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 * *
“하아…….”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일어나지 못한 채.
연신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벌써 회사를 차린 지도 한 달이 훌쩍 넘어 두 달이라는 시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두 달이 되어 가는 시간 동안, 나는 단 하루도 쉬지 못했고.
내 간, 역시 쉬는 날이 없었던 듯하다.
그러니까 매일 같이 술을 마셨다는 말이지.
정말이지 매일 술과 함께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처음 사람을 만나면, 친분을 쌓기 위해 ‘술’ 만한 게 없었다.
첫 만남이 아닌 사람들과도 친분을 빠르게, 그리고 깊이 가지기 위해서도 말이다.
메디컬 영업 직원일 때와는 달리, 대표가 되는 순간부터 계속 술을 들이부었던 것 같다.
그때는 간간이 의사들과 마시고, 마음이 맞는 회사 직원들과 회포를 푸는 술자리였지만.
지금은 의사들, 메디컬 업체 대표들과 마시는 술자리가 100%였다.
특히 이제는 동료라는 존재도 없기에, 그 술자리를 갖는 역할은 오롯이 내 몫이었지.
대표인 내가 그들과 가까워져야 했으니까.
그래서 몇 배는 더 움직여야 했고, 그만큼 술자리가 몇 배로 늘어 갈 수밖에.
“힘들다…….”
매일 술을 마시고,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잠시 지친 느낌이 내 몸을 덮쳤다.
몸도, 마음도.
금요일이었던 어제저녁.
어제도 마찬가지로 의사들과 술을 진탕 마셨기에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좀 쉬어야겠다.”
창밖에 보이는 날씨는 굉장히 맑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비치는 햇살.
좋은 날씨에도 내 몸은 매트리스 저 바닥으로 푹 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막상 누워는 있지만, 마음 한쪽이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주말이라 데이트도 해야 하고, 나가서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때.
지이잉.
머리맡에 있던 휴대전화의 진동이 침대 전체를 울렸고.
나는 서둘러 수신 버튼을 클릭했다.
“여보세요?”
- 자기, 아직 자고 있어?
전화를 건 사람은 여자 친구인 김사랑이었다.
“아니야. 일어났어. 사랑이는?”
- 나 지금 어디게?
“어디 놀러 갔어?”
그녀는 내 말에 웃는 목소리로 답했다.
- 내가 지금 어디냐면……!
그리고 동시에 울리는 초인종 소리.
딩동―!
그 소리에 나는 휴대전화에 대고 입을 열었다.
“누구 왔다, 잠시만.”
나는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켰고.
그때 배시시 웃는 목소리로 김사랑이 말했다.
- 자기, 문 앞에 나야.
“뭐?”
나는 그녀의 말에 서둘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얼굴과 머리를 물로 급히 손질했다.
“…잠시만.”
이내 현관문을 열자, 김사랑은 밝게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고.
그녀의 양손에는 커다란 장바구니가 쥐어져 있었다.
“사랑아, 연락도 없이 갑자기 무슨 일이야?”
놀란 얼굴로 그녀에게 묻자, 김사랑은 눈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자기 어제도 일하느라 술 마셨잖아. 오늘 집에 퍼져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장 좀 봐 왔지.”
나는 서둘러 그녀의 손에 들린 장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연락하고 오지, 그럼 내가 요리라도 해 놨을 텐데.”
그녀는 나를 지나쳐 집으로 들어오며 답했다.
“아니야. 내가 와서 해 주려고 한 거니까, 서프라이즈지.”
“그래도… 미안한데.”
김사랑은 나를 소파로 밀어내며 자신은 주방으로 향했다.
“내가 해 주고 싶으니까, 여기 오지 말고 거기서 조금만 기다려 줘.”
“같이 하자.”
“안 돼. 내가 해서 주고 싶단 말이야.”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답했고.
그런 그녀의 말에 나는 결국 머리를 흔들며 소파에 몸을 기대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는 맛있는 음식 냄새가 진동했다.
“자기야. 빨리 와.”
식탁을 가득 메운 한상차림.
김사랑은 평소 자신의 집에서도 요리를 즐겨 하는 편이었고.
그녀의 음식 솜씨는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
“이야… 이 짧은 시간에 어떻게 다 한 거야?”
나는 감탄을 쏟아 냈고.
눈 앞에 펼쳐진 음식을 빠르게 눈으로 담아냈다.
“자기 속 안 좋을 거 같아서, 북엇국 만들었지. 그리고 불고기랑 계란말이랑…….”
그녀는 신이 난 아이처럼 자신이 만든 음식을 설명했고.
나는 그런 김사랑을 빤히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고마워, 잘 먹을게.”
“응.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해.”
“알겠어.”
나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저를 들고 음식을 뜨기 시작했다.
“우와. 엄청 맛있다.”
“정말?”
“어. 진짜로 맛있어. 사랑이도 얼른 먹어.”
“응.”
그녀는 한참 내가 먹는 것을 빤히 바라보았고.
“사랑이도 먹어. 국 식겠다.”
그제야 그녀는 고개를 돌려 한 수저를 뜨고 있었다.
정신없이 음식을 흡입한 뒤.
“엄청 배부르다. 사랑아, 내가 치울 테니까 앉아 있어.”
“같이 하자.”
“아니야. 밥도 차려 줬는데, 내가 하면 돼. 커피 마실래?”
내 말에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서둘러 커피 두 잔을 내려 테이블로 향했고.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커피를 들이켰다.
“근데 우리 진짜 오랜만에 얼굴 보는 거 알아?”
김사랑은 마른 침을 삼키며 내게 말했고.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하며 답했다.
“…미안해. 나도 보고 싶었는데, 회사 차리고 나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네.”
그러고 보니, 김사랑과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했던 게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이자, 행복 정형외과의 병원장에게 투자를 받아 차린 JH 메디컬.
사업가 민지훈으로서도, 김사랑의 남자 친구인 민지훈으로서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사업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직업이 의사인 그녀와의 결혼에는 그만큼의 능력, 경제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더불어 김사랑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는 내가 필히 성공해야 한다고 느꼈던 것이지.
그래서 더더욱 성공에 목을 맸던 것 같다.
사업을 하면서 주춤하는 시기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되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 뒤에는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있었던 것.
그녀를 외롭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나는 가슴 한쪽이 아려 왔다.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재차 입을 열었다.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보지도 못하고, 외롭게 만들어서 미안해.”
곧장 눈물이라도 떨어뜨릴 듯이 아련하던 김사랑의 얼굴은.
내 사과 한마디로 이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괜찮아. 사실 자기 사업 시작하고 바쁜 거 다 아는데, 그래도 자주 못 보니까 속상해서 그랬어. 나도 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보고 싶어서 안 되겠더라고.”
나는 그녀의 머리칼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답했다.
“그래서 오늘 온 거구나?”
그녀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빠도 자주 보자. 내가 더 노력할게.”
“아니야. 자기 그러다가 몸 상해. 원장님들도 만나고, 업체들도 만나서 술 먹는 거 자기도 힘든 거 다 알아.”
투정을 부리는 게 아니라, 현재의 나와 미래의 우리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김사랑과 함께하기를 잘했다고.
“조금만 기다려 줘. 내가 얼른 성공해서… 우리 행복하게 살자.”
내 말에 그녀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고개를 세차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나를 믿고 기다려 주고, 사랑해 주는 김사랑을 보며.
나는 다시금 마음을 재정비시켰다.
이렇게 지쳐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더 높이, 더 빨리 올라가야 한다.
* * *
“안녕하십니까.”
사무실에 출근하자 오늘도 어김없이 신소율과 문지음이 나를 반겼다.
“네, 좋은 아침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소율 씨가 아메리카노, 지음 씨가 바닐라라떼 맞죠?”
회사 앞 카페에서 사 온 음료를 내밀자, 그녀들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답했다.
“와아. 대표님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에이. 저희 벌써 얼굴 본 지 두 달이나 되어 가는데, 직원들 취향은 다 알죠. 하하.”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신소율과 문지음은 서둘러 자신들의 커피를 챙겨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신소율에게 다가가 물었다.
“소율 씨, 우리 물건 매출 나왔나요?”
“네. 안 그래도 딱 한 달 채워서, 매출 정리해서 대표님 책상 위에 올려 뒀습니다.”
“역시, 소율 씨라니까. 고마워요.”
“넹!”
신소율, 그녀는 업무에 대한 센스가 타고난 인물 같았다.
일에 대해 묻기도 전에 처리를 해 두는 것은 물론이고.
“아, 다음 물건 오는 날짜는요?”
“다음 주 월요일에 도착 예정입니다. 혹시 딜레이 생기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업무에 대해 물었을 때, 단 한 번도 확인해 보겠다는 말이 없었다.
그만큼 업무에 대해 빠삭했지.
나는 그녀의 태도에 미소를 지으며, 대표실로 향했다.
신소율이 말한 대로 책상 위에는 그녀가 올려 둔 매출 정리 표가 올라와 있었고.
나는 서둘러 서류를 살펴보았다.
줄기세포 복원 주사 총판을 받아 거대 메디컬과 거래를 한 지 딱 한 달.
매출은 내 예상보다 훨씬 높은 금액이었다.
“일… 십… 백… 천만… 억… 십억…….”
숫자를 하나하나 세던 나는 입을 떡 벌린 채 금액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국내에서 많은 메디컬과 병원에서 줄기세포 복원 주사를 필요로 했었는데.
그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거대 메디컬의 모든 거래처는 물론, 주변 메디컬 회사에서도 이 제품을 납품받기 위해 연락이 끊이지 않는 듯 보였다.
회사를 차린 후, 만났던 병원 원장들 역시 거대 메디컬을 통해 물건을 납품받고 있었고.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매출액을 보자 나는 그 힘들었던 시간이 깨끗하게 씻기듯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광주에서부터 시작해, 성장하며 올라왔던 서울.
그리고 이렇게 대표가 되기까지를 떠올리며 나는 절로 미소를 지었고.
순간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광주 메디컬의 식구들.
그리고 코리아 메디컬의 조성철 차장과 서정우 이사.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거니까.
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조 차장을 생각하며,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오래 걸리지 않아, 휴대전화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차장님!”
반가운 마음에 소리를 크게 내어 외치자, 조 차장은 놀란 목소리로 답했다.
- 어유. 깜짝이야.
“하하. 차장님, 저 지훈이입니다.”
- 알지. 언제 전화하나 했다, 지훈아. 아니, 민 대표님.
“에이. 차장님께서 대표라고 해 주시니까, 이상합니다.”
- 대표님이시지. 우리 거대 메디컬에 총판 주신 고마운 회사 대표님 아니십니까. 하하.
“차장님, 놀리지 마십시오.”
- 놀리긴. 그나저나 잘 지냈어?
“그럼요. 차장님은 잘 지내고 계십니까?”
- 나야 뭐 항상 똑같지.
그의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병원인 것 같았다.
“병원이십니까?”
- 어. 메디컬 영업직이 병원 아니면, 어디겠어.
“고생 많으십니다. 안 그래도 연락 드려야지, 했는데. 뭐 한다고 정신이 없어서 이제야 연락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내 말에 조 차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 나 안 잊고 전화 줘서 내가 고맙다.
“어휴. 제가 차장님을 어떻게 잊습니까. 저를 성장시켜 주신 선배님이신데요.”
- 안 그래도 연락 없으면, 내가 너한테 연락하려고 했어. 할 말도 있고.
“정말요? 저도 차장님 뵙고 싶었는데, 제가 좋은 곳에서 대접하겠습니다. 언제 시간 되십니까?”
- 됐어. 내가 사야지.
“코리아 메디컬 다닐 때, 항상 차장님이 사 주셨잖습니까. 이번에는 제가 내게 해 주세요, 차장님.”
내 말에 조 차장은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 나는 오늘도 시간 가능하고, 이번 주는 전부 괜찮아.
“그럼 제가 서 이사님께 연락 드려보고, 가능하시다고 한 날에 저희가 맞출까요?”
코리아 메디컬에서 한 라인을 탔던 사람들이자, 친했던 우리였기에.
당연히 나는 서 이사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내 말이 끝나자마자 조 차장은 쓰읍 소리를 내며 목소리를 낮췄다.
- 지훈아, 이번에는 그냥 우리 둘만 보자.
“서 이사님과 무슨 일 있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