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35화 (235/339)

235화

착.

지글지글.

사람들로 가득한 식당 안.

원형 테이블과 원형 의자로 빼곡한 이곳 안에서도 주방과 가장 가까운 쪽에 앉은 우리.

“자, 다 됐습니다. 조금만 더 구워서 드시면 됩니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턱.

종업원은 내어 온 곱창을 돌판 위에 가지런히 올려둔 후, 내 앞에 집게를 내려놓은 뒤 돌아갔다.

“차장님, 여기 한잔 받으시죠.”

나는 내 앞에 놓인 소주병을 들어 조 차장의 빈 잔에다 따라주었다.

“그래. 민 과장이랑 이렇게 퇴근 후에 술 먹는 건 처음이네?”

“네. 영광입니다, 차장님.”

조 차장이 먼저 내게 술자리를 갖자고 하는 건 처음이었다.

해외 학회에 갔을 때 술자리를 가졌던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거기선 술 마실 사람이 우리 둘뿐이었으니, 나와 단둘이 마시는 게 당연했지만.

그와 잔을 부딪치고 곧장 입에 소주를 털어 부었다.

아직 곱창이 익지 않았기에, 조 차장은 앞에 놓인 밑반찬에 젓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의 빈 잔을 보며 바로 잔을 채우는 나에게 조 차장이 입을 열었다.

“요즘 민 과장 실적도 아주 좋고, 생각보다 빨리 회사에 적응하는 거 보면 참 대단해.”

“하하. 아닙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아니야. 내 앞에서까지 겸손 떨 거 있나. 자, 받아. 내가 한잔 줄게.”

“넵.”

그는 내 손에서 소주를 가져가 내 잔에 따랐다.

“우리 회사에 라인 있는 거, 민 과장도 알고 있지?”

“예? 라인 말씀이십니까?”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라인이 있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그 이야기를 조 차장 입에서 들으니 조금 의외였다.

라인이라고는 전혀 상관없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자신의 길을 갈 것 같은 조 차장이었으니까.

“네, 알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조 차장님께서는 그런 거 신경 안 쓰시는 줄 알았습니다.”

“하하. 나라고 어떻게 안 그러겠어. 어느 직장인이 라인 없이 회사 생활을 해.”

나는 그의 말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떡하니 벌렸다.

“사내 정치? 없으면 안 되지.”

그리고 곧장 생각했다.

강 대리가 김석구 차장의 라인을 타고 있고, 그 위에는 유현수 부장.

조 차장이 라인을 탄다면, 서정우 부장뿐인데…….

그동안 둘 사이의 교류를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그럼 혹시… 서 부장님……?”

조 차장은 내 말에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맞아. 내가 우리 서 부장님 이사직까지 올려야 하는데 말이야.”

“와. 정말 몰랐습니다.”

나는 그에게 말을 하며 앞에 익어가는 곱창을 가위로 서걱서걱 잘라냈다.

“뭐야. 벌써 소주를 반병이나 마셨어?”

서로 소주를 한 잔씩 더 마셨을 때, 우리 테이블로 다가와 자연스레 착석하며 말을 하는 사람.

방금까지 이야기하던 서정우 부장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서 부장님!”

“어어, 앉아도 돼. 민 과장. 하하. 나 오는 거 이야기 안 했어, 조 차장?”

그는 외투를 정리하며 조 차장에게 물었다.

“안 그래도 방금 부장님 이야기하면서 하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빨리 오셨습니까?”

“생각보다 일이 빨리 마무리됐어. 크으. 역시 내가 좋아하는 곱창집으로 왔네?”

“당연하죠. 항상 저희가 앉던 지정석으로 딱 세팅해 뒀습니다. 하하.”

몰랐다.

그리고 놀라운 광경이다.

이 둘의 관계가 이렇게 가까웠을 줄이야.

둘은 그저 한두 번 술자리를 가진 사이가 아니었다.

주고받는 대화, 눈빛까지.

왜 내가 그동안 둘이 한 라인이라는 것을 몰랐나 싶을 정도였으니까.

놀랄 것도 잠시, 나는 재빨리 종업원을 불러서 한 명분의 자리 세팅을 요청했다.

잠시 후, 종업원이 서 부장의 잔과 앞접시를 가져다주었다.

“서 부장님, 한잔 올리겠습니다.”

“아이고, 그래. 민 과장이랑 같이 술자리 한번 해야지 했는데 드디어 먹는구먼, 그래.”

그의 말에 나 대신 조 차장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 학회 다녀와서 바로 날 잡으려고 했는데, 계속 바쁜 일이 있어서 이제야 제가 민 과장한테 말했습니다.”

“그래. 학회 전에도 조 차장이 민 과장 이야기 많이 했었지만, 다녀와서부터는 어찌나 더 하던지.”

서 부장의 말에 나는 조 차장을 바라보았다.

그가 나를 눈여겨보고 있었을 줄이야.

오늘 몰랐던 사실에 대해 많이 알게 되는 날인 듯하다.

그리고 곧장 서 부장은 잔을 들어 올렸다.

곱창을 추가 주문하기도 전에 우리 테이블에는 빈 소주병이 3병이나 놓였다.

이야기하며 틈이 날 때마다 잔을 부딪치다 보니, 금세 빈 병이 늘어 갔다.

술을 마시던 조 차장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번에 온 조카 말입니다.”

“아, 사장님 조카?”

“네. 그냥 혼자 일하게 놔두실까요? 누구 하나 붙여서 일 알려줄 것 같으신데, 혹시 사장님이 부장님께 말씀하신 건 없으시죠?”

나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응. 아마 자기 조카니까 직접 나서시지 않을까? 그러려고 데려왔을 테니 말이야.”

“흠. 역시 그렇겠죠? 그나저나 강 대리는 완전 찰싹 붙었던데요? 역시 박쥐라니까요.”

조 차장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강 대리는 첫날부터 임 과장에게 갖은 아부를 떨며 그에게 착 달라붙어 있었다.

그걸 나 혼자 느낀 게 아닌 모양.

나는 조 차장을 향해 물었다.

“강 대리는 원래 유 부장님 라인이죠?”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에게 재차 확인하기 위해 묻자 조 차장이 답했다.

“어. 거기 원래 중간에 박 과장이 있잖아. 위에는 김 차장까지. 근데 임 과장이 오니까 바로 임 과장한테 붙어버린 거지. 참, 강 대리도 대단한 놈이야.”

박 과장은 현재 나를 포함한 과장 3명 중 가장 코리아 메디컬에 오래 근무했다. 하지만 존재감이 가장 적은 사람이었다.

그 사람도 유 부장 라인이었지.

서 부장은 조 차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박 과장이 뭐 배울 점이 있어서 붙어 있었겠냐. 강 대리가 눈치로 여기저기 붙어 있었던 거지. 그러다가 더 센 줄이 내려오니까, 임 과장한테 붙어버린 거지.”

우리는 회사 이야기를 안주 삼아 술을 들이켰다.

“크으. 아, 내년에 승진 연도인 거 알지?”

서 부장은 조 차장과 나를 향해 물었다.

조 차장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멍하니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올해 이 회사에 왔기에,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나와는 다른지,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 부장은 내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차장 승진 대상자라고 한다면, 민 과장밖에 없지 않을까 싶은데… 나는.”

서 부장은 말을 마치자마자 내게 소주를 따라 부었고, 조 차장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조 차장 생각은 어떤가?”

그는 양손으로 소주잔을 잡아, 서 부장이 따르는 술을 받으며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무리 민 과장이 짧은 시간 있었지만, 실력으로 보나 실적으로 보나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인물은 우리 민 과장뿐인 것 같은데요?”

조 차장이 내게 ‘우리 민 과장’이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들의 대화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실 나는 예전부터 조 차장 라인을 홀로 타고 있다고 생각했다.

뭐, 회사 초반부터 조 차장이 마음에 들어 라인을 탔던 것은 아니다.

나와 반대되는 성향의 강 대리.

그가 타는 라인이 조 차장의 동기인 김 차장이었기에, 나는 자연스레 조 차장을 바라봤던 것이지.

그런데 조 차장이 먼저 나를 챙겨주다니.

그의 마음이 나를 향해 언제부터 열린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찌 됐든 기분은 좋았다.

회사 생활에서 나 혼자만 잘한다고 뭐든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끌어주는 사람, 아래에서 밀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협력해 모두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지.

내가 생각하는 라인의 끝이 조 차장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보다 더 위에 서 부장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어깨가 든든해졌다.

그리고 조 차장 위에 서 부장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기보다 좋았다.

회사에 부장이 총 두 명.

유현수 부장과 서정우 부장.

그 둘 중 라인을 타야 한다면 나는 서 부장이 더 믿고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내 승진을 응원하고 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내 승진만을 100퍼센트 미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승진을 하게 된다면 차장직으로 오를 텐데…….

그렇다면 조 차장 또한 부장직으로, 그리고 서 부장도 위로 한 칸씩 오를 것이니까.

윈윈 구조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조 차장의 말에 머리를 숙이며 답했다.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야. 민 과장 실력 보면 다들 그렇게 생각할걸? 그렇지 않습니까, 서 부장님?”

“하하. 맞지. 조 차장이 민 과장 칭찬을 그렇게 하는 거 보면 다 이유가 있는 거지. 나도 민 과장 좋게 생각하고 말이야. 그럼 내가 또 끌어줘야 하지 않겠어?”

“조 차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감동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자 조 차장은 눈을 질끈 감으며 답했다.

“뭐야, 그런 눈빛 보내지 마. 멀어질 것 같으니까.”

그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확실히 이제 나와 친분이 쌓였는지 장난스러운 농담까지 던지는 조 차장이다.

“그나저나 민 과장. 이번에 행복 정형외과, 병원장에 부원장까지 따왔다며?”

“아… 네. 맞습니다.”

“그래. 그런데 벌써 실적 많이 쌓아서 어쩌냐. 다들 점점 더 기대할 텐데 말이야.”

서 부장은 진심으로 걱정이 된다는 듯 내게 물었다.

맞는 말이다.

내가 워낙 큰 건들을 따오다 보니, 위에서는 더 큰 영업 실적을 기대할 터.

그의 말에 내가 답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그럼 기대에 부응하도록 해야죠. 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내 말에 서 부장과 조 차장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크으. 나이도 젊으니까 열정 패기 넘치는 것 봐라. 근데 또 실력까지 뒷받침해 주니까 얼마나 좋아. 우리 어릴 때 생각나냐, 성철아?”

서 부장은 조 차장을 향해 물었다.

“그럼요. 부장님, 저도 그때는 더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우리 앞으로 더 잘해 보자. 우리가 같이 한 계단씩 위로 올라가야 하지 않겠어? 아무리 임 사장님 조카가 왔다고 해도, 사장님이 실력도 안 보고 가족 생각만 할 분은 아니니까 말이야.”

“맞습니다. 백 이사님도 실적만 보고 사람 평가하는 거, 다 임 사장님께 배운 거잖습니까. 아마 철저하게 평가하고 내년 승진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그래. 우리 셋 다 한번 올라가 보자! 위하여!”

서 부장은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위하여!”

서 부장과 조 차장의 잔에 내 잔을 세게 부딪쳤다.

그리고 의지를 가득 태우며, 찰랑거리는 소주를 한입에 털어 마셨다.

그래, 앞으로 올라갈 생각만 하자!

* * *

짤랑.

전날 마신 술로 인해 아침부터 옥상에 올라와 자판기 앞에 섰다.

그리고 주머니에 챙겨 온 동전을 꺼내 자판기 동전 투입구에 하나씩 넣었다.

숙취에 시달릴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늘 그렇듯 일찍 일어나 출근하니 맑은 바람을 쐬고 싶었다. 그래서 옥상으로 올라온 것이지.

커피를 한 잔 뽑아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어제 술자리를 정리해 보자면, 내년은 승진 연도.

승진 대상자가 있기는 하지만, 어떤 직책에서 몇 명이 오를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왜냐, 부장직이 승진하려면 이사직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이사직에는 백 이사가 자리를 잡고 있으니 말이다.

항간에 도는 말로는 이사직이 총 두 명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혹은 백 이사를 부사장직으로 올릴 수도 있다는 말도 돈다고 한다.

뭐, 모든 건 임 사장의 뜻대로 될 테니 확정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둘 중 어느 쪽이 됐든 한 단계씩 승진을 하기는 한다는 것.

나는 승진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박 과장과 임 과장 그리고 나, 이렇게 셋 중 비교했을 때, 객관적으로 보아도 실적은 내가 훨씬 출중하다는 것은 자부할 수 있었다.

결과물만 놓고 보아도 내가 월등했으니까.

혹시… 내가 이러다가 승진을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상상에 종이컵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민 과장님. 여기 계셨네요?”

그때, 갑자기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어? 강 대리님.”

강 대리는 마치 나를 찾고 있었다는 듯, 내 옆으로 빠르게 걸어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저 찾으셨어요?”

내가 그에게 묻자 그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또 무슨 일이지?

그와 더는 부딪힐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와 사이가 좋아진 것은 전혀 아니다.

그렇다고 뭐 사이가 나빠질 것도 없지.

오히려 그가 내게 코메 바이오 건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온 것이라면 모를까.

강 대리는 코로 숨을 길게 내쉬며 내 옆에 착석했다.

“하. 과장님. 이건 진짜 상도덕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짜고짜 내게 무례하게 말하는 강 대리.

이유는 들어야 하겠지만, 무슨 일이건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지난번에 내가 그에게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이런 태도를 보이는 강 대리.

두 번째는 나도 경고로만 끝낼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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