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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24화 (224/339)

224화

들고 있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다시 주머니에 넣은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곧장 재고가 쌓여 있는 창고로 향했다.

창고에서 붕대 수량을 확인해 바로 차에 실은 후 사무실을 빠져나와 병원으로 출발했다.

아침 일찍 찾았던, 행복 정형외과 김사랑 원장의 진료실.

오늘만 벌써 두 번째 찾아온 이곳.

나는 진료실 앞에서 목을 가다듬은 후, 문을 두드렸다.

똑똑.

“원장님. 저 또 왔어요.”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자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김 원장.

“뭐야? 민 과장님, 왜 또 왔어?”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아침에 붕대 말씀하셨던 거, 바로 가져왔어요.”

“붕대를 벌써? 그거 천천히 넣어줘도 된다고 했었잖아.”

“원장님이 발주할 마음이 바뀌기 전에 바로 넣으려고 했죠. 하하.”

내 너스레에 김 원장은 웃으며 의자를 가리켰다.

“민 과장님도 참. 내가 변덕이라도 부릴까 봐? 얼른 앉아.”

내가 행복 정형외과를 다시 찾은 이유는 붕대 납품 때문이 아니다.

그녀가 내게 말했던 주말 약속.

그 약속을 취소하기 위해 찾은 것이지.

사무실에서 달력을 보자마자 아차, 싶었던 약속.

바로 그녀와 주말에 영화를 보기로 했었던 그 선약이다.

전화나 문자로 김 원장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해도 됐지만, 직접 찾아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그녀를 알게 된 이후, 처음으로 그녀가 내게 직접 영화를 보자고 한 것이다.

이전에 광주에서 영화를 본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내게 말하지 않은 채 몰래 표를 끊었었지.

그런데 이번에는 단지 영화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내게 고마운 마음을 표하고 싶어 용기 내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바로 약속을 깨버리는 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굴을 보고 말하지 않고, 전화나 문자로 툭 내뱉기에는 자칫하면 오해를 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게다가 이번 주 중에 물건을 납품하기 위해 어차피 들러야 하는 행복 정형외과.

그저 조금 일찍 찾아온 것이지.

“붕대 가지고 왔는데, 광주에서 사용하던 거랑 동일한 제품이거든요? 근데 이번에 패키지가 바뀌어서요.”

나는 가져온 붕대 중 샘플을 하나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그러네? 뜯어봐도 되는 거지?”

“네, 그럼요.”

그녀와 나는 물건에 관한 이야기를 몇 분간 나눴다.

그리고 이야기가 마무리되자마자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원장님.”

“응?”

그녀는 내 작은 목소리에 눈썹을 들썩이며 바라보았다.

“아까 이번 주 주말에 만나기로 했던 거 있잖아요.”

“아, 영화 보기로 한 거? 왜? 도저히 무서워서 안 되겠어? 다른 영화 볼까? 다른 것도 괜찮아! 민 과장님이 좋아하는 액션도 있던데, 그거 볼까?”

뭐지?

그녀가 나와 영화를 보기로 했던 건 공포 영화가 주말에 개봉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공포 영화가 아니어도, 내가 좋아하는 액션 영화여도 된다니.

그 공포 영화를 보고 싶어서 내게 영화 보자고 했던 게 아니라는 건가?

나는 고개를 잠시 갸웃거렸지만, 지금 하고자 할 말은 그게 아니었기에 김 원장에게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아니요. 영화 때문이 아니라, 제가 주말에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서요.”

“주말에? 왜, 무슨 일 있어? 아침까지는 된다고 했었잖아?”

“예, 그랬는데…….”

내 말에 김 원장은 긴장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학회 때문에 안 될 것 같아서요. 주말에 학회가 잡혀서…….”

나는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에 말끝을 흐렸다.

주말 약속을 펑크 내는 이유에 대해 들은 그녀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아, 학회 때문이야? 그럼 어쩔 수 없지. 난 또 무슨 이유라고! 다행이네.”

“예?”

뭐가 다행이라는 거지?

학회 때문에 못 간다는 걸 알자, 그녀는 안심하는 듯 숨을 내쉬고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해 되묻자, 김 원장은 곧장 답했다.

“다른 여자 만나는 것도 아니고, 일 때문인 거면 괜찮아.”

“다른 여자라니요? 하하. 원장님, 농담도 참.”

내 말에 당황한 얼굴로 재빨리 대답하는 김 원장.

“아! 여자 아니고, 다른 여사친 말한 거야. 서울에서 나 말고, 벌써 다른 친구 생겼나 한 거지.”

“에이, 저는 원장님밖에 없죠. 제가 어디서 여사친을 만나겠어요. 하하.”

김 원장은 내 말에 그제야 안심한다는 듯 어깨를 들었다 내려놓으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다행이고. 하핫. 가서도 다른 여사친 만들지 말고, 일 열심히 하고 와.”

“네, 알겠어요. 아무튼, 갑자기 약속 취소하게 돼서 미안해요. 학회가 이번 주 주말인 줄 몰랐었거든요.”

“괜찮아. 일인데 당연히 이해하지.”

그녀의 괜찮다는 듯한 표정에 미안함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근데 원장님. 행복 정형외과는 이번 해외 학회 참석 안 하세요?”

“지난주였나? 우리도 이야기 나왔었는데, 병원장님이나 다른 원장님만 가실걸? 아니면 이번에는 건너뛴다는 말도 있더라고. 요즘 우리 병원이 좀 바쁘잖아.”

“하긴. 원장님들은 대체 인원이 없으시니까요.”

“맞아. 수술도 이미 스케줄 잡힌 게 많아서, 아마 안 가시지 않을까 싶더라고. 근데 이번 해외 학회에 병원 쪽은 많이 안 가더라. 애초에 한국 쪽 병원에는 초청을 적게 했나 봐.”

“정말요?”

“응. 대신에 제조사나 메디컬 업체 쪽이 많이 참여한다더라. 그래서 이번에는 병원 관계자보다 메디컬 업계가 더 도움이 될 거 같아.”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잘 다녀와 봐. 해외 제조사가 많이 오니까, 민 과장님이면 좋은 성과 가지고 올 수 있겠는데?”

그녀는 내게 조언까지 아끼지 않았다.

“감사해요.”

“조심히 다녀와. 갔다 오면 보자.”

“네, 제가 대신 다녀와서 맛있는 거 살게요.”

내 말에 빙그레 웃는 김 원장.

“그래. 그럼 영화 볼 때 팝콘도 사!”

“하하. 당연하죠.”

* * *

얼마 만에 타는 비행기인가.

진짜 오랜만에 나가는 해외였다.

휴가는 아니었지만, 휴가를 떠나는 것만큼 설레는 기분으로 가득했다.

최근에 휴가를 다녀온 적은 언제인지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이었다.

WG 메디컬에 있을 당시, 휴가를 쓰기도 전에 퇴사를 했었지.

그리고 옮긴 광주 메디컬은 그럴 겨를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며 자리 잡기에 힘썼다.

그렇게 일에만 몰두하고 치여 살다 보니 지금 여기 서울 코리아 메디컬에 오게 된 것.

이렇게 학회로라도 해외에 나오게 되니, 코로 공기를 쐬는 것만 같아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나는 기쁜 마음을 고이 접어둔 채, 가방 안의 자료를 꺼내 들었다.

정말 즐기러 가는 휴가가 아니었으니까 기쁨에 젖어 놀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가는 중에도 해야 할 공부가 꽤 많았다.

금요일 하루 업무를 하지 못하고 출발하는 것이기에 목요일까지 그 업무를 몰아서 하고 왔다.

덕분에 학회에 대해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지.

내가 학회에 발표자로 참여하는 것도 아니지만,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바로 참여하는 제조 업체, 신제품 등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 우리 회사에서 필요한 품목이 나오는가, 혹은 유사 제품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에 대해 알아놔야 학회에 가서 시간 낭비를 하지 않을 수 있다.

곧장 그 부스로 가서 설명도 듣고 물건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지.

그렇게 나는 가는 내내 손에서 펜과 종이를 떼지 않았다.

* * *

금요일 오전, 몇 시간 정도 일을 하고 출발했기에 비행 후 지쳐버린 조 차장과 나.

우리는 숙소에서 짐을 풀자마자 뻗을 줄 알았지만, 그래도 해외까지 출장을 왔는데 피곤하다고 누워 있기는 아쉬웠다.

당장 내일이 학회니, 짧게라도 술 한잔하고 올까? 하는 조 차장의 말에 우리는 짐만 내려둔 채 곧장 밖으로 나섰다.

학회 주최 측에서 마련한 한국인들 호텔은 두 군데라고 들었다.

그중 우리가 머무는 곳 앞에는 커다란 술집이 하나 있었다.

호텔에도 한국인들이 종종 보이는 것을 보니, 저 술집에도 한국인들이 꽤 많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조 차장은 주변을 둘러보며 내게 이야기했다.

“그러게요. 좋은데요?”

조 차장과 사적인 자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뭐, 지금도 사적이라고 하기에는 공적으로 함께 온 자리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최근 조 차장과 조금 더 가까워진 마음이 들었기에 그와의 독대가 좋았다.

처음 조 차장이 자신밖에 모르는 것 같은 스타일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그와 친해지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조 차장 동기인 김석구 차장보다는 훨씬 나와 잘 맞는 스타일이라고 확신이 들었다.

굳이 라인을 타야 한다면 조 차장 라인을 타야겠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렇지만 아직 회사에서 라인을 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더불어 조 차장 역시 그런 라인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민 과장은 국내 학회는 많이 다녀봤나?”

“예. 국내는 춘계 학회, 추계 학회같이 큰 학회는 대부분 갔었습니다.”

“해외 학회도 별반 다를 건 없어. 다만, 한국인들이 적은 정도? 게다가 이번 학회는 초청권으로만 오는 학회인데도, 규모가 꽤 커.”

“벌써 기대에 설레고 있었습니다. 하하.”

“참 나, 일하러 오는데 설렌다는 사람은 민 과장밖에 없을 거다.”

그는 옅은 웃음만을 지을 뿐, 나와 화기애애하게 웃고 떠들지는 않았다.

이후 난 조 차장과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지만, 사적인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학회 이야기, 부스 이야기 등, 일에 관련된 이야기만 서로 늘어놓았지.

“그런데 차장님. 부스에 아직 이름이 올라오지 않은 곳들이 있는데, 그런 건 대체 뭐예요?”

“뭐 말하는 거야?”

“여기, 별표로 표시되어 있는 부스요.”

나는 휴대전화에 찍어둔 부스 사진을 그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부스 지도에는 모든 회사명이 적혀 있었는데, 몇 군데는 이름 대신 ‘☆’ 표시가 되어 있었다.

“아… 그거, 신비주의 컨셉.”

“네? 신비주의 컨셉이요?”

“가끔 저런 곳이 있다고 들었어, 나도. 당일에 현장에서 공개하겠다고 하는 회사라고 하더라.”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 건가요?”

“그러게나 말이다. 뭐 자신들이 오픈하지 않고 비밀리에 하겠다는데. 우리가 궁금하다고 해서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정보를 알 수 없는 부스와 그 회사.

미리 조사를 할 수 없게 해놨다.

나는 조 차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내일 학회가 시작하자마자 저 부스 먼저 찾아가 볼 것이라고 말이다.

학회 관련된 이야기가 끝나자, 우리는 회사 직원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회사와 관련된 이야기라는 것이지.

하지만 그와 사담을 나누며 친분을 쌓아야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은 아니었기에, 회사 관련 대화가 흥미로웠다.

나는 아직 회사 직원들의 특성을 모두 파악한 것은 아니었기에 말이다.

“…그래서 서 부장님이 내 입사 때부터 사수셨지.”

“그럼 김 차장님은요?”

그의 동기이자, 적대적인 관계를 보이는 걸 알고 있는 김석구 차장.

김 차장에 대해 묻자, 조 차장은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김 차장… 그놈은 들어올 때부터 나랑 안 맞았어. 성격도, 일하는 스타일도, 영업 방식도, 하다못해 식성까지도.”

그의 짧은 이야기에도 그들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알 수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남아 있는 조 차장의 동기가 김 차장뿐이다.

둘의 사이가 좋았다면, 꽤나 친한 동기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적대적인 관계로 남아버렸을까?

묻고 싶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아니, 묻는다고 해도 조 차장이 내게 속마음을 이야기해 줄 리가 없지.

나는 그의 이야기에 고개만을 끄덕일 뿐이었다.

그때 저 멀리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남성.

한국인임이 분명했다.

타국에서도 한국인끼리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무언가의 느낌이 있으니까.

그저 우리 근처 테이블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테이블로 걸어오고 있는 것 같았다.

뭐지?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려는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남성은 이내 입을 열고 소리쳤다.

“이게 누구야! 어이, 조 차장!”

나는 그 남성의 말에 놀란 눈으로 그와 조 차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조 차장 역시 남성의 말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뭐야? 민식이냐?”

누구지?

조 차장은 그를 알아차린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와 손을 맞잡고, 악수를 했다.

나 역시 그 모습을 보며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났다.

“이야, 박민식이! 한국에서도 바빠서 못 봤는데, 여기서 만나니까 새롭네. 하하.”

“그러게. 학회 온 거야?”

“당연하지, 인마. 너는 혼자 왔냐?”

“아니. 나도 직원이랑 왔지.”

그의 말에 조 차장은 그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

“저기, 지금 들어오잖냐.”

그 남성의 말에 나와 조 차장은 곧장 열리는 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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