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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10화 (210/339)

210화

【 센스 】

조성철 차장은 내 말에 고개를 획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왜.”

차갑고 딱딱한 그의 말투.

굳이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은 듯한 마음을 내보였지만, 나는 그와의 대화가 절실했다.

“혹시 율한 정형외과에 대해서 아십니까?”

나는 물고 있던 담배를 손으로 내려놓은 채 그에게 물었다.

내 질문에 그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잠시 대답을 망설이는 듯 보였다.

조 차장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나는 그에게 재차 질문을 던졌다.

“제가 어제 다녀왔던 세 곳, 그리고 율한 정형외과 전부요.”

나는 그에게 총 네 곳의 병원에 관해 물었다.

즉, 김석구 차장이 내게 알려준 병원에 대해 전부 물어본 것이지.

그러자 그는 내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병원 리스트, 김 차장이 준 거냐?”

어떻게 알았지?

나는 그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어제 차장님 안 계셔서, 김 차장님께 리스트 도움받았습니다.”

그는 내 말에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자그맣게 속삭였다.

“…도움은 무슨.”

“네?”

“거기 몇 번이나 영업 실패한 병원이야. 어제 다녀왔다던 세 곳도 마찬가지고.”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역시 이 바닥 생활이 몇 년째다.

그런데 병원 원장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었다.

세 곳 모두 연락이 올 거라 예상했으니까.

“하지만 어제 다녀왔을 때, 반응이…….”

그는 내 말을 자르며 말했다.

“반응이 좋았지? 곧 민 과장한테 연락을 할 것처럼 말이야.”

“아……. 네, 그랬습니다.”

“그런 곳들만 골라준 거야. 그 새끼가.”

“예?”

그의 거친 말투에 나는 놀라 턱을 당겼다.

“아니. 김 차장이 말이야.”

역시나.

김 차장을 부르는 말투에서 느껴졌다.

그들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을.

“대체 그런 곳을 왜…….”

“왜겠어. 민 과장이 마음에 안 드니까, 엿 먹으라는 뜻이겠지. 애써도 되지 않을 병원들이니까.”

내가 그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일부러 나에게 그런 병원만을 골라주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메디컬 직원도 아니고, 같은 회사에 다니는 직원에게 굳이?

내 상식으로는 이해 불가였지만 김 차장의 속마음, 그리고 오늘 회의 시간에 보였던 표정, 그 라인의 강대훈 대리까지.

그들은 내가 이 자리에 온 것이 꽤나 아니꼬운 듯 보였고, 그런 아니꼬운 내가 영업을 잘해 내는 것이 더 싫었겠지.

그래서 내게 애초에 애써도 되지 않을 병원들을 호의를 베푸는 척하며 리스트를 건넸던 것이다.

네놈이 얼마나 잘났는지 보자, 뺑이 한번 쳐 봐라, 이런 느낌.

유치했다.

그래서 기분이 나쁠 것도 없었다.

그저 헛웃음만 나올 정도.

나는 아직 어디 라인을 탈지 정하지 않았다.

라인은 총 두 줄.

내게 엿을 먹이고 싶은 김석구 차장 라인.

그리고 내게 관심도 없는 듯한 조성철 차장 라인.

이 둘 중에 내 라인을 정해야 한다는 사실에 속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드는 생각, 지금 굳이 라인을 정해야 할까? 하는 마음이다.

어쩔 수 없이 라인을 타야 한다면, 조 차장 라인이겠지만, 그 역시 아직은 믿을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이유 없는 호의는 없었네요.”

내 말에 조 차장은 마지막 담배 한 모금을 쭈욱 빨아들였다.

그리고 담배꽁초의 불씨를 바라보다 끄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도 과장직 달고 온 회사인데. 민 과장이 뭐라도 보여주려면, 내가 쉬운 병원 리스트 좀 넘겨줘? 전에 그 자리에 있던 친구가 작업하던 병원 있어.”

자존심이 상했다. 다 된 밥에 내가 수저만 올려놔야 한다는 것이.

하지만 그 방법은 확실하다.

수저만 올려놓는 마무리만 내가 하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그러나 코리아 메디컬로, 무려 스카우트까지 받아서 온 나였기에 그런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김 차장이 던져준 최악의 패.

그 최악의 패를 쥐고, 내가 승리해 낸다면?

보다 짜릿한 승리는 없을 것이다.

나는 조 차장에게 조언을 구하듯 물었다.

“아직은 괜찮습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그런데 차장님. 율한 정형외과, 왜 영업이 힘든 병원인지 여쭤봐도 됩니까?”

김 차장의 생각에 불타오르는 내 눈빛을 본 조 차장.

그는 입꼬리를 한 번 올리더니, 내게 답했다.

“거기가 제일 힘들 거야. 어제 갔던 세 곳과는 다르게, 거기는 호의적인 반응도 보이지 않을 거야. 그냥 메디컬 직원이라면 무시하는 의사거든.”

“무시요?”

“응. 자기가 되게 잘난 줄 아는 사람이야. 물론 의사가 되는 데까지는 엄청난 노력을 해서 가방끈이 길었겠지만, 그 원장은 그뿐만이 아니라 다방면에서 자신 혼자 최고라고 생각해.”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다…….”

나는 혼잣말로 그 의사의 성향을 읊조렸다.

“그 양반을 추켜세워 주려고 갔다가도 다들 기분 나빠서 포기했다더라고. 들어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니까. 자기 자랑만 하는 게 아니라 무시당하는 느낌이 든다더라. 나는 애초에 율한 정형외과 가보지도 않았지만 말이야.”

조 차장의 조언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차장님,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꼭 해내 보겠습니다.”

“그건 알아서 해. 내가 민 과장 생각해서 정보 주는 거 아니야. 그저 김 차장의 그런 짓이 꼴불견이라 그런 거지.”

그의 말투와 표정을 보니 말 그대로인 것 같았다.

정말 나를 생각해서 주는 정보는 아닌 듯했다.

내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보다는 김 차장과의 관계로 인해 그의 계획대로 되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더 맞는 듯 보인다.

아무렴 어떠랴.

어쨌든, 결론적으로 보자면 조 차장과 내가 각자 생각하는 끝이 같다.

김 차장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그가 건넨 병원 리스트의 영업을 실패하지 않고, 성공해 내는 것이지.

어떻게든 성공시켜야 한다.

반드시.

* * *

율한 정형외과.

조 차장에게 들은 대로 원장은 나를 반기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긴장되는 마음으로 병원 문을 열었다.

오늘도 그렇듯 한참의 기다림의 연속.

기나긴 기다림 끝에 나는 결국 눈앞에 있는 진료실 문을 열 수 있었다.

똑똑.

“안녕하십니까. 코리아 메디컬 민지훈이라고 합니다.”

내가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허리를 펴자 보이는 원장의 얼굴.

한준범 원장.

굉장히 지적으로 생긴 얼굴이다.

고생 한번 해보지 않은 듯, 곱게 자란 스타일.

그는 아무 표정이 없었다.

그저 무표정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볼 뿐.

그뿐이었다.

“네. 들어오세요.”

그나마 다행인 건, 입구 컷은 당하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카탈로그나 두고 가세요.’라는 말로 나를 보낼 수도 있었지만, 그는 내게 쌀쌀맞은 표정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하지만 그의 시선과 말투에서는 나를 무시하는 것이 티가 나는 것 같았다.

내가 조 차장에게 듣고 왔기에 그렇게 보이는 걸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어제 영업 갔던 병원은 총 3곳.

그 세 군데의 병원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진료실 문 앞에서 인사를 한 뒤, 그의 앞에 놓인 의자까지 걸어가며 진료실을 빠르게 스캔했다.

진료실을 스캔하다 보면 진료실 주인의 성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율한 정형외과의 원장 성향은 확실히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자신이 해냈던 모든 일을 자랑하고 싶은 것이 티가 나는 사람.

그가 앉아 있는 자리의 양옆에는 커다란 책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책장에는 자신이 의사 생활을 하며 받았던 인증 자료들이 나열되어 있다.

더불어 자신이 기부했던 기부 증서들도 쭉 펼쳐져 있었다.

매우 티가 나게.

물론, 기부를 한 건 정말 대단하고 박수를 쳐 줄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보란 듯이 펼쳐놓은 것은 그동안 여러 진료실들을 다니며 봐왔던 것과는 사뭇 달랐기에,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좋게 이야기하자면 자기애가 강하고 자신의 지식을 표출하고 싶은 것이겠지만.

조금 다른 말로 해석하자면 허세가 심한 성향인 것 같다.

의사임을 증명하는 서류들과 상패들, 그리고 기부 증서 외에도 자신이 동네 운동 대회 같은 곳에서 받은 상까지 모두 전시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유형의 의사.

가끔가다 이런 자기애가 강한 원장들을 만났을 때, 영업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기에, 그에게 그 잘난 점을 언급만 해줘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내 앞에 앉은 율한 정형외과 원장은 그렇지 않다고 조 차장이 조언을 해주었었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 한 원장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역시, 칭찬뿐이다.

이 많은 자료를 바라보며 어찌 칭찬 한마디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의자를 당겨 앉으며, 입을 열었다.

“와. 원장님, 업적이 굉장히 많으시네요?”

이런 칭찬을 받으면 보통 사람들은 쑥스러워하거나, 민망해하는 반응을 보이고는 한다.

하지만 한 원장은 얼굴색 하나,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도 알아요. 제가 공부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대부분은 다 잘하거든요.”

역시 특이하다.

“그러신 것 같아요. 보니까 예체능 방면으로도 엄청 뛰어나시네요. 종류가 엄청 다양하네요.”

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그의 양옆에 놓인 자료들을 바라보며 답했다.

그에게 하는 말은 물론 아부성 말투가 들어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전시해 두었다는 게 특이할 뿐이지. 어쨌든 저 모든 걸 해내고 받은 결과물이라는 생각에 나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라는 직업이 공부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고, 벅찬 일이기에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지.

나는 그 이후에도 일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의 뒤에 펼쳐진 수많은 액자와 자료들을 바라보며 대화의 물꼬를 텄고, 그 역시 자랑이 섞인 대답으로 말을 한참 이어 갔다.

이 병원도 10분 컷은 넘겼다.

대신, 내가 가져온 카탈로그 이야기나 내 이야기를 1분도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처음 진료실에 들어와 명함을 내밀며 인사한 이후에 일 관련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니, 할 틈이 없었다.

영웅담을 듣듯 무표정한 표정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말을 들으며, 한 원장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여태 스쳐 갔던 많은 아부성 영업사원들과 내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대체 이 병원에 납품하고 있는 메디컬 직원은 어떻게 한 원장을 영업했을까?

누군가는 이미 한 원장의 마음을 얻어 물건을 납품하고 있을 터.

그는 한참이나 무표정으로 자랑을 늘어놓다가, 점차 나에게 흥미를 잃어가는 듯 보였다.

내 반응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나는 최대한 모든 리액션을 동원해 그의 말을 경청하며 반응했기 때문이다.

단지 그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기에 지친 것 같았다.

여기서 내가 이야기를 더 끌어간다고 해도 영업에 큰 의미는 없을 거라 판단했다.

스스로 말을 끝낸 한 원장은 나를 바라보며 한마디를 붙였다.

“나 보여주려고 가져온 자료 줘요.”

“예?”

“오늘 영업하러 온 거잖아요. 자료 줘요. 내가 나중에 볼게요.”

“아…….”

확신할 수 있었다.

오늘 내 영업으로 그는 다시 내게 연락하지 않을 것임을.

정말 내 자료에 관심이 있어 달라고 한 것이 아니니까.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줬고, 자랑한 값을 치르기 위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나는 가방을 뒤적여 준비해 온 자료를 건넸다.

하지만 이대로 영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우선 오늘은 자리를 떠나고, 다시 와서 얼굴도장을 찍으며 그에게 점점 더 다가갈 것이다.

내일 다시 왔을 때, 그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들어줄 거라는 확신은 없다.

조 차장 말대로라면 율한 정형외과에 영업 성공이 힘든 것은 사실이니까.

김석구 차장 또한 그렇기에 내게 율한 정형외과를 넘긴 것이겠지.

그러나 나는 다른 일반 직원들과는 다르다.

난 지금껏 이 업계에 종사하며 내 강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바로 ‘센스’.

온 신경을 곤두세워 반드시 무엇이든 해낼 것이다.

그에게 자료를 건네자 그는 정말 의미 없는 표정으로 자료를 뒤적였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던 그때.

희미하게 내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

나는 그 소리에 한쪽 눈을 살짝 찡긋거렸다.

소리에 집중하다 보니 나온 표정이다.

그리고 나는 재빨리 손에 들고 있는 휴대전화의 녹음 버튼을 꾹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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