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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06화 (206/339)

206화

띠리리리.

시끄럽게 울려대는 휴대전화 알람 소리.

나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그리고 이미 출근 준비까지 마친 상태.

오늘이 바로 코리아 메디컬에 출근하는 그 대망의 첫날이다.

이렇게 떨렸던 적은 정말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 * *

이게 말로만 듣던 지옥철이라는 건가?

일직선으로 뻗은 1호선만이 존재하는 광주의 지하철.

광주의 지하철은 뭐, 말 그대로 지하에 있는 철도다.

출퇴근 시간에 도로가 막히기는 하지만, 굳이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아도 충분한 곳이다.

하지만 서울은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이 아닌 자가용으로 출근한다면, 매일 새벽에나 나와야 할 법하다.

도로에는 정체되어 있는 차들로 가득했고, 지하철에는 갖가지 복장의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광주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지옥철.

옴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로 내 양옆, 앞뒤로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이 사람들을 꽉꽉 채워 달리는 지하철에 내 몸을 맡겼지만, 처음 경험하는 이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다.

예상컨대 처음 경험하는 거라 그런 거겠지만 말이다.

지금은 그저 머릿속에 ‘코리아 메디컬’만이 가득했고, 떨리고 설레는 마음이 자꾸만 내 입꼬리를 추켜 올렸다.

헬요일인 오늘, 이 지하철 출근길에 올라탄 사람들 중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지만.

차츰 움찔거리지 못하는 몸이 불편하다고 느낄 때쯤.

나는 코리아 메디컬이 위치해 있는 역에 도착했다.

사람들의 몸살에 휩쓸려 내린 이곳.

지하철 출구로 향하며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8시 20분.

회사의 출근 시간은 9시까지다.

말이 9시까지이지, 정말 9시에 도착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더욱 나는 오늘이 첫 출근.

적어도 8시 40분까지는 들어가야 한다.

첫날이라 일찍 출발한 게 신의 한 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내일은 혹시 모르니 조금 더 일찍 출발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출구에서 나와 금세 발견한 이곳.

바로 ‘코리아 메디컬’이다.

아무리 메디컬 대기업이라고는 하지만, 코리아 메디컬이 건물을 단독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았다.

으리으리한 건물에 월세를 내며 한두 층을 먹고 있겠지.

제조사도 아니기에 공장이 있을 리도 없으니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길.

평소 엘리베이터 올라가는 속도가 이리도 빨랐던가?

나는 몇 번이고 헛기침을 하며 목을 풀었다.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한 모양.

딩동.

엘리베이터가 코리아 메디컬 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보이는 입구.

입구를 발견하자마자 내 손바닥에서는 땀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다한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긴장감에 흐르는 땀일 뿐.

심장 소리는 자기주장을 뚜렷하게 펼치며 울리고 있었다.

내 귓가에까지 들리게 말이다.

길고 긴 심호흡을 하며, 문손잡이를 잡으려는데…….

턱.

나와 동시에 문손잡이를 잡는 남자.

“누구…….”

내가 탄 엘리베이터가 아닌, 바로 옆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사람인 듯했다.

내가 이 층에 내릴 때는 혼자였으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길게 뻗은 다리, 훤칠한 얼굴.

한눈에 보아도 20대로 보이는 젊은 얼굴이었다.

머리도 손질을 했는지 굉장히 깔끔해 보였고, 인상 역시 훈훈했다.

난 단번에 그가 코리아 메디컬의 영업 사원임을 알 수 있었다.

몸에 착 피팅된 정장과 서류 가방까지.

가장 전형적인 영업 사원 룩이니 모를 수가 없었다.

나에게 누구냐고 말을 흐리는 그에게 나는 답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저는 오늘…….”

그는 나를 한번 쓰윽 훑더니 내 말을 자르고 빠르게 답했다.

“지금은 다들 출근 전이셔서요. 밑에 카페에서 시간 좀 때우시다가 올라오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예?”

알 수 없는 그의 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디 메디컬에서 오신 거예요? 명함 주시면 제가 담당자에게 말씀드리고 전화 드릴게요. 어차피 지금 안에 아무도 안 계셔서, 못 만나실 거거든요.”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는 내게 말을 건 이 사람.

그의 말에 나는 조금 긴장이 풀렸다.

왜냐, 속으로 웃음이 터졌기 때문이지.

내가 다른 메디컬에서 영업을 나온 직원인 줄 안 모양.

나는 입을 씰룩이며 그에게 대답했다.

그를 비웃은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그가 내 밑의 후임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직감했기에 미소가 지어진 것이지.

“아……. 그런데 어쩌죠? 저는 카페가 아니라 지금 여기 들어가야 지각이 아니라서요.”

“네?”

그는 내 말에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들어가서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오늘부터 출근하게 된…….”

그는 잡고 있던 문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곧장 내게 고개를 숙였다.

“어? 오늘부터 새로 오신다는 과장님이십니까?”

이미 내가 출근하는 것에 대해 알고 있는 모양.

그러니 ‘출근’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허리를 접었을 터.

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미소를 짓고 답했다.

“아……. 네, 맞습니다.”

“헉.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과장님 한 분이 오신다고 해서 당연히 나이가 많으신 분인 줄 알았거든요. 못 알아봬서 죄송합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제 얼굴까지 알고 계셨을 리가 없으니까 죄송할 것도 없죠. 그럼 저 여기로 들어가도 될까요?”

“넵. 그럼요! 들어오시죠.”

그는 다시금 문손잡이를 잡고 문을 밀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문을 잡은 채, 고개로 안을 가리키며 내게 먼저 들어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마음에 들었다.

문을 잡아줘서? 내가 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아니다.

딱 영업맨의 자세, 그리고 젊은 나이치고 똑 부러지는 성격과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업무에 대해 더 파악해야 하겠지만, 우선 첫인상에서는 좋은 느낌이 가득했다.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는 평범한 입사 루트로 들어온 게 아닌 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이곳에 온 만큼, 직원들에게 인사하는 것부터가 달랐다.

보통 입사라고 할 테면, 출근 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쭈뼛대며 눈치를 보고 있을 것이다.

누가 나를 소개시켜 줄 것인가, 하며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무려 이사실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뒤, 나는 모든 직원이 모인 사무실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게 되었다.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는 이곳에.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부로 여러분들과 함께 일하게 된, 민지훈 과장이라고 합니다. 많이 도움도 주시고,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짧은 인사를 끝으로 나는 그들을 향해 허리를 접었다.

한두 군데에서 작게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

온 직원들이 손바닥에 잔뜩 힘을 주며 손뼉을 부딪치지는 않았다.

“자, 여기는 방금 인사했듯이 광주에서 온 민지훈 과장이야. 다들 알다시피, 일 잘해서 회사에서 스카우트해 온 직원이니까. 모르는 것도 물어보고, 우리 회사는 처음이니까 텃세 부리지 말고 잘 알려줘.”

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 옆으로 다가와 말을 하고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는 곧장 자신의 자리로 사라졌다.

“네.”

“에이, 부장님 텃새는요. 하하.”

아래 직원들의 대답과 웃음소리.

부장이 자신의 자리로 간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들의 중심에 서 있었다.

영업 부서이기에 직원은 많았지만, 현재 이 자리에 있는 직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병원으로 직출하거나, 이미 병원으로 출발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들이 서 있는 자리들을 보니, 모두 자신의 책상 앞에 서 있었다.

그 자리로만 보아도 내가 앞으로 일하며 부딪칠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사무실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무실의 책상, 그러니까 자리로만 봐도 이 인물의 직책과 중요도가 한눈에 보이기 마련이다.

이사는 따로 이사실이 있지만, 방이 따로 없는 부장과 차장, 과장 등은 직책이 높을수록 파티션의 높이 또한 비례한다.

그리고 그 높은 파티션은 직책이 아래로 내려올수록 미끄럼틀처럼 점점 낮아지지.

또 자리 선정 역시, 파티션이 높은 자리는 사무실의 안쪽.

반대로 파티션의 높이가 낮을수록 입구 쪽에 위치한다.

이걸로만 보아도 현재 이 사무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위치, 그러니까 직책과 맡은 업무의 중요도는 대충 감이 온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내게 처음 들어온 질문.

바로 나이였다.

과장이라는 직책을 달았지만, 어려 보이는 얼굴에 내 나이가 궁금했겠지.

아니, 실제로 과장치고는 어린 나이니 말이다.

나는 질문을 던진 그를 향해 답했다.

“저는 32살입니다.”

대답 후 그를 빤히 바라보자, 그는 주변을 쓰윽 훑어본 후 답했다.

“저는 강대훈 대리입니다.”

강대훈.

대리라는 직책을 달고 있다.

나보다 낮은 직책이라는 뜻이지.

그것도 과장 바로 아래인 대리, 내 아랫사람이다.

그런데 나이는 어째 나보다 많아 보였다.

많이는 아니고, 기껏해야 한두 살 정도?

노안으로 보일 수도 있는 거지만, 풍기는 이미지가 그랬다.

아무리 적게 본다고 해도 나와 동갑 정도로 보였다.

그를 파악하기 위해 그를 바라보고 있자, 그는 내가 무슨 이유가 있어서 자신을 바라보는 줄 알았던 모양.

“아… 저는 33살입니다.”

역시.

나보다 딱 한 살이 많았다.

‘이거 좀 불편하겠는데?’라는 직감이 팍 들었다.

나이 어린 후임이라…….

게다가 나는 스카우트로 인해 들어온 것이기에 그보다 이 회사에 늦게 입사를 한 것.

나를 아니꼽게 보려면 충분히 그렇게 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에 그런 건 중요치 않다.

누가 먼저 이곳에 터를 잡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는 직책이 바로 서열이다.

불편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내가 업무 지시를 해야 하는, 강 대리의 윗사람이라는 뜻이지.

그가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구태여 그에게 내가 동생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릴 생각은 없다.

나이 언급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네, 강 대리님.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직책을 꼬박꼬박 붙였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기에 예의는 차릴 테지만, 일에서만큼은 동생처럼 행동하지 않을 예정이다.

그는 입꼬리를 비틀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

[저 자리가 내 자리였어야 했는데, 어디 나이도 어린놈이 굴러들어 와서……. 하.]

생각보다 표정을 못 숨기는 타입인 듯하다.

표정에서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음을 풍겼지만, 속마음 역시 그러했으니까.

대충 감이 온다.

강 대리는 실력 부족으로 과장직까지 올라오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경기도 광주 아니고, 전라도 광주에서 왔다는 거죠?”

불쑥 대화에 발을 들이는 사람.

파티션의 높이로 보아, 나보다 높은 직책의 사람.

바로 김석구 차장.

정확하지는 않지만, 외형만 놓고 보았을 때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얼굴.

그의 몸에 가려 있지만, 책상 위에는 이름과 직책이 적힌 작은 명패가 올라와 있다.

이사실, 사장실처럼 으리으리하고 금색의 용이 검정 자개 명패에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아크릴로 된, 딱 이름과 직책만 써진 작은 명패가 직원들의 책상에 올려져 있다.

이것 또한 모든 직원의 책상에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예, 광주광역시에서 올라왔습니다.”

“아… 전라도 광주?”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부터 과장님이셨나 보네.”

비꼬는 듯한 목소리와 말투.

[시골에서 일하니까 직책도 막 달아줬나 본데. 그걸 왜 여기까지 끌고 온 거야.]

김 차장 역시 속으로는 나를 무시하고 있다.

혼자 서울공화국에 사시는 느낌.

작은 기업에서 과장 직책을 달았던 것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지방에서 달고 있던 직책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의 직책은 자신들과 맞지 않다는 듯한 말투와 속마음.

고개를 돌리자, 아까 입구에서 마주쳤던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더욱 활짝 웃었다.

이미 한번 안면을 텄으니 내가 반가운 모양.

나 역시 키가 큰 저 직원이 마음에 든다.

김 차장과 강 대리의 가시가 있는 질문을 제외하고는 다른 이들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혹은 관심이 없는 거겠지.

그렇게 짧고도 긴 인사를 마친 후, 나는 빈자리인 내 자리로 향했다.

여기가 세 번째 메디컬 회사이지만 정말이지 새로운 업계에 발을 들인 느낌이 가득했다.

늘 환영받는 분위기의 회사에 다니다가, 나를 시기 질투와 무시하는 이들이 있는 이곳.

하지만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나를 무시하는 직원들에게, 그리고 내 실력만을 보고 스카우트한 윗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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