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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59화 (259/339)

259화

【 대표가 된다는 건 】

강 원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향해 허리를 접었다.

눈앞에서 고개를 숙인 강 원장을 보며, 나 역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 자연스레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환하게 웃음을 보이며 들어오는 사람.

왕십리 정형외과의 원장이었다.

“아이고. 우리 강준빈 원장, 오랜만이네.”

“네, 선배님. 오시느라 힘드셨죠?”

“힘들긴.”

그는 강 원장을 바라보며 눈짓으로 나를 가리켰다.

내가 누구냐고 묻는 제스쳐에 나는 서둘러 입을 열어 내 소개를 하며 재차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JH 메디컬의 민지훈 대표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하성우라고 합니다.”

그는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원장님.”

하성우 원장.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하 원장은 한눈에 보아도 주변에 사람이 많을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훈훈한 외모, 넉살 좋아 보이는 인상.

구김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듯한 얼굴이었다.

“아유, 반가워요. 민 대표님.”

그래서인지 처음 보는 낯선 나에게도 전혀 거부감이나 거리낌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만남을 즐기는 듯한 그의 태도와 미소.

강 원장은 손으로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얼른 앉으세요, 선배님.”

“응. 그럴까?”

그가 자리에 앉자, 나와 강 원장은 자연스레 착석했고.

“여기요, 여기 한 사람 자리 세팅 좀 더 해 주세요.”

내 말에 직원은 서둘러 다가와 수저와 젓가락, 그리고 소주잔을 세팅했다.

나는 소주를 들고, 하 원장의 잔을 채우며 말했다.

“원장님, 한잔 올리겠습니다.”

“고마워요.”

내가 강 원장의 잔까지 채우자, 하 원장은 내 손에 들린 소주병을 받아 들었다.

“자, 내가 한 잔 줄게요.”

“감사합니다. 원장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래도 초면인데…….”

“원장님 후배이신 강 원장님도 편하게 하시는데, 원장님도 말 놓으셔도 됩니다. 저도 그게 편하고요.”

내 말에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답했다.

“그럼, 그럴까? 하하.”

“네, 그럼요.”

“알겠어. 근데 민 대표님은 얼굴이 상당히 젊어 보이시는데, 벌써 메디컬에서 대표를 하시는 건가?”

그의 말에 내가 아닌 강 원장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선배님?”

“어. 이쪽 업계에서 대표로는 보기 드문 나이지.”

그들의 말이 끝나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병원에 들어가는 메디컬 영업직으로 몇 년 근무를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제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 말에 하 원장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내 말에 경청했다.

“그래?”

“네. 원장님들께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면서, 원장님들이 더욱 필요로 하는. 동시에 환자분들에게도 치료를 하기 더 적합한 제품에 대한 고민이 생겼고.”

나는 열변을 토하듯 내 생각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결국, 제가 직접 제품을 만드는 건 어떨까, 라는 생각에 제조업으로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 하 원장은 물론, 강 원장까지 다시 한번 감탄을 내뱉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야. 이 친구 대단한 물건이었네?”

하 원장이 말하는 ‘물건’.

나쁜 의미의 단어가 아니었다.

나를 알게 되어 좋다는 듯한, 그리고 나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눈빛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답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우리 거국적으로 첫 잔 마셔 볼까?”

“좋습니다.”

챙―!

우리는 함께 술잔을 부딪쳤고.

그렇게 연거푸 술잔을 기울이며 어색함을 풀어냈다.

술병이 하나둘 쌓여 가고, 하 원장은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 물었다.

“그래서 민 대표가 코리아 메디컬에 있었다고?”

“네, 맞습니다”

“거기 조성철 차장이라고 있었지 않아?”

그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조 차장님 아십니까?”

“그럼, 알지. 아, 그 친구가 거대 메디컬로 옮겼었던가?”

“네, 이직한 지 몇 개월 됐습니다.”

하 원장의 입에서 나온 조 차장의 이야기.

오랜만이었다.

코리아 메디컬에서 일할 당시, 내 사수이자 내가 믿고 따르던 선임이었지.

그가 거대 메디컬로 이직을 한 뒤, 한동안 연락을 자주 하고 지냈었지만.

내가 코리아 메디컬을 정리하고 나오게 되면서, 그리고 지금 JH 메디컬에 신경을 쓰느라 주변인들을 챙길 시간이 없어 연락을 못 했었다.

하 원장은 조 차장과 친분이 있었던 듯 내게 말했다.

“조 차장이 일을 참 잘했지.”

나는 조 차장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맞습니다, 제가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조 차장님께 많이 배웠었거든요.”

“그래? 다음에 조 차장이랑 같이 해서 한번 보자고.”

“예, 좋습니다.”

내가 믿고 따르던 조 차장과 친분이 있다는 말에, 하 원장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 호감도가 조금 더 상승하게 되었다.

내가 믿는 사람과 잘 맞는다는 건, 나와도 성격이 맞을 확률이 높을 테니까.

그때 강 원장은 하 원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선배님, 그럼 오늘 공 치러 가신다고 하셨는데, 치고 오신 겁니까?”

“어. 오늘 아침 일찍 골프 치고, 점심 먹고 헤어졌어. 안 그래도 애들 술 마시고 있다고 오라고 해서 이따가 들리려고.”

“이야. 선배님은 진짜 바쁘게 사시는 것 같습니다.”

“에이, 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거지.”

그는 술잔을 들이키며 말을 이어 갔다.

“내일 아침에는 다른 골프 모임 있어서, 또 공 치러 가야 해.”

“내일은 어디 원장님들이랑 치십니까?”

강 원장은 놀란 얼굴로 물었고.

하 원장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병원 사람들 아니고, 이쪽에서 알게 된 메디컬 사장들.”

“아…….”

그의 말에 귀가 솔깃한 건, 강 원장이 아니라 나였다.

발이 넓고 활동적인 의사들을 보기는 했으나.

이렇게까지 사람들과의 모임을 좋아하는 의사는 처음이었다.

이래서 강 원장이 내게 하 원장을 소개해 주고 싶었던 건가?

나는 흥미로운 얼굴로 하 원장을 바라보았고.

그때 그가 내 눈을 보며 말했다.

“맞다, 민 대표. 마일 바이오라고 아는가?”

그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마일 바이오.

메디컬 제조업 회사 중 국내에서 유명한 기업 중 하나였다.

그 회사를 내가 모를 리가 없지.

광주에 있을 때도, 코리아 메디컬에 있을 때도, 마일 바이오 제품은 항상 사용했었으니까.

“내일 거기 대표랑 같이 공 치러 가거든.”

나는 그의 인맥 스케일에 입을 떡 벌렸다.

마일 바이오의 직원도 아니고, 그곳의 대표라니.

메디컬 판매 회사의 대표와 의사들은 친분을 가지기 비교적 쉬운 편에 속한다.

당연히 그들도 병원에 항상 영업을 나가고는 하니까.

하지만 마일 바이오처럼 제조만 몇십 년간 한 회사의 대표가 의사와 친분이 있다는 건.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그들도 의사와 만나 제품에 대한 조언과 피드백을 받을 테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주변의 의사들은 제조업 대표들과 친분이 있던 사람이 없었지.

하 원장은 내 놀란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음에 기회 되면, 같이 한번 보자고.”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저야 자리 만들어 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하 원장님과 자리를 또 갖는 것도 감사한데, 거기에 마일 바이오 대표님까지 만나게 해 주시면요.”

하 원장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뭐, 어려운 것도 아니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친해지면 좋지, 안 그래?”

그의 말에 강 원장은 나를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죠. 그래서 저도 오늘 선배님께 민 대표 소개해 드리고 싶었던 거고요.”

“하하. 그래, 한잔하자. 나 오늘은 이거까지만 마시고, 먼저 일어날게. 병원장들이 자꾸 오라고 연락이 오네.”

“그러시죠.”

챙―!

술잔이 허공에서 부딪치고.

우리는 그렇게 술잔을 입에 털어 부었다.

“민 대표, 다음에 우리 병원 한번 놀러 와.”

“예, 제가 조만간 원장님 뵈러 가겠습니다.”

“그래. 나 먼저 일어날게.”

강 원장과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허리를 꾸벅 접었다.

하 원장이 떠나고 다시 둘만 남은 강 원장과 나.

나는 강 원장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원장님. 오늘 좋은 분 소개까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냐. 선배님이 워낙 발이 넓으셔서, 민 대표한테도 도움이 될 것 같더라고.”

역시나.

강 원장은 나를 위해 하 원장을 이 자리로 부른 것이었다.

단순히 발이 넓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을 지나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른 것이 아닌.

마일 바이오 대표와 친분이 있던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

나는 더욱 강 원장에게 고마운 마음이 생겼고.

입술을 잘근 깨물며 그의 빈 잔을 채웠다.

“그렇게까지 저를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장님.”

하 원장이 급히 자리를 떠나기 전, 미안하다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술을 연거푸 따라 주었었다.

그때 급하게 마신 술.

그리고 강 원장과 내가 마신 술까지 더해 우리는 취기가 점점 오르고 있었고.

강 원장은 발그레해진 얼굴로 내게 말했다.

“이렇게 나이도 비슷하고, 우리가 참 비슷한 게 많은 것 같아. 안 그래, 민 대표?”

“하하. 맞습니다.”

“봐, 우리 만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이렇게 금방 친해졌잖아.”

나는 술잔을 들고 그를 바라보며 답했다.

“친해지는데 시간은 크게 중요하지 않죠.”

강 원장은 내 말에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우리에게 시간은 필요하지 않지.”

우리는 그렇게 그 뒤로도 한참이나 술잔을 기울이며, 친분을 쌓아 갔다.

* * *

줄기세포 복원 주사의 총판.

이제는 총판 회사를 지정해야 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여전히 내 책상 위에는 수많은 회사에서 온 서류들이 쌓여 있었다.

“저, 대표님.”

그때, 신소율이 내게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네?”

“NA 바이오 측에서 물건 준비됐다고 연락이 왔는데, 발주 보류해 둘까요?”

그녀의 말에 나는 입술을 말아 넣은 채, 잠시 답을 망설였고.

이내 신소율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주 안으로 수량 파악해서 발주한다고 해 주세요. 제가 다음 상황은 정리해서 알려 줄게요.”

“알겠습니다.”

신소율은 가지고 온 다이어리에 빠르게 체크를 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메디컬 회사들에서 연락이 오는데, 총판 문의요.”

“아… 그래서요?”

“그래서 지금 메디컬 회사들에서 대표님께 전달 요청하시면서, 기획서도 같이 보내 주고 계시는데. 계속 더 받아도 될까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니요. 제가 오늘 총판 정리할게요.”

“네, 그럼 이후 문의는 받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신소율은 방긋 웃으며 대표실을 빠져나갔고.

나는 앞에 놓인 서류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는 정말 총판을 지정해야 할 때.

한 번 총판을 지정하고 난 후에는 다른 회사로 바꿀 수가 없기에.

아니,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지.

말 그대로 줬다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계약 사항을 위반할 시에는 총판 권한을 해지할 수 있지만.

그렇게까지 가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지.

어느 회사로 총판을 지정해야 할까…….

나는 다방면으로 회사를 거르고 걸러, 최종 몇 개 회사의 서류만을 정리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친분이나 옛정, 말도 안 되게 부풀린 기대 금액 등은 완전히 배제했고.

순수하게 비즈니스 마인드로 회사들을 검열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번뜩 눈을 뜨고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서둘러 키패드를 눌러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지 않아,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저 민지훈 대표입니다.”

- 네, 알죠. 무슨 일로…….

나는 한 손에 서류를 들고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휴대전화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희 JH 메디컬과 좋은 메디컬 파트너…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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