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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09화 (209/339)

209화

“박 주임이 왜요?”

손지혁 차장에게 묻자, 그는 숨을 짧게 내쉬며 답했다.

- 회사 그만둔다더라.

“네? 회사를요? 갑자기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 아니. 이쪽 일이 안 맞대. 다른 공부 좀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몇 년 동안이나 메디컬 업계에서 근무했던 박수진 주임.

이제 와서 갑자기 일이 맞지 않는다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래도 박 주임이 일 엄청나게 잘하잖아요.”

- 그렇지. 그래서 붙잡으려고 했는데, 안 되겠더라.

“왜요?”

- 유학 간다고 하더라고. 다른 공부 좀 해보고 싶다고. 박 주임 나이도 어리고 하고 싶은 게 있다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붙잡을 수가 있겠냐.

유학까지 간다고 했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말할 때, 그녀는 나에게 전혀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좀 놀라운 일이네요. 박 주임이 그만둘 거라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 나도 놀랐어. 그러면서 더 이상 다닐 이유가 없다고 하더라고.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다닐 이유가 없다라…….

설마 내가 없어졌다고 다닐 이유가 없어졌다는 건 아니겠지?

설마…….

박 주임이 나를 그 정도로 좋아했었던 건가?

하지만 모든 건 내 추측일 뿐이다.

“그거 알려주시려고 전화 주신 거예요?”

- 응. 지훈이 네가 박 주임이랑 친했었잖아. 오랜만에 잘 지내나 통화도 할 겸, 겸사겸사 전화했지.

“자주 전화 드리겠습니다.”

- 됐어. 자주 통화할 일이 뭐가 있냐? 거기서 일 잘하면 됐어. 가끔 큰일 따면 자랑할 전화나 해. 그런 전화는 몇 번이고 받아 줄 테니까. 서울 생활은 적응 잘하고 있고?

“빨리 자리 잡아야 하는데, 생각보다 어렵네요.”

- 원래 직책 달고 회사 들어가면 부담감이 커서 그래. 너무 부담가지지 말고 늘 하던 대로 하면 좋은 성과 있을 거다.

“예. 감사합니다, 차장님.”

- 그래. 또 연락하자.

“넵.”

손 차장과의 전화를 끊은 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박 주임과 연락을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실천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그녀와 나 모두 광주 메디컬을 퇴사해, 영영 안 볼 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굳이 지금 그녀에게 전화해 퇴사하는 이유에 대해 물어봐야겠다는 생각 역시 들지 않았다.

* * *

전날 영업한 병원들에서 연락이 잔뜩 올 거라는 확신에 찬 기대와 함께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오늘은 오전에 회의가 있는 날이었고, 그 덕에 영업사원들은 모두 사무실로 출근해 사무실이 북적였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사무실을 들어오며 큰 소리로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나를 보고 환히 웃으며 인사하는 이찬호.

몇몇 직원은 나와 눈이 마주쳐 눈인사를 가볍게 나눴다.

그때 미소를 지은 채 내 자리로 다가오는 사람.

바로 김석구 차장이었다.

어제 내게 병원 목록을 건넸던 차장이지.

“안녕하십니까?”

“어. 민 과장 왔어?”

“예.”

“어제 내가 줬던 목록은 확인했고?”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 물었다.

“네, 그렇지 않아도 어제 시간 되는 데까지는 돌고 왔습니다.”

“그래? 몇 군데나?”

“어제 세 군데 돌았고, 나머지도 차차 가려고 합니다.”

“어땠어? 별일은 없었고?”

별일이라…….

병원 영업만 다녀온 것인데 별일이 없었냐고 묻는 김 차장.

내가 큰일을 하러 갔던 것도 아닌데,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자신이 목록을 건네줬던 병원들의 반응이 궁금한 모양.

“예……. 뭐 별일은 없었습니다.”

“병원 반응은?”

“아직 연락 온 곳은 없지만, 어제 병원 영업 갔을 때는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오, 그래? 기대할게.”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뭐지?

김 차장이 자신의 담당 후임도 아닌 나에게 이렇게 영업으로 신경을 써 준다?

그 마음이 진심이라면 고맙기는 하지만, 그의 마음을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왜냐, 내가 코리아 메디컬에 입사한 첫날, 그는 나를 아니꼽게 바라보던 속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사람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들이 베푸는 호의는 진실된 호의가 아닐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자, 다들 회의실로!”

유현수 부장의 말에 영업부 직원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로 발길을 옮겼다.

나 역시, 재빨리 다이어리와 펜을 챙겨 그들을 따랐다.

영업부 직원은 입사 첫날 봤던 수보다 훨씬 많았다.

회의실 역시, WG 메디컬이나 광주 메디컬에서 보지 못했던 커다란 회의실.

그 회의실은 순식간에 직원들로 가득 찼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주위를 둘러보며 직원들의 얼굴을 살폈다.

내가 아는, 이미 첫날 인사를 나눴던 직원들.

그들 역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오늘 타 지역의 병원을 간다던 조성철 차장까지 회의에 참석했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영업사원의 큰 회의니 만큼, 온 직원이 빠짐없이 참여한 것이다.

그렇게 어색한 공기를 느끼고 있던 그때.

백승민 이사가 문을 활짝 열며 들어왔다.

백승민 이사.

그는 40대 중후반으로 보이고, 날렵하게 생긴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다.

자칫 잘못 보면 사나운 인상을 가졌다고 생각할 정도.

이 회의에 들어오는 가장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이 바로 백승민 이사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회의실에 앉아 있던 직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어냈다.

“오셨습니까?”

“어. 뭐 항상 하는 회의인데 일어나기까지 해. 다들 앉아.”

말은 일어나지 말라고 해도, 그가 자리에 들어올 때 별 반응 없이 자리에 앉아 있다면 그에게 밉보일 것이다.

항상 윗사람들이 하는 멘트인 거지.

백 이사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착석했다.

“거기, 민지훈 과장?”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놀라, 나는 자리에 앉던 엉덩이를 급히 떼어내며 일어났다.

“예, 이사님.”

“민 과장이 벌써 우리 회사에 온 지 며칠이 지났어. 첫날 없었던 사람들은 다들 다른 사람 입으로 전해 들었겠지만, 그래도 제대로 인사는 하고 넘어가야겠지?”

그는 직원들을 훑으며 이야기하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곧장 내 소개를 했다.

“다시 한번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번에 새로…….”

내 소개가 끝나자, 백 이사가 손뼉을 부딪쳤다.

그의 박수 소리가 한 번 울리자, 회의실에 있던 온 직원들은 박수 소리로 회의실을 가득 메웠다.

그렇게 시작된 회의.

부장, 차장, 과장, 대리, 사원까지 전부 다 참석한 회의기에, 회의에서 모든 이가 발언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다면 하루 내내 회의를 해야 할 터.

사원에게 보고를 받은 대리, 그리고 그걸 위로 올려 받은 과장, 이런 식으로 평소에 보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윗 순서인 부장 직책부터 보고가 이어졌다.

그렇게 보고를 하다가 궁금한 점, 혹은 자세한 내용이 필요하다면 담당 직원에게까지 발언권이 내려가겠지.

“…해서 이번 달까지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백 이사 바로 맞은 편에 앉은 서정우 부장의 이야기로 두 명의 부장 발언이 모두 끝이 났다.

사실상, 이런 전체적인 회의는 백 이사와 과장들, 그리고 차장직까지만 참여해도 무관한 회의나 다름없다.

어차피 보고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고, 그 이야기들을 가지고 회의를 하는 것이니까.

과장, 대리, 그리고 특히나 사원직 같은 경우는 회의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경청과 메모뿐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에 참석을 해야 하는 것은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내가 보고를 한 것 이외에도 다른 직원은 어떤 업무를 했고,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야 자신에게도 발전이 있으니까 말이다.

부장들의 말을 들은 백 이사는 바로 아래 직책인 차장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조 차장. 그래서 그 담당 병원은 매출이 늘기는 는 거야?”

“예, 이번 달 안으로 신제품 발주서 넣기로 했습니다. 확인 후 보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몇 개의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며 회의가 점차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걸 알아차린 이유는 간단하다.

백 이사가 펜 뚜껑을 닫았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는 고개를 들고 직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 달도 힘내고. 내가 서 부장, 유 부장한테 말은 했지만 다들 매출 좀 힘쓰도록 해.”

그의 말에 온 직원은 너나 할 것 없이 빠르게 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인센티브, 분기별로 진행하는 점수도 신경 좀 쓰고. 회사에서 돈 주겠다는데, 다들 받아갈 생각을 해야지. 줘도 못 받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회사에서 월급 말고도 돈을 더 주려고 애를 쓰는데 말이야.”

그는 마무리 멘트를 하다가 화가 나는지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백 이사의 말투를 알아차린 유 부장이 답했다.

“제가 조금 더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역시 유 부장이야. 분기 마감 전에 한번 점수 확인하게, 부장들은 직원들 점수 체크해서 올리도록 해.”

“네.”

인센티브 제도.

최저 임금처럼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제도가 아니다.

회사마다 너무나도 다른 제도지.

그저 회사 사장이 정하는 대로 만들어지는 것.

나 역시 회사에 입사하고,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며 알게 된 이곳의 인센티브 제도.

여기는 인센티브를 온 직원이 받을 수 있다.

가끔 다른 회사들을 보면 신입 직원은 인센티브에서 빠지는 경우도 많다.

상여금처럼 회사에 몇 개월 이상 다닌 직원들에 한해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곳이 많은 편.

코리아 메디컬은 직책과는 무관하게 모두 동일한 조건, 동일한 금액으로 인센티브를 준다.

그 인센티브는 분기별로 점수를 책정해 월급에 더해 나가는 방식.

그럼 그 점수를 누가 정하느냐.

바로 부장직에서 결정한다.

직원의 병원 매출과 지난 분기의 성적을 비교해 책정하는 것.

모두 월급 외의 수입을 받고 싶은 것이 직장인의 마음이다.

나 역시 실력을 인정받아 온 만큼, 첫 인센티브는 꼭 받아보고 싶다.

홀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짐하던 그때.

“아, 민 과장은 처음 회의 참석인데, 어떤가? 잘 되어가나?”

내게 물음을 던지는 백 이사.

회의에 대한 분위기를 묻는 질문이 아니다.

게다가 코리아 메디컬에 대한 분위기나 적응도에 대한 질문도 아니지.

내가 어떤 업무를 하고 있으며, 내 병원 영업 계획을 묻는 것.

나는 펼쳐진 다이어리에 적힌 내 업무를 입 밖으로 내뱉기 시작했다.

“예, 어제는…….”

그를 향해 내가 지금까지 했던 업무에 대해 보고를 마치자, 그는 곧장 입을 열었다.

“벌써? 그럼 오늘은?”

백 이사는 내가 벌써 병원 영업 세 군데를 다녀왔다는 사실에 놀란 눈치였다.

아직 회사에 전체적인 분위기 파악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모양.

그는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새 계획을 물었다.

“네, 빨리 영업 시작해야죠. 오늘은 율한 정형외과 가볼 계획입니다.”

내 말에 백 이사는 눈썹을 움찔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그래. 어디 한번 열심히 해보고, 성과로 답해 줬으면 좋겠네.”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의 표정에 나는 재빨리 김 차장을 바라보았다.

김 차장은 내가 율한 정형외과라는 말을 하자마자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마치 비웃는다는 듯한 표정.

뭐지?

자기가 준 거래처인데, 내가 영업 간다니까 비웃는 듯한 저 표정은?

나는 곧장 시선을 바로 옆에 앉은 강대훈 대리에게로 옮겼다.

그의 표정 역시 아랫입술을 내밀고 입꼬리는 올리고 있었다.

강 대리와 김 차장.

둘은 한 라인을 타고 있는 거로 알고 있다.

그런데 동시에 저런 표정을 지으며 비웃는다?

율한 정형외과에 무언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 * *

자리에 돌아와 곧장 율한 정형외과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했다.

그들이 비웃는 이유.

그리고 굳이 내게 그 율한 정형외과를 영업 가보라며 준 이유가 무엇일까?

하지만 병원 사이트에 가도 그 이유는 찾을 수가 없었다.

더불어 병원의 규모는 꽤 커 보였다.

저 병원 영업에 성공한다면, 내 첫 영업으로는 가히 성공적일 것.

그런데 대체 뭐 때문에 비웃은 거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에 잠겨 있는 그때.

사무실 문을 나서는 조성철 차장.

그의 손에는 가방도 겉옷도 들려있지 않았다.

아마 옥상에 담배를 피우러 가는 모양.

나는 재빨리 겉옷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그를 따라 움직였다.

“차장님.”

옥상에 올라오자 역시나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조 차장.

나는 그를 부르며 다가갔다.

조 차장의 표정은 나를 발견한 후에도 꽤 시큰둥했다.

항상 그랬다.

첫날부터 남에게는 관심 없는 듯한 표정과 말투.

이찬호 사원의 말이 맞는 듯했다.

라인이 있을 텐데, 모르겠다는 말.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라인을 떠나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게 맞는 것 같다.

마이 웨이 성향이 가득한 조 차장.

그는 내 부름에 담배를 문 채로 고개만을 돌려 눈썹을 들썩였다.

“저도 담배 피우러 왔습니다.”

조 차장은 옆으로 한 걸음을 피하며, 담배를 문 채로 입을 겨우 열고 대답했다.

“그래.”

나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문 채로 불을 붙였다.

그에게 물어볼 말들이 많았지만, 조 차장의 표정은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걸지 않았으면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내가 물어봤을 때, 그나마 객관적으로 답변을 해줄 사람은 조 차장뿐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뽀얀 연기를 빠르게 내뱉은 후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저… 차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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