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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11화 (211/339)

211화

항상 다른 병원, 다른 의사, 다른 간호사들을 만나는 게 일상인 영업사원.

그게 내 직업이다.

그들이 내게 하는 말의 절반 이상은 모두 요구 사항이지.

그렇다 보니 내가 아무리 메모를 잘한다고 해도 잊어버리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가끔씩은 있다.

내용이 잘못 기입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그날의 대화가 텍스트 형식으로만 남아 있게 된다면, 그 당시의 감정이나 말투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단순히 내용만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때의 상황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 말투가 궁금증에서 나오는 것인지, 확인차 하는 것인지, 혹은 관심이 없지만 애써 물어보고 싶었던 것인지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메모하는 습관처럼 녹음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업계의 일에 적응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통화 녹음이야 휴대전화에서 자동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녹음이 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 대화는 어느 순간에 중요한 말이 나올지 모른다.

그래서 내 휴대전화 배경 홈 화면에는 녹음 애플리케이션이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원하는 걸 녹음하고 싶을 때, 상대방은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 찰나를 잘 잡아야 한다.

녹음하는 습관 역시 내 영업 노하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휴대전화 메인에 있는 ‘녹음’ 버튼을 눌러 녹음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주 잠깐 내 귓가에 들려오는 이 소리 때문에 나는 녹음을 하고 있다.

내 귓가에 희미하게 들려오는 이 소리.

가만히 집중해 생각해 보니 처음 한준범 원장 진료실에 들어올 때부터 들려왔던 것 같다.

바로 음악 소리.

잔잔하게 들려오는 평온한 음악.

가사가 없는 발라드인가?

아니면 팝송?

그것도 아니라면 클래식?

어쨌든 이 음악이 계속해서 흘러나온다는 것은 한 원장이 이 음악을 듣기 위해 켜두었다는 것인데…….

내가 잠깐 보아도 자신의 지식을 뽐내고 싶어 하는 한 원장.

그가 켜둔 음악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내가 녹음을 하는 이유는 단지 이 음악이 좋아서? 듣고 싶어서?

전혀 아니다.

당연히 그에 대한 정보이기에 수집을 하는 것.

그의 지식은 모두 전시가 되어 있다.

모두의 눈에 확 띄게 말이다.

그에 반해 음악 소리는 매우 작다.

집중을 해야 들릴 정도.

나 또한 이 진료실을 나갈 때까지 음악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으니까.

생각해 보면 소리가 작은 것은 진료실이기 때문일 것일 수도 있다.

진료실은 아픈 환자가 오는 공간.

그들에게 집중하고, 대화하며 진료하는 곳이기에 음악 소리가 환자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또 반대로 생각해 보자면, 그럼에도 한 원장이 이 음악을 틀어놨다는 것은 자신이 홀로 있을 때 집중해 듣기 위한 것이겠지?

꽤 좋아하는 음악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님. 그럼 저는 다음에 또 원장님 뵈러 오겠습니다.”

나는 그를 향해 허리를 접었다.

그와의 짧은 인사를 마친 뒤, 곧장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녹음해 둔 것을 음악 검색을 통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제목.

음악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다면 정답은 하나.

바로 음원 등록이 되지 않았다는 것.

대체 무슨 음악일까?

* * *

“민 과장님!”

사무실로 복귀하자마자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

바로 이찬호다.

“어. 찬호 씨, 무슨 일이야? 나 기다렸어?”

그는 내 자리 앞에 서서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고 있었던 모양.

내가 다가가자 그는 내 의자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드릴 말씀 있어서 자리에 왔다가, 안 계시길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었어요. 병원 다녀오시는 겁니까?”

“맞아. 근데 할 말이 뭐야?”

그는 내 의자를 빼내며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 의자에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내게 답을 하는 이찬호.

“회식 때문에요.”

“회식한대?”

“예. 저희가 보통 한 달에 한 번, 적어도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회식을 하거든요. 너무 자주 하죠?”

나는 그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업 회사에서 이 정도 회식은 자주 있는 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영업사원은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감정 소모가 많은 직업이다.

그래서 이 업계의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항상 가지고 있다.

물론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겠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들이 그런 스트레스가 큰 편이지.

병원을 갔다가 스트레스받는 일이 생기면 누구나 집에 가기 전에 그 일을 털어내고 싶어 한다.

직장에서의 일을 안식처인 집까지 끌고 가기는 싫을 테니까.

그래서 대부분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선택하는 것이 바로 ‘술’이다.

비록 술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건강하지 못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술만 한 게 없는 듯하다.

술을 마시며 그 기억을 잊고 싶은 것보다, 그저 함께하는 사람들과 있었던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털어내는 것이지.

함께 마셔주는 자가 내 고민을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내 이야기에 공감해 주는 것, 아니 공감해 주는 것보다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내 스트레스는 해소될 수 있다.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곳이 항상 필요한 현대 사회.

그런 의미로 술자리는 직장 생활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를 없애지는 못해도 덜어내기에는 좋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내 이야기를 했을 때, 생판 모르는 사람이 듣는 것보다는 같은 업계의 사람이 듣는다면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기에 같은 스트레스를 받을 테니까.

그래서 같은 회사 사람들끼리 술을 마시는 것이지.

“그 정도 회식이면 뭐, 괜찮지 않나?”

“그래도 회식은 뭐랄까… 즐겁기는 하지만, 즐겁지 않을 때도 있는 것 같은데…….”

이찬호는 주변을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그의 말도 맞다.

회식을 싫어하는 사람.

그런 경우는 당연히 상사와 함께 회식을 할 때이지.

회식을 업무의 연장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직책이 낮을수록 더욱 많아진다.

회사를 벗어나 술집, 밥집에 가도 상사들의 수발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체 회식보다는 부서별 회식, 또는 마음이 맞는 직원들끼리의 회식을 선호한다.

“찬호 씨 말이 맞지. 하하. 아무튼, 그래서 회식이 언젠데?”

“아! 얼마 전에 하긴 했었는데요. 민 과장님 오셨으니, 환영회 겸 회식하자고 하셔서요. 과장님 편하신 날짜로 하자고 하는데, 언제 가능하세요?”

“나는 다 괜찮아. 보통 회식하는 요일로, 찬호 씨가 편한 날로 해도 돼.”

그에게 선택권을 넘기자 그는 미소를 지었다.

하고 싶었던 요일이 있는 모양.

“정말 그래도 될까요?”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날짜 정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환영회라…….

WG 메디컬에 처음 입사했을 때, 환영회라는 명목으로 회식을 했던 적이 있다.

내 인생 첫 사회생활에서의 환영회였었지.

그리고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없었다.

광주 메디컬에서는 환영회라고 할 것이 없이, 다 함께 새 회사로 나온 것이었으니까.

오랜만에 느껴보는 새로운 시작의 설렘.

뭔가 환영회 명목의 회식이 기대된다.

* * *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낮에 녹음했던 파일을 열었다.

그리고 몇 번이고 파일을 재생하며, 그 음악에 대해 연구를 하듯 찾기 시작했다.

아주 작게 녹음이 된 소리였기에 정확히 바로 알아차릴 수는 없었지만, 클래식 곡이라는 것은 알아낼 수 있었다.

더불어 그 곡이 음악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에 검색되지 않았던 이유.

바로 음원이 아닌 연주곡이었던 것.

너튜브를 통해 여러 클래식 곡을 듣다 보니 같은 곡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한 원장의 진료실에서 흘러나오던 곡은 작곡가 헨델의 곡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진료실에서 나오던 곡들은 갖가지의 클래식 곡이 아니라, 전부 헨델의 곡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한 원장이 헨델을 좋아하는 모양.

그것도 평소에 들어보지 못했던, 유명하지 않은 곡들이 주를 이루었던 것 같았다.

나는 클래식을 즐겨 듣는 타입은 아니다.

그래도 여기저기 흘러나오는 유명한 곡들은 분명 아니었던 것 같다.

율한 정형외과에서 한 원장을 본 건 잠깐이었다.

평소 메디컬 직원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

내 생각에 그는 메디컬 직원을 무시한다는 것 보다, 그저 자신보다 지식이 부족한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한 원장 마음에 들려면 즉, 병원 영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에게 무시당하는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

그러니까 그가 보기에 내가 지식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사람 같아 보여야 하겠지.

한 원장 주변에 있던 상패와 서류들.

그것 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것은 ‘의사’라는 직업과 관련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동네에서 스포츠를 하며 받은 것들, 기부 등.

하지만 그것들로 내가 그와 지식적인 공감대를 찾기는 조금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의사 관련해서는 내가 그에게 지식으로 명함도 내밀 수 없지.

그렇다면 나는 그의 클래식 성향을 공략하는 건 어떨까?

영업하러 진료실에 들어가는 모든 영업사원은 아무리 여러 병원을 다녔다 하더라도 긴장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 한 원장의 진료실에서 나는 음악 소리는 잘 듣지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 잘 듣지 못하다 마지막에 캐치를 했으니까.

클래식 쪽으로 그에게 다가갔던 사람이 있었을까?

확신은 할 수 없지만, 내가 도전을 해봐도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내가 이렇게 율한 정형외과에 공을 들이는 이유.

꼭 이 병원에 아주 작은 물품 하나라도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병원에 매출을 얼마나 따내 올 수 있느냐는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물론 매출이 큰 제품을 납품한다면 좋겠지만, 당장은 그것보다 이 병원을 뚫을 수 있느냐다.

나를 엿 먹이려던 김 차장 수에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꼭 보여주고 말 것이다.

그렇게 나는 헨델 관련 곡과 정보를 찾아보며, 기나긴 밤을 보냈다.

* * *

“어떻게 돼가?”

조 차장은 사무실 옥상에 있는 자판기 커피를 뽑으며 내게 물었다.

의외의 부름이었다.

그가 나를 옥상으로 불렀다는 것이.

평소 자기의 일이 아니라면 관심도 없던 사람.

그가 아침부터 내 자리로 다가와 나를 옥상으로 부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예? 어떤 거 말씀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내 말과 동시에 나온 자판기 커피.

그는 그 커피를 꺼내 내게 건네며 답했다.

“뭐긴. 율한 정형외과지.”

그는 대답을 하고는 앞장서서 옥상 난관 쪽으로 걸어갔다.

나 역시 커피를 든 채 그를 따라가면서 생각했다.

조 차장을 따라 옥상으로 올라오면서도 대체 나를 왜 부르는 거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율한 정형외과 이야기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도 김 차장의 의도를 내가 깨트려 버리는 것을 바라는 모양.

“아… 어제 병원 다녀왔습니다. 오늘 오후에 다시 갈 계획이고요.”

“반응은?”

“역시 차장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대로입니다.”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물고 있는 조 차장에게서 살짝 보이는 실망한 표정.

진전이 없다는 말에 그런 표정을 짓는 조 차장을 향해 나는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꼭 성공해 낼 겁니다.”

“걱정한 적 없어. 그리고 민 과장이 대체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뭐가 있었던 거야?”

“아니요. 다만 성공할 때까지 할 겁니다. 반드시 성공하게 만들어야죠. 스카우트까지 받고 온 회사에 첫 번째 영업 성공할 병원은 의미가 있는 병원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내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옅은 미소를 보일 뿐.

내가 찾은 해결책.

그게 꼭 먹혀야 할 텐데…….

* * *

사무실에서 나와 율한 정형외과로 향하기 전.

나와 미리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난 약속 장소로 서둘러 출발했다.

약속 장소는 회사 근처 지하철역 2번 출구.

평일 오후지만, 회사 근처다 보니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2번 출구 앞에서 약속한 사람을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수많은 사람들 속, 이 공간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한 사람.

바로 저 사람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나를 발견한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소리쳤다.

“어? 가지……!”

“네! LP 올리신 분 맞으시죠?”

“가지 마켓! 맞아요. 여기 물건이요.”

나는 그가 건네는 쇼핑백을 열어 물건을 확인했다.

내가 어젯밤 내내 찾아 헤매던 것.

바로 동네 중고 애플리케이션인 ‘가지 마켓’이다.

원장의 책장에 몇 장 있었던 LP.

이미 그가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나는 헨델 곡 LP를 열심히 찾아냈다.

내가 찾는 것은 구매하기가 꽤 어려웠고, 고심 끝에 나는 가지 마켓에 들어간 것.

역시나 이 넓디넓은 서울의 가지 마켓에는 없는 게 없었다.

나는 이 LP를 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율한 정형외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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