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안녕하세요.”
“민 과장님, 왔어?”
행복 정형외과 김사랑 원장을 만나러 오기 위해 월요일 아침부터 병원으로 직출했다.
그녀가 내게 물건을 발주했었고 그 피드백을 받기 위해 들린 것.
“네, 주말 잘 보내셨어요?”
“그럼. 근데 오늘 엄청나게 일찍 왔네?”
“예, 물건 사용해 보셨나 해서 왔어요.”
“응. 넣어준 거 다음 날 수술 있어서 사용했었는데, 호만이……. 아니다, 기구 쪽으로 가서 설명해 줄 수 있어?”
“당연하죠. 수술실로 갈까요?”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실 옆, 기구 창고.
그곳에서 나와 김 원장은 모든 기구를 펼치고 한 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아, 이제 알겠다. 나는 이 기구를 여기서 잡았는데, 그래서 좀 불편했던 거구나.”
“그럼 사용은 어떻게 하셨어요?”
“우리 병원에 있는 대체 기구 하나 가지고 와서, 잡아서 해결했었어. 진작 민 과장님한테 물어볼 걸 그랬네.”
“네, 항상 편하게 연락 주세요.”
그녀와 나는 손을 털며, 테이블에 기대어 있던 몸을 일으켰다.
“민 과장님, 그럼 주말에는 뭐 해?”
“주말이요? 이번 주?”
“응. 이번 주.”
“음……. 아직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일 있으세요?”
그녀는 이미 정리가 끝난 기구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내 눈을 바라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저기… 그 뭐냐. 공포 영화 그거 개봉도 했다고 하고, 그… 병원 큰길가에 예쁜 술집도 생겼다고 하더라고.”
광주에서 그녀와 영화를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공포 영화 마니아인 그녀.
하지만 나는 그녀와 공포 영화를 보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었다.
많이 보아야 내성이 생긴다며, 내게 항상 공포 영화를 봐야 한다고 권유하던 그녀.
이번 역시 내 눈을 슬쩍슬쩍 바라보며 재차 권유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원장님 만나서 공포 영화만 보다가 담력 길러질 것 같은데요? 하하.”
“그래. 내가 민 과장님 위해서 보러 가자는 거지! 내가 표 끊어둘게, 갈 거지?”
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가요.”
“좋았어! 그리고 내가 그날 술도 한잔 쏠게.”
그녀는 활짝 웃으며, 내게 말했다.
“왜 원장님이 다 사요? 무슨 좋은 일 생겼구나?”
나는 실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민 과장님한테 고마워서.”
“저한테요? 고마울 일이 뭐가 있으셨을까? 이번에 물건 발주해 주셔서 고마운 건 전데?”
“있어. 주말에 이야기해 줄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한테 고마울 일이 뭐가 있죠? 궁금한데요?”
“하하. 내가 서울에 친구 없는 민 과장님을 위해 시간 내주는 거야. 알지?”
“그럼요. 제가 감사하죠.”
“그럼 주말에 만나서 이야기해 줄게. 그때 봐.”
대체 그녀가 내게 고마워할 만한 일이 뭐가 있었을까?
나는 머리를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주말에 꼭 이야기해 주세요.”
“응. 아, 그리고 우리 붕대 좀 넣어주라.”
“붕대요?”
“어. 내가 품명이랑 수량은 진료실에 적어둔 거 있는데, 광주에서 썼던 제품 그대로 거든? 우리 병원에 붕대가 똑같은 게 없더라고. 그 제품 있지?”
“그럼요. 재고 있으니까 바로 챙겨서 넣어드릴게요.”
“그래. 진료실로 가자.”
강대훈 대리가 지금껏 넣지 못했던 행복 정형외과의 붕대 품목.
그가 알게 된다면 한 번 더 배 아파할 것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 * *
“다녀왔습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자리로 가서 메일을 확인했다.
금요일 저녁, PR 메디컬의 신승철 팀장이 해외 학회 관련 자료를 메일로 보낸다고 했기 때문이다.
[‘PR 메디컬’ 해외 학회 관련 자료 송부. 월요일까지 회신 꼭! 부탁드립니다.]
월요일까지?
금요일에 알려준 내용을 월요일에 확인하는데, 당장 오늘까지 회신해 달라니.
일정이 언제이길래 이렇게 촉박하게 주는 거지?
나는 서둘러 메일 제목을 클릭 후 내용을 확인했다.
이럴 수가.
당장 이번 주말이라니.
나는 서둘러 메일의 자료를 출력해 조성철 차장에게로 향했다.
조 차장은 내가 건넨 서류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서정우 부장에게로 향했다.
나는 그를 따라 함께 서 부장에게로 걸어갔고, 우리는 그대로 회의실로 걸음을 옮겼다.
서 부장은 메일 내용을 확인한 뒤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민 과장. 이거 초청장 어디서 받은 거야?”
“PR 메디컬에서 받았습니다. 저희 자가혈 주사 본사에서요.”
“거기서 민 과장한테 직접 준 거야?”
“예. 지난주 금요일에 연락이 왔는데, 제가 이제 확인했습니다. 당장 이번 주더라고요.”
나는 날짜를 보고 놀랐었는데 서 부장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장님은 알고 계셨습니까?”
나와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지 조 차장은 서 부장에게 물었다.
“어. 사장님도 한 장 받았다고 하시더라고. 근데 해외 학회라 한 명만 가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어서. 한 장을 더 구해서 가려고 하던 참이거든.”
역시.
서 부장은 이미 해외 학회에 대해 알고 있었다.
내가 구해 온 초청장은 2장.
이미 사장이 받아온 초청장은 1장. 그렇게 합해 총 3장이다.
즉, 우리 회사에서 3명의 인원이 해외 학회에 참석할 수 있다는 뜻이지.
나는 서 부장을 향해 물었다.
“그럼 회사에서 3명 갈 수 있는 거죠?”
당연히 3명의 인원이 갈 수 있는 것이지만, 내가 굳이 물어본 이유.
그 3명 안에 내가 들어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초청권은 내가 구해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갈 수 있다고 확신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해외 학회 초청권은 받아내기가 힘들다.
그래서 나 역시 3년이 넘게 일을 하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것이니까.
그렇기에 회사에서 높은 직책의 직원이 가겠다고 한다면, 순서가 밀려 나에게까지 오지 못하게 되겠지.
내가 표를 구해 왔으니 제가 직접 가겠다는 말을 하게 된다면 갈 수야 있겠지만, 아직 섣불리 말을 하지는 않았다.
나는 코리아 메디컬에 발을 담근 지 정말 얼마 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기회가 많을 테니까.
“응. 근데 아마 2명만 보내시지 않을까 싶어.”
서 부장의 말에 나는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예? 2명만이요?”
“응. 특히나 해외 학회는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
“아…….”
해외 학회는 국내 학회와는 다른 점이 많다.
특히 돈.
국내 학회는 어느 지역이든,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차로 이동이 가능하다.
거리가 멀어도 차로 이동하고, 숙박을 하루 하거나 혹은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경우도 더러 있는 편.
하지만 해외 학회는 무조건 비행기 푯값, 숙박비 등 들어가는 돈이 어마어마하다.
초청장이 나오는 학회라 기본 비행기랑 숙박이 어느 정도 지원이 되기는 하지만 공짜는 아니다.
비교적 저렴하게 예약이 가능한 것일 뿐.
그걸 회사에서 전액 지원해 줘야 하기에 많은 인원을 보내기는 힘들다.
나는 당연히 2명 안에 들지 못한다고 확신했고, 그 문제가 돈 때문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서 부장은 고개를 돌려 조 차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조 차장.”
“예, 부장님.”
“이번 학회, 조 차장이 가는 거 어때?”
의외였다.
나는 당연히 서 부장이 갈 줄 알았으니까.
그리고 조 차장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한 명 더 조 차장이 편한 직원으로 데리고 가.”
“제가 선택합니까?”
“그럼. 조 차장이 가는 거니까. 나는 이번에 빠지려고 해. 지난번에 다녀오기도 했고, 이번에 일도 좀 있어서 말이야.”
조 차장은 고민에 빠진 듯 보였다.
해외 학회라면 최소 2박 이상을 같이 자야 할 직원을 골라야 한다.
더군다나 그저 놀러 가는 것이 아니기에, 너무 낮은 직책을 고르기도 맞지 않지.
그가 부장급에서 선택은 안 할 것이고, 동기인 김석구 차장과는 앙숙인 관계.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조 차장과 서 부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제가 가면 안 됩니까?”
그들은 내 말에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민 과장이?”
“예. 해외 학회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해서, 꼭 가보고 싶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되지 않아도 속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PR 메디컬에서 내게 주었던 초청장이 나를 위해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 코리아 메디컬을 위해 나온 것이었으니까.
나는 그저 PR 메디컬과 일하는 코리아 메디컬의 담당자.
게다가 기회는 내 직책까지 오지 않아도 이상할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서 부장은 잠시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더니 입을 열었다.
“조 차장. 민 과장 데리고 다녀와 봐.”
“예?”
조 차장은 놀란 듯 서 부장을 바라보았고, 나 역시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민 과장이 이번에 큰 건도 많이 따냈고, 저 정도 실력이면 가서 뭐라도 배워 오겠지.”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이야기했다.
“민 과장, 학회라는 게 그냥 놀러 다녀오라고 지원 나오는 거 아니야. 꼭 가서 뭐라도 배워 오거나 따내 와야 해.”
나는 그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예, 꼭 성과를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나는 기쁜 마음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해외 학회를 갈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에 벅차올랐다.
나를 바라본 서 부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의외네, 민 과장.”
“예?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학회 가고 싶어 하지 않을 줄 알았거든.”
나는 그의 말에 의도를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학회가 평일부터 주말까지야. 주말을 통째로 끼고 가는 거지. 그래서 생각보다 가고 싶어 하는 직원이 얼마 없어.”
“정말요? 이런 좋은 기회를요?”
“응. 주말까지 자신의 시간을 회사에 쏟고 싶어 하는 직원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아니, 거의 없다고 봐야지?”
서 부장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요즘은 성공을 위해 달리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만큼 자신의 삶과 여가를 위해 달리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나 회사에 많은 에너지 소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지.
회사에서의 성공이 아닌, 자기 삶의 성공을 바라는 것.
그만큼 요즘 직장인들은 회사와 자신에 삶의 경계를 확실히 짓고 싶어 한다.
회사가 퇴근 후나 주말에도 삶에 침투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지.
나 역시 그랬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회사가 내 여가, 내 삶의 부분에 침투되는 것을 크게 싫어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쉬는 때에도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내 삶의 목표가 이 업계의 최고를 찍는 것이기 때문이지.
삶의 목표와 회사가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
오히려 평일을 통째로 빠지고 해외에 가게 된다면 영업에 문제가 생길 텐데, 주말을 끼고 해외에 가기 때문에 영업하는 평일은 하루만 빠진다는 사실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서 부장은 달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해외 학회가 빡센 건 알고 있지, 다들?”
그의 말에 조 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외 학회 가면 놀 시간 많을 거라 생각하지만 아니야. 일정이 생각보다 빡빡하고, 놀 시간이라고는 저녁 잠깐이야. 게다가 많은 돈 투자해서 보내는 만큼 뭐라도 성과 내와야 하는 건 당연하고.”
서 부장은 연달아 내뱉은 말에 침을 한 번 삼키고는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다녀와서 꼼꼼하게 보고서 작성하는 것도 잊지 말고. 그러려면 학회에서 뭐라도 해와야 보고서 작성할 수 있겠지?”
그의 말에 나와 조 차장은 동시에 답했다.
“네.”
“그래. 그럼 둘 다 내일까지 여권 사본 제출하도록 해. 사장님께는 내가 바로 보고 올릴게.”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지만 내 기분만은 가벼웠다.
회의실에서 나온 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해외 학회 소식이 퍼졌다.
내 예상과는 달리, 정말 여러 직원은 내가 해외 학회에 간다는 사실에도 시기, 질투를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주말에 해외 학회에 간다는 사실에 안쓰러워하는 눈빛까지 보낼 정도.
서 부장의 말이 맞았다.
모두 해외 학회를 자신이 안 간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었다.
그들과 나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자리에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달력을 바라보았다.
금요일에 업무를 빠지고 학회를 가야 하기 때문이다.
내 중요한 업무가 있으면 다른 직원에게 부탁하거나 미리 처리를 해야 하기에 일정을 보던 그때.
달력을 보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어?”
그리고 곧장 휴대전화를 꺼내 든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