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담배 피워도 되죠?”
강대훈 대리가 옥상에 올라오자마자 나에게 가장 먼저 입을 연 첫 마디.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나 역시 입에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는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할 말이 뭔데요?”
그러자 그는 손을 내밀어 올리며 답했다.
“과장님도 할 말 있으시다면서요. 먼저 말씀하세요.”
나도 강 대리에게 할 말이 있어 옥상으로 올라온 것은 맞다.
그의 말투와 태도에 대해 한마디 일침을 가하려고 했던 것.
그러나 그 전에 먼저 강 대리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강 대리가 나를 여기까지 따로 불러 할 말이 무엇인지 말이다.
그는 항상 나를 싫어하고 피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내게 무슨 할 말이 있길래 처음으로 내게 대화를 요청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아니요. 강 대리님 먼저 말씀하세요. 왜 저를 보자고 하신 거죠?”
그는 내 말에 담배를 입에서 빼고, 숨을 길게 내쉬며 연기를 뿜은 후 말했다.
“행복 정형외과 때문에 여쭤볼 게 있어서요.”
그의 말은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회의 시간, 내가 행복 정형외과를 따왔다는 말에 그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확인했었다.
더불어 그가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행복 정형외과에 작업 중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
그래서 설마 그걸 물어보려고 나를 여기까지 부르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는데 역시나였다.
“예. 물어보세요.”
“거기 김사랑 원장 맞죠? 민 과장님이 영업한 원장님이요.”
“네, 맞아요.”
“혹시 둘이 무슨 관계인지 물어보고 싶어서요.”
“무슨 관계요?”
나는 그의 질문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슨 관계냐는 질문은 대체 어떤 의도로 묻는 거지?
재차 묻는 내 질문에 그는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했다.
“알아보니까, 김사랑 원장. 광주에서 올라온 거더라고요.”
“그런데요?”
“민 과장님도 광주에서 올라오셨으니까, 그 전에 무슨 사이였을까 싶어서요. 혹시나 하고…….”
비아냥대듯 말하는 강 대리.
그가 내뱉은 말의 의도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겠지만, 짐작하건대 좋은 의도로 묻는 것은 아니었다.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나와 김사랑 원장의 사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묻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기분이 나빴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지만, 저런 웃는 얼굴에는 가능하다.
여전히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그에게 나는 정색한 얼굴과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똑바로 말해요. 말끝 흐리지 말고.”
내 말에 그는 올라갔던 입꼬리를 천천히 내렸다.
이제야 내 눈치를 보는 것이지.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는 강 대리.
내 표정에만 신경을 쓸 뿐이지, 비아냥대는 말투는 여전했다.
“아니, 저는 부러워서 그러죠. 부러워서. 대체 그 여자 의사랑 무슨 사이길래 이렇게 물건을 탁, 하고 바로 넣어주나 싶어서요. 나는 붕대 하나도 못 넣었는데.”
아니꼬운 말투인 건 내가 부럽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겠지.
처음부터 내가 하는 족족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더군다나 자기는 한 달 넘게 공들인 곳에 작은 붕대도 넣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턱 하니, 소모품도 아닌 외상 수술 건을 해냈으니 기분이 나쁠 터.
하지만 그 기분 나쁜 것은 나에게서 느낄 감정이 아니라, 스스로 자존심이 상하고 분해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에게 작은 위로라도 던져주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었다.
다른 직원이라면 모를까, 내게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강 대리에게는 전혀.
“예전에 광주에서 내가 담당했던 원장님이에요.”
“네.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이미 내 뒷조사, 그리고 김사랑 원장의 뒷조사까지 한 모양.
“그런데 강 대리님.”
내 부름에 그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단지 광주에서 나랑 거래했던 거. 그거 하나 보고 내게 물건 발주했으면, 온 제품을 나한테 발주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나는 그의 대답을 듣기 전에 말을 이어갔다.
“그렇잖아요. 강 대리님이 말하는 대로 제가 김사랑 원장님이랑 이.상.한 관계였다면, 사용하는 전 품목을 나한테 발주했어야 했는데, 그렇죠?”
나는 강 대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상한 관계’라는 단어에 강조해 말했다.
그러자 내가 화났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인 후, 반박을 하기 위해 재차 입을 열었다.
“그렇긴 한데, 그래도 여자 의사잖아요. 같은 지역에서 일도 함께하면서, 혹시 남녀 관계는 모르는…….”
나는 곧장 강 대리의 말을 자르며 답했다.
“강대훈 대리님.”
목소리를 높여 그의 이름 석 자를 부르자, 그는 내 눈을 쏘아 봤다.
그리고 질 수 없다는 듯이 그는 내 이름을 불렀다.
“네, 민지훈 과장님?”
나는 그의 태도에 실소를 터트렸다.
그리고 입꼬리를 올린 채 그의 눈을 바라보며 답했다.
“강 대리님이 직책은 낮으시지만,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잖아요. 그래서 제가 꼬박꼬박 존대하면서 대리님 존중해 드리고 있습니다. 아시죠?”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는 듯이 그는 놀란 듯 보였다.
그리고 나는 곧장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많으시다고 해도 저는 과장입니다. 선은 넘지 마시죠, 대리님.”
내 말에 강 대리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답했다.
“아니, 제가 언제 선을 넘었다고…….”
목소리까지 떨리는 강 대리.
내 태도에 적잖이 놀란 모양이다.
결국은 말끝을 맺지 못하고 흐리는 그에게 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는 한 가족끼리 얼굴 붉히는 사이는 안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곧장 그에게 허리를 살짝 접으며 말했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강 대리님.”
나 또한 강 대리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비아냥대거나 화를 낼 수도 있었다.
그런 기회가 많이 있었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지금처럼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굳이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하거나, 내가 어리지만 상사라고 무작정 화를 내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대처한다면 강 대리, 그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 그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이 강 대리에게 더 비참할 거라고 확신했다.
나는 접었던 허리를 펴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니 강 대리의 얼굴은 달아올라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자존심이 많이 상한 듯 보였다.
선임이지만, 나이가 어린 내가 허리를 접으며 부탁한다고 표현하니 그도 어찌할 바가 있겠는가.
자신이 졌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강 대리는 내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숨을 길게 내쉬더니 그대로 뒤를 돌아 문 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내내 강 대리의 시선은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혹여나 우리의 대화를 누가 들었을세라 신경이 쓰였을 터.
무조건 싸움에서 큰 소리를 내고, 상대방이 사과해야 이겼다고 할 수는 없다.
이게 바로 어른답지 못한 강 대리를 어른답게 이기는 싸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 대리가 급히 자리를 떠나고 홀로 남은 옥상.
나 역시 그와의 대화에서 힘을 뺐기 때문에 옆에 있는 벤치로 걸어가 앉았다.
새파란 하늘, 내 피부를 스치는 잔잔한 바람.
그리고 서울 한복판에 있는 건물 옥상에서 들리는 적당한 소음.
강 대리와의 언쟁은 있었지만 내 기분은 최고조였다.
지그시 눈을 감고 바쁘고 정신없었던 몇 주간을 떠올렸다.
한참의 고민 끝에 결심하고 올라온 서울, 코리아 메디컬.
이곳에 올라오자마자 나는 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좌절을 맛볼 뻔했었다.
그것도 잠시, 나는 내가 쌓아왔던 경험과 내공을 통해 금세 극복할 수 있었다.
나를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 놓였었던 율한 정형외과.
그리고 내가 따내 왔던 자가혈 주사 총판.
지금 강 대리와의 언쟁을 펼치게 했던 행복 정형외과까지.
개수는 많지 않지만 모두 규모가 상당한 건이다.
더불어 내가 새로운 회사에 온 뒤, 짧은 기간인 것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실적이지.
살랑이는 바람을 느끼며 나는 행복감에 빠져들었다.
이게 내 실력이다.
그리고 내 실력은 멈추지 않고 점점 더 성장해 나갈 것이다.
잠시 행복감에 젖어 있던 무렵.
나는 번뜩 눈을 떴다.
연달아 좋은 일이 생기다 보니 나도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달까?
하지만 무슨 일이 온다고 해도 나는 헤쳐나갈 수 있다.
늘 그랬듯이.
나는 휴대전화를 들어 즐겨찾기에 저장되어 있는 번호로 발신 버튼을 눌렀다.
지금 느끼는 이 행복함을 나눌 사람에게 말이다.
사람이 살면서 불행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내가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좋지 않은 일이 다가왔을 때.
주변 사람에게 그 일을 이야기하면, 모두 자신의 일처럼 위로를 해줄 것이다.
하지만 내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똑같이 주변 사람에게 그 일을 이야기한다면 자신의 일처럼 진심으로 기뻐해 줄 사람을 얼마나 될까?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
내 기쁜 일에 시기, 질투 없이 온전히 함께 기뻐해 줄 사람은 찾기 힘들다는 것.
슬픔보다 기쁨을 공감해 줄 진실한 지인은 인생에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과 함께 기뻐해 줄 사람.
바로, 가족이다.
신호음이 얼마 울리지 않아 들리는 목소리.
- 아들!
항상 그렇듯 아버지는 밝은 목소리로 내 전화를 받으셨다.
“네, 아버지.”
- 이 시간에는 어쩐 일이야? 회사 아닌가?
“맞아요. 그냥 생각나서 전화 드렸어요.”
- 허허. 그래? 이 시간에 전화 울리길래,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놀랐네. 밥은?
“아직이요. 아버지는 식사하셨어요?”
- 우리도 곧 먹어야지. 밥은 잘 챙겨 먹고 일하는 거지? 반찬은 있고? 떨어지면 해서 보내준다네, 네 엄마가. 서울 생활은 적응 잘하고 있고?
“하하. 아버지, 하나씩요. 며칠 전에도 통화했는데 궁금한 게 항상 많으셔.”
- 그러게. 아들한테 궁금한 게 항상 많지. 네 엄마랑 온종일 네 이야기만 하니까.
“어머니는요? 며칠 전에 통화할 때도 어머니 목소리는 못 들었네.”
- 아, 그랬었나? 지금도 엄마 옆에 없어서, 다음에 전화하라고 하마. 그런데 그냥 전화한 거지?
“예, 기분 좋아서 전화 드렸어요.”
- 왜? 뭐 회사 일이 잘됐어?
“네. 생각보다 다 잘 풀려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돈 많이 벌어 갈게요, 아버지.”
- 됐어. 네 몸 잘 챙기고, 밥 거르지 말고 그러면 되는 거야.
“에이. 아버지도 참. 저는 항상 잘 먹고 잘 지내니까, 어머니 아버지도 맛있는 거 잘 챙겨 드세요. 조만간 여수 내려갈게요.”
- 그래. 항상 몸조심하고…….
그때 수화기 너머 들리는 여자의 작은 목소리.
아버지 근처에서 외치는 소리 같았다.
그 소리에 아버지의 말이 멈췄다.
- 보호자분. 아까 말씀드렸던 퇴원 서류에 서명 하나 빠트리셔서요. 지금 바로 확인해 주셔야 하는데…….
뭐지?
보호자분?
퇴원?
그리고 다시 들려오는 선명한 아버지의 목소리.
- 아들. 아빠 지금 잠깐 일 생겨서 끊어야겠다. 다시 연락하자!
그대로 끊긴 전화.
나는 곧장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한참 신호음이 울렸지만, 받지 않는 전화.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어머니에게 말이다.
나는 곧장 아버지에게 전화를 다시 걸었다.
몇 차례의 연결 후 받은 전화.
- 여보세…….
“아버지!”
- 어. 아들. 왜 이렇게 전화를 많이 했어? 내가 다시 전화한다고 했잖…….
“어디에요. 무슨 일인데, 병원이에요? 어머니 다쳤어요?”
- 아, 그게…….
아버지는 내게 말을 망설였고, 나는 화를 내듯 다그쳤다.
“뭔데요! 무슨 일인데!”
- 네 엄마가 몸이 좀 안 좋아서 병원에 왔었어. 근데 이제 괜찮아. 별일 아니었어. 방금 퇴원하고 나가려던 참이야.
“예? 퇴원? 진짜 입원까지 했던 거예요? 뭔데, 어디가 아팠던 건데? 이제 괜찮은 건 맞아요?”
나는 앉아 있던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수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 아이고, 귀 떨어지겠다. 이제는 괜찮아. 너 걱정할까 봐 이야기 안 했어.
“하.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어디가 안 좋았던 건데. 무슨 일이에요. 얼마나 입원해 있었는데?”
- 입원은 한 달 정도 되어가나?
“네? 한 달이요? 그럼 큰일이잖아요. 지금 어디 병원이에요!”
내 다급한 목소리에 아버지는 내가 당장이라도 여수에 내려올 거라는 걸 직감한 건지 빠르게 답했다.
- 여수에 종합 병원. 근데 이제 퇴원했어. 당장 안 와도 돼.
“하. 오늘 퇴근하고 바로 내려갈게요.”
- 그래. 주말이니까 일 없으면 얼굴 보게 한번 내려와라.
“예, 저녁에 바로 갈게요. 어머니는 그래서 무슨 일…….”
- 네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