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 더 크게, 더 높게 】
기차를 타기 위해 용산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차를 타고 여수까지 내려가기에는 새벽녘이나 되어야 도착할 것을 알기에, 나는 가장 빠른 기차표를 예매했다.
어머니가 수술한 곳은 바로 폐.
무려 폐의 1/4을 떼어냈다고 한다.
폐를 떼어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음에도 나는 그런 어머니의 상태를 몰랐다는 사실에 억장이 무너졌다.
내가 병원 관련된 일을 하고 있기에 평소 부모님은 빠지지 않고 주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으셨다.
항상 환자들이 가득한 병원을 들락날락하기에 부모님께 잔소리하면서까지 검진을 보내드렸었으니까.
그런데 아무 문제 없었던 어머니의 폐가 어느 날 갑자기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폐에 문제가 있었던 것을 몰랐던 것은 바로 무증상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담배를 태우시지도 않았고, 그리고 아버지 역시 내가 어릴 적 금연에 성공하셨다.
나 또한 성인이 되고 나서 독립을 한 이후 담배를 태웠었지.
그래서 어머니에게 간접흡연이라는 것은 적어도 집 안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머니가 폐에 문제가 생긴 이유.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환경적 요인으로 생긴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고 한다.
요리를 수십 년간 해온 주부들에게서는 생선 등과 같이 요리를 할 때 맡게 되는 연기, 미세 먼지 등으로 인해 폐가 망가지기도 한다.
병원에서도 어머니의 폐 곰팡이 질환 원인이 어떤 것이다, 하고 정확하게 말하지는 못하지만, 그런 이유도 있을 거라고 했다고 한다.
내가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생선구이.
그래서 어머니는 나를 위해 생선구이를 자주 해주셨었다.
특히나 내가 독립 후 집에 갈 때면 항상 해주셨었지.
그런데 그게 어머니의 폐에 독이 될 줄이야.
나는 어머니 생각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긴 채, 지하철에 몸을 맡긴 지 몇십 분 후.
지하철은 금방 용산역에 도착했다.
금요일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지하철에서 내리니 사람들로 가득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울리는 휴대전화.
[발신인 : PR 메디컬 신승철 팀장]
전화를 받자마자 나는 소리를 최대로 키웠다.
“예, 팀장님.”
- 민 과장님. 잘 지내셨죠?
“그럼요. 팀장님도 잘 지내시죠?”
- 예,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퇴근하셨을 텐데, 늦게 연락드려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 다름이 아니라, 다음 주에 공문으로 보내드리기는 할 텐데요. 이번에 학회 열리는 거 아시죠?
“올해 국내 학회는 끝난 거로 알고 있는데, 어떤 학회 말씀하시는 걸까요?”
- 국내 학회 말고, 해외 학회요.
“해외 학회요?”
- 예. 이번에 해외에서 열리는 학회인데, 아직 들으신 건 없나 보네요.
학회.
메디컬, 병원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학회가 있다.
한 분야의 전문가, 종사자들이 각자의 연구 성과를 공개 발표하고 검토 및 논의를 하는 자리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같은 분야의 사람들이 그 분야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나누는 자리.
국내에서도 정형외과와 관련된 학회가 몇 차례 열리고는 한다.
정형외과 의사, 그리고 이 분야의 메디컬이 참여하는 것이지.
국내 학회에는 나 역시 몇 차례 참여했던 적이 있다.
그저 돈을 내면 갈 수 있는 학회이기에 공부를 하라고 회사에서 여러 명을 보내기도 한다.
또 국내 학회에서는 이런 자리를 통해 발을 넓히는 기회가 되는 것이지.
어쨌든 정형외과 의사에게 영업을 해야 하는 우리 같은 직업은 학회에 참가해 처음 보는 의사들과 안면을 트고 친분도 생기는 경우가 많다.
메디컬 직원들끼리도 그렇다.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는 박람회 자리도 있기에, 그런 곳에서 제품을 보고 총판을 맺은 후 영업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해외 학회에는 참가해 보지 못했다.
“아……. 네. 제가 아직 해외 학회는 잘 몰라서요. 저도 다음 주에 회사 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전화 주셨을까요?”
- 이번 해외 학회가 초청권이 있어야 참가 등록이 가능하거든요. 저희 PR 메디컬 쪽으로 초청권 여러 장이 생겨서요. 아무래도 제조 회사 쪽으로 초청권이 많이 나오는 학회라서, 관심 있으신지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솔깃했다.
해외 학회도 처음인데, 제조 회사들이 대거 참여하는 학회라…….
“저야 감사하죠. 그럼 해외 의료 기기 제조 회사들 부스도 많이 있겠네요?”
- 네. 이번에는 짧게 진행한다고 들었는데, 시간은 짧아도 볼거리는 많을 것 같습니다. 역시 민 과장님께서는 관심 있어 하실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그런가요? 하하. 감사합니다.”
- 그럼 제가 메일로 관련 자료 보내드릴게요. 확인하시고, 등록은 저한테 따로 해주시면 됩니다.
“예, 그럴게요. 다음 주 월요일에 검토하고…….”
신 팀장과 통화를 하며, 열차 쪽으로 걸어가던 나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말을 멈추고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 여보세요? 민 과장님?
내가 말을 멈추자, 신 팀장은 나를 불렀다.
“아, 네. 팀장님. 제가 검토하고 다음 주에 연락드리겠습니다.”
- 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주말 잘 보내십시오.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위를 바라보았다.
내가 지금 올라 서 있는 곳은 에스컬레이터.
올라가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이 에스컬레이터에는 남자와 여자가 차례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
그리고 그 뒤에 붙어 있는 남자.
남자의 머리는 잘게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여자의 다리와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듯한 모습으로.
그 남자는 주변을 쓱 둘러보고는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여자에게 붙기 위해 한 칸을 더 올라갔다.
남자는 이상한 표정과 함께 휴대전화의 카메라를 켠 뒤,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화면은 바닥을 향하고 카메라는 하늘을 향하게 말이다.
그 행동을 본 나는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가 앞에 서 있는 여자의 치마 속을 찍으리라는 것을.
이 남자의 속셈을 알아차렸다면 어떤 사람이 그냥 지나치겠는가.
나는 무언가 하나라도 찍히기 전에 곧장 행동으로 옮겼다.
“죄송합니다.”
나는 곧장 남자를 툭 치고 그대로 지나쳐 에스컬레이터 한 칸을 올라갔다.
남자가 찍으려던 여자의 바로 아래 칸으로 올라가, 그와 그녀 사이를 가로막은 것이지.
“아이 씨.”
남자는 내 행동에 가로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불쾌함을 드러냈다.
그리고 나는 곧장 들고 있던 서류 가방으로 그녀의 뒤를 가렸다.
에스컬레이터가 끝에 다다르자, 내 앞에 서 있던 그녀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저기요.”
내 뒤에 올라오던 남자는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고 남은 것은 그녀와 나 둘뿐.
“네? 저요?”
나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그녀에게 물었다.
“네. 그쪽이요. 뒤에서 뭐 하신 거예요?”
그녀의 다리를 가려주려고 가방을 들다 보니 그녀의 몸에 가방이 살짝 닿은 모양.
나는 그녀에게 상황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그녀는 달아오른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말요? 누가 자꾸 보는 것 같았는데, 저는 그쪽인 줄 알고…….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에요. 휴대전화로 찍기 전에 제가 바로 가로막아서 찍히지는 않았을 거예요. 쓰레기 같은 놈들이 생각보다 많네요. 저런 놈들이 없어야 하는 거지만, 그래도 계단 오를 때 조심하세요.”
그녀는 놀랐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용산역에 울려 퍼지는 안내 방송.
열차가 곧 출발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바로 내가 타야 할 기차.
“아무튼, 조심하세요!”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보낸 후, 기차 쪽으로 몸을 틀었다.
“감사합니다.”
기차 쪽으로 걸어가는 내게 뒤에서 소리치는 그녀.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고개를 숙인 후, 재빨리 기차로 달려갔다.
* * *
도어락 비밀번호를 치고 있는데도 내 코를 찌르는 냄새.
나는 그 냄새에 미간을 찌푸리며 황급히 문을 열었다.
“아들!”
목이 빠지라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기는 부모님.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몸도 안 좋다면서 왜 고등어를 구웠어!”
인사 대신 내뱉은 잔소리.
어머니는 그런 내 말에도 아들 얼굴을 봤다는 것에 기분이 좋으신지 미소를 짓고 계셨다.
“우리 아들이 생선구이 좋아하잖아.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 얼른 들어와.”
“진짜 못살아. 아니, 오늘 퇴원했다면서요. 왜 또 폐에 안 좋은데 생선구이를 하고 있어. 하.”
아버지는 아무런 말 없이 내 어깨를 한 번 토닥이신 후, 내 손에 들린 서류 가방을 받아주셨다.
어머니는 내 말을 들은 체 만 체하시며 부엌으로 걸어가시며 말했다.
“아들, 얼른 앉아. 밥 다 차렸어. 배고프지?”
어머니의 상태에 대해 들으며 식사를 마친 우리.
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진짜 이제는 괜찮은 거래요?”
내 걱정스러운 표정을 읽었는지, 어머니는 애써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응, 그럼. 폐 조금 떼어내는 건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대. 엄마 이제는 아프지도 않고.”
“그렇다고 수술하고 한 달이나 입원하시는 걸 왜 말씀 안 주셨어요.”
“아들 걱정할까 봐 그랬지. 입원한 것도 한 달은 안 됐어. 서울 올라간 지 얼마 안 돼서 너도 정신없을 텐데, 굳이 신경 쓰일까 봐.”
그런 어머니의 말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무리 정신이 없고 바빠도 가족이 아프다는데 몰랐던 나 자신에게 화가 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주일에 몇 번씩은 부모님과 통화를 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나는 어머니의 상태를 알지 못했다.
“앞으로는 뭐든 말씀하세요. 모르고 있었던 게 더 속상해요.”
“알겠어. 밥은 더 줄까? 고등어는 안 부족해?”
“하. 엄마……. 그리고 몸에도 안 좋은데, 왜…….”
어머니의 상태가 나 때문인 것만 같다는 생각에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어머니는 나를 보며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가로저으셨고, 아버지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네 엄마는 네가 맛있게 먹고, 네가 좋다고 하면 그게 더 행복해. 그러니까 엄마한테 화내지 마라.”
아버지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 위의 빈 그릇을 치우기 시작하셨다.
* * *
회사가 멀기에 일요일 오후까지 본가에 있지는 못했다.
서울에 가기 위해 올라탄 기차.
그 안에서 나는 수많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픈 어머니를 보자마자 짜증을 낸 것.
그 짜증 역시, 어머니의 상태를 알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마음에 나온 것이다.
평생 자식을 위해 요리하며 폐까지 망가졌는데, 자식이 온다고 하니 가장 좋아하는 생선구이를 하고 있었던 것.
그것을 보자마자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먼저 튀어나온 말은 걱정스러운 말이 아니라 짜증이었다.
내가 짜증을 내도 미소를 짓고 계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그렇게 말하지 말걸…….
꼭 이렇게 뒤돌면 후회를 할 일을 왜 자꾸 반복할까.
나는 마음이 미어졌다.
자신의 몸이 망가지고 있음에도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님.
나는 달리는 열차 안에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다짐했다.
내가 꼭 성공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애지중지하게 나를 키워준 부모님께 배로 보답하기 위해 나는 더욱더 성공해야 한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띠리리, 띠리리.
“지훈이 아빠. 전화 오는데?”
“어? 누군데?”
거실에 놓인 휴대전화에 다가가며 말하는 어머니.
“지훈이네? 내가 받을게요.”
그녀는 전화의 수신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어? 어머니. 아버지는요?
“방에 계셔. 월요일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출근 잘했어?”
- 네. 잘했죠.
“밥은? 아침밥은 먹고 출근했어?”
- 어휴. 어머니랑 아버지는 전화할 때마다 왜 그렇게 밥을 물어보셔?
“아들 밥은 잘 먹고 다니나 걱정돼서 그렇지.”
- 잘 먹고 있어요. 어머니 건강도 챙기세요. 아, 오늘 오전에 집에 계시죠?
“응. 오전에 네 아빠랑 같이 집에 있을 거 같은데, 왜?”
- 택배 보낸 게 있는데, 집에 계시는지 확인하려고 전화 드렸어요.
“택배? 뭔데? 또 영양제 보냈어?”
- 받아보면 아세요. 저 지금 바로 일 때문에 들어가야 해서요. 아무튼, 물건 받으세요!
“그래. 얼른 일해라. 물건 받으면 연락할게. 몸 잘 챙기고!”
- 네, 어머니.
“지훈이 전화야?”
아버지는 방에서 나오며, 그녀에게 물었다.
“오전에 택배 도착한다고 하네? 또 우리 영양제 보냈나 봐. 얘는 힘들게 월급 벌어서 자꾸 우리한테 쓰면 어떻게 해.”
“엄마 아프다니까, 더 걱정됐겠지.”
딩동.
“어? 벌써 온 건가?”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것은 작은 택배 상자가 아닌, 커다란 상자와 설치 기사 두 명.
“안녕하세요. 배송 왔습니다.”
그녀는 문 앞에 놓인 커다란 상자를 보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네? 저희는 시킨 게 없는데…….”
“주문자가 민지훈 님으로 되어 있고, 물건은 여기 공기청정기…….”
“예? 공기청정기요?”
설치 기사는 들고 있는 종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네. 공기청정기랑 식기세척기, 오븐, 안마의자네요.”
부모님은 서로를 바라보며 뒤로 넘어갈 듯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지훈이 이놈. 누구 닮았는지, 못 말려 진짜.”
“우리가 아들 하나는 잘 키웠어. 우리 나이에는 자식 농사 잘 짓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
그녀는 웃으며 답했다.
“지훈이 아빠, 우리가 자식 농사 대성했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