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강 대리님?”
강대훈 대리는 내 부름에 다가오며 내게 물었다.
“여기는 무슨 일이세요?”
메디컬 영업사원이 병원에는 무슨 일이냐니.
그의 질문에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답했다.
“영업맨이 병원에 영업하러 왔죠.”
“여기를요? 어떤 원장님한테요?”
“저는 그냥 한번 둘러보고 가는 길이에요. 강 대리님은요?”
김사랑 원장만을 만났지만, 그의 질문에 정확히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숨길 이유는 하나도 없다.
하지만 굳이 나를 싫어하는 강 대리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기는 더 싫었다.
어차피 강 대리 역시 내게 알려주지 않을 테니까.
“저도 원장님들 몇 분 뵈러요. 행복 정형외과 온 지는 몇 번 됐어요.”
전혀 알지 못했다.
그가 행복 정형외과에 영업을 다니고 있었다는 것을.
강 대리는 회의 시간에 한 번도 행복 정형외과에 영업 중이라는 것을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지.
어떤 이유로 보고를 하지 않았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대충 예상컨대 영업 성공까지는 멀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보고를 올렸다가 성공하지 못하면 위에서는 당연히 그 직원을 쪼아댈 테니까, 흔히 영업 성공이 다가올 때 보고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역시 그런 이유에서 보고를 아직 하지 않았을까, 짐작하는 것이다.
강 대리는 나를 한번 훑어보며, 한쪽 입꼬리를 비틀고는 내게 물었다.
“근데 영업은 좀 잘 되셨어요?”
내게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았으나, 그의 질문 의도가 뻔히 보였다.
나를 비꼬고 있다는 것을.
마치 네가 여기에서 영업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겠냐는 듯이 말이다.
기분이 나빴지만, 병원 안에서 강 대리와 언성을 높이거나 함께 비꼬듯이 대답을 주고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그를 무시할 뿐이다.
“예, 뭐. 그럼 사무실에서 봬요.”
그를 뒤로한 채 나는 병원을 빠져나왔다.
* * *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지이잉,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인 : 코리아 메디컬 조성철 차장]
“예, 차장님.”
- 어. 민 과장, 어디야?
“저 병원에서 막 나오는 길입니다.”
- 그래? 사무실로 오는 건가?
“아니요. 병원 좀 돌아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 병원이라… 급한 일이야?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확인차 가는 거라, 일 있으시면 사무실로 먼저 갈까요?”
- 어. 그럴 수 있으면 바로 좀 올래?
내가 병원을 간다고 했는데도 사무실로 들어올 수 있으면 와달라는 그의 말에 나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니, 거절할 리가 없지.
굳이 급하게 다른 병원을 들러야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네,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됩니까?”
- 어……. 들어와서 이야기하자.
“예, 알겠습니다.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 그래.
그의 목소리는 기뻐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신이 난 목소리도 아니었지.
주옥 병원 일이 혹시 잘되지 않은 건가?
분명 원장의 속마음을 통해서는 확실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조 차장의 목소리에 나는 덩달아 심각해졌다.
주옥 병원 영업에 실패한다면 조 차장에게 한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왜 실패했는지, 그것이 단순히 금액 때문인 것인지 꼭 확인해야 한다.
나는 서둘러 차에 올라타 사무실로 향했다.
* * *
“다녀왔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가며 인사를 하는 나를 다급하게 부르는 조 차장.
그는 사무실에서 문을 바라보며 나만을 기다린 듯 보였다.
많이 다급한 모양.
“민 과장, 옥상으로.”
“네.”
그는 한마디를 던진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을 나갔다.
조 차장을 따라 올라온 옥상.
점심시간을 앞두고 있는 어중간한 시간이었기에 대부분의 직원들은 병원에 영업을 나갔다가 이제 슬슬 복귀할 때이다.
그래서인지 옥상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지만 조 차장은 옥상 문을 열자마자 고개를 세차게 두리번거리며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흡연 구역에 가서도, 주변에 아무도 없는지를 몇 차례 살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까지?
영업에 실패해 내게 크게 한소리를 하려고 주변을 살피는 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행동을 빠르게 살폈다.
그리고 생각했다.
병원 영업에 실패했다면 조 차장에게 뭐라고 답하지?
하지만 내가 병원에서 자신감 넘치게 말을 내뱉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실패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 확실하다.
우리는 금액적인 면에서 확실히 질 게 분명했으니까.
조 차장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주머니 속에 있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한마디를 던졌다.
“대체 어떻게 확신한 거야?”
예상하지 못한 질문.
“네?”
“단지 그 거대 메디컬 견적서 본 거, 그거 하나만으로 확신한 거야?”
그의 질문.
내가 어떠한 확신을 가지고 승부수를 던졌는지에 대해 묻는 것이다.
됐다.
성공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목소리, 이런 표정,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고 곧장 화를 냈을 터.
나는 눈썹을 들어 올리고, 눈이 자동으로 커졌다.
“성공한 겁니까?”
그는 내 말에 답하지 않고, 다른 대답을 던졌다.
“내 질문 먼저. 어떻게 확신한 거지? 거대 메디컬의 견적서를 봤다고 치더라도, 단가를 9만 원 낮추면서 거대 메디컬과의 1만 원 차이인 적은 금액 차이로 물건 어필을 해도 됐었을 텐데 말이야.”
그의 말이 맞다.
우리 제품 금액을 12만 원에서 9만 원까지 낮춘 후 물건의 질도 좋다는 어필을 했어도 됐다.
그렇다면 금액도 저렴하고, 물건도 좋다는 어필을 할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승부수를 띄운 건, 단지 원장의 속마음 때문만은 아니다.
속마음을 통해 회복이 더 빠른 물건을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그뿐이다.
거대 메디컬의 견적서를 본 것도 도움은 됐다.
책상 위 견적서를 확인한 뒤, 그것을 통해 금액 싸움에서 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 그뿐.
나머지는 내 영업력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그렇게 내가 당차게 어필하며 승부수를 던질 수 있었던 것?
확신은 자신감에서 온다.
물론 12만 원으로 성공할 것이라는 걸 확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우리 제품에 대해 공부를 했었고, 주옥 병원 측에 충분히 그것을 어필할 수 있는 제품이라고 판단했다.
제품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내 승부수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더불어 애매하게 9만 원이라는 금액으로 내리며, 원장과의 금액 싸움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거대 메디컬과의 금액 차이가 크게 난다면, 우리 제품이 훨씬 더 좋은 제품으로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중간한 금액보다는 큰 금액 차이가 난다면, 당연히 원장은 ‘제품이 그렇게나 다른가?’ 하는 관점으로 볼 테니까.
나는 조 차장을 향해 말했다.
“자신이 있었습니다. 저희에게 최적의 금액으로 제품을 팔 수 있다고 말입니다.”
“자신이 있었다라…….”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이라는 듯, 그는 내 말을 반복해 읊조렸다.
그리고는 내게 재차 물었다.
“자신… 진짜 그뿐이야?”
“네. 오히려 금액 싸움이 들어가면, 저희 금액이 오히려 애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내 생각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참이나 내 말에 토 하나 달지 않고 경청했다.
그리고 내 말이 끝나자, 그는 입꼬리를 길게 올리며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이놈… 물건이네?”
“예?”
그의 목소리가 하도 작았기에 반사적으로 되묻듯이 입을 열자,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민 과장 너, 실력 좋다고.”
“네? 그럼 확실히 된 겁니까?”
“그래. 금액 싸움 경력이 있는 나보다 네 그 확신인지 자신감인지 하는 그 한 방이 먹혔다.”
그의 말은 나를 전혀 비꼬는 듯한 말투가 아니었다.
잘했다, 축하한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일 뿐.
나는 그에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차장님께서 다 공들여 두신 거에 제가 마지막으로 수저만 얹었을 뿐입니다. 차장님 덕에 제가 좋은 경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차장님께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조 차장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렇게 환하게 웃는 얼굴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의 태도는 서서히 내게 마음의 문을 여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연신 미소를 지으며 내게 너스레를 떨 듯 답했다.
“이놈 봐라? 입 발린 소리도 잘하네? 하하.”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정말 차장님께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앞으로 지켜볼게, 민 과장.”
“넵. 아, 차장님. 뭐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는 내 말에 눈썹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행복 정형외과에 영업 중이거나, 거래했던 적 있습니까?”
“행복 정형외과? 갑자기 거기는 왜? 거기도 영업 가보려고?”
“사실은 오늘 이미 다녀왔습니다. 아까 전화 주실 때 나온 병원이 행복 정형외과였거든요.”
“진짜? 행복 정형외과를?”
놀라는 듯한 그의 목소리와 표정.
왜지?
“네.”
“거기 사장님이 지켜보시는 곳이야. 사장님이 직접 물건을 넣으시는 곳이고.”
“그럼 저희랑 거래한다는 거네요? 몰랐습니다. 저희 영업 목록에 없길래…….”
“맞아. 사장님이 직접 병원장님께만 물건을 넣고 있거든. 그래서 목록에는 없어. 근데 거기 병원장님 성향이 조금 특이하셔.”
“특이하시다면 어떤…….”
“병원장님 실력이 엄청 좋으시거든. 그래서 진료도 정말 많이 하셔. 보통 병원장이 쓰는 제품으로, 아니면 자신이 채택한 메디컬에서 물건을 쓰라고 다른 의사들에게 지시하잖아?”
“예,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죠. 몇 가지의 품목을 사용하게 해주시는 곳도 있고요.”
“응. 근데 행복 정형외과는 아니야. 의사마다 사용하는 제품이 전부 달라.”
“전부요? 그래도 같은 병원에서 소모품이라도 사용하는 제품이 겹치지 않습니까? 행복 정형외과가 원장 수만 해도 10명이 넘는 거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다 다른 제품을 쓰면 종류가 너무 많을 텐데요.”
“맞아. 그래서 거기에는 심사과 직원만 해도 엄청나. 제품도 너무 다양하고, 전부 다 다르니까 말이야. 할 일이 다른 병원에 비해서 몇 배는 되거든.”
나는 그의 말에 입이 떡 벌어졌다.
거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의사마다 제품을 전부 다르게 쓴다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다.
특히나 소모품 같은 경우는 같은 제품을 병원에 두고 함께 쓰는 일이 많다.
“개인병원처럼 각 원장님이 다 다른 제품을 사용하신다는 거죠?”
“그렇지. 개인병원처럼 말이야. 그래서 원장님들이 물건을 한 번 선정하고 나면 물건도 잘 바꾸지 않아. 왜냐, 어차피 자기들이 쓰던 거니까. 다른 원장이 물건을 바꿨다고 해도 따라가지를 않잖아.”
“그렇겠네요. 자신의 취향대로 물건을 사용해도 되는 거니까, 다른 원장이 같은 제품을 다른 제조사로 바꾼다고 하더라도 따라가지 않고 그대로 사용해도 되니까요.”
“응. 그래서 행복 정형외과가 힘든 곳이야. 기존에 사용하던 물건들을 바꾸기가 힘들어. 애초에 너무 크고 견고한 병원이라 영업 잘 안 가는 편이지.”
이렇게 이미 다 알려져 있는 곳.
강 대리는 그럼 그 병원에 영업을 왜 간 것일까?
조 차장은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탄성을 내뱉으며 말했다.
“맞다! 대리였나? 누가 거기를 영업하긴 한다고 했는데.”
“강 대리 말씀하시는 거죠?”
“어, 맞아. 강 대리다. 행복 정형외과에 영업 시작한 지 벌써 한 달? 아니, 한 달도 넘었으려나? 엄청나게 공들이더라고. 하나 뚫어보겠다는 거지.”
“오래되어 가네요.”
“응. 시도는 대단하지. 근데 아마 안 될 가능성이 커. 다들 그냥 말리다가 그냥 두는 중이야.”
“왜요?”
“저런 패기도 대리 직책 달았을 때나 하는 거니까. 우리 짬 정도 되면 여기는 공들이면 되는 병원이다, 아니다가 눈에 보이잖아? 그래서 되는 병원만 가는 거고.”
그렇다.
몇십 번, 아니 몇백 번 병원을 들락날락해 볼수록 점점 감이 잡힌다.
내가 노력하면 될 수도 있는 병원과 그렇지 않은 병원.
“민 과장도 알 만한 사람이잖아. 과장이어도 나이가 어려서, 패기 부려볼 때인가? 웬만하면 다른 병원 가. 거기 매출이 워낙 세니까 가보려고 한 걸 텐데, 어려울 수도 있어.”
아마 김사랑 원장이 내게 발주를 할 예정이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에 속단하기는 이르다.
그에게 아직 보고를 올리기까지는 말이다.
“예, 조금만 더 지켜보겠습니다.”
“그래. 성공하면 또 대박인 병원이 바로 행복 정형외과이기는 하지. 장벽이 너무너무 높을 뿐이니까. 얼른 내려가자. 안 그래도 밑에서 우리 기다리고 계실 거야.”
“예? 저희를요?”
“응. 주옥 병원. 거대 메디컬이랑 어떻게 됐는지 내가 아직 보고 안 드렸거든. 민 과장이랑 이야기한 뒤에 보고 드리려고 아직 말씀 안 드렸어.”
“예, 내려가시죠.”
조 차장의 어깨는 한껏 올라가 있었다.
거대 메디컬을 눌러버리고, 주옥 병원을 따냈으니 그럴 만하다.
주옥 병원은 애초에 조 차장의 담당 병원이었다.
그는 나와의 몇 마디 이야기를 더 나누며, 내 덕에 된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공에 내가 얹히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그에게 배움을 받기 위해 따라간 병원이었고, 내가 처음부터 해냈던 병원은 아니었기에 말이다.
나는 내가 새롭게 시작하면 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