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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51화 (251/339)

251화

【 천재일우 】

조 차장은 목을 가다듬고 주변을 살폈다.

술집에는 우리와 접점이 있는 사람도 없었지만, 눈치를 보는 그.

무슨 말이길래…….

“한 과장… 거대 메디컬 딸이야.”

“네?”

나는 그의 말에 놀라 소리를 지르듯 외쳤다.

그러자 그는 검지를 자신의 입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쉿!”

“아니, 나이가 그렇게 어린데요? 거대 메디컬 사장님 나이 많으시지 않습니까?”

“맞아. 완전 늦둥이라고 하더라고. 우리 사장님이 워낙 나이가 많으시니까 다들 몰랐는데. 이번에 뭐, 아무튼 회사 일이긴 한데 어쩌다가 뒤에서 소문이 퍼지게 됐어.”

“소문이요?”

“소문이긴 한데, 아니지. 소문이라고 떠도는 이야기가 아니고, 확실하게 이야기가 퍼진 거야.”

그의 말에 나는 놀라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아무튼, 그래서 네가 우리 회사도 오고 한 과장이랑도 만나기라도 한다면? 크으. 지훈아, 진짜 네 인생 부럽다.”

나는 그의 말에 여전히 놀란 채 멍하니 있었다.

한민아 과장이 거대 메디컬 대표의 딸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직도 주변엔 정형외과 메디컬 여자 영업사원이 단 한 명도 없다.

자주 보기 힘든 것이 아니라, 여자 영업사원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니 김사랑도 병원에서 일하면서 여자 영업사원을 본 적이 없다며 한민아 과장을 신기해했으니까.

심지어 그녀는 거대 메디컬이라는 큰 회사에서 과장 직책을 달고 있다. 그저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내막이 있을 줄이야.

조 차장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 재차 입을 열었다.

“더 놀라운 건, 한 과장이 몇 년을 일했는데 단 한 명도 거대 메디컬 딸내미인 줄 몰랐다는 거야. 하긴 그럴 만도 한 게, 애초에 거대 메디컬 신입사원으로 들어와서 바닥부터 일했다고 하더라고.”

애초에 신입사원으로 들어왔고, 과장이 될 동안 아무도 몰랐다는 건 다른 직원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차곡차곡 경력을 쌓으며 과장까지 올라갔다는 것 아닌가.

그녀가 다시 보일 정도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한 과장이 거대 메디컬 딸이라서 대단하다는 게 아니다.

그저 큰 회사 대표의 딸이라는 어마어마한 스펙을 가지고도 남들과 다를 거 하나 없이, 아니 오히려 더 성실하게 임해 그 나이에 과장을 달았다는 사실이 대단한 것이지.

내가 아는 누군가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 누군가는 당연히 우리 회사의 임 차장이다.

그렇다면 스카우트와 관련해 내가 궁금증을 품었던 것들이 설명된다.

한 과장이 스카우트 제안을 하기 위해 직접 찾아왔을 때, 내가 의문을 가졌던 것이 있었다.

대체 왜 그녀가 직접 온 것이지?

게다가 어떻게 그녀가 나를 선택했다고, 나를 스카우트할 수 있는 것이지?

일개 과장을 달고 있는 사람인데 말이다.

내가 코리아 메디컬, 그러니까 대기업에서 과장직을 달고 한 회사의 직원을 스카우트하고 싶다면?

그런 마음을 가질 수는 있지만, 회사에서 선뜻 과장을 달고 있는 사람에게 쉽게 그렇게 해라, 하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회사에서는 과장 직책을 달고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 큰 연봉을 주면서까지 한 사람을 데리고 오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가 거대 메디컬 사장의 딸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녀의 아버지이자, 회사의 사장이 그것을 다른 직원에 비해 보다 쉽게 허락했을 테니까.

이후로도 조 차장과 나는 한 과장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이나 나눴다.

대부분의 대화는 그녀가 대단하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정말 대단하다는 이야기로 끝이 났다.

그러고 난 뒤, 조 차장이 내게 말했다.

“아무튼, 한번 제대로 생각해 봐. 나는 거대 메디컬로 오는 것도 지훈이 널 위해서 충분히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 * *

“올해는 뭐 좀 새로운 거 없냐?”

다시 찾아온 회의 시간.

회사에서는 회의의 연속, 회의의 지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일의 회의를 위한 회의도 일어나는 게 회사니까.

항상 회사는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당연하게도 회사는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달려 나가야 하는 곳이니까.

특히나 우리 회사는 몇 년간 1등 자리, 최고 자리를 다른 회사에 내어주지 않았다.

항상 같은 일만을 반복했다면, 아마 1등 자리는 몇 번이나 빼앗기고 되찾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즉, 1등을 빼앗기지 않고 더 발전하기 위한 것이지.

서 이사의 말에 백 이사가 곧장 입을 열었다.

“이번에 부산 지사에 큰 병원 하나 잡았다고 하더라. 부산에서 제일 큰 대학 병원이라던데.”

백 이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가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 거대 메디컬에서 경기도 지사를 낸 이후에 매출이 굉장히 많이 올랐다고 합니다. 저희는 경상권이 부산에 있으니, 이번에 호남권으로 지사를 내서 전국을 잡는 건 어떨까요? 아무래도 지사가 답인 것 같습니다.”

바로 강 대리의 의견이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백 이사는 혹평을 쏟아냈다.

“부산 지사도 지금 매출이 별로 안 좋아서, 오히려 본사에서 메꾸고 있는 건 왜 몰라. 부산에서 항상 마이너스 나다가 겨우 한 건 잡은 건데, 호남권에 지사를 왜 또 내? 강 대리야, 생각 좀 하고 말하자.”

“…죄송합니다.”

“그리고 부산 지사에 발령을 보내야 할 것 같은데……. 인원부터 생각 좀 해봐야겠다. 하.”

강 대리는 부산 지사의 매출이 항상 저조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채, 그저 백 이사의 말에 호응을 하려고 곧장 달려들었다가 오히려 본전도 못 건지고 꼬리를 내렸다.

그는 참 한결같은 박쥐 캐릭터다.

백 이사의 호통을 들은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다이어리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민 차장은 뭐 생각한 거 없어? 좋은 아이디어?”

백 이사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내게 질문을 던지는 서 이사.

나는 그의 말에 자세를 고쳐 앉아 입을 열었다.

“저는 제조 쪽으로 판로를 여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제조?”

내 말에 재차 되묻는 백 이사.

“네.”

“좋은 아이디어는 있고?”

“저는 트라우마, 외상 기구 쪽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회사와는 차별화된 제품으로요.”

예전부터 생각하던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다녔던 회사들은 모두 판매만 하는 메디컬이었지, 제조에는 손을 걸치고 있던 곳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아이디어를 표출했던 거라고는 광주 메디컬에 있을 때, 붕대 등 소모품 제조 회사에 아이디어 디벨롭을 시키는 것일 뿐.

항상 그 아이디어들을 내밀면 꽤 괜찮은 제품으로 탄생하고는 했었다.

그런 뿌듯함에서 시작된 내 아이디어는 그 이후로도 줄곧 아이디어 노트를 작성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백 이사는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물었다.

“무슨 괜찮은 제품이 있나 본데? 이야기해 봐.”

“저희가 골절로 뼈 수술을 하면, 플레이트(plate)와 스크루(screw)를 삽입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리고 그걸 회복 후에는 리무발해야 하고요.”

뼈가 골절이 되면, 부러진 뼈와 뼈를 붙이기 위해 플레이트를 대고 스크루를 삽입하는 수술을 한다.

즉, 뼈를 붙이기 위해 수술용 의료 기기 나사 등을 이용해 뼈가 붙도록 수술하는 것이지.

사람 몸에 원래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닌, 강제로 의료 기기를 삽입하는 것이다 보니, 회복 후에는 그 제품을 빼내야 한다.

몸에 그것들을 평생 달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뼈가 모두 붙고 나면, 리무발.

즉, 제거 수술을 하는 것이지.

이미 뼈는 붙었기에 그것을 접합시키기 위해 삽입했던 의료 기기를 빼내야 한다. 그러니까 총 두 번의 수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환자는 회복이 모두 됐음에도, 빠르면 몇 개월, 오래 가면 몇 년 후에도 이 제거 수술을 받아야만 한다.

그런데 만약 의료 기기가 몸 안에서 녹아 사라지면 어떨까?

그렇다면 번거롭게 제거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될 텐데.

이런 생각을 항상 해왔었다.

녹는 의료 기기를 국내에서 제조해 나가는 건 어떨까 하는 마음에 나는 내 아이디어를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쏟아내자, 백 이사와 서 이사는 입을 동그랗게 모아 ‘오’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녹는 의료 기기가 충분히…….”

그때 내 말을 뚝 잘라버리는 사람.

바로 임 차장이었다.

“하……. 민 차장님. 시기상조 아닙니까?”

“네?”

나는 그의 말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물었다.

“지금 우리 회사. 거대 메디컬한테 1등 자리 내어주게 생겼습니다. 아시잖습니까.”

그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말을 이어갔다.

“거대 메디컬이 매출로 치고 올라와서 불안한 이 시점에, 갑자기! 뜬금없이! 제조에 손을 대는 건 좀 아니지 않은가 싶은데요?”

또다.

내 의견에 또 반대하는 의견을 내는 임 차장.

진짜 제조 쪽에 손을 대는 게 비합리적이라 생각하는지, 그저 내 의견이라 싫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한숨을 참아내며 그에게 물었다.

“그런 임 차장님 생각은 어떠신데요? 지금 아이디어가 있으신 건가요?”

“예. 다른 지사고, 제조고 뭐고. 우선은 서울 매출, 각 지역의 총판 매출이 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 나는 기가 찼다.

지사도, 내가 말하는 제조도, 모두 본사 매출을 배제한 채 그곳에 매진하자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나와 또다시 의견 충돌이 나자, 논리적이지 못한 말로 대하는 그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임 차장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는 자연스레 얼굴이 일그러졌고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때 들려오는 임 차장의 속마음 소리.

[뭐야, 녹는 의료 기기? 괜찮은데? 아니야. 민지훈이 나보다 앞서면 안 돼. 점점 더 치고 올라온다면 삼촌이 날 인정해 주지 않을 거야. 절대 내 위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눌러야 해. 반드시…….]

나는 그동안 임 차장과 반대 의견으로 부딪칠 때마다 회사의 발전만을 생각해 왔었다.

그저 객관적으로 서로의 의견을 바라보며, 더 나은 의견을 찾기 바빴었지.

그런데 내 의견에 모조리 반대했던 이유가 고작 저거였다니.

순간 임 차장에 대한 분노는 환멸로 바뀌었다.

임 차장을 떠나, 가족 회사인 코리아 메디컬에 대해 남아 있던 작은 기대마저도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코리아 메디컬을 차지하기 위해, 임 사장에게 물려받기 위해 위협되는 인물인 나를 눌러야만 한다?

자신이 더 경력치를 쌓아 오를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저 나를 밀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는 게 한심했다.

동시에 내가 왜 이런 사람과 언쟁을 펼치며, 회사 발전을 위해 노력했지? 하는 생각에 회의감도 밀려왔다.

백 이사는 임 차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지. 이럴 때일수록 본질이 가장 중요한 거니까. 메디컬 회사에서 물건을 팔아 매출을 남기는 게 가장 기본이기는 하지.”

언제는 내 아이디어에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재차 질문을 던지던 백 이사도 역시 임 차장과 한통속이었다.

그와 반대되는 사람인 서 이사가 객관적으로 모든 의견에 한마디씩을 덧붙였다.

“본질, 중요하죠. 매출을 더 늘리고, 영업 더 하는 거? 맞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게 지금 더뎌서 거대 메디컬에 잡히게 생긴 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거 아닙니까? 우선 그 문제는 목표 매출을 가지고 온 뒤 다시 회의하죠.”

그의 말에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서 이사는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제조에 우리가 손을 대는 거. 저는 충분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우리는 영업으로 유명한 회사 아닙니까. 항상 제조된 물건을 받아서 판매하며 이윤을 남겼는데, 이제 자사 제품 하나 생산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 임 차장이 입을 열려는 제스처를 취하자, 서 이사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자사 제품 제조하자는 말. 예전부터 항상 회사에서 누누이 언급은 됐던 이야기 아닙니까, 백 이사님?”

서 이사는 백 이사를 향해 물었고, 그는 어깨를 들썩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대신 어떤 제품이냐, 그게 시장에서 제대로 먹힐 수 있느냐가 중요하죠. 민 차장은 자세하게 보고서로 작성해서 나한테 보고해 줘.”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사는… 아까 백 이사님이 말씀하셨듯, 우선 부산 지사가 먼저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만간 부산 지사에 발령도 생각 중입니다.”

한 명 한 명 냈던 의견을 조목조목 따져 피드백을 주는 서 이사.

그의 말에 나를 포함한 직원들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회의가 끝난 뒤, 나는 허탈한 마음으로 내 자리에 앉았다.

그때 내게 다가오는 서 이사.

“민 차장.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할까?”

그는 턱을 천창을 향해 들어 올렸다.

그가 내게 할 말이 있을 때마다 부르는 곳, 옥상에서 보자는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서 이사를 따라 옥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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