니요.”

“예?”

그녀는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고.

“제가 예전에 총판을 더 늘릴 수도 있을 거라고 했던 거 기억나시죠?”

“네. 지방 곳곳에 판매해서 많은 환자분이 쓸 수 있도록 하시고 싶으시다 하셨죠.”

“저희 지방에 총판 한 곳 더 지정했으면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한 과장은 내 물음에 마른 침을 삼켰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양.

그녀는 입을 벌린 채 눈을 깜빡였고.

나는 여전히 단호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도 전국 총판을 거대 메디컬 한 군데만 보고 가면 편하죠. 한 과장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매출의 영향을 떠나서, 많은 환자가 이 제품을 사용하게 하고 싶어요.”

“네, 알죠.”

“그런데 이렇게 수도권 쪽에만 치중되어 판매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거대 메디컬과 총판 계약을 끊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거대 메디컬이 영업을 갈 수 없는. 물품 조달이 힘든 지역 쪽만을 맡을 총판 한 회사를 추가하고 싶다는 거죠.”

내가 거대 메디컬에 총판 동의를 묻는 이유.

상도덕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계약서 어디에도 총판이 추가되었을 때, 거대 메디컬에게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었다.

그러니 내가 그들에게 호남에 총판을 추가하겠다, 통보만 해도 되는 것이지.

하지만 나는 이미 내 총판 회사가 된, 거대 메디컬과 상의를 하고 싶었다.

내가 그들의 ‘갑’이 아닌,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한 과장은 불쾌한 얼굴이 아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제 생각에는 그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저희 손이 닿지 못하는 곳에 같은 물건을 팔게 되면. 전국적으로 이 제품이 유명해지는 거니까요.”

“맞아요. 제 생각과 같으시네요.”

“그런데 이건 제 생각이고. 민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일개 직원이잖습니까?”

나는 그녀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 회사에 보고 드리시고, 답변 알려 주세요. 대신 최대한 빠르면 좋겠습니다. 아시죠?”

“그럼요. 코리아 메디컬에서 제품 나오기 전에는 꼭 전국에 깔아야죠.”

우리는 그렇게 술잔 대신 커피를 살짝 부딪치며, 같은 생각을 공유했다.

한 과장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시선을 창밖으로 돌려 로비를 바라보았다.

“와… 저분 진짜 힘드시겠다.”

그녀의 말에 나는 그녀를 따라 시선을 옮겼고.

그 끝에는 한쪽 다리와 한쪽 팔에 스플린트를 착용하고 있는 환자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부축을 받으며 걷고 있었다.

“그러게요. 팔이랑 다리 한쪽씩 다 하고 계시네.”

한 과장은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아… 참 메디컬 계는 아이러니한 것 같아요.”

그녀의 말에 나는 환자가 아닌,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한 과장도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저렇게 다친 환자들 보면 안쓰럽고 다치는 사람 하나 없었으면 좋겠다, 싶은데. 근데 또 사람들이 안 다치면, 저희는 물건을 팔 수가 없잖아요.”

“하긴… 그렇죠.”

우리는 동시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사람들이 다치는 걸 원하는 게 아니라, 다친 사람이 생긴다면 그들이 조금 더 빨리, 그리고 덜 불편하게 낫게 하는 걸 추구해야죠.”

“그렇긴 하지만… 애초에 다친 사람이 없으면 저희는 물건을 팔 수가 없으니까요.”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고.

그때 분위기를 환기시키듯, 한 과장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민 대표님은 스플린트 차 본 적 있으세요?”

한 과장의 말에 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종류별로, 그리고 제조사 별로 안 차 본 게 없죠.”

“에이. 그건 제품 영업 때문에 하는 거고요. 그거 말고, 실제로 다쳐서 말이에요.”

“아… 그런 적은 없어요.”

그녀는 피식 웃으며 내게 말했다.

“저는 예전에 스키 타다가 발목을 다쳐서, 스플린트 찼었거든요.”

“어휴. 고생하셨겠네.”

“네. 겨울인데도 안에 습기가 차고 땀나고 하니까, 너무 힘든 거 있죠?”

한 과장은 그때가 생각나는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어 갔다.

“대체 왜 습기 안 차게 하는 제품은 없나 몰라요. 통풍이 되는 제품은 있는데, 그것도 큰 효과는 없더라고요.”

“그러게요. 안 다치는 게 상책이에요.”

“하하. 그게 정답이네요.”

그녀와 나는 웃음을 터트렸고.

나는 테이블 위의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

“어?”

내 말에 한 과장 역시 휴대전화의 시간을 바라보곤 놀란 듯이 말했다.

“저희 여기에 너무 오래 있었는데요?”

“그러니까요. 바로 원장님께 가죠.”

“네!”

* * *

“원장님, 안녕하십니까.”

나는 하 원장 진료실의 문을 열자마자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이고. 민 대표 왔어?”

“네, 잘 지내셨습니까.”

“그럼. 우리 하도 자주 봐서 안부를 물을 게 있나 싶네. 하하.”

그는 자신의 앞 의자를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고.

나는 그의 앞에 커피를 건네고, 자리에 앉았다.

“여기 원장님 커피 사 왔습니다.”

“어유. 고마워. 빈손으로 와도 되는데, 항상 챙겨다 주네.”

그는 곧장 빨대로 커피를 들이켰다.

“원장님께서 커피를 좋아하시니까, 저 그냥 매일 같이 출석 도장 찍을까요?”

내 너스레에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나야 좋지.”

“막상 매일 오면, 질리니까 오지 말라고 하시는 거 아닙니까? 하하.”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답했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고.”

장난스레 답하는 하 원장의 모습.

나는 손뼉을 부딪치며 그에게 말했다.

“아, 저 오다가 한 과장 만났는데. 수술실에 기구 두고 온다고 하더라고요.”

하 원장은 단번에 무슨 말인지 알아차렸고.

“어. 오늘 오전에 기구 넣어 주기로 했었거든.”

“네. 그래서 저 먼저 원장님 뵈러 왔습니다.”

“잘했어.”

하 원장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지만.

그가 내게 해 주려는 이야기.

‘정보’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하지만 직접 물어볼 수는 없는 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가 먼저 이야기 꺼내기를 기다렸다.

“민 대표는 요즘 총판 일은 잘돼 가?”

“줄기세포 복원 주사 말씀이십니까?”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나도 거대 메디컬에서 받아서 쓰고 있거든. 주변 의사들 반응도 좋아.”

“네. 원장님께서 신경 써 주신 덕분에, 잘 되고 있습니다.”

“내 덕분은. 민 대표가 열심히 해서 그런 거지.”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잘 챙겨 주셔서 그런 거죠. 그나저나 환자들 반응도 괜찮습니까?”

내 말에 그는 기다렸다는 듯 피드백을 쏟아 냈다.

“어. 기존의 주사보다 효과가 몇 배는 빠르더라고. 그리고…….”

하 원장은 내게 주사의 후기를 몇 분 동안이나 들려주었고.

나는 그의 말을 다이어리에 필기하며 집중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난 뒤.

“감사합니다. 혹시 사용하시다가 불편하시거나, 이상 있으시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거대 메디컬로 하셔도 되고, 저한테 다이렉트로 주셔도 됩니다.”

“그래. 민 대표한테 직접 연락할게.”

“네.”

그는 기대고 있던 등을 의자에서 떼고, 몸을 당겨 앉으며 말했다.

“민 대표. 사실 내가 오늘 오라고 한 이유는 말이야.”

하 원장의 말에 나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몸을 그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이제 그 정보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건가?

“예, 무슨 일 있으십니까?”

“이미 알고 있나 모르겠는데, 실은 코리아 메디컬에서 줄기세포 복원 주사 비슷한 제품을 제조하고 있더라고.”

“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기에, 나는 입을 벌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내게 해 준다는 사실에 하 원장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코리아 메디컬에서 쉬쉬하며 비밀리에 진행하던 상황이었을 텐데.

내게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것을 보니 말이다.

하 원장은 놀란 얼굴로 내게 물었다.

“알고 있었어?”

“…네. 저도 얼마 전에 들었습니다. 그래도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장님.”

그는 미소를 짓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다음 달에 나오는 것도 알고 있겠네?”

하 원장의 말에 나는 굽었던 등을 1초 만에 쫙 펴며 소리쳤다.

“네? 다음 달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