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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08화 (208/339)

208화

벌써 코리아 메디컬에 출근한 지 3일 차가 됐다.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것은 지옥철.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는 기분으로 출근길을 나선다.

새로운 회사 환경과 낯선 직장 동료들은 점차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조성철 차장이 내게 알려주었던 자료들 역시 검토가 끝났다.

자료는 꽤 방대했지만, 업계 생활의 짬바가 있던 탓에 금세 익힐 수 있었다.

대부분의 물건은 내가 이미 알기도 알았고, 광주에서 판매했던 품목들도 수두룩했으니까.

처음 보는 물건들 역시 제품의 분류와 쓰임새만 알면 충분히 커버가 가능했다.

이제 슬슬 현장으로 나가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회사 문을 세차게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사무실에 오자마자 조 차장을 찾았지만, 그는 자리에 없었다.

병원으로 직출을 한 모양.

그사이, 내게 김석구 차장이 다가왔다.

“민 과장.”

“예, 김 차장님.”

“이제 슬슬 영업 나가봐야 하지 않겠어?”

반가운 그의 말.

나 역시 이제 병원으로 나서야겠다고 결심을 한 채 출근했으니까.

“여기 병원 리스트야.”

그는 내게 종이 몇 장을 건넸다.

“공유 폴더에도 리스트 보내 뒀으니까, 편한 거로 보고.”

영업 나가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것.

우리가 판매할 품목과 병원 목록에 대해 확인하는 일이었다.

나는 서울의 지리도 잘 모를뿐더러, 어느 곳이 우리 담당 병원인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어느 병원에 지금 영업 시도 중이며, 어느 병원이 다른 직원의 담당 거래처인지 알아야 내가 영업을 나갈 병원이 정해진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조 차장에게 물어보려고 했던 게 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늘, 내일 타 지역으로만 돈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확인해 보고 오늘부터 영업 돌겠습니다.”

“그래. 전에 민 과장 자리에 있던 과장이 영업 진행 중이던 병원도 함께 정리해 뒀으니까, 한번 이어서 진행해 봐.”

“넵.”

나는 그가 건네준 파일을 펼치며 대답했다.

김 차장은 내 어깨에 손을 턱 하니 올려놓으며 말했다.

“민 과장 실력 좋다고들 하는데, 어디 한번 봐보자고. 다들 기대가 커. 알지?”

“예,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래.”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내게서 멀어졌다.

첫날 나를 무시하던 그.

그가 내게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이 말은 나를 비꼬는 게 확실하다.

지방에서 온 네가 얼마나 대단한지 봐보자, 하는 뜻이지.

즉, 나를 시험해 보겠다는 말이다.

보여줘야 한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

그리고 지방이라 ‘과장’ 직책을 단 것이 아니라, 내 실력으로 어디서든 ‘과장’이라는 직책을 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곧장 그 파일을 확인했다.

그가 혼자 작성한 파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지막이든 처음이든 그의 손길이 탄 자료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김 차장의 담당 병원이 가장 자세하게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었다.

파일에는 각종 정보가 상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었다.

전에 있던 과장이 작업하던 병원이 어디였는지, 그리고 그가 담당하던 병원에 특이 사항이 무엇인지 기재되어 있다.

나는 팔을 걷고, 병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무작정 병원명을 알았다고 병원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턱대고 부딪쳐 보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한다면 몸이 고생할 것이다.

내가 돌아볼 병원의 동선과 그 병원의 의사들 이름, 그리고 그 원장을 만나기 위해서는 몇 시에 가야 만날 수 있을지 예상까지 하고 출발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시간을 단축시켜 하루에 한 명의 의사라도 더 만날 수 있다.

하루에 이 모든 병원을 도는 것은 불가능하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라는 것이지.

실제로 영업에서 가장 큰 시간 비중을 차지하는 게 의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동하는 시간.

다음으로 의사를 만나 영업하는 시간순이다.

그래서 머리를 잘 써서 동선을 짜고, 의사의 스케줄을 확인해 나서야 한다.

서류를 차근차근 확인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전임자는 나와 같은 ‘과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있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렇게 담당 병원이 없다고?

더불어 몇 개 있지 않은 담당 병원의 규모 또한 매우 작았다.

이 병원들의 개수와 규모를 확인했을 때, 그의 한 달 매출은 꽤 적었을 것이다.

과장이라는 직책에 비해서 말이다.

나는 이런 매출에도 그가 과장을 달고 있었다는 게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이 서류에 나온 것과 실제 그가 담당했던 병원의 개수가 다르다면?

그렇다면 말이 된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아마 전 과장이 나가고 팀원들끼리 서로 그의 담당 병원을 나눠 가졌을 것이다.

굳이 업무를 자신들이 가져가 일을 더 많이 하는 이유.

나간 동료에 대한 배려와 예의?

전혀 아니다.

보통 영업 회사는 인센티브 제도가 확실한 편이다.

다른 업계나 다른 회사에서도 그런 곳들이 많지만, 영업 쪽은 특히나 더 뚜렷한 편이지.

특히나 작은 회사보다 이런 대기업 같은 큰 회사는 더욱 인센티브 제도가 강하다.

영업은 사무실에 앉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나씩 해내는 것과는 다르다.

직접 몸으로 부딪쳐 사람을 만나고, 또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바로 영업이다.

그렇게 고생해서 얻어낸 결과.

같은 회사에 다니는 같은 영업 직원이라고 해도 그들의 성과는 비슷하지 않을 수 있다.

동급 직책이라고 해서 같은 월급을 받는 것은 문제가 되겠지.

더불어 영업 사원들에게 인센티브 제도가 있는 것은, 열심히 한다면 회사에서도 네 몫을 챙겨주겠다는 말이다.

그렇게 한다면 직원들은 그저 월급만 받을 때보다 훨씬 더 눈에 불을 켜고 일할 것이다.

자신이 한 만큼 월급이 나올 테니까.

그래서 전 과장이 나가고, 그의 담당 병원을 위 직원이든 아래 직원이든 서로 가져갔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과장의 직책에 걸맞지 않은 병원 개수와 규모였으니까.

그걸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미 나간 직원의 거래처이자, 새로 들어올 남의 거래처가 될 병원들.

인센티브로 남게 될 그 병원들을 가만히 두고 기다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병원을 가져간 직원들을 보며, 여러 의미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굴러들어온 돌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이기에, 내게 좋은 미끼를 남겨두지 않은 것이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실제로 나는 굴러들어온 돌이 맞다.

그렇지만 굴러들어온 돌도 돌 나름이다.

내가 그들에게 어떤 존재의 돌이 될지는 내가 하기에 달렸다.

그저 내가 스스로 헤쳐나가며 영업을 따와야 할 일만 남은 것이지.

* * *

오전 내내 서류를 보며 공부를 한 뒤에야 사무실을 나올 수 있었다.

서울에서의, 그리고 코리아 메디컬에서의 첫 영업.

영업을 나간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나 떨림은 적은 편이다.

몇 년을 해왔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지리도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지역인 이곳에서는 내게 모든 것이 도전이다.

떨리는 마음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아무래도 내게는 ‘코리아 메디컬’이라는 큰 네임 밸류를 등에 업고 있으니까.

우선 파일에 있던 것을 토대로 병원을 돌기 시작했다.

설레는 마음과 동시에 걱정되는 것 한 가지.

바로 ‘입구컷’이었다.

광주에 있을 당시, 서울에는 입구컷이 많다고 들었었다.

메디컬 직원을 무시하는 경우도 많고, 애초에 잘 만나주지 않는다는 말.

그렇게 걱정을 하며 도착한 첫 번째 병원.

병원 입구로 들어가는 길.

내 눈에 보이는 정장을 입은 사람들.

차림새와 들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메디컬 영업 직원 같았다.

광주 쪽 병원에서는 동종 업계 사람을 병원에서 만나는 일이 흔치 않다.

이게 바로 규모의 차이인가?

서울은 병원도 많고, 메디컬 업체도 넘쳐나니 그만큼 경쟁이 치열할 것이다.

특히 병원의 규모가 큰 곳도 많아, 한 병원에 여러 메디컬 업체가 동시에 거래 중인 곳들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병원에서 다른 메디컬 직원을 마주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입구 옆, 흡연 구역에 서 있는 남성.

그도 메디컬 직원임이 확실했다.

정장에 서류 가방, 그리고 서류 가방 밖으로 삐져나온 의료기기 카탈로그.

그가 피우고 있는 담배.

조금 전에 또 피웠던 담배.

내가 본 것만 해도 벌써 두 개비째다.

줄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뜻이지.

그 뜻은 이곳에서 오래 머물고 있다는 뜻.

즉, 원장이 만나주지 않아 병원 입구에서 무한 대기 중이라는 말이다.

역시 내가 아는 대로 입구컷이 흔한 일인가? 하는 생각에 순간 긴장감이 몰려왔다.

그를 뒤로 한 채 들어온 병원.

간호사를 통해 내가 만날 원장의 진료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들어가게 된 진료실.

똑똑.

“안녕하십니까. 코리아 메디컬에 민지훈 과장이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쉽게 들어온 진료실.

그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원장의 표정 또한 밝았다.

“예,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얼굴이네요?”

“네. 이번에 새로 오게 됐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그에게 허리를 접은 후, 명함을 건넸다.

그는 내 명함을 한번 쓰윽 보더니 입을 열었다.

“어리신 것 같은데, 벌써 코리아 메디컬에서 과장 달고 계시네요? 실력이 엄청나게 좋으신가 보네.”

“하하. 운 좋게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예전에는 어디 메디컬에 계시던 분이시고?”

그와 사담을 나누며 초반의 시간이 흘렀다.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중간중간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입구컷 다음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보통 10분의 대화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10분 컷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오늘 얼굴도장을 찍자는 마음으로 왔다.

오늘 10분 만나면, 내일 또 찾아와 10분을 만나면 되니까.

하지만 그와 일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10분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그와의 사담을 나눈 뒤, 카탈로그와 견적서까지 전달했다.

대략 30분 정도의 만남 후, 진료실에서 빠져나온 나는 굉장히 얼떨떨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너무 수월했던 만남.

뭐지?

생각보다 너무 쉬운데?

하지만 그건 아마 회삿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리아 메디컬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의사들은 솔깃했을 것이다.

그들도 당연히 메디컬 계에서 코리아 메디컬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위축된 상태로 들어갔던 첫 병원이었지만 나는 금방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 상태를 유지하며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병원까지 돌았다.

총 세 곳의 병원 모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무실로 복귀하는 길.

나는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러다가 나 금방 성공하겠는데?

지이잉.

그때 울리는 휴대전화.

[발신인 : 손지혁 차장]

반가운 이름.

나는 발신인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차장님!”

- 귀청 떨어지겠네. 내 전화 기다렸냐? 왜 이렇게 빨리 받아?

“하하. 반가워서요. 차장님 못 본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립습니다.”

- 그립다는 놈이 서울 올라가서 연락도 한 통 없지?

“아닙니다.”

- 바쁘고 정신없을 거 같아서, 퇴근한 후나 다음 주 정도에 연락하려다가 했다.

“잘 지내시죠?”

- 그럼. 서울은 좀 어때?

“아직 열심히 적응 중입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생각보다 크고요.”

- 너는 잘할 수 있어, 인마. 누가 키운 놈인데.

“하하. 맞습니다. 제가 차장님한테서 배운 거 모조리 써먹으면서 성공해 보겠습니다.”

- 그리고 왜 갑자기 전화했냐면 말이야.

그의 목소리로는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전화를 했다는 그의 말에 나는 순간 자리에 멈춰 서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예, 무슨 일 생긴 겁니까?”

- 김만호, 잡혔다.

“정말요?”

- 어. 오늘 아침에 잡혔다고 연락 왔어. 아주 꼭꼭 숨어 있었나 보더라고. 지훈이 네가 항상 제일 궁금해했잖냐.

김만호.

NA 바이오 물건으로 사기를 쳤던 그놈이다.

우리의 돈은 빼내지 못했지만, 여러 메디컬과 병원에 사기를 쳤었지.

그리고 광주 메디컬에서 가장 처음으로 그를 만났던 것이 나였기에, 그의 행방이 제일 궁금한 사람이 나였었다.

“예, 잡혀서 다행입니다. 하. 그 일만 생각하면 정말 면목없습니다.”

- 말했듯이 네 잘못 아니야. 자책 마. 나도 김만호 그 자식 같이 만났었잖아. 의심도 못했었으니까. 그래도 지훈이 네가 그놈 사기꾼인 거 미리 알아차려서 우리는 돈 안 보냈으니, 그걸로 다 한 거야.

“네…….”

나는 말끝을 흐렸고, 손 차장은 급히 대화 주제를 돌렸다.

- 지훈아.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예? 어떤…….”

- 박 주임 말이야.

“박수진 주임이요?”

- 어. 박 주임이…….

나에게 갑자기 박 주임 이야기를 꺼내는 손 차장.

그의 말에 나는 침을 한 번 크게 삼켜냈다.

박 주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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