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아이고, 임 과장님! 승진 축하드립니다.”
사무실에서 아주 큰 목소리로 임 과장을 향해 걸어가며 외치는 강 대리. 그의 목소리에 임 과장은 한껏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하하. 강 대리도 참. 아직 승진 결과 난 것도 아닌데, 벌써 축하를 하면 어떻게 해.”
“에이, 임 과장님 말고 누가 또 승진을 하겠습니까. 몇 시간 후면 임 차장님 되시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누가 박쥐라고 불리는 강 대리 아니랄까 봐, 벌써부터 임 과장 옆에 찰싹 붙어서 알랑거렸다.
그의 말과 행동을 보며 고개를 가로젓는 직원이 몇몇 보였다. 그리고 그중 내게 다가오는 한 사람.
“과장님! 떨리시죠?”
“응?”
바로 이찬호 사원이었다.
그는 내가 코리아 메디컬에 처음 왔을 때부터 항상 나를 응원해 주었다.
그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저기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저는 민 과장님 응원합니다! 아시죠? 하핫.”
이찬호는 턱으로 강 대리를 살짝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야. 김칫국 마시는 걸까 봐 벌써 걱정된다.”
“에이, 과장님이 안 되시면 누가 되겠습니까. 솔직히 실적도 민 과장님이 훨씬 세지 않았습니까?”
“말이라도 고맙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던 도중, 내 어깨에 손을 얹는 서 부장.
“아, 서 부장님?”
“어. 나랑 담배 한 대 피우자, 민 과장.”
“넵!”
그의 말에 이찬호는 가볍게 목례를 한 뒤 자리를 떠났다.
서 부장과 올라온 옥상.
그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조 차장은 부산에 잘 있더라.”
“하. 네, 안 그래도 저도 어제 조 차장님이랑 통화했습니다.”
“그래? 조 차장, 부산 간 지도 벌써 몇 주 됐지?”
“예. 주말마다 무조건 서울로 올라오고 계시다고는 하는데, 확실히 목소리가 안 좋으시더라고요.”
서 부장과 나는 조 차장 생각에 연달아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조 차장을 항상 따랐었기에, 그가 부산을 간 이후에도 여러 차례 통화를 했었다.
그럴 때마다 조 차장은 애써 밝은 척했지만, 항상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그래서 늘 그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지.
서 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러게. 걱정이다. 빨리 서울로 복귀해야 할 텐데 말이야.”
“맞습니다. 저도 조 차장님 복귀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얼른 내가 승진을 해야 할 텐데…….”
“부장님 승진은 확정 아닙니까? 하하하.”
내 능글맞은 표정에 그는 말없이 입꼬리를 올렸다.
“아, 부장님. 그런데 원래 승진 발표를 이렇게 회의 시간에 하는 겁니까? 저는 이렇게 모여서 할 줄은 몰랐습니다.”
보통 큰 회사들은 승진 결과를 그저 벽보에 붙이고 통보하는 식이 많기는 하다.
물론 모든 회사가 같지 않지만 말이다.
나는 대기업을 다녀보지 않았고, 광주 쪽에 있을 때는 승진 일이 딱 정해져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사장이 직원의 능력을 보고, 승진해도 되겠다 싶을 때는 언제든 승진을 하는 식이었지.
체계적이기보다는 주먹구구식의 승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당연히 코리아 메디컬은 드라마에서 보듯, 벽보에 붙이거나 메일로 통보를 할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대회의를 통해 승진 결과를 알려준다는 이야기에 의아했던 건 사실이다.
내 질문에 서 부장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사실 우리도 재작년까지는 게시판 있지? 거기에 붙여서 통보했었어.”
“아! 사무실 입구에 있는 게시판 말씀이십니까?”
“응. 이 시기가 성수기라 다들 바쁘잖아. 그래서 모이기도 힘들고 하니까 그렇게 했었지. 그런데 이왕이면 다 같이 있을 때, 축하도 받게 하고 싶다고, 작년부터는 이렇게 하기 시작했어.”
“아……. 신기하네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이제 슬슬 내려가자. 나 서류 작업 하나 끝내고 회의 들어가려면 시간이 좀 촉박하네?”
“네,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담배를 눌러 불씨를 꺼트렸다.
승진 날이 오자 사무실은 모두 분주한 분위기에 싸여 있었다.
가닥이 잡혔던 승진 목록이 당일이 되면 확실시되기 때문이지.
이미 서 부장이 서 이사가 된다는 소식은 당사자도 거의 확신을 가질 만큼 확정이 되어 있었다.
더불어 하나 더 확정되어 있는 소식.
바로 강대훈 대리의 승진은 목록에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승진이 되는 사람과 되지 않는 사람이 거의 확실하게 갈리자, 직원들의 관심이자 내 관심사인 것은 차장 승진 건이었다.
현재 차장직의 공석은 한 자리.
그리고 조 차장이 부산으로 가기 전부터 차장직으로 한 명이 오를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에 그 자리에 더욱 관심이 쏟아졌다.
원래대로라고 해도 한 명이 올라갈 거였는데, 조 차장까지 빠지니 확실히 한 명이 차장으로 올라가겠구나, 하는 생각.
차장직에 오를 수 있는 인물은 셋 중 하나다.
박지웅 과장과 임 사장의 조카인 임승재 과장,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나까지.
우리 셋 중 어느 한 명이 승진을 할 것이냐가 직원들의 초유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윗선에서 결정하기도 전에 우리들만의 리그에서는 임 과장과 내가 박빙이었다.
박 과장의 작년 실적은 과장 직책에 너무 미치지 못했으니까, 승진이라는 단어에는 가깝지도 않았다.
그리고 임 과장. 그는 이미 ‘조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가족’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승진이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많았다.
단, 그 뒤에 붙는 수식어는 하나도 없었다.
승진에서 가장 필요한 연관 단어인 실적, 실력 등, 그런 중요 단어들은 하나도 붙어 있지 않았다.
마지막 후보인 나. 나는 코리아 메디컬에 온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당연히 올해 승진과는 멀다고 생각하며, 작년을 마무리했었지.
하지만 보통 스카우트가 돼서 오게 된다면, 직책을 하나 올려주면서도 데리고 오는 일들이 많은 편이다.
내 나이치고는 높은 직책에 있기는 하지만, 그걸 떠나 작년 실적은 가히 차장급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큰 건들을 많이 따왔었다.
그래서 대부분 직원들은 내 승진을 기대하고 있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 기대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나 역시 내 승진을 조금 기대하고는 있다.
단지 걸리는 게 하나 있다면, 작년 등급 평가에서 내가 A등급을 받았다는 것?
그러나 그건 정당하지 않게 S등급을 받았던 임 과장이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내가 A등급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임 사장이 내게 S등급과 같은 인센티브 퍼센트를 줬을 테니까.
나는 승진 발표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보며,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기대감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 * *
시간은 금방 지나, 대회의가 시작됐다.
임 사장까지 모두 참여하는 1년에 몇 번 없는 대회의.
앞서 말하는 회의 내용은 별 이야기가 없었다.
그저 승진 발표를 기다리는 영양가 없는 서두일 뿐.
“다들 작년에 고생 많았고, 1년이 시작된 지 벌써 두 달이나 지나갔네. 그래도 승진 발표도 하고, 1년 정비를 하고 나면 진짜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거나 다름없어.”
슬슬 승진 발표를 하려는 모양이다.
“다들 올해도 잘해 보자!”
“네!”
직원들은 합창하듯 입을 모아 답했다.
임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아, 들어보니까 이미 서정우 이사님이라고 소문들이 나 있던데? 맞나, 서 부장?”
임 사장은 눈썹을 들썩이며 서 부장을 향해 물었다.
“하하. 아닙니다.”
서 부장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아니기는. 얼마나 일을 열심히 했으면 소문이 다 났겠어? 축하하네. 서정우 이사님.”
기정사실화되어 있던 승진이었지만, 재치있는 임 사장의 발표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축하드립니다!”
직원들은 그를 향해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가 이사까지 오르려고 열심히 코리아 메디컬에 몸을 담고 있었나 봅니다. 앞으로는 더 열심히 회사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짧은 인사를 마친 뒤, 자리에 앉는 서 부장, 아니 서 이사.
그가 이사직으로 올랐으니 부장직 한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하지만 부장직으로 오르는 차장은 없었다.
조 차장의 동기이자, 현재 유일하게 차장직에 남아 있는 김석구 차장.
김 차장이 부장직으로 오르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기는 했지만, 그는 끝내 그대로 차장직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제 차장직에 오를 사람 발표가 남았다.
무슨 연말 시상식을 하듯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누구 하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사람은 없었지만, 저절로 분위기가 잡혀갔다.
다들 기대하고 있는 승진 순서라 그런 모양이다.
임 사장은 고개를 돌려 직원들을 바라보았고,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다.
뭐지?
진짜 나 홀로 승진을 하는 건가?
짧은 찰나, 그와 눈을 마주친 순간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입을 여는 임 사장.
“축하하네. 민 과장, 아니 이제 민 차장이라고 불러야겠지? 작년부터 우리 회사로 와서 고생 많았고, 좋은 성과 보여줘서 고맙네.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나는 순간 입을 떡 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진이라니!
살짝 기대하고 있었지만, 임 사장의 입에서 내 이름이 불리는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건네는 물건을 받아 들었다.
바로 명함이었다.
‘민지훈 차장’이라고 정확하게 새겨져 있는 명함.
나는 명함을 받으며 그에게 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곧장 나를 향해 쏟아지는 축하들.
“와, 진짜 최연소 차장 아닙니까?”
“하긴 민 과장. 아니, 이제 민 차장님이지? 하하. 민 차장 실력 정도면 충분히 차장 할 만하지. 축하한다.”
“축하드려요, 민 차장님!”
나는 축하를 해주는 직원들을 향해 허리를 접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는 순간, 갑자기 물밀 듯 동시에 여러 생각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차장직으로 오른 것은 당연히 기쁜 일이다.
이제 33살이 된 내게 차장이라니.
그것도 코리아 메디컬,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나가는 메디컬 회사의 차장.
기쁘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드는 생각이 있었다.
과연 내가 여기서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
어디까지 오를까, 하는 기대감에 차는 기쁨이라기보다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담긴 생각이었다.
기뻐하기만 해도 부족한 지금, 내가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회사를 위해 일하면 올라갈 자리가 단계별로 정해져 있는데 말이다.
얼마 전, 몇 년이나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던 조 차장이 한순간에 부산 지사로 가는 걸 보아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겉으로는 미소를 짓고 있지만, 속으로는 착잡한 기분을 느끼던 그때, 임 사장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리고 차장직으로 오르는 또 한 명. 축하한다, 임승재 차장.”
직원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임 사장을 바라보았다.
그랬다.
결국 차장직으로 오르는 직원은 나뿐이 아니라, 조카인 임 과장까지였던 것.
“차장직에 공석도 생기고, 작년 성과로 민 과장과 임 과장 모두 실적이 뛰어났었어. 그래서 올해는 차장직으로 승진을 두 명 올리기로 결정했다. 차장으로 오르는 두 명 다 축하하네.”
임 사장은 마치 임 과장이 승진을 하는 이유를 누군가에게 설득해야만 한다는 듯,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마지막 멘트를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승진 못 한 사람들은 올해 더 열심히 해서 내년을 기대했으면 좋겠다. 이번에 승진한 직원들은 올해도 더 열심히, 내가 한 계단 오른 것에 안주하지 않았으면 해.”
그의 말에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기대에 부응하는 직원들이 되어줬으면 좋겠어. 나 역시도 우리 코리아 메디컬 가족 여러분들이 기대하는 사장님이 되도록 노력할게. 다들 올해도 열심히 하자!”
임 사장의 포부를 끝으로 승진 대회의가 끝이 났다.
회의실을 나와서도 직원들은 한참을 웅성거렸다.
나에게 축하한다는 말, 그리고 다른 승진한 직원들에게도 축하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승진하지 못한 직원들은 그 아쉬움을 겨우 참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그들을 뒤로 한 채 홀로 옥상으로 향했다.
승진을 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나는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은 채, 벤치로 다가가 하늘을 바라보며 앉았다.
그때 울리는 휴대전화.
바로 조 차장의 전화였다.
“차장님!”
- 어, 민 과장. 승진은 어떻게 됐어? 민지훈 차장님 된 건가?
역시 회사 상황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는 조 차장이다.
“하하. 쑥스럽습니다.”
- 축하해. 역시 이번에 민 과장이 될 줄 알았어. 아니지, 이제는 민 차장이라고 해야겠는데?
“감사합니다, 차장님. 아, 그리고 서 부장님도 이사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안 그래도 말씀드릴 겸 전화 드리려고 했는데…….”
- 아니야. 딱 이 시간이면 끝날 것 같아서 전화했어. 할 말도 있고.
“예? 무슨 일 있으십니까?”
- 음……. 아, 우선 뭐 다른 건 없었고?
“저 말고, 임 과장도 차장으로 승진했습니다.”
- 뭐? 그럼 차장으로 두 명이나 올라갔다는 거야? 와…….
“네. 참……. 기분이 좋지만은 않습니다. 그런데 하실 말씀이…….”
조금 전 조 차장의 목소리가 좋지 않은 걸 알아차린 나는 서둘러 그에게 용건을 물었다.
- 어. 나 회사 그만두려고.
나는 그의 말에 순간 얼어붙은 채 답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