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빠른 걸음에서 점점 달리는 듯한 발걸음으로 걸어 나오고 있는 환자를 확인했다.
그의 등 뒤에 들고 있는 무언가가 어떤 것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병원장을 향해 상처를 내려는 무언가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로비에서 들었던 속마음.
그리고 지금 그가 짓고 있는 살기 어린 표정.
입으로 무슨 말인지 모를 말들을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저 무서운 얼굴.
그걸 확인한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걸 깨달은 후, 나는 어떤 제스처라도 취해야 했다.
혹여나 내 예상이 빗나가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면?
그저 진료실에서 조금 무서운 얼굴로 나오고 있는 것뿐이라면?
그렇다면 내가 그를 막아낸 것이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내가 여기서 취할 수 있는 행동.
바로 애매하게 그를 막아 내 예상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달려오는 그를 향해 재빨리 다리를 뻗었다.
퍽.
눈이 이미 돌아 있었기에, 앞을 쏘아보며 다가오던 그는 내 다리를 보지 못하고 그만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물론 내가 그를 넘어뜨리기 위해 작정하고 걸었지만 말이다.
넘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들리는 또 하나의 소리.
챙.
무언가가 그의 손을 떠나 멀리 굴러갔고, 그걸 보는 나와 김 원장 그리고 병원장과 간호사들은 입을 벌리고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건 바로 ‘칼’이었다.
“꺄아아아!”
“칼이야, 칼!”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당연한 반응이다.
병원에서, 그것도 환자의 몸에서 칼이 나온다는 건 당연히 누군가를 찌르기 위해 가져왔다는 이야기일 테니 말이다.
심지어 그 칼은 그저 과일을 깎기 위해 가져온 과도가 아니었다.
회칼같이 길고 큰 칼.
누가 그걸 아무 이유 없이 병원에 가져와, 눈이 뒤집힌 채 달리겠는가.
나 역시 그 칼을 보고, 등 뒤에 숨기고 있던 게 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장 환자의 몸 위에 올라탔다.
환자는 넘어지며 놓친 칼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일어나려고 했고, 나는 그걸 저지하기 위해서는 방법이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몸 위에 올라가 양팔을 붙잡으니, 그가 몸부림을 쳤다.
“아이 씨!”
김 원장은 재빨리 다가가 그 칼을 주워들었고, 사람들은 연이어 소리를 질렀다.
“꺄아아! 빨리 경찰 불러!”
환자는 독기 어린 눈빛으로 병원장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 끝에 있는 병원장은 서 있는 채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 * *
행복 정형외과가 큰 덕에 로비에는 항상 한 명의 경호원이 자리하고 있다.
그 덕에 경찰이 오기 전, 경호원이 재빠르게 입원실 층으로 올라와 나를 도와 그 환자를 제압했다.
다행히 경찰은 우리의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우린 그 환자를 경찰에 인계하였고 아무런 일 없이, 그 누구도 다치는 일 없이 상황이 일단락됐다.
아직 조사 단계이지만, 현재 환자는 정신이 이상한 상태라고 전해 들었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수술을 담당했던 병원장이 자기를 아프게 해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으로 칼을 준비했다는 것이 그의 진술이었다.
그가 로비에서부터 검정 비닐봉지에 꼭꼭 숨겨서 가져온 것이 바로 칼이었던 것이지.
생각하면 정말 끔찍한 사건이었다.
내가 그 시간에 김 원장을 보러 행복 정형외과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때 내가 김 원장과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면?
그래서 딱 그 환자가 지나갈 즈음, 로비에 들르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속마음도 듣지 못했을 거고, 환자가 복수하겠다는 것도 몰랐겠지.
더불어 그녀와 함께 입원실을 올라올 수 있었으니, 큰일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
그렇지 않았다면 일이 커져 뉴스에서 엄청난 사건으로 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하루를 겨우 마무리 지었다.
* * *
“안녕하십니까.”
출근 후 사무실에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 임정준 사장이 출근했다.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응. 좋은 아침!”
그는 한 손을 들어 짧은 인사를 보낸 뒤, 곧장 사장실로 걸어갔다.
그리고 사장실 문 앞에서 갑자기 멈춰선 그.
목을 빼고 사무실을 둘러보던 그는 나에게서 시선이 멈춰 섰다.
“민 과장!”
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허리를 곧게 세우고 답했다.
“예, 사장님.”
“잠깐 내 방으로.”
“넵.”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빨리 다이어리와 펜을 챙겨 사장실로 향했다.
“어. 거기 소파에 앉게.”
“네.”
임 사장은 겉옷을 정리한 후, 바로 내 앞에 자리했다.
그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어제 행복 정형외과에 병원장님, 큰일 날뻔했다며?”
행복 정형외과에서 환자가 칼부림하려던 그 이야기를 들은 모양.
“아……. 들으셨습니까?”
“어. 병원장님한테 전화가 왔더라고. 이야기는 자세히 해주셔서 내용은 알고 있어. 민 과장이 그때 없었으면 큰일 났을 거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시더라.”
“아닙니다. 금방 경호원분도 올라오셨고, 경찰도 와서 별일 없이 마무리됐습니다.”
“에이. 그래도 들어보니까 민 과장 아니었으면 바로… 어휴. 말하기도 무섭다. 어제 여러모로 고생 많았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답했다.
“아무튼, 그래서 오늘 민 과장 병원 한번 들어오라고 하시더라. 할 말 있으시다고.”
“네? 저를요?”
“어제 그렇게 큰일 했는데, 고맙다는 인사 하려고 그러시는 거 아니겠어? 우리 회사로 오시겠다는 거, 내가 민 과장 보낸다고 만류했지.”
“아……. 그런데 어제 이미 저한테 감사 인사는 충분히 하셨었는데.”
어제 경찰이 와서 상황이 마무리되자마자 내게 다가와 여러 차례 인사했던 병원장.
수차례 감사 인사를 전했고, 김 원장까지 내게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이나 했다.
김 원장은 자신의 병원장에게 일어날 뻔한 일이기도 하고, 병원에 그런 큰일이 나는 게 좋을 리가 없으니까.
그래서인지 그녀 또한 내게 고마운 마음이 컸던 모양.
“그래도 오늘 별일 없으면 한번 다녀와. 나 같아도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 하고 싶겠다.”
“예, 알겠습니다.”
* * *
바쁜 업무를 마치고 오후에 찾은 행복 정형외과.
오늘은 김 원장이 아닌, 병원장실로 곧장 올라갔다.
병원장의 방은 두 곳이 있었다.
병원장실, 그리고 병원장이 진료를 보는 진료실.
오늘 그는 진료실에서 진료를 보는 날이었기에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똑똑.
나는 노크를 한 뒤, 목을 가다듬고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아! 민 과장, 왔나?”
어제 사건 이후에 나와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레 말을 놓았던 병원장.
나는 그를 향해 허리를 접었다.
그는 밝은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기다렸네. 어서 앉게.”
“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그럼. 덕분에 괜찮지. 어제 경황이 없어서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네. 정말 다시 한번 고맙네, 고마워.”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저도 우연히 했던 행동이라, 이렇게 감사 인사를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충분하지. 그렇게 오래 의사 생활하면서 그런 경우는 난생처음이었거든.”
“그러시죠? 그런 건 뉴스에서도 보기 힘든 일이잖습니까. 엄청 놀라셨을 텐데, 이제 괜찮으신 겁니까?”
“응. 어제 일 끝나고 집에 가서도 진정이 안 됐었는데, 푹 자고 났더니 괜찮아.”
그는 한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내가 고마워서 어쩌나. 미리 알고 있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했어? 하. 정말 고맙네, 고마워.”
연신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는 그에게 나는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아닙니다. 저도 얼떨결에 발이 걸리면서 그렇게 된 거라, 하하.”
환자가 복수하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말은 할 수 없어 댄 핑계였다.
속마음을 읽고 의심이 되어 입원실까지 올라갔다는 말을 어찌하겠는가.
그는 내 말에 호탕하게 웃더니, 목을 풀며 입을 열었다.
“오늘 내가 민 과장을 보자고 한 이유는 고맙기도 하고 할 말이 있어서야.”
할 말이라.
고맙다는 말 말고 할 말이 뭐가 있는 거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어떤 말씀인지…….”
“행복 정형외과에서 내가 받는 물건, 앞으로 민 과장이 직접 가지고 와줬으면 하네. 그리고 새로운 품목 영업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나는 그의 말에 놀라서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행복 정형외과의 병원장은 우리 회사에서 임 사장이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내가?
게다가 이 큰 병원의 병원장이자, 더불어 임 사장이 담당하고 있었다면 어마어마한 인물 아닌가.
좋은 기회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렇게 오케이를 한다면 임 사장에게는 뭐라고 해야 하지?
고민을 하던 찰나, 병원장이 재차 입을 열었다.
“혹시 임 사장 때문에 망설이는 거라면 그럴 필요 없네. 내가 이미 임 사장과 이야기했거든.”
“네?”
“임 사장한테 민 과장 이야기를 하니, 바로 알았다고 하더군. 이미 임 사장과 내 관계는 만들어졌고, 앞으로 병원에서 영업으로 보지 않는다고 해도 볼 사이니까 말이야. 민 과장이 병원 담당해 줬으면 하는데, 어떤가?”
나는 주저할 것이 없었다.
왜냐,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기 때문이다.
그저 임 사장 대신 물건 납품하고 병원장을 만나는 그런 단순한 것으로 풀이하면 안 된다.
내가 이런 큰 병원의 병원장과 친분이 생긴다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병원장과 친분이 쌓이면 앞으로 행복 정형외과의 다른 원장에게도 물건을 영업하고, 권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그리고 인맥도 넓어질 수밖에 없지.
병원장과 사적인 친분이 점차 쌓인다면, 그가 술자리에서 만나는 인맥들을 나도 함께 만날 수가 있으니까.
그걸 알고 병원장도 내게 제안을 했을 터.
임 사장까지 그 제안을 오케이 했다니, 내가 마다할 리가 전혀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병원장님.”
그는 그제야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하. 아닐세.”
“제가 그렇게 큰일을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시다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니야. 큰일 했지. 내 목숨을 구해 준 사람 아닌가. 내가 보답할 방법이 뭐가 있나 하다가, 약소하게라도 먼저 보답하고 싶었네. 앞으로 나와 더 잘 지내보자고, 민지훈 과장.”
그는 내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그의 손을 맞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나가는 길에 부원장 좀 만나고 가. 내가 이야기해 뒀거든. 아마 물건 몇 개 발주할 거야.”
“네? 부원장님이요?”
“응. 부원장이 우리 병원 실세거든. 하하. 노리는 메디컬이 많았던 거로 알고 있어. 나가서 곧장 부원장 만나 봐.”
나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겨우 붙잡았다.
예쓰!
병원장도 모자라, 부원장까지 내가 담당하게 생겼다니.
이건 김사랑 원장 덕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녀 덕분에 행복 정형외과에 처음부터 올 수 있었으니까.
다음에 김 원장에게 거하게 술이라도 한잔 사야겠는데?
나는 머릿속으로 그녀를 생각하며, 병원장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나는 부원장의 진료실로 향했다.
병원장 말대로 부원장은 몇 가지 품목을 미리 준비해 둔 듯, 내게 별다른 이야기 없이 곧장 발주를 했다.
발주 목록을 품에 안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마음은 마치 날아갈 것처럼 둥실거렸다.
* * *
사무실에 커다랗게 있는 판.
바로 직원마다 담당 병원, 담당 의사를 적는 판이다.
나는 내 이름이 크게 써져 있는 곳 맨 아래에 행복 정형외과 병원장과 부원장을 차례로 써 내려갔다.
“뭐야. 민 과장, 행복 정형외과 병원장이랑 부원장 영업한 거야?”
글씨를 쓰자마자 뒤에서 놀란 듯이 외치는 사람.
바로 조 차장이었다.
“예.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이야. 이거 진짜 대단한데? 이렇게까지 잘나가도 되는 거야?”
“하하. 과찬이십니다. 그런데 여기는 왜……. 이거 적으러 오신 겁니까?”
내가 있는 이곳은 판에 글씨를 적기 위해 들어와야 하는 곳이다.
그도 판에 글씨를 적으러 온 것인지, 아니면 그저 보러 들어온 것인지를 그에게 물었다.
“아니. 나 민 과장한테 할 말이 있어서 들어왔지.”
“예? 저한테요?”
평소 조 차장이 나를 찾을 일이 없었기에 나는 급히 펜 뚜껑을 닫아 내려놓았다.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