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거대 메디컬이 손쓸 틈도 없이 우리가 주옥 병원 성공했다며?”
나와 조 차장이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백승민 이사가 이사실에서 나오며 말했다.
조 차장은 그의 앞으로 다가가며 답했다.
“벌써 들으셨습니까? 안 그래도 지금 보고 드리려고 했습니다.”
“응. 이미 병원에서 우리 제품 납품받기로 했다고 이야기 돌았다더라고.”
“예. 저희 제품 금액을…….”
백 이사는 조 차장의 말을 자르며 대답했다.
“아, 금액? 그래, 금액을 낮춰서 하는 게 확실히 마진율은 적지만 아직은 괜찮아. 성공한 거니까 우선 됐다. 그거로 돈을 벌려고 했던 목적은 아니잖아. 이제 막 주옥 병원 뚫었으니까 다음 품목부터는 마진율 좋은 제품으로 선정해서 영업해 보자고.”
백 이사는 아직 모르고 있다.
우리가 주옥 병원에 제품을 12만 원에 넣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회의 때 이미 9만 원 마지노선에 맞춰서 영업하겠다고 보고했고, 그가 그 사인에 오케이를 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목적은 주옥 병원의 첫 번째 물건의 영업 성공이었다.
마진율이 적게 9만 원으로 넣더라도 영업 성공이 첫째, 그리고 이후에는 다른 품목을 더 영업하며 돈을 벌기 위한 것.
그러니까 이번 영업은 돈 대신, 앞으로의 거래 물꼬를 터주기 위한 작전이었다.
하지만 12만 원에 넣은 사실에 조 차장의 어깨에는 힘이 들어갔던 것이지.
조 차장은 백 이사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사님, 잠시만요.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그러더니 조 차장은 서둘러 자신의 자리로 달려가 서류를 챙겨 돌아왔다.
그리고는 백 이사에게 서류를 건넸다.
나는 그의 옆에서 그가 내민 서류를 바라보았다.
바로 주옥 병원에 넣은 물품 금액 최종 견적서.
그 견적서에는 당연히 ‘12만 원’이라는 금액이 떡하니 쓰여 있었다.
백 이사는 그 서류를 보는 순간 입을 떡 벌리며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떴다.
12만 원이라는 금액도 우리 기준에서 이 품목을 비싸게 받은 것은 아니다.
단지 다른 병원에 비해 저렴한 것뿐.
그런데 품목 하나당 단가가 3만 원 차이라는 것은 엄청난 차이인 것은 확실하다.
보통 병원에서 물건을 한 개, 두 개 발주 넣는 게 아니라, 수십 개, 수백 개씩은 넣으니까 말이다.
9만 원이라는 금액은 마진율이 거의 없다시피 했었는데, 12만 원이라는 금액으로 성공했다니 백 이사가 놀랄 수밖에.
그는 입을 겨우 다물고 조 차장을 향해 물었다.
“이게 뭐야? 어떻게 된 일이야?”
“금액이 어떻게 이렇게 됐냐면요…….”
조 차장은 한참이나 그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마치 영웅담을 늘어놓듯이.
우리는 주옥 병원 이야기에 그 누구도 회의실로 들어가거나, 자리에 앉지도 않고 흥분한 채 그 자리에 서서 몇 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하하. 진짜 고생했다, 조 차장.”
사무실에 내려올 때부터 한두 명씩 사무실로 복귀를 하더니, 이야기가 끝날 즈음에는 꽤 많은 직원들이 우리의 주변에 서성였다.
함께 이야기를 들은 것이지.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기분이 상당히 좋네.”
조 차장은 활짝 웃으며 손뼉을 부딪쳤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영업사원들 역시 조 차장과 나를 바라보며 박수를 보냈다.
박수 소리가 줄어들 때, 백 이사는 나를 불렀다.
“민 과장.”
“예, 이사님.”
“많이 배웠나? 경력은 무시 못 해. 민 과장도 물론 실력이 출중하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앞으로 큰 병원, 그리고 더 많은 경험을 해보려면 이렇게 하는 거야. 알겠지?”
“네, 많이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배워서 더 성장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이야기에 조 차장은 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번에 민 과장이…….”
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
나는 재빨리 조 차장의 말을 잘라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 목소리에 조 차장은 나를 바라보았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조 차장의 눈을 바라보며, 우리만 알아차릴 수 있게 고개를 잘게 가로저었다.
내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의사 표현이었다.
내 덕을 세워주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지.
조 차장이 내 이야기를 하려는데, 나는 됐다 하는 식의 거만한 뜻은 아니다.
그저 옥상에서 그에게 말했듯이, 이렇게 주옥 병원에 영업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조 차장이 세워둔 일이었기에 가능하다는 것.
그러니 내 공으로 돌려주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백 이사와 많은 후임에게 박수갈채를 받은 조 차장.
나 역시 그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내 말을 끝으로 주옥 병원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자세한 건 곧 있을 회의 때 모두 모여 하기로 했다.
뿔뿔이 흩어지는 가운데, 조 차장은 백 이사를 따라 이사실로 들어갔다.
* * *
“조 차장, 나한테 할 말 남았나?”
“예, 방금 주옥 병원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조 차장의 말에 백 이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를 가리켰다.
조 차장은 이사실 문을 닫고, 이사실 책상 앞쪽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백 이사는 그에게 눈썹을 들썩이며 물었다.
“무슨 일?”
“사실 12만 원으로 하게 된 이유 말입니다.”
“이유?”
백 이사는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조 차장의 말에 집중했다.
“네. 주옥 병원에 12만 원으로 물건 납품하게 만든 거, 민 과장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민 과장이 어떻게?”
조 차장이 민 과장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풀어놓았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백 이사의 표정은 흥미롭다는 듯 보였다.
자신의 손으로 턱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끄덕이는 백 이사.
“사실이야?”
“예. 근데 민 과장이 이야기하는 걸 꺼려하더라고요. 선임 일이라 그러는 거 같은데, 예의도 차릴 줄 아는 놈인 것 같고요.”
“흐음. 대단한 놈인데?”
“예. 사실 처음에 어린 과장이 왔길래, 얼마나 일 잘하나 싶기는 했거든요. 근데 오고 난 뒤에 금방 거래처를 따오길래, 실력이 있긴 있다 싶었는데. 이번 일을 직접 보니까 확실히 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응. 그러게 말이야.”
“앞으로 지켜봐도 될 것 같습니다.”
조 차장의 말에 백 이사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금 더 지켜봐야겠다.”
* * *
며칠 뒤.
회사에서 가장 큰 회의가 잡힌 날이 왔다.
직원들은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사무실로 출근했다.
이번 회의에는 사장까지 참석하는 대회의.
원래 이쪽 업계가 회의가 잦은 편이기는 하다.
특히 이렇게 직원이 많은 영업 회사일수록 더더욱이지.
회의가 정말 많은 곳에서는 거의 매일 아침 회의를 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영업 회사에서 회의가 중요한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식구끼리 같은 원장에게 영업을 하면서 경쟁할 수는 없는 터.
직원이 어느 병원을 가고 있는지,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서로 확인을 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전달받을 상사가 항상 사무실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직원들도 영업을 나가기 때문에, 보고받을 시간이 부족한 것.
게다가 코리아 메디컬의 경우, 사무실에만 앉아 있는 상사들은 아무도 없다.
이사 직책을 맡게 되면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꽤 있지만, 그 밑으로는 제 밥그릇을 챙기기에도 바쁘다.
이렇게 인센티브 제도가 확실한 회사일수록 더더욱 자신의 몫을 챙기기 위해 사무실이 아닌 현장, 그러니까 병원으로 향한다.
그래서 회의가 잦은 편이고, 한 번씩 오늘과 같이 대회의가 있는 날도 있다.
모든 직원이 모여 보고도 올리고 바로바로 피드백도 받는 긴 회의.
나는 코리아 메디컬에 온 이후로 사장까지 참석하는 회의는 처음이라 조금 긴장한 마음으로 회의실로 향했다.
평소 회의가 시작하기 전에는 직원들끼리 잡담이 많은 편이다.
제일 높은 직책의 상사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사장이 들어오기 전인데도 엄숙한 기운이 맴돌았다.
자신들의 실적을 발표하고, 잘했으면 칭찬을, 그렇지 않으면 그 반대의 결과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다들 한껏 긴장한 상태로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때,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는 사람.
임정준 사장이었다.
임 사장이 나타나자 모든 직원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오셨습니까.”
임 사장은 아무런 말 없이 고개만을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임정준 사장.
이렇게 큰 회사의 사장치고는 젊은 편이다.
나이는 60대 초중반 정도이고,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입사 날, 그것도 아침 출근이 아닌 오후에 임 사장이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그때 인사를 했던 게 전부였다.
사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일수록 사무실에서 보기가 더 힘들다.
메디컬에서 저 정도의 위치가 되면, 병원으로 영업을 잘 가지는 않는다.
병원에서도 거의 짬이 높은 원장, 병원장들과 대면하는 경우가 많지.
영업하기 위해 만나는 장소 또한 병원보다는 골프장, 식사 약속, 술 약속 등 병원 외의 장소에서 만남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놀고먹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돈도 쓰고, 비위도 맞춰가며 영업을 이어 나가는 것.
발로 뛰며 병원에서 영업하는 우리와 장소만 다를 뿐, 같이 영업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회의가 시작되기에 앞서 임 사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민 과장?”
나를 부르는 소리에 놀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답했다.
“예, 사장님.”
뭐지? 이제 입사한 지도 꽤 되어 가는데, 자기소개를 또 하라는 건가?
나는 무슨 질문이 나올지 예상이 가지 않았기에, 긴장한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행복 정형외과. 자네 맞나?”
행복 정형외과.
김사랑 원장이 다니는 병원.
맞다.
내가 바로 어제, 결국 김 원장의 발주로 물건을 넣었었다.
그것도 어제 퇴근이 가까워지는 오후였기에 아직 아는 직원이 별로 없었다.
아니, 아마 내가 보고를 올린 한 명만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윗선에만 보고를 올렸기 때문이지.
그런데 벌써 사장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갔단 말인가?
임 사장의 말에 온 직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아……. 납품 말씀하시는 거 맞으십니까?”
내 질문에 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나는 그 신호를 보자마자 입을 열었다.
“예, 맞습니다. 어제 오후에 물건 납품 완료했습니다.”
납품 완료라는 말에 재차 직원들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보는 직원, 놀라서 눈이 커져 있는 직원, 회의 시작 전부터 사장에게 이름을 호명 받았다는 것에 시기 질투를 느끼고 있는 직원 등.
이 중 조 차장의 눈빛은 놀라서 눈이 커져 있는 직원이었다.
내가 선임인 조 차장이 아니라, 서정우 부장에게 보고를 올렸었으니 말이다.
행복 정형외과는 조 차장이 말했던 대로 영업이 어려운 병원이다.
그래서 곧장 보고를 올려야 하는데, 조 차장은 어제 오후 사무실 복귀하지 않고 직퇴를 한다고 하였었다.
그가 서 부장에게 보고를 올리라고 지시했기에, 그는 아직 소식을 듣지 못했었다.
임 회장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행복 정형외과에 내가 물건 넣고 있는 건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나랑 같은 병원에 물건 넣게 될 직원이 자네가 될 줄은 몰랐네. 우리가 먼 광주에서 자네를 스카우트해서 데리고 오기를 잘했어.”
극찬이다.
그냥 일반적으로 ‘잘했다’라는 칭찬과는 확연히 다른 칭찬이다.
보통 스카우트를 해서 데려온 직원에게는 기대감이 크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기대감을 채우지 못하면 실망하는 것이지.
그런데 그 기대감을 채웠고, 나를 스카우트해서 데리고 오기를 잘했다니.
나는 가슴속이 뜨겁게 타올랐다.
이전에 다른 상사들에게서 칭찬과 박수를 받았을 때와는 다른 느낌.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더 잘하겠습니다. 믿고 지켜봐 주십시오! 기대해 주시는 만큼 잘 해내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자네한테 많은 기대를 걸어야겠네. 앞으로 행복 정형외과에서 종종 보겠구먼.”
“예. 감사합니다, 사장님.”
직원들은 나를 향해 손뼉을 부딪치며 환호했다.
나는 그에게 허리를 한 번 접은 후,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시선을 멀리 두고 보니, 저 멀리 앉아 나를 쏘아보고 있는 강 대리.
그의 눈빛에서는 분노가 보였다.
잔뜩 시기 어린 눈빛의 분노.
나는 그 시선을 흘겨본 채 넘겼고, 그렇게 회의는 시작됐다.
* * *
회의가 끝나고, 다들 오래 앉아 있었던 탓에 몸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후. 오늘 회의 진짜 길었다.”
“아이고. 삭신이야.”
다들 한마디씩을 던지며, 회의실을 빠져나가고 있던 그때.
“민 과장님.”
내 뒤에서 나를 부르는 사람.
바로 강 대리다.
나와는 거의 반대편에 앉아 있던 그가 언제 내 뒤에서 나를 기다렸지?
“무슨 일이시죠, 강 대리님?”
“저랑 잠깐 이야기 좀 하시죠. 옥상에서요.”
이야기 좀 하시죠?
나이는 어리지만 그래도 엄연한 상사는 과장인 나다.
그의 말투에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강 대리의 저런 태도에 불쾌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언성을 높이는 게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었기에 그저 참아왔던 것이지.
나는 서서히 입꼬리를 내리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그의 눈을 쏘아보며 답했다.
“가죠. 저도 할 이야기 생긴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