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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18화 (218/339)

218화

내 한마디에 순간 진료실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내가 이렇게 앞뒤 보지 않고 말을 내뱉은 이유.

원장의 속마음을 듣기 전, 조 차장의 속마음도 들렸기 때문이다.

조 차장은 단가를 낮추려고 하는 게 분명했다.

그의 속마음은 어떻게 말하며 단가를 내리기 시작해야 할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작전이 승산 없다는 것을 알기에, 재빨리 승부수를 던진 것이지.

자칫하면 금액도 낮추고 물건을 빼앗길 수도 있다.

원장이 찾는, 원하는 제품은 회복이 빠른 제품이다.

우리가 가져온 물건의 질이 좋지만, 거대 메디컬의 제품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그 제품과 비교해 봤을 때 뭐가 더 좋은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제품이 회복에 좋은 제품이라고 강하게 어필을 할 것이다.

그런데 단가까지 거대 메디컬과 맞춰 어필한다면, 별 승산이 없을 수도 있다.

그들보다 비싼 제품이기에 질적인 면에서도 뛰어나다는 걸 보여줘야 비교가 될 테니 말이다.

내 한마디에 원장의 반응보다 조 차장의 반응이 더 빠르고 깊게 다가왔다.

조 차장은 내게 무슨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에서는 레이저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앞에 앉은 원장은 내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지?”

그는 내 단호한 말에 놀라지 않고, 그저 왜 그런 말을 내뱉는지 궁금해하는 듯 보였다.

“조 차장님이 주옥 병원에 대해서 저에게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었습니다.”

내 이야기에 그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경청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주옥 병원에, 그리고 원장님께 꼭 영업 성공해 납품하고 싶어 하셨거든요. 그래서 단가도 다른 병원에 납품하는 금액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낮춰 왔습니다.”

내가 내뱉은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실제로 주옥 병원에 이 물건을 마지노선 9만 원을 잡고 왔다는 건, 정말 말도 되지 않는 금액이기는 했으니까.

게다가 지금 불러둔 12만 원이라는 금액도 충분히 저렴한 금액이기는 하다.

9만 원에 물건을 주려고 마지노선을 잡고 온 건, 물건을 판다기보다는 주옥 병원과 먼 미래를 바라보며 투자하는 셈으로 잡았던 것.

“그리고…….”

내가 말을 이어 가려고 하자, 조 차장이 내 말을 자르며 대화에 참여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원장은 조 차장을 향해 손바닥을 보였다.

“음, 조 차장 이야기는 민 과장 이야기 먼저 듣고 난 뒤에 들어보지. 조 차장 이야기니, 다른 직원의 입에서 듣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말이야.”

“…네.”

조 차장은 고개를 끄덕였고, 원장은 손바닥을 하늘이 보이게 들며 계속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창상 피복제 제품에 대해 국내 유통 가능한 제품들을 정말 많이 찾아보셨습니다. 그중에서 원장님께서 말씀하셨던 제품과 조 차장님이 추천하는 제품. 딱 두 가지로 골라온 거죠.”

“응. 그래서? 계속하게.”

“네. 저희 회사에서 추천하는 이 제품. 그 제품을 추천드리는 이유는 제품이 환자들에게 정말 좋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랫입술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당연히 조 차장이 제품이 좋으니까 추천했겠지?”

“예. 물론 금액이 비싸기는 합니다. 알아보던 제품 중 금액이 저렴한 것도 물론 있었습니다. 그 제품들도 당연히 치료 목적인 물건이니, 치료와 회복에 용이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저렴한 만큼 그 값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장은 내 말이 흥미롭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의료기기는 다른 물건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품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저 살아가며 필요한 의식주와는 정말 다르다고 생각하고요.”

“의식주라…….”

“네. 의료기기는 가성비와 같은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같은 티셔츠를 산다면 조금 더 싼 곳을 찾기 위해 발품 팔아 찾아 입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료기기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조건 더 비싼 것을 찾아야 한다는 뜻인가?”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다.

“무조건 비싸야 좋은 제품은 아닙니다. 금액과 제품의 성분을 잘 비교해야겠죠. 그럼에도 확실한 건, 비싼 건 그만큼 치료에, 그리고 회복에 더 좋은 성분이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제품을 추천드렸던 겁니다.”

“그럼 민 과장 자네가 말한 이 제품은 성분이 좋아서 비싸다, 이런 뜻이지?”

“네. 그저 비싸기만 한 제품도 있지만, 이 제품은 성분과 치료 효능, 회복까지 꼼꼼하게 확인한 제품입니다. 주옥 병원은 서울에서 유명하고 큰 종합병원이잖습니까?”

나는 원장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을 때보다, 보다 더 빠른 회복이 일어나야 좋다고,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원장님들의 실력도 출중하시지만요.”

“하하. 그렇지. 실력도 좋아야 하지만 제품도 좋아야 하는 건 사실이지.”

“저희도 더 낮은 금액으로 드릴 수 있었다면, 애초에 그 금액을 알려드렸을 겁니다. 이 금액이 최대로 낮춘 금액이고요.”

그는 앞에 놓인 견적서의 ‘12만 원’이라는 금액을 바라보며 동그라미 표시를 하고 있었다.

“저 금액이 저희가 정말 남는 게 없이 힘들게 드리는 금액이라는 거,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조 차장님이 윗선에 어렵게 올려 받아온 금액이라는 걸 제가 옆에서 지켜봐 왔습니다.”

내 말에 조 차장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허공을 응시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나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듯이 말이다.

“물론 원장님께서 금액만을 보시고 결정하신다면 어려우시겠지만, 환자 치료와 회복에 좋은 제품을 찾으신다면 이 제품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믿고 맡겨주십시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원장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손을 뻗은 후 전화를 받았다.

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몇 번의 전화가 울렸던 모양.

“예. 업무 중이라 못 받았습니다. 네, 그럼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자마자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조 차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조 차장. 나 지금 병원장님이 급한 일로 찾으셔서 가봐야 할 것 같아. 병원장님 뵌 후에 내가 전화 주겠네.”

“예, 알겠습니다. 어서 가보십시오.”

“그래. 이따 연락하지.”

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리는 그에게 허리를 접었다.

* * *

“민 과장! 너 뭐 하는……!”

조 차장은 주옥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내게 소리쳤다.

아니, 소리를 치려다가 참는 듯 보였다.

항상 낮은 목소리를 유지하던 조 차장.

그의 높은음, 그리고 큰 목소리에 놀랐다.

하지만 당연히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었다.

심하게는 욕까지 들을 각오를 했었지.

내가 상사였다고 하더라도 후임이 그런 식으로 말을 했다면 순간 화가 났을 거니까.

상사가 금액을 낮추려고 하는데, 후임이 그걸 막아버렸다면?

게다가 낮추지 못하겠다고 원장에게 못을 박아버렸다면?

이 정도의 화는 예상보다 많이 적은 편이지.

“우선 죄송합니다.”

나는 그를 향해 머리를 한번 숙였다.

그러자 조 차장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내게 물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설명 좀 해봐.”

나는 조 차장이 생각보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에 이렇게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묻다니.

내 행동이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상사이자 주옥 병원의 담당자인 조 차장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그런 행동을 보였던 건 물론 잘못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대로 놔두다가는 실패로 돌아갈 것이 뻔했으니까.

어쨌든 꼭 그 영업을 성공해야 했다.

회사에서도 중요한 사안으로 푸시하던 건이었으니까, 더불어 거대 메디컬과의 경쟁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는 내게 설명을 요구했지만, 원장의 속마음을 말할 수는 없는 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사과와 설득뿐이다.

“차장님. 제가 주옥 병원 원장님 책상 위에서 거대 메디컬의 견적서를 봤습니다.”

“뭐? 견적서? 얼마였는데?”

그는 여전히 눈썹에 힘을 잔뜩 준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8만 원이었습니다. 저희가 금액을 낮춘다고 해도 절대 맞추지 못할 금액이요.”

“하……. 그래서 그렇게 말을 했다는 거냐?”

“네. 어차피 금액 싸움에서는 저희가 질 게임이었으니까요. 저희가 원장님과의 금액 협상에서 9만 원까지 낮춘다고 했다면? 그저 원장님은 3만 원이나 높게 부풀렸었구나, 하고만 생각하고 끝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는 내 말에 아무 대답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안 됐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최저가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금액은 비싸지만, 제품의 질이 좋다는 것. 저희 제품이 뛰어나게 회복에 좋은 제품 아닙니까? 그래서 그 점으로 밀어붙였습니다.”

나는 조 차장을 설득하기 위해 말을 이어 갔다.

“차장님께서 금액을 낮추실 거라고 생각해 서둘렀습니다. 중간에 차장님과 나올 수가 없었기에 보고를 드릴 틈이 없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 말이 끝나자, 조 차장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는 나와 시선을 한 번도 맞추지 않은 채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잠시 후, 조 차장은 어깨를 들었다 내려놓더니 나를 불렀다.

“민 과장.”

“예, 차장님.”

“확신이 있다고 판단한 거지?”

그의 말에 나는 내게 소리를 쳤을 때보다 더 놀랐다.

뭐지?

이렇게 내 이야기만 듣고 나를 믿어주는 건가?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그리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답했다.

“예. 확신했습니다!”

“알겠어. 병원장님 만나고 연락 주신다고 했으니까. 그때 가서 네가 틀린 거라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 믿어본다, 민 과장.”

나는 그의 말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놀라웠다.

항상 자기밖에 모르는 것처럼 보이던 조 차장이 누군가를 믿는다라…….

“예, 감사합니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여기서 직퇴해. 내일 보자.”

“네,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차장님.”

* * *

다음 날 아침.

나는 사무실에 들르지 않고, 행복 정형외과로 직출을 했다.

내 양손 가득 짐을 챙긴 채 병원 입구로 향했다.

나의 여자 사람 친구이자, 친한 의사.

김사랑 원장의 새로운 직장인 행복 정형외과에 첫 인사를 가는 것이다 보니, 챙겨올 짐이 많았다.

역시 서울에서 제일 유명한 정형외과답게 병원 외관에서부터 티가 났다.

이 비싼 강남땅에 커다란 건물.

그리고 수많은 플래카드들이 걸려 있었다.

똑똑.

“안녕하…….”

내가 인사를 하기도 전에 열린 문으로 나를 확인한 김 원장.

그녀는 환한 미소와 함께 나를 반겼다.

“민 과장님! 벌써 왔어?”

“하하. 네. 기다리고 계셨던 것처럼 이렇게 빨리 반겨주시네요?”

“그럼, 당연하지. 뭐야? 뭘 그렇게 바리바리 싸 들고 왔어?”

나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짐을 내려놓았다.

“이거는 새로운 곳에 오셨으니까 드리는 선물이요.”

나는 커다란 투명 백에서 탁상용 화분을 꺼내 들었다.

“새로 오셨으니, 큰 화분은 많이 받으셨을 거 같아서 탁상용으로 골라봤습니다.”

“크으. 센스는 여전하네. 예전에 나 광주 처음 갔을 때, 꽃다발 줬었잖아. 그때도 센스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걸 기억하세요?”

김 원장이 처음으로 광주 모던 정형외과에 출근하던 날.

나는 남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화분이 아닌, 꽃다발을 들고 갔었지.

그걸 아직도 기억하는 그녀.

“당연하지. 어떻게 잊겠어. 아무튼, 고마워. 내가 안 죽이고 잘 키워볼게.”

“네. 그리고 이건 모닝커피요. 앞에 간호사 선생님들 거도 챙겨왔는데…….”

나는 커피 캐리어를 들며 말하자, 그녀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 캐리어를 들고 문 앞에 있는 외래 간호사에게 건네는 김 원장.

“내가 주고 왔어! 챙겨줘서 고마워, 민 과장님.”

“아닙니다. 여기 간식이랑 챙겨왔으니까, 하나씩 드세요.”

그녀는 내가 건네는 쇼핑백을 받아들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아, 맞다. 내가 말한 제품은 들고 왔어?”

“그럼요.”

나와 김 원장은 한 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광주에서 사용하던 제품에 적응했는데, 행복 정형외과에서 쓰는 품목이 다르니까 영 불편하더라고.”

“맞습니다. 원장님께서 편하신 제품을 사용해서 진료하시는 게 환자한테도 좋으니까요.”

“응. 우선 이 제품은 내가 살펴보고, 수량 파악해서 발주할게.”

“감사합니다. 보시다가 불편하신 거 있으면 연락 주세요.”

“고맙긴, 나도 고맙지. 조만간 술이나 한잔하자, 민 과장님.”

“좋죠!”

아직 발주 확정은 짓지 않았지만, 거의 확정이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나를 생각해 발주해 주는 것도 있을 테지만, 현재로서는 내가 다른 메디컬 직원보다 그녀가 선호하는 제품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병원 로비를 걸어가던 그때.

“어?”

나를 보고 놀라는 사람.

나 또한 그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민 과장님… 왜 여기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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