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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43화 (243/339)

243화

드르륵.

나는 서둘러 주차장으로 달려가 차 트렁크를 열었다.

분명 사무실에서 옮길 때 상자는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병원에서 상자를 열어보니 납품서의 수량과 상자 안 물건의 수량이 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차에 떨어지지는 않았나 확인했다.

하지만 차에는 내 담당 병원 납품 물건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백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이미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고 있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차례 더 시도해도 연결되지 않아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분명 백 이사가 납품서와 물건 수량을 확인했다고 했었는데…….

뭐가 잘못된 거지?

나는 오전에 있었던 백 이사와의 대화를 곱씹으며 납품 창고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수간호사로 보이는 여성이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수간호사 선생님이실까요?”

나는 그녀에게 인사를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네. 어디서 오셨을까요?”

“저 코리아 메디컬에서 왔는데요.”

“아! 네, 납품서 서명해서 앞에 뒀어요. 가져가시면 돼요.”

“네?”

“납품서 확인하러 오신 거 아니에요? 앞에 뒀다고요.”

그녀는 까칠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의아해졌다. 이미 납품서에 서명을 했다는 건, 그녀가 물건과 납품서를 확인했다는 건데.

분명 수량이 다를 텐데, 그것에 대해 왜 내게 묻지도 않는 거지?

내가 의아한 얼굴로 서 있자 그녀가 다시 말했다.

“백 이사님한테 들으신 거 아니에요?”

“예? 어떤 거 말씀이실까요?”

“저한테 물건이랑 납품서 주면 된다고요.”

“아… 네, 들었습니다.”

“물건 체크 했으니까, 납품서 백 이사님 가져다드리면 돼요. 이제 가보셔도 되고요.”

차가운 말투로 내게 돌아가도 된다고 하는 그녀.

그저 알았다고 하고 납품서를 챙겨 가면 백 이사가 시킨 일은 끝이 난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서서 찜찜해하는 이유는 수량이 납품서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한두 개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무려 30개의 수량 차이가 있었기에 나는 이대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내 담당 병원이라면 애초에 정확하게 챙겨 왔겠지만 라임 정형외과는 내 담당 병원이 아닌 백 이사의 담당 병원이다.

나는 그저 심부름을 온 것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병원 납품에 수량 착오가 있게 된다면 회사에 큰일이 날 수도 있다.

의료 기기 제품은 개당 몇백 원, 몇천 원 하는 물건이 아니다.

특히나 지금 가져온 제품은 개당 몇십만 원을 호가하는 물건이다.

그런데 수량의 오차가 30개나 난다면 몇백만 원이나 차이가 나는데, 이대로 그냥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나중에 병원 측에서 코리아 메디컬로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면 이 납품서에 서명을 하게 된 내가 책임을 물게 될 것이다.

“선생님 혹시 물건 수량은 확인하셨을까요?”

허리를 숙인 채 물건을 정리하던 그녀는 아직도 가지 않고 질문을 하는 나 때문에 다시 허리를 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며 답했다.

“네. 제가 확인했다고요. 수량 맞아요. 그러니까 가셔도 돼요. 우리가 코리아 메디컬이랑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백 이사님이 안 오니까 이게 뭐야, 정말.”

그녀는 내가 귀찮은지, 자기가 할 말만 쏟아내고 재차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수량이 맞다니. 맞을 리가 없는데…….

나를 귀찮아하는 그녀였지만, 나는 끝까지 확인을 해야 했다.

“죄송한데, 제가 수량을 잘못 가지고 온 것 같아서요.”

내 말에 그녀의 몸이 순간 움찔거렸다.

확인을 했다더니, 왜 내 말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아, 백 이사님이 주신대로 가져오신 거 아니에요?”

“그건 맞는데, 제가 수량을 체크해 보니까 아무래도 잘못 챙겨주신 것 같아서요.”

“수량 덜 온 거 말씀하시는 거죠?”

그녀는 다시금 허리를 펴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 전보다 상냥해진 말투로 말이다.

태도를 보니 그녀도 수량이 덜 왔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거 같았다.

“네. 알고 계셨던 건가요?”

“그럼요. 그거 백 이사님이 며칠 전에 미리 넣어주셨어요. 그리고 오늘 나머지 개수만 들어온 거거든요. 회사에 재고가 부족해서 있는 개수만 먼저 넣어주신다고 하셨었어요.”

바로 직전까지 내게 쌀쌀맞고 차갑던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따뜻하고 온화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 들어온 개수가 맞아요. 아! 제가 수술 스케줄이 있어서 이만 들어가야 하는데, 저희 창고 문 좀…….”

그녀는 시계를 바라보더니, 다급하게 말하고는 내가 서 있는 문을 가리켰다.

“아… 네!”

그리고 그녀는 내게 납품서를 손에 쥐여주며 황급히 수술실로 달려갔다.

그녀의 말대로 미리 물건을 넣어줬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혹시나 납품서의 물건 개수보다 실제 납품 개수가 많았다면 문제가 됐을 터.

그러나 어쨌든 납품서 개수보다 실제 개수가 적었기에, 나는 서류를 꼼꼼하게 체크를 한 뒤 병원을 빠져나왔다.

항상 다른 직원의 담당 병원은 조심해야 한다.

이 모든 책임이 나에게 넘어올 수 있으니 말이다.

사회생활에서의 꿀팁이라면 꿀팁이지.

회사 생활에서 모든 책임을 내가 뒤집어쓸 필요는 없다.

물론 내가 잘못한 일은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거래처와 일을 할 때 혹은 상사와 함께 일을 할 때는 항상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일이 잘못되었을 때 나 혼자 책임을 지는 일이 없다.

그저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다.

업무를 할 때, 꼼꼼하고 여러 번 확인을 함으로써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이건 꼼수가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병원에서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길.

지이잉.

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인 : 코리아 메디컬 백승민 이사]

백 이사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내가 그에게 납품 수량을 확인하기 위해 걸었던 부재중 전화에 콜백을 하는 모양.

나는 재빨리 수신 버튼을 눌렀다.

“네, 이사님.”

- 어, 민 과장. 나 원장님 뵙느라 전화를 못 받았네. 라임 정형외과 납품했어?

“예. 방금 납품하고 나오는 길입니다.”

- 그래. 수간호사가 뭐 다른 말은 없었지? 다른 간호사한테 넣지 않았고?

“어… 네.”

그가 묻는 말에 순간 버벅거리며 답을 했다.

물건 납품을 하고 나오는데, ‘뭐 다른 말은 없었지?’라는 질문이 맞는 건가?

- 고생했다. 아, 근데 전화는 왜 한 거야?

“아, 수량이 달라서 전화 드렸었습니다.”

- 어? 수량?

“네. 납품서와 챙겨주셨던 수량이…….”

그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을 내뱉었다.

- 아, 그거 내가 빠진 거는 따로 챙겨뒀어. 넣을 거야.

“예? 따로 빼두셨다고요?”

- 어. 수량 빠진 만큼 챙겨뒀어. 그냥 납품서 가지고 오면 돼. 그리고 내가 상자에 맞게 챙겨놨다는데, 왜 굳이 열어서 확인했어?

“네. 심부름으로 온 거라 잘못 넣으면 안 되니까 확인했습니다.”

- 수간호사는 뭐래? 아니다. 내가 통화할게. 나 병원 들어가야 하니까, 사무실에서 보자.

“예, 고생하십시오.”

그렇게 전화는 끊어졌다.

백 이사가 한 말과 수간호사가 한 말이 일치하지 않았다.

누구의 말이 맞는 거야?

미심쩍었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다시 병원 안으로 들어가 수간호사에게 확인할 수도, 한참 위의 상사인 백 이사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찜찜한 마음을 뒤로한 채, 나는 내 담당 병원으로 향했다.

* * *

똑똑.

“안녕하십니까.”

“뭐야! 오늘 오후 늦게나 물건 넣으러 온다더니, 어떻게 벌써 왔어?”

깜짝 놀란 얼굴로 누구보다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기는 의사.

바로 김사랑이다.

나는 그녀의 큰 목소리에 재빨리 진료실 문을 닫고, 검지를 입에 대며 말했다.

“쉿! 앞에 간호사 선생님들 있어.”

“아! 쉿!”

그녀는 목소리를 한껏 낮춘 채, 나를 따라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댔다.

“원장님. 공과 사는 지키셔야죠.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나는 애써 미소를 감춘 채 그녀에게 말했다.

“네, 네. 어련하시겠어요. 민 과장님.”

그녀는 살짝 토라진 말투와 표정을 하고는 나를 쏘아보았다.

나 역시 그녀에게 이렇게 사무적으로 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녀에게 항상 말하듯, 공과 사는 지키고 싶은 게 내 마음이었다.

그녀에게 병원에서도 남자 친구로서 다정하게 말하고 대한다면 영업을 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녀 역시 내가 남자 친구라고 해서 나를 돕겠다고 모든 물건을 나에게 발주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했다.

병원에서 납품받는 물건은 자신이 먹고 쓰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기에 나 역시 다른 메디컬 직원과 다름없이 대하기로 했다.

그래야 객관적으로 물건을 보고 선별할 테니까.

나와 다짐을 했지만, 이렇게 한 번씩 병원에서 마주칠 때면 언제 그런 약속을 했느냐는 듯 그녀는 반가움을 표출했다.

나는 그녀에게 커피와 마카롱을 건네며 말했다.

“원장님. 아직 점심 시간 되려면 한참 남았죠? 피곤하실 텐데 이거 드시면서 일하시라고 사 왔습니다.”

그녀는 내가 건네는 커피를 받아들며 다시 환하게 웃었다.

“네, 잘 마실게요. 민 과장님!”

이후 우리의 대화는 그 누구도 연인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사무적이었다.

“이거, 요청하셨던 물건은 비급여 제품인데 괜찮으실까요?”

“아, 이게 내가 말했던 거구나. 이거 좀 뜯어 볼게요.”

하지만 중간중간 눈이 마주칠 때, 그녀와 내 눈꼬리는 자연스레 휘어졌다.

자동으로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는 것이지.

우리는 한참 동안 사적인 마음을 숨기고 업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럼 물건 오는 대로 가지고 올게요.”

“네. 샘플까지 해서 넉넉히 가지고 와요.”

“예. 그리고 오늘 저녁에는요?”

불쑥 묻는 내 말에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답했다.

“뭐야. 저녁에는 왜요?”

“뭐… 그때는 퇴근 후니까, 사적으로 뵙고 싶어서요?”

아무도 없는 진료실.

그녀는 목을 가다듬으며, 눈동자를 빠르게 굴려 주변을 살폈다.

“근데 나 오늘 병원 회식이야. 내일이나 모레 퇴근하고 보면 안 돼? 그때는 바빠?”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니, 그럼 내일이나 모레 데이트하자. 오늘 술 많이 마시지 말고!”

“네, 민 과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예.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진료 보세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에게 재차 입을 열었다.

“전화할게.”

그리고 그녀와 눈을 맞추고는 입꼬리를 올린 뒤 천천히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게 아니니 사내 연애는 아니지만, 내 담당 병원, 내 담당 의사로 있는 그녀.

그런 그녀 때문에 업무로 인해 오는 병원임에도 행복 정형외과에 올 때면, 항상 설레고 기분이 좋다.

* * *

사무실에 오자마자 물건 창고로 갔다.

라임 정형외과로 백 이사 심부름을 다녀오고 나서부터 연신 찜찜한 기분을 없앨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기로 했다.

그래야 이 찜찜한 기분을 내려놓을 수 있을 테니까.

라임 정형외과에 납품했던 물건을 찾기 시작했고, 곧 그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물건의 재고는 상당히 넉넉했다.

수량 차이가 났던 30개는 족히 넘었으니까.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내 의심을 거둘 수는 없다.

사무실에 재고가 많다고 해서 오늘 병원에 납품한 물건 수량이 부족했던 게 설명되는 건 아니니 말이다.

옆에 놓인 재고장, 그 파일을 펼쳤다.

파일에는 어떤 물건이 며칠에 어느 병원으로 몇 개가 나갔는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매일매일 사무실 재고도 함께 기입되어 있어 알 수 있지.

그런데 재고장에 의하면, 이 물건은 지난 한 달이 넘게, 아니 거의 작년 말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재고가 바닥이 났던 적이 없었다.

즉, 물건이 부족해 지난번에 못 들어왔다는 라임 정형외과 수간호사 말은 맞지 않다는 것.

이 물건은 라임 정형외과를 비롯해 많은 병원에 나가고 있었지만, 항상 라임 정형외과에는 딱 맞는 개수로 나갔다고 재고장에 적혀 있었다.

100개, 200개씩 딱 맞춰서 말이다.

그리고 옆에 있던 ‘납품서’ 파일을 열어보니, 서명받아 왔던 납품서 역시 항상 100개, 200개씩 딱 맞아떨어졌다.

뭐지?

그럼 재고장과 납품서가 맞다는 건, 이상한 게 없다는 건데?

내가 괜히 예민하게 받아들여서 의심했던 건가?

손으로 납품서와 재고장 파일을 비교하며 보던 가운데…….

순간 내 시선을 확 끄는 글씨 하나가 보였다.

어?

그럼 이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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