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알림을 클릭하니, 새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회사 생활에서 관리해야 할 것 중 하나인 메일.
대부분의 연락은 전화와 문자로 이루어지지만, 메디컬 같은 회사와의 연락은 메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새로운 메일이 왔을 때, 바로 확인하는 것은 필수이지.
새 메일 하나를 클릭하자마자 나는 눈을 비비며 다시 확인했다.
[NA 바이오 이태현입니다.]
어?
내가 잘못 본 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확인했지만, 메일 제목은 그대로였다.
내가 학회에 갔을 때, NA 바이오의 이태현에게 줄기세포를 국내로 수출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그는 내 말에 동요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거라는 답변만이 돌아왔었지.
그리고 나는 한국에 돌아와 메일을 통해 그에게 재차 왜 NA 바이오 제품이 한국에 들어와야 하는지, 들어오게 된다면 총판이 왜 우리 코리아 메디컬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보냈었다.
일주일 동안 답변이 오지 않았었기에 설득을 하는 중일까, 혹은 이대로 거절의 의사를 표하는 것일까, 여러 예상을 했었다.
그런데 드디어 그에게서 회신이 온 것이다.
나는 기쁜 마음보다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메일을 클릭하자마자 제일 먼저 뜨는 말이 ‘죄송합니다.’와 같이 거절하는 말이 들어 있다면 기뻐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
내년에 수출 계획이 있다고 했으니, 그때라도 우리에게 컨택을 하자는 등의 답변이라도 왔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메일 제목을 클릭했다.
[안녕하십니까, NA 바이오 이태현입니다.
보내주신 내용과 지난 학회 때 나누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내부에서 검토 후 연락드립니다.
해외 학회에서 민지훈 과장님의 말씀과 연달아 주셨던 메일이 저희 NA 바이오를 움직이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
……
내년 예정이었던, 한국 수출을 조금 앞당기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총판은 코리아 메디컬 민지훈 과장님과 진행하고 싶습니다.
관련 서류 첨부하여 보내드리니, 확인하시고 연락 주십시오.]
메일을 천천히 읽던 나는 내용을 확인한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와!”
그리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내 소리를 들은 조성철 차장.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자리로 걸어오고 있었다.
“민 과장. 뭐야? 무슨 일 있어?”
조 차장은 한껏 올라간 내 입꼬리를 본 뒤 곧장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내가 모니터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는 빠르게 내용을 확인하고 턱을 최대한 아래로 내리며 입을 떡하니 벌렸다.
“뭐야? NA 바이오?”
나는 그의 물음에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맞습니다!”
“그럼 그때 해외 학회 때, 부스에서 이야기한 거 가지고 답변이 온 거야?”
“네. 그러고 난 뒤, 한국에 돌아와서 메일도 보냈었거든요. 저도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하하.”
나는 얼떨떨한 마음에 연신 내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혹여나 꿈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었지.
왜냐, 그만큼 NA 바이오 총판을 따오는 일은 꿈 같은 일이었으니까.
조 차장은 붕 떠 있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어깨를 눌러 자리에 앉혔다.
“민 과장. 진짜 잘했다, 잘했어.”
“감사합니다, 차장님.”
“대체 학회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이렇게 총판을 주겠다는 거야? 크으. 우리 회사가 한국 최초로 NA 바이오 총판 건을 따오다니……. 민 과장, 그때 포기하지 않고 시도했던 게 먹힌 거야!”
해외 학회에서 NA 바이오 이태현이 올해는 수출 계획이 없다는 말에 포기해 버렸던 조 차장.
그 당시가 생각나는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잠시, 그는 곧장 누구보다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큰 건을 따온 것이지만,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고 있는 조 차장.
그의 미소에 나는 배로 뿌듯해졌다.
조 차장의 얼굴을 보고 미소 짓던 나는 주변을 둘러본 뒤 그에게 물었다.
“조 차장님. 그럼 지금 보고 올리면 될까요?”
그는 내 말에 잠시 고민에 빠진 듯 보였다.
이내 고개를 휘젓는 조 차장.
몸을 내 귀 쪽으로 기울여 내게 말했다.
“아니, 어차피 오늘 회의 있잖아. 내가 따로 보고는 안 올릴 테니까, 거기서 보여줘. 해외 학회까지 다녀왔는데 큰 성과 못 냈었다고, 말도 안 되는 강 대리랑 비교하는 거 기분 나쁘잖아.”
지난주, 조 차장 역시 백 이사의 말에 기분이 나빴던 모양.
강 대리가 회의 시간 이야기를 꺼냈던 코메 바이오 총판.
고작 그 이야기와 우리를 비교하며 말했던 것에 나 역시 기분이 나빴으니까.
나는 어떠한 말 대신 고개를 한 번 크게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조 차장은 그대로 내 어깨를 두드린 후 자리를 떠났고, 자리에 남은 나는 마음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의 시간만을 기다렸다.
회사 생활에서 회의가 기다려진다는 말.
실적을 쌓아야 하는 영업 직원이라면 알 것이다.
회의가 기다려진다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내가 엄청나게 좋은 건수를 물어왔을 때지.
학교 성적이 1등급 나왔을 때, 부모님에게 칭찬을 받기 전처럼 말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회의가 기다려졌던 적이 몇 번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설레는 마음으로 그 회의 시간이 기다려졌다.
홀로 주체할 수 없는 입꼬리를 겨우 붙잡으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던 그때.
“그래서 강 대리는 집이 어디 쪽이라고 했지?”
“아… 저는 임 과장님 집 근처에 있는 큰 오피스텔 있잖습니까. 거기에…….”
사무실로 들어오며 대화를 나누는 임승재 과장과 강대훈 대리.
임 과장과 동갑인 강 대리가 알랑방귀를 뀌어 결국 임 과장만 말을 놓은 모양.
나는 그의 태도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첫 출근을 했을 때와 태도가 저렇게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한 번 입꼬리를 올린 후, 곧장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리고 코메 바이오의 관절 주사에 대해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 * *
“그래. 김 차장은 이번 주에 대학 병원 들어간다고 했었지?”
“네. 지난주에 갔던…….”
백 이사는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회의에 임했다.
꼿꼿하게 앉은 자세로 직원들의 말 하나하나 경청하며, 하나도 빠짐없이 메모하고 있는 모습.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아니,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코리아 메디컬에 온 이후, 임정준 사장이 회의에 참석했을 때.
그때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회의에 열중한 모습.
뻔했다.
임정준 사장의 조카, 임승재 과장이 이 자리에 있기 때문이겠지.
그런 백 이사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백 이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직원이 임 과장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 애를 쓰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혹여나 삼촌인 임 사장에게 안 좋은 이야기가 들어갈세라,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와중에도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직원은 여전히 강 대리.
임 과장 라인을 타고 초고속 승진을 꿈꾸고 있겠지.
나는 강 대리와는 다른 길을 걸었었고, 앞으로도 쭉 다른 길을 걸을 것 같다.
임 과장을 신경 쓰지 않는 몇 안 되는 직원 중 하나가 바로 나였다.
내가 임 사장의 조카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이유는 당연했다.
굳이? 라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임 과장이 내 선임도 아닐뿐더러, 임 과장에게 잘 보인다고 한들 내게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임 과장은 메디컬 경력이 있기는 하지만 오래되거나 실력이 출중하지도 않다고 한다.
정말 말 그대로 낙하산으로 과장직에 꽂힌 것이지.
이런 직원에게 내가 잘 보인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도 나와 같은 과장 직책일 뿐이다.
더불어 실력은 내가 그보다 한 수 위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를 견제하지 않을 뿐이지 그를 무시하거나 내가 잘났다는 걸 드러낼 생각은 없다.
즉, 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
나 홀로 생각에 잠겨 회의에 임하던 그때.
“강 대리, 코메 바이오 건은 어떻게 됐어? 우리 총판 가져올 수 있는 건가?”
백 이사는 강 대리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아! 네, 말씀드리겠습니다.”
흘러오는 순서대로라면 곧 내 차례여야 했지만, 백 이사는 강 대리에게 먼저 바통을 쥐여주었다.
순서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고개를 돌려 강 대리를 바라보았다.
코메 바이오의 관절 주사.
거대 메디컬 한 과장에게 들은 부작용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알아본 팩트들.
강 대리도 과연 그것을 알아차렸을까?
아니면 그저 총판이라는 것에만 한 눈이 팔려 부작용들을 찾아내지 못했을까?
“코메 바이오 총판…….”
나는 강 대리가 내뱉을 말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백 이사의 기대 어린 눈빛.
그것에 부응이라도 한다는 듯이 강 대리는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답했다.
“총판. 저희가 가져올 수 있습니다.”
강 대리는 백 이사를 향해 서류를 내보였다.
바로 총판 계약서.
“오. 강 대리가 역시 뭐 하나 해낼 줄 알았다니까? 하하. 그럼 계약서 검토는 한 건가?”
“네. 결제 텀과 최소 발주량, 그리고 저희 매출 계획까지 정리했습니다.”
자신만만한 강 대리의 표정.
그의 눈빛은 빠르게 나와 임 과장을 훑고 지나갔다.
나에게는 으스대는 눈빛을 보냈고, 동시에 임 과장에게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나에게 보낸 눈빛과는 아주 살짝 다른 의미의 시선이었다.
“그럼 계약서 내용에 이상만 없으면 오늘 도장 날인해서 바로…….”
백 이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이사님. 코메 바이오 관절 주사 건에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직원의 시선은 일제히 나에게 쏟아졌다.
“민 과장이 코메 바이오 건에 대해서?”
백 이사는 흥미롭다는 듯한 얼굴과 말투로 내게 물었고, 강 대리는 레이저를 뿜어내듯 나를 쏘아보았다.
“네.”
“어. 말해 봐.”
나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때, 조 차장과 눈이 마주쳤고 그는 나를 향해 무겁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는 알고 있었다.
관절 주사의 부작용에 대해 말이다.
조 차장이 내게 거대 메디컬 한 과장에게 물어보라는 권유를 했었고, 내가 그것을 조 차장에게 보고했기 때문이지.
조 차장이 따로 백 이사에게 보고를 올리려고 했으나 구태여 그러지는 않았다.
강 대리가 드디어 대리 직책을 달고, 총판을 따올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 확인해 보자는 게 조 차장의 생각이었다.
대리 직책을 달고 괜찮은 총판을 따올 수 있는가, 제품과 회사를 제대로 확인하고 해올 수 있는가에 대해 믿고 기다려보자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강 대리는 조 차장의 예상과는 달리 그저 총판을 따내오는 것, 실적을 쌓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 기본적인 제품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지.
그리고 결국, 그 기본적인 제품에 대한 내용은 내가 직접 밝히게 되었다.
“코메 바이오 관절 주사에 대해 이상한 점이 있어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대 메디컬이 발을 뺀 이유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그게 뭔데?”
백 이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내게 물었다.
“부작용입니다.”
“뭐? 부작용?”
“네. 관절 주사로 인한 부작용이 일어난 사례들이 많았고, 그 자료들로는…….”
내 말을 자르고 소리치는 강 대리.
“백 이사님! 부작용이라고 하면 뭐든 제품에서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강 대리는 백 이사를 향해 말했지만, 눈으로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지. 부작용은 모든 제품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거니까. 민 과장, 그래서?”
백 이사는 강 대리의 말에도 흥분하지 않은 채, 여유 가득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사람에게 주입하는 주사에서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코메 바이오 관절 주사는 부작용이 잦은 편이었고, 그 증상도 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는 그에게 말한 뒤 준비해 온 자료를 건넸다.
“참고 자료입니다. 저희에게 표면적으로 보냈던 임상 연구 결과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자료들입니다.”
백 이사는 아무런 말 없이 자료를 하나씩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일그러지는 그의 얼굴.
몇 분 동안 자료를 읽는 백 이사를 보며 온 직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로의 눈치만을 보고 있었다.
잠시 뒤, 백 이사는 고개를 들고 강 대리를 바라보았다.
“강 대리.”
“예, 이사님.”
“몰랐어?”
“네?”
“부작용 말이야. 거대 메디컬이 발을 뺀 이유가 우리 회사에 밀릴까 걱정이 됐던 게 아니라, 제품 때문인 거 몰랐냐고!”
백 이사는 그러데이션으로 언성을 높이며 얼굴을 붉혔다.
그의 말에 강 대리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고개를 떨궜다.
“…죄송합니다.”
“죄송? 죄송이 아니라 설명을 해 봐. 알고도 여기까지 온 건지, 몰랐던 건지!”
백 이사의 질문에 강 대리는 빠르게 눈알을 굴렸다.
그리고 전 직원은 강 대리의 입에 시선을 고정했다.
알고도 총판 계약을 이어 갔는지, 모르고 계약을 이어 갔는지, 둘 중 어느 대답이 나온다고 해도 백 이사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