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32화 (232/339)

232화

“몰…랐습니다.”

강 대리는 백 이사의 눈을 바라보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구며 답했다.

백 이사는 그의 말에 눈동자를 위로 올리고 흰자를 보이며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 곧장 눈을 꽉 감았다 뜬 뒤, 소리쳤다.

“뭐? 몰라?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백 이사의 호통에 회의실은 차갑게 얼어붙고 말았다.

싸한 분위기 속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함께 얼어붙고 만 강 대리의 입술.

“부작용……. 하, 아니 그런 기본적인 것도 안 알아보고 총판을 받아오려고 했다는 게 말이 되냐? 너 이 생활 짬이 몇 년이야? 어?”

“죄송합니다.”

“죄송이고 뭐고. 부작용. 몰랐던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진짜?”

강 대리는 그의 말에 고개를 빠르게 가로저으며 답했다.

“코메 바이오에서 줬던 임상 연구 결과는 확인했었습니다. 거기에는 문제가 될 만큼의 부작용이 없었고…….”

“그리고? 강 대리가 따로 알아본 건 없다, 이거지?”

“…네. 죄송합니다.”

강 대리의 말에 백 이사는 연신 자신의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연달아 내쉬는 한숨과 함께.

아직 계약하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백 이사가 화를 내는 이유.

당연하다.

내가 조금 전 부작용 사례를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면 곧장 도장을 찍어 코메 바이오로 넘겼을 테니까.

멋모르고 벼랑 끝까지 달려간 차를 내가 겨우 막아낸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내 덕분이라고 해서 뿌듯한 마음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대접을 받기 위해 찾아낸 것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냥 거대 메디컬을 이긴다, 이거면 되는 거 아니잖아. 심지어 걔들이 안 먹고 버린 거라고. 그걸 강 대리가 덥석 문 거고.”

“앞으로 꼼꼼하게 잘 살펴보겠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죄송하다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담당이 아닌 민 과장도 이렇게 알아보는데, 담당자인 강 대리가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에 강 대리는 고개를 책상에 닿을 정도로 푸욱 숙였다.

그럼에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백 이사가 말을 이어 갔다.

“하. 이거 우리 첫 달에 발주해서 부작용 나왔어 봐. 그대로 병원에서 반품 보내면, 우리는 코메 바이오로 반품도 못 하고 재고 떠안는 거잖아.”

코메 바이오와의 총판 계약서상, 반품 불가라는 항목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반품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조금의 문제라도 발생한다면 곧장 반품을 보내지.

우리가 병원의 반품을 거절한다?

그럴 수는 없다.

아니, 그런 경우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병원은 우리가 아니어도 대체 메디컬이 많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을의 입장으로 갑인 병원에게 맞춰야 하는 게 메디컬의 현실이다.

“…죄송합니다.”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하는 강 대리를 보며 백 이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오른쪽 팔을 허공에 들어 올려 강 대리를 향해 뻗었다.

“그러니까! 강 대리가 승진을……!”

차마 그 뒷말은 하지 못하겠는지 백 이사는 입을 굳게 닫아버렸다.

뻗어 올렸던 팔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으며 숨을 몰아 내쉬는 그.

아마 뒤의 이야기는 ‘승진을 못 하지.’라는 것을 이 회의실에 있는 온 직원들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회의실의 공기는 바깥에 부는 바람보다 몇 배는 차가웠다.

그렇게 몇 분 같은 짧은 몇 초가 지나고, 백 이사가 애써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강 대리. 올해 가기 전까지 다른 성과라도 꼭 내와. 뭐든.”

“네, 알겠습니다.”

강 대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답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회의.

“민 과장은 코메 바이오 건 말고 또 보고할 거 있나?”

젠장.

다음 차례가 바로 나다.

하필 이 얼어붙었던 공기를 깨트릴 사람으로 내가 지목받았다.

나는 누가 들어도 놀라운 소식, NA 바이오 총판 건을 들고 왔다.

하지만 이 상황에 짠, 하고 내밀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싫어하는 강 대리.

그가 왕창 깨진 후 짜릿하게 내미는 행복한 소식.

기분이야 좋겠지만, 굳이 이런 분위기를 내가 곧장 이어받는 것은 예상하지 않았다.

그가 나를 싫어하기에 나 역시 강 대리를 싫어하는 것이지, 그가 무너지게 하려고 빌었던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나는 고개를 들고 조심스레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네. 있습니다.”

“그래? 지난주에 학회 다녀와서 밀렸던 일하고, 코메 바이오 건 따로 찾아보느라 시간 없었을 텐데 뭘 보고할 게 있어? 말해 봐.”

내게 던진 말로 강 대리를 한 번 더 누르는 백 이사.

저번 회의 시간.

나와 조 차장에게 해외 학회까지 가서 해온 것이 없다며 소리치던 그 백 이사가 맞나 싶었다.

여기서 동시에 알 수 있는 한 가지.

백 이사는 철저히 능력, 실적 위주로 직원을 본다는 것이다.

저번 회의 때까지만 해도 내게 이렇게 상냥한 말투로 이야기하지 않았다가, 코메 바이오의 중요한 사실을 가져왔더니 바로 태도를 전환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당차게 입을 열었다.

“NA 바이오… 총판 받아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 NA 바이오?”

백 이사는 강 대리에게 호통을 칠 때보다 더 큰 리액션으로 내게 되물었다.

조금 전 코메 바이오 이야기를 할 때와는 달리 온 직원이 나를 향해 시선을 빠르게 옮겼다.

그리고 동시에 회의실에 쑥덕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다들 놀랐을 테지.

NA 바이오 총판을 따오는 것.

아니, NA 바이오는 이름만 언급된다고 해도 놀랄 수밖에 없는 어마어마한 회사니까.

“네. NA 바이오 맞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자세히 말해 봐. 저번 회의 때까지만 해도 안 된다고 했었잖아.”

“네. 조 차장님과 해외 학회를 다녀온 후, 한국에 와서도 NA 바이오 담당자와 연달아 컨택을 시도했습니다.”

백 이사는 내 말에 흥미로운 표정으로 경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간의 일을 일목요연하게 말한 뒤, 메일로 왔던 첨부 서류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날짜가 지나고, 오늘 아침. NA 바이오에서 온 연락입니다.”

백 이사가 첨부 서류를 읽는 동안, 직원들은 NA 바이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몇몇 직원은 나에게 엄지를 치켜들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잘했다는 이야기도 아끼지 않고 쏟아냈다.

“뭐야, 총판을 받아올 수도 있을 것 같은 게 아니라. 거의 도장만 찍으면 끝인 거잖아?”

백 이사는 꽤 흥분한 듯 자리를 박차며 일어나 외쳤다.

“예, 맞습니다. 뒤에 계약 사항만 확인해서 조율하면 됩니다.”

“크으. NA 바이오가 한국에 들어오는 것도 모자라, 그게 우리 코리아 메디컬이라니. 진짜 감격스럽다. 민 과장 실력이 이렇게 좋은 사람이었나? 하하하.”

“극찬이십니다, 이사님. 그리고 조 차장님과 함께 해외 학회에 가게 되어서 이런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조 차장은 내게 짧게 미소를 한 번 보였다.

“사람이 겸손할 줄도 알고 말이야. 하하. 사장님께 바로 보고 올리고, 계약서 이야기는 다시 하자고.”

“넵.”

백 이사는 다시금 자리에 앉아, 다이어리를 뒤적였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참, 민 과장 KPI 목표 설정은 했었나?”

KPI.

실적 평가를 위한 일종의 채점표로, 승진 성과급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즉, 회사에서는 직원의 성과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데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회사가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큰 회사들에서는 많이 이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내가 광주에 있을 때는 단 한 군데의 회사에서도 KPI를 하지 않았지만, 코리아 메디컬과 같이 대기업인 회사에서는 많이들 한다고 들었었다.

“아니요, 아직 설정 안 했습니다.”

“그랬겠네. 항상 초에 하니까 말이야.”

회사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자신의 영업 목표 설정을 할 연초에 KPI 목표치를 설정한다.

그리고 그 설정해 둔 값에 가까워지게 실적을 내야 하는 것이지.

“민 과장은 우리 회사에서 연초부터 일한 건 아니니까, 성과 큰 거 하나만 내도 만점일 거야. 아마 행복 정형외과 건도 큰 건이었는데, NA 바이오면……. 어휴, 충분하지.”

백 이사의 말에 서정우 부장이 맞장구를 치며 답했다.

“맞습니다. NA 바이오 총판 따오는 거라면, 어느 직책이었건 거의 만점 아닙니까? 하하.”

“그렇지. NA 바이오 건만으로도 S는 충분히 받겠네.”

S, 바로 등급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마지막 실적을 보고, 위에서는 직원별로 등급을 매긴다.

위에서부터 S, A, B, C, D.

당연히 아래인 D로 내려갈수록 KPI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할 실적을 가져왔다는 뜻이지.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백 이사와 서 부장의 말에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잘했다는 말에 기분 나쁠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백 이사는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강 대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강 대리는 조심해. 우리 D등급도 있는 거 알지?”

강 대리는 그의 말에 놀랐는지 순간 몸을 파르르 떨고 고개를 들었다.

“D등급은 연봉 삭감 아닙니까?”

백 이사의 말에 놀란 박지웅 부장이 물었다.

“어. 매년 나오는 등급은 아니지만, 가끔 나오기도 해. 영업맨이 월급만큼 영업 못 하면, 다음 연도에는 같은 월급 못 받는 게 당연한 거잖아.”

백 이사의 설명에 회의실의 분위기는 순간 숙연해졌다.

강 대리는 백 이사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냐. 자기가 코메 바이오 건을 잘못한 것도 맞고, 더불어 올해 강 대리가 마땅히 이렇다고 할 만한 실적을 따내온 것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번에 직책별로 제일 등급 높은 사람에게 추가로 인센티브 주어질 거니까, 열심히들 해. 각자 직책에서 1등 해야 하지 않겠어?”

직책별로 높은 등급 한 명에게 추가 인센티브라…….

직책마다 서로에게 뒤처지지 않게 하기 위해 경쟁 심리를 부추기는 것이다.

즉, 나와 박지웅 과장, 임승재 과장 중에 단 한 명만 승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자신 있었다.

이후로도 몇십 분간의 회의가 이어졌다.

“자, 그럼 오늘 회의는 마무리하자.”

“네.”

“예, 고생하셨습니다.”

“아, 그리고 민 과장 잘했다!”

마지막으로 내뱉는 백 이사의 말에 직원들은 나에게 한마디씩을 던졌다.

“그래. 민 과장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박수로 마무리되는 회의.

내 건너편에 앉은 임 과장.

같은 과장인 직책이기도 하고, 아무리 임 사장의 조카로 왔다고 하더라도 이제 막 회사에 온 것이기에 나를 견제할 줄 알았다.

하지만 누구보다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박수를 치고 있는 그.

뭐지?

나를 가장 견제해야 할 사람은 바로 임 과장 아닌가?

내 생각보다 실력이 출중한 대인배인 건가?

나는 속으로 의아해했지만,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사람이 하나둘 빠져나가는 회의실.

들고 온 서류가 많았던 탓에 나는 회의실에서 거의 마지막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 쪽으로 걸어가자,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백 이사와 강 대리였다.

“올해 끝나기 전에 성과 좀 하나라도 내. 정말 강 대리 이대로 가다가는 승진 위험한 거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제발 잘 좀 하자, 강대훈아.”

“예……. 죄송합니다.”

그들의 대화를 뒤로 한 채 서둘러 빠져나온 회의실.

회의실 바로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흔드는 사람.

바로 임 과장이었다.

“민 과장님.”

그의 부름에 놀란 나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답했다.

“네? 저요?”

“예, 민 과장님. 담배 한 대 같이 피우실까요?”

그는 검지와 중지를 자신에 입에 가져다 대며 내게 말했다.

나와 담배를 피우겠다라…….

옥상에 올라가 다른 직원들 없이 따로 할 이야기가 있는 모양.

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그러죠.”

임 과장을 따라 올라간 옥상.

오늘 막 출근한 직원이지만, 옥상에는 벌써 몇 차례 올라온 듯 익숙해 보였다.

하긴, 그가 임 사장의 조카이기에 그와 독대를 하려고 했던 직원이 한둘이었으랴.

정확히는 몰라도 아마 오늘만 수차례의 담배를 피웠을 것 같다.

그는 마치 나보다 더 옥상 흡연 장소에 대해 빠삭하다는 듯 걸어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배 끝에 불이 붙고, 불이 금세 연기로 타오를 즈음 그가 입을 열었다.

“민 과장님은 오늘 저한테 먼저 담배 한 대 태우자고 이야기를 안 하시네요?”

“예?”

“아니. 이미 소문이 다 났잖아요. 제가 삼촌, 아니 임 사장님 조카라는 거요.”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나를 바라보며 말하는 그.

나는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