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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49화 (249/339)

249화

조 차장의 말에 내가 대답을 하지 않고 있으니, 그의 목소리가 이어 들렸다.

- 나 거대 메디컬로 이직하기로 했어.

“이제 서 부장님도 이사로 승진하셨고, 차장님도 서울로 복귀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서 부장이 이사로 승진을 하면 부장일 때보다는 파워가 강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서 부장은 이사가 되는 순간,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조 차장을 복귀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서 부장의 승진을 더욱더 기대했었다.

자신의 라인이자 아끼는 후임이 부산 지사로 밀려났을 때 그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힘들어했던 것을 내 눈으로 지켜보았었다.

결국 서 부장은 이사가 되었고, 이제 조 차장을 끌어올 수 있는 힘이 생겼는데, 조 차장이 퇴사를 해버린다니.

게다가 다른 회사도 아닌, 라이벌 회사인 거대 메디컬로 말이다.

조 차장은 콧바람을 내쉬며 내게 답했다.

-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그래도……. 이제 서 부장님이 서울 복귀를 하실 수 있는데……. 아시잖아요.”

- 그렇지. 근데 나도 이제 코리아 메디컬에 다닐 만큼 다녔지. 그것도 아주 오래……. 이 정도면 그 회사에서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본 것 같아.

그의 말에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 앞으로 계속 임 사장과 백 이사 밑에 있는 것도, 그리고 한 곳에 이렇게 오래 있는 것도 힘들 때 됐지, 뭐. 내 경력이 있는데, 부산에 계속 있는 것보다 다른 회사로 가는 게 훨씬 나을 거 같아서 그렇게 됐다.

조 차장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을 코리아 메디컬만을 위해 일했는데, 부산 지사로 보내지게 되어 정말 많은 생각을 했을 터다.

그의 결정은 정말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일 것이다.

더군다나 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그를 붙잡을 수도 없었다.

나는 그의 상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를 믿고 따르던 것은 나였다.

그가 떠난다면, 내가 무슨 수로 붙잡을 수가 있겠는가.

“차장님…….”

- 그리고 지훈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는 말인데, 나한테 절대 미안해할 거 없으니까 그런 마음 가지지 마. 미안해야 할 사람은 네가 아니니까.

사실 그가 부산에 가게 된 것도, 이렇게 결과적으로 거대 메디컬에 가게 된 것도, 애초에 내가 백 이사의 횡령 이야기를 꺼내 이렇게 된 것만 같아 항상 마음이 쓰였다.

그는 나에게 미안해할 것 없다고 늘 말해 주었지만, 어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을까.

조 차장은 오히려 그런 나를 걱정하는 듯 말을 이어 갔다.

- 거대 메디컬에 내가 이력서 넣고 직접 가게 된 거야. 내가 이 정도 짬에 아무 곳이나 가겠냐? 연봉도 지금 받던 것보다 훨씬 높아.

“그럼요. 차장님 실력에 아무 곳이나 가실 리는 없죠.”

- 그래, 인마. 그러니까 미안해하는 듯한 말투는 넣어둬라. 그리고 코리아 메디컬. 항상 1등인 회사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잖아, 재미없게. 거대 메디컬에서 열심히 해서 코리아 메디컬 따라잡아야지. 하하. 앞으로 선의의 경쟁하게 생겼네, 지훈이랑?

“그렇게 하시면 제가 어떻게 차장님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

그의 말에 나 역시 웃으며 답을 했다.

그게 조 차장이 원하는 바일 테니.

- 항상 일할 때, 너무 회사만을 위해서 일하지는 마. 물론 회사라는 게 그곳을 위해 일하는 건 맞지만 지훈이 너 스스로도 생각하면서 일해. 그냥 해주고 싶은 말이었어.

“네, 조언 감사합니다. 차장님. 조만간 뵐 수 있는 거죠?”

- 그럼. 바로 정리하고 서울 올라가야지. 올라가자마자 술 한잔하자.

“예.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 그래. 서 부장님… 아니, 서 이사님한테도 연락드려봐야겠다. 다시 연락하자.

조 차장과 전화를 끊은 후, 나는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자연스레 곱씹었다.

내가 차장으로 승진을 했던 것.

임 과장 역시 차장으로 승진을 했던 것.

조 차장이 회사를 그만두고, 거대 메디컬로 가게 된 것.

이 일들로 인해 내가 원했던, 원하는 목표가 어떤 것이었는지 여러 생각에 휩싸였다.

내 목표는 바로 ‘최고’가 되는 것이었다.

단순하게 한 분야에 최고가 되고 싶다는 것에서부터 나는 목표 의식을 가지고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메디컬 신입 직원에서부터, 최연소 대리를 거쳐 과장까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자타공인 가장 최고인 코리아 메디컬 회사의 스카우트까지.

이곳에 와서도 나는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그리고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 결과 오늘 코리아 메디컬에서 차장이라는 직책까지 올라갈 수 있게 된 것이지.

더 나아가 내가 이 회사의 부장, 이사가 된다면 그게 내 목표를 이루는 것이 맞을까?

이 분야의 최고는, 내가 원하는 최고가 되는 것은 이 회사의 가장 높은 사람이 되는 것일까?

머리가 뒤죽박죽 해질 때쯤, 나는 눈을 감고 몸을 벤치에 기대었다.

아직 겨울이라 차가운 겨울바람이 내 볼을 스쳐 지나갔다.

순간, 나는 눈을 번쩍 뜨고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문자 창을 켠 뒤, 조 차장에게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차장님. 아까 말씀을 못 드린 것 같아서요. 거대 메디컬로 가시게 된 거, 축하드립니다. 서울 오시면 바로 연락 주세요!]

조 차장이 회사를 그만두고 거대 메디컬로 간다는 이야기에 나는 전화를 끊을 때까지 놀란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어쨌든 그의 선택은 끝이 났고, 의견을 존중해 주고 축하해 주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는 사실에 나는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서둘러 보냈다.

그리고 그가 내게 해주었던 조언인 ‘회사만을 위해서 일하지 말아라.’라는 말을 곱씹으며, 이날 생각을 마무리 지었다.

* * *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승진 발표가 있고, 여러 명의 직책이 바뀐 뒤 어수선한 분위기가 한동안 이어졌었다.

그것도 아주 잠시, 회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자리를 잡았다.

바뀐 직책을 부르는 일도, 각자의 직책에 맞는 업무를 하는 것도, 적응의 동물답게 원래 그랬다는 듯 자리를 찾아 자연스레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몇 주의 시간이 흐르면서 춥디춥던 겨울의 한파가 지나가고 있었다.

영업 갈 때를 제외하고, 회사로 출근할 때는 패딩을 입던 직원들이 이제는 하나둘 코트를 입을 만큼 날이 풀렸다.

겨울이 끝나가는 것이 눈에 보이자 사무실에는 회의도 잦아지기 시작했다.

왜냐, 날이 풀리는 만큼 성수기인 겨울이 끝이 나고 있었으니까.

가장 비수기인 여름보다는 회의가 적었지만, 겨울에 비해서는 많아진 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직원들의 얼굴을 보지 못할 정도로 바빴었기에, 이 정도만으로도 회의가 굉장히 잦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자주 회의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나와 의견이 자주 상충하는 사람이 생겼다.

“…이 제품으로 강남권 먼저 저희가 영업하면 선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입니다.”

“흠……. 꼭 그 제품일 필요가 있나 싶은데요?”

바로 임승재 차장.

어쩜 이렇게 나와 정반대의 의견만 낼 수가 있는지, 이 정도로 다른 것도 신기하다 싶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일부러 사사건건 나와 정반대의 의견을 내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고는 한다.

이럴 때마다 나는 조성철 차장이 생각나고는 했다.

조 차장이 코리아 메디컬에 다니던 시절, 그는 자신의 동기인 김석구 차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하나뿐인 동기였는데, 어쩌면 저렇게 사이가 나쁘고 라이벌 관계일 수가 있지? 하는 생각을 종종 했었는데, 내가 지금 딱 그런 모양새를 하고 있다.

물론 내가 자처한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오늘도 역시 내 말끝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는 임 차장.

그렇다고 그와 감정적으로 말다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할 필요가 없지.

오히려 그와 내 의견이 항상 충돌하기에, 객관적으로 그 문제를 볼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래야 보다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달까?

하지만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원하는 영업,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와 같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떤 것이 정답인지는 알지 못했다.

회사 생활에서 의견이 다를 때, 누가 맞고 틀리다는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저 누가 더 설득력이 있냐, 누가 더 매출을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느냐로 충돌을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런 의견 충돌이 있을 때, 몇몇 직원들은 앞뒤를 따져보지도 않고 무조건 임 차장의 말에 힘을 싣고는 한다.

당연히 그 몇몇 직원들은 강 대리를 필두로 시작한다.

백 이사는 중립을 지키는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서 이사의 말을 들어보면, 임 사장과의 대화에서 백 이사는 오롯이 임 차장의 편에 서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리 놀랄 것도 없었다.

여전히 백 이사는 임 차장에게 영업한 병원을 넘기고 있으니 말이다.

이건 내가 백 이사의 속마음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대놓고 백 이사가 몇 달을 영업하던 병원이 어느 순간 임 차장의 병원 거래처 목록에 들어가 있었으니까.

* * *

회의가 끝나자마자 육체보다 지친 정신을 겨우 이끌고 병원에 영업을 가기 위해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이제 담당 병원의 수도 현저히 많아졌고, 규모도 꽤 큰 상태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병원을 영업하는 것은 멈출 수 없었다.

예전 과장직을 달고 있을 때라면, 새로운 병원을 늘리는 것보다 현재의 거래처에 매출을 올리기에 힘썼을 것이다.

새로운 병원을 뚫기보다, 담당 병원에 새로운 물건을 추가로 넣는 것이 더 쉽고 매출을 올리기에 간단했으니까.

하지만 이제 그건 내 몫이 아니다.

나는 새로운 병원, 더 큰 규모의 병원을 뚫어야 했다.

기존의 담당 병원에 물품을 늘리는 쉬운 일은 이제 내가 아닌, 아래 직원들에게 지시하기에도 충분했다.

이제 직책에 맞는 더 어렵고 힘든 일을 해야만 했다.

아신 병원.

입구에서부터 그 어마어마한 규모를 알 수 있는 곳이다.

이제 내가 영업을 나가는 병원은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정형외과가 아니었다.

병원 입구에서 정형외과 진료실이 있는 층을 한참이나 찾아야 할 정도의 크디큰 종합병원.

이런 곳이 이제 나의 영업 상대였다.

물론 정형외과만 있는 곳도 내 영업 목록에 들어가기는 한다.

그렇다고 해서 큰 병원에 영업을 모두 성공하느냐?

그건 전혀 아니다.

하루아침에 차장이라는 자리에 올라갔지만,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정형외과 전문 병원만 돌던 과장직이었으니까.

확실히 큰 종합병원을 뚫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네, 원장님. 제 생각에는 원장님께서 선호하시는 제품이 이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제품은…….”

하지만 실패만을 맛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하루아침에 오른 차장이라는 직책이었지만, 내 실력은 켜켜이 쌓여 왔었다.

“오. 이 제품이 맞는 거 같은데요, 민 차장님? 역시 젊은 차장님이라 그런가, 물건 추천하는 센스가 탁월하네. 그래서 그 나이에 차장까지 올라간 거겠지만 말입니다. 하하.”

“아이고. 이렇게 칭찬해 주시면, 제가 단가 최대한으로 잘 맞춰드려야겠는데요? 하하하.”

성공적으로 아신 병원의 영업을 마무리하고 병원에서 나오는 길.

오전에 실패했던 병원이 한 군데 있어, 발길이 무거웠었다.

하지만 지금 사무실로 돌아가는 내 발걸음은 훨씬 가벼워진 상태였다.

미소를 지으며 차로 다가가는 와중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인 : 거대 메디컬 한민아 과장]

거대 메디컬의 한민아 과장?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올해 초, 여자 친구인 김사랑과 함께 있을 때 마주쳤던 이후로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한 과장은 내가 여자 친구가 있는 것도 알고, 나와는 더더욱 연락할 일이 없을 터.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지?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미간을 찌푸리고는 수신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오랜만이에요, 저 한 과장이에요.

“네, 알죠. 잘 지내셨어요?”

- 그럼요. 소문을 들어보니, 잘 지내신다는데……. 혹시 오늘 시간 괜찮으실까요?

“예? 오늘요?”

- 네. 만나서 해야 할 이야기 같아서요. 오늘 좀 뵙고 싶은데…….

한 과장은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내게 만나자는 이야기를 반복했고, 나는 우선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네. 그럼 뵙죠. 어디로 가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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