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가방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한 한민아 과장.
그리고는 이내 파일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이게 뭐예요?”
“우리가 코메 바이오에서 손을 뗀 이유죠.”
나는 파일을 집었고, 동시에 그녀 역시 파일에 손을 가져다 댔다.
“에이. 설명부터 듣고 열어보셔야죠.”
“아! 네, 이야기해 주세요.”
그녀는 그제야 몸을 소파에 기대어 팔짱을 낀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근데 정말 코리아 메디컬에서 총판 받으려고 했던 거예요?”
지금까지 강 대리가 한 과장과 같은 것을 알아내지 못했다면, 당연히 총판을 받았을 것이다.
며칠 전인 금요일까지도 강 대리는 사무실에서 떵떵거리며 총판을 받아올 것이라 이야기했으니까.
“네, 제가 담당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아마도요.”
“아……. 그럼 저한테 엄청나게 고마워하셔야겠는데요, 민 과장님?”
대체 무슨 이야기이길래 이렇게까지 말하는 거지?
나의 궁금증은 더해져만 갔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설마 거기 제품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내 물음에 그녀는 아무런 대답 없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나는 입 밖으로 헉 소리를 내고 말았다.
제품에 문제가 있는데 그걸 강 대리가 모르고 있었다고?
그러면서도 총판을 받으려고 했다니.
제품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아직은 모르지만, 어쨌든 제품에 문제가 있다면 총판을 받았다고 한들 판매하기가 힘들 터.
“무슨 문제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질문을 하면서도 그녀가 사실대로 알려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문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그 뒤의 일은 우리 회사에서 해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한 과장은 내게 앞에 놓인 파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열어보세요.”
나는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파일을 집어 들었다.
파일을 펼쳐 보니 여러 장의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그중 가장 첫 번째 장에 적혀 있는 글자.
[관절 주사 임상 연구 결과 정리.]
신제품이 나오면 임상 연구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제품이 환자에게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치료는 어떻게 되어 가는 건지 증명하는 방법이 임상 연구이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한 가지.
바로 ‘부작용’이었다.
어떤 품목이든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다.
당연히 몸 안에 원래 있던 것이 아닌, 다른 물질을 강제로 몸에 투입하는 것이니까 몸 안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부작용 사례가 나올 수 있는 것이지.
그런데 코메 바이오 관절 주사의 부작용은 자주 나타나는 편이었다.
이걸 강 대리가 몰랐던 걸까?
나 또한 강 대리의 보고 이후, 이 제품에 대해 공부를 조금 했었다.
나는 직접적으로 코메 바이오와 연락을 하며 제품 조사를 한 건 아니었지만, 내가 보았을 때 임상 연구 결과는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강 대리 역시 나와 같은 자료를 봤다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을 터.
나는 파일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 과장님.”
“네. 벌써 찾으셨나요?”
그녀는 내가 벌써 임상 연구 결과들과 기타 서류들을 보며, 의문점을 찾아낸 것이 놀라운 모양.
커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예, 부작용 사례가 좀 많고, 굵직굵직하네요?”
“네. 그런데 이게 코메 바이오에서 저희 쪽으로 보여주었던 자료에는 없었던 거죠. 그게 문제가 되는 부분이고요.”
“그럼 대체 어떻게 알아내신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녀는 자신의 턱을 쓸어 만지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코메 바이오에서 줬던 서류에는 문제가 없었어요. 그리고 그 자료가 거짓된 자료도 아니었고요.”
“맞아요. 제가 봤던 서류도 문제가 없었던 거로 알고 있었거든요.”
“네. 근데 그건 평균치였기에 그랬던 거더라고요. 그 외 부작용이 일어나는 사례들을 찾아보고, 저희가 제품을 분석해 본 결과…….”
그녀는 제품의 성분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자신들이 취급하며 문제가 됐던 성분이 이번 관절 주사에 포함되어 있었기에, 내부에서 민감하게 확인했다는 것.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는지, 아니면 커피를 마신 탓인지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한 과장이 내민 자료와 말이 사실이라면, 그 제품에서 부작용이 발생했을 시 병원에서는 두 번 다시 그 제품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총판이고 뭐고 그대로 물건을 판매할 수 없는 것이지.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 과장에게 물었다.
“진짜…죠?”
설마 하는 마음으로 나는 그녀에게 재차 확인을 했다.
혹시나 이런 식으로 우리 코리아 메디컬이 발을 빼게 만들어 자신들이 코메 바이오의 총판을 차지하려는 건 아닌가?
상대는 거대 메디컬이고, 그들은 우리의 영원한 라이벌 관계다.
좋게 생각한다면 정보를 전달해 주어 고맙지만, 나쁘게 생각해 본다면 굳이 이런 고급 정보를 내게 알려줄 리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연하죠. 제가 굳이 이런 정보를 뭐 하러 거짓으로 드리겠어요. 더군다나 제 주말까지 쓰면서요.”
그녀의 표정, 그녀의 말투에서 거짓이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드는 의문점 한 가지.
“그런데 이걸 제게 알려주시는 이유는 뭐죠? 안 알려주셔도 됐었잖아요.”
“그렇죠. 코리아 메디컬에서 그 총판을 받아서 돈 날리는 걸 보고만 있어도 됐겠죠.”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코리아 메디컬에서 코메 바이오 총판을 받았다가 돈 잃는 거? 그게 저랑은 상관없잖아요. 그 돈 잃게 되고, 재고 조금 떠안는다고 코리아 메디컬이 망한다? 그럼 제가 정보 안 드렸겠죠.”
그녀는 연달아 내뱉은 말에 목이 말랐는지, 커피를 연신 들이켠 후 말을 이어 갔다.
“그런데 코리아 메디컬에서 그런 경제적인 손실이 조금 있다고, 주춤할 정도도 아닐 테고요.”
나는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마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에게 재차 되물었다.
“단지… 그거 때문에 저한테 이런 정보를 주셨다고요?”
내 질문에 그녀는 내 눈을 피하며,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그리고는 시선을 내게로 다시 돌려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친구 하기로 했잖아요.”
“네?”
“이 정도 정보는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녀의 알 수 없는 표정.
해외 학회 당시, 나와 타 메디컬 친구를 맺기로 한 것, 단지 그 이유로 내게 정보를 준다라…….
나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때, 입을 다물고 있던 그녀에게서 들려오는 소리.
[민지훈, 이 남자 볼수록 흥미로운데? 외모나 성격도 뭐, 완벽한 이상형까지는 아니지만, 이만하면 충분하고. 뭐라고 하면서 다음 약속 잡지? 밥 먹자고 할까? 아니면 술?]
나는 들려오는 그녀의 속마음에 화들짝 놀랐다.
겉으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속으로 여러 번의 심호흡을 하며 진정시켰지만, 놀란 마음이 쉽사리 진정되지는 않았다.
내게 호감이 있었던 거라니.
그래서 내게 이런 정보를 주면서까지 만나자고 한 건가?
예상하지 못했던 그녀의 마음에 당황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내 모습을 캐치했는지, 그녀가 나를 부르며 물었다.
“민 과장님. 괜찮아요?”
“아… 네. 그럼요.”
“뭐야, 지금 당황한 거예요?”
“네?”
“우리 친구 하기로 했다는 거. 그래서 정보 주는 게 당황스러운 건가 해서요.”
“아니에요. 고마워요, 알려줘서.”
그녀는 내 말에 빙그레 웃으며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죠? 진짜 엄청난 정보 아니에요?”
“그럼요.”
“그럼 우리 다음에 또 봐요.”
“네?”
“다음에 만나서는 일 이야기 말고, 그냥 뭐… 친구처럼? 만나서 놀자고요.”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예. 차차 친해지면 그렇게 해요.”
“그렇게 하면서 친해지는 거 아닌가?”
훅 치고 들어오는 그녀.
아니. 내가 속마음을 알았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이지, 사실 생각해 보면 이전부터 내게 적극적인 태도로 다가왔던 것 같다.
나보다 한 살밖에 어리지 않지만, 꽤나 당돌한 그녀.
“아…….”
내 말에 그녀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새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이런 정보까지 줬는데, 설마 입 닦는 건 아니겠죠?”
그녀의 말이 맞다.
이런 정보…….
이 사실을 몰랐다면, 강 대리는 총판을 받아 손실을 그대로 떠안았을 것이다.
강 대리가 총판을 받아 손실을 그대로 떠안게 되더라도 강 대리의 책임이지만,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같은 회사 식구로서 그냥 지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알아버렸는데, 이후에 사적인 자리를 가져도 되는 건가?
그렇다고 이런 정보를 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는 것도 못할 일.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곧장 환해진 그녀의 얼굴.
“와. 그럼 우리 조만간 밖에서 또 만나요, 민 과장님.”
카페에 온 이후로 연신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지금 내게 보이는 그녀의 미소는 여느 때보다 밝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렇게 그녀와 다음을 기약하며 카페를 나섰다.
* * *
“안녕하십니까. 오늘부로 여러분과 함께 일하게 된 임승재 과장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사무실을 가득 메우는 새로운 직원의 목소리.
굵직하고 커다란 목소리는 온 직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짝짝짝.
그를 향해 울리는 박수 소리.
곳곳에서는 입으로 환호를 하며 반기는 직원들도 있었다.
이렇게까지 새 직원을 반기는 이유.
그가 낙하산.
그러니까 임정준 사장의 조카라는 사실이 이미 사내에 퍼졌기 때문이다.
소문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관심 없는 내 귀에까지 들어온 걸 보면 아마 전 직원이 다 알고 있는 듯했다.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불쑥 질문을 던지는 직원 한 명.
“아, 저는 33살입니다.”
담백하게 나이를 답한 그.
“와. 동안이신데요? 엄청나게 어려 보이세요!”
“키도 훤칠하시고,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임 과장님 영업 일 잘하실 것 같은데, 다음에 노하우 좀 알려주세요. 하하.”
그는 단지 나이가 몇 살인지에 대한 대답만 했을 뿐인데 돌아오는 말들은 칭찬이 쏟아졌다.
이게 낙하산의 힘인가?
임 과장이 사장의 조카라는 것을 몰랐더라도, 오늘 직원들의 태도로 보고 그가 낙하산이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까지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던 사람들이었던가.
내가 회사에 처음 왔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
나는 홀로 조소를 지었다.
간단하게 인사가 끝나고, 모두 자리로 뿔뿔이 흩어질 때.
강 대리는 누구보다 빠르게 탕비실을 들어갔다가 나오고 있었다.
한 손에 들려있는 커피와 함께.
그리고 곧장 임 과장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과장님. 모닝커피 드시고 일하십시오. 제가 또 커피는 기가 막히게 타거든요. 하하.”
내가 처음 코리아 메디컬에 왔을 당시, 그는 내게 아니꼬운 태도를 보였었다.
그런 그가 손수 탄 커피라니.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임 과장이 사장 직속 라인이라 이건가.
그는 평소 박 과장 라인을 타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라인을 한순간에 바꾸다니.
여러 방면으로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네. 저는 강대훈 대리라고 합니다.”
“예. 앞으로 잘 지내봐요, 강 대리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랑 동갑이세요, 임 과장님.”
“정말요?”
“네. 사회에서 동갑 만나기 힘든데, 신기하네요. 하하. 그래도 선임이시니까, 임 과장님은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그럴…까?”
“옙! 과장님, 담배 태우십니까?”
강 대리는 입꼬리를 귀까지 올리고, 그에게 아부라는 아부는 모두 떨어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대단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도 동시에 들었다.
그가 임 과장과 옥상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컴퓨터 전원을 켰다.
새 직원이 왔기에 퇴근 전 간단한 회의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회의에선 분명 코메 바이오 총판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코메 바이오와 관련하여 거대 메디컬 한 과장에게 들은 정보가 있긴 했지만, 내가 재차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메 바이오 관절 주사에 대해 찾기 위해 자료를 서칭하던 그때.
딩동.
뚫어지라 보고 있던 모니터에서 알림이 울렸다.
나는 서둘러 마우스를 움직여 그 알림을 클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