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 * *
“아니요. 그 서류는 나한테 바로 올리지 말고 소율씨한테 보고하면 돼요.”
나는 사무실의 막내.
그러니까 사회 경력이 없는 신입 직원 문지음에게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작성해서 바로 대표님께 올리면 되는 줄 알았어요.”
“죄송할 것까지는 없어요. 실수는 할 수 있는 거니까. 다음부터는 소율 씨 통해서 검토 올리면 됩니다.”
문지음은 당황했는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네, 주의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내 손에 들린 서류를 받아 들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때.
“안녕하세요!”
밝고 커다란 목소리로 JH 메디컬의 문을 여는 사람.
거대 메디컬의 한 과장이었다.
그녀의 등장에 나를 포함한 회사의 직원들이 그녀에게 눈길을 돌렸고.
한 과장은 양손 가득 들린 커피를 자신의 얼굴 옆으로 들어 흔들며 말했다.
“커피 배달 왔습니다. 하하.”
언제봐도 밝은 그녀의 모습.
“한 과장님, 오셨어요?”
“네, 대표님 연락받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왔죠. 하하.”
한 과장은 내 옆으로 빠르게 다가왔고, 손에 들린 커피를 문지음에게 건넸다.
“여기요. 직원분들이 몇 분 계시는지는 저번에 사무실 왔을 때 파악했는데, 어떤 커피 좋아하실지 몰라서 종류별로 사 왔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감사해요, 과장님.”
“아니에요. 제가 더 감사하죠.”
그리고는 커피를 가리키며 문지음에게 말을 이어 갔다.
“여기는 아메리카노, 옆에는 라떼, 그리고 이거는 바닐라라떼. 커피 못 드시는 분들 계실까 봐, 이쪽은 프라푸치노로 사 왔어요. 골라서 드세요.”
눈웃음을 보이며 문지음에게 말하자, 그녀는 여전히 긴장한 채 머리를 흔들었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신소율이 빠르게 다가와 한 과장에게 말했다.
“잘 마시겠습니다, 거대 메디컬 한 과장님.”
“어머. 저 기억하셨네요?”
“당연하죠. 대표님이랑 과장님은 어떤 거로 드릴까요? 안에 계시면 가져다드릴게요.”
신소율은 빠르게 상황에 대처해 나갔고.
한 과장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저는 아무거나 다 좋아해요. 직원분들 나눠 드시고, 남는 거로 주세요.”
신소율을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보았고.
“저도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그리고는 한 과장을 향해 턱으로 대표실을 가리켰다.
“들어가시죠, 한 과장님.”
“네, 대표님.”
거대 메디컬의 한 과장, 그녀의 영업 실력이 뛰어난 것은 원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센스까지 겸비하고 있다니.
하긴, 센스가 있으니 영업은 당연히 잘할 수밖에 없겠지.
커피와 더불어 직원들의 간식까지 바리바리 챙겨 온 그녀의 모습에 나는 연신 미소가 번졌다.
나뿐만 아니라, 회사의 직원들까지 생각해 준다는 게 너무나도 고마웠으니까.
“한 과장님. 월요일 아침 되자마자 오셨네요?”
내 말에 그녀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당연하죠. 총판을 주신다는데, 사실은 전화 받자마자 오고 싶었어요.”
“하하.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까 감사하네요.”
“감사는 제가 해야죠. 안 그래도 저희 대표님이 난리가 나셨어요. JH 메디컬 총판을 어떻게 따 왔느냐면서요.”
그녀는 신이 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지금 다들 JH 메디컬에서 총판 받고 싶어서 난리잖아요.”
한 과장의 말이 맞다.
내가 차린 JH 메디컬.
회사가 설립된 지는 고작 한 달이 채 안 되었지만.
NA 바이오 줄기세포 복원 주사로 인해, 우리 회사는 서울.
아니, 전국에 내로라하는 메디컬들에 이름을 모두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대로 간다면, 내가 제조할 제품이 출시되었을 때에도 홍보 효과가 엄청날 터.
한 과장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가방 속 자료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내게 서류와 함께 지난번 미팅 때와 마찬가지로 노트북 속 PPT를 틀었다.
“저번에 말씀드렸던 것과 달라진 게 있어서, 다시 한번 설명해 드리려고요.”
“네, 좋아요.”
“대표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대로 제품이 이달 내로 들어온다면, 곧바로 서울 전역의 병원들로 납품을 할 예정입니다. 저희 거래처 병원에서 예상 발주 받아 온 수량은…….”
한 과장은 꼼꼼히 그리고 자세하게 설명을 늘어놓았고.
나는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한 과장이 건네준 서류에 체크를 해 나갔다.
그렇게 몇십 분간의 설명이 끝났고.
나는 흡족한 얼굴로 엄지를 치켜들었다.
“역시 한 과장님이시네요.”
그녀는 내 말에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이런 방향으로 갈까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그럼요. 좋습니다. 제가 저번에 말씀드렸던 지방 병원 관련 계획도 철저하고요.”
한 과장은 내가 신경이 쓰인다고 했던 부분들까지 모두 계획을 세워 왔고.
나는 척척 해 나가는 그녀의 능동적인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거대 메디컬을 총판으로 결정한 이유.
거대 메디컬이 한국에서 큰 기업이라는 것도 이 이유에 포함되었지만.
그중 가장 내 마음을 움직였던 건, 한 과장이었다.
그녀가 거대 메디컬의 딸이라는 부분은 전혀 총판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아니었다.
이미 한 과장 그녀의 영업력과 실력이라면, 총판을 맡기고.
나와 함께 일을 할, 크게 나아가 사업 파트너로 삼기에도 충분한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방도 문제없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해 볼게요, 대표님.”
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한 과장님.”
그녀는 내 손을 맞잡아 흔들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 그리고 언제 시간 한 번 내주세요.”
“네?”
“저희 대표님께서 카드 주셨거든요.”
그녀는 술을 마시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내게 말했고.
“좋죠. 아, 다음에 조 차장님이랑 같이 해서 한 번 봬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답했다.
단둘이 아닌, 조 차장과 함께 자리를 가지자고.
한 과장은 이제 내게 마음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아직 그녀와 단둘이 가지는 자리는 술자리는 조금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일을 같이 하는 파트너는 맞지만, 그래도 예전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내 말에 한 과장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 * *
살짝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그녀.
나는 노크를 하지 않은 채 문틈을 살짝 열어 인기척을 냈고.
인상을 찌푸린 채, 머리를 꾹꾹 누르며 눈을 감고 있는 김사랑이 보였다.
로비에 사람이 북적거렸었는데, 역시나 오전에 환자가 많아 지친 모양.
“흠흠.”
나는 그녀에게 내가 왔음을 알리기 위해 목을 가다듬는 소리를 내었고.
그 소리에 김사랑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한숨을 참으며 말했다.
“죄송한데, 오늘 오전 진료는 끝… 어?”
김사랑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기!”
언제 어두웠냐는 듯 금세 환해진 그녀의 얼굴.
나는 서둘러 열린 문을 닫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뭐야, 왜 이렇게 지쳐 있어. 오전에 힘들었나 보네?”
내 말에 그녀는 울상 짓는 어린아이처럼 내게 투정을 부렸다.
“힝. 월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엄청나게 바빴어.”
“그러게. 항상 월요일 아침이 바쁘지. 힘들었겠네, 우리 자기.”
“웅. 근데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야?”
그녀는 자리에 앉아, 서 있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고.
나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했다.
“가자, 밥 먹으러.”
“헐. 나 밥 시간 맞춰서 온 거야?”
“당연하지. 약속 없는 거 맞지? 아까 연락했을 때, 그냥 병원 식당 간다고 하길래 왔거든.”
그녀는 내 말에 의사 가운을 벗으며 답했다.
“맞아. 입맛이 없어서 그냥 안 먹을까 하고 있었는데, 자기 왔으니까 무조건 나가서 맛있는 거 먹을래!”
“그래, 가자. 맛있는 거 사 줄게.”
우리는 그렇게 김사랑 원장실 문을 여는 순간, 의사와 메디컬 회사 대표로 돌아와 비즈니스적인 표정과 말투를 하며 병원을 나섰다.
병원에서 조금 떨어진 식당.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김사랑은 밝은 얼굴로 초밥을 하나 집으며 물었다.
“우리 이렇게 둘이서 밥 먹는 거 오랜만이다. 그치?”
그녀의 말에 나는 눈동자를 굴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회사를 차린 뒤, 계속 바빴었으니까.
김사랑과 데이트할 시간은커녕, 행복 정형외과에 와서도 병원장님과 함께 밥을 먹거나.
혹은 잠깐 들려 얼굴만 보고 갈 뿐.
“너무 바빴어, 미안해.”
“아니야. 바쁜 게 좋은 거지. 메디컬 회사하는데 만날 사람 없이, 매일 나만 만나서 데이트하는 게 더 마음 아플 것 같은데?”
그녀는 밝게 웃으며 말했고.
“이해해 줘서 고마워. 얼른 먹어.”
“응. 그래서 총판은 정한 거야?”
“어. 거대 메디컬로 정했어. 행복 정형외과도 거대 메디컬에서 물건 받고 있지?”
김사랑은 음식을 삼킨 뒤 답했다.
“당연하지. 이미 거대 메디컬 담당자가 와서 물건 설명도 다 하고 갔었어.”
“다음 주나 물건 올 거야. 오면 써 봐.”
“그럴게.”
우리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집중했고.
김사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맞다. 주말에는 뭐 했어?”
주말에 데이트를 하지 못하고, 업무를 보러 간다고 했었는데 그때를 묻는 모양.
“나 또 병원 원장님들 만났지.”
“그 줄기세포 복원 주사?”
“아니. 그거 말고, 그냥 친분도 쌓고 나중에 내 제조할 물건들 피드백도 받고 그랬어.”
“하긴. 병원 의사들 친분 많이 쌓아 둬야, 도움이 되니까.”
김사랑은 내 일이 궁금한 듯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주말에는 어디 병원 원장님 만났는데?”
“강 원장님이라고 서울에…….”
나는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우리 일 이야기하지 말고, 우리 이야기만 하자. 얼굴도 자주 못 보는데, 사랑이 너 만나서까지 내 일 이야기 전해 주기 미안해.”
그녀는 내 말에 입술을 말아 넣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우리 이야기나 하자!”
“사랑이는 주말에 뭐 했어?”
내 말에 그녀는 신이 난 얼굴로 조잘조잘 입을 열었다.
“나 주말에 친구들이랑 새로 생긴 카페 갔거든?”
“누구?”
“나랑 제일 친한 친구들.”
“아, 연주 씨랑 지현 씨?”
그녀는 어떻게 참았나 싶을 정도로, 쉼 없이 말을 이어 갔고.
그렇게 나는 밥 대신, 그녀를 바라보며 행복한 점심시간을 보냈다.
* * *
“다녀왔습니다.”
하루 내내 병원을 돌아다닌 후 복귀한 사무실.
직원들은 나를 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감사해요. 사무실 별일 없었죠?”
내 말에 신소율은 서류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별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표님 아까 전화로 말씀드렸던 서류요.”
“고마워요.”
그녀에게 건네받은 서류를 들고 대표실로 향했다.
NA 바이오에서 보낸 물건 인보이스였고.
물건은 곧 한국에 도착 예정이었다.
“이제 시작이다……!”
나는 NA 바이오에서 받는 금액, 거대 메디컬로 보낼 물건의 금액을 적으며.
매출 계산을 해 손익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똑똑.
대표실 문을 노크하는 누군가.
나는 황급히 금액 서류를 뒤집으며 말했다.
“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문지음이었다.
“저… 대표님.”
“네, 지음 씨. 무슨 일 있어요?”
그녀는 긴장한 듯한 얼굴과 쭈뼛거리는 자세로 나를 향해 걸어왔고.
내 책상 앞에 선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예, 편하게 말해도 돼요. 무슨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