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나는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헐레벌떡 휴대전화와 차 키만을 챙긴 채 집을 나섰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 도로에는 차도 많지 않았다.
급한 내 마음을 아는지 신호에도 몇 번 걸리지 않고, 급히 도착한 이곳.
바로 김사랑 원장의 집 앞이다.
집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 그녀의 목소리는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도움을 요청한 김 원장.
나는 그녀와의 전화를 끊자마자 경찰에 신고를 했고, 내가 주차장에 도착하자 입구에는 이미 경찰차 한 대가 와있었다.
나보다 일찍 도착한 경찰차를 보며, 조금이나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내가 집에서 그녀의 집까지 오는 시간이 있다 보니, 잠시라도 그녀를 홀로 내버려 두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급하게 차에서 내려 김 원장의 집으로 올라갔다.
그녀의 집은 원룸촌에 위치한 오피스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그녀의 집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열려 있는 현관문.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경찰 두 명과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있는 김 원장.
나는 재빨리 그쪽으로 달려갔다.
경찰 두 명은 놀란 눈으로 나를 경계하듯 바라보며 막아섰다.
“누구십니까?”
“아… 저는 김 원장님의…….”
내 말을 막고 그녀가 경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제 친구예요. 제가 불렀어요.”
그녀의 말에 나를 막아서던 경찰은 나를 한 번 훑어본 뒤 한 걸음 물러섰다.
나는 그녀의 옆에 다가갔다. 김 원장의 얼굴은 하얗게 사색이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나는 그녀가 아닌 경찰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나는 그녀에게서 집안이 엉망이 되어 있다는 이야기만을 듣고, 급히 신고했으니까.
“누군가가 침입한 것 같습니다. 지금 조사 중이고…….”
그녀와 이야기를 하던 경찰은 내게 다시 한번 정황을 설명했다.
귀로는 경찰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눈으로는 겁에 질린 얼굴로 떨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걸치고 있던 옷을 벗어 그녀의 몸에 걸쳐주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속삭였다.
“괜찮아요, 괜찮아. 경찰도 왔고, 나도 왔으니까.”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맞춘 채,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경찰들은 우리에게 상황 설명 후, 조사를 하겠다는 말을 길게 늘어놓았다.
“잃어버린 물건은 없으신지 한번 확인해 보셔야 하고, 그리고 오늘은 위험하니까 집에서 주무시지 않는 게 좋으실 것 같습니다.”
주먹을 꽉 쥔 채 떨고 있는 그녀의 몸.
김 원장 대신 내가 경찰들에게 답했다.
“예. 같이 안을 살펴보겠습니다.”
김 원장을 천천히 진정시킨 후, 집 안을 샅샅이 살폈지만 사라진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돈이 될 만한 것들도 모두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렇다면 이 집에 들어온 사람, 그러니까 범인은 금품을 훔치러 온 도둑이 아니다.
단지 김 원장에게 겁을 주겠다고 찾아온 듯 보였다.
내가 너의 집까지 알고 있다.
너의 집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다, 하는 것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
그게 더 무서웠다.
집 비밀번호까지 안다는 것은 그저 단순히 문을 따고 들어와 물건을 훔치는 것보다 위험하니까.
그녀에게 또다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일종의 경고를 주려고 했겠지.
겁에 질린 그녀를 대신해 나는 경찰에게 여러 정보를 넘겼다.
평소 그녀에게 왔던 발신자 표시 제한 전화.
그리고 얼마 전, 집 앞에 두었던 커다란 곰 인형.
병원 앞 주차된 차 보닛 위에 올려놨던 곰 인형과 꽃까지.
그들은 내 말을 상세히 노트에 기입했다.
자세한 내용은 추후에 그녀가 진정되면 전달받기로 하겠다며, 우리와 인사를 나눴다.
경찰은 현장에 남았고, 그녀는 몇 개의 옷가지와 귀중품을 챙겨 나와 함께 1층으로 내려왔다.
시간이 조금 흘러 김 원장은 진정이 됐는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와줘서 고마워.”
“고맙긴요.”
“딱 문을 열었더니, 집 안이 난장판인 거야. 느낌도 싸하고… 집에 못 들어가고 경찰에 신고할 생각도 못 하고 민 과장님한테 바로 전화했어, 나도 모르게…….”
그녀는 말을 하다가 고개를 떨궜다.
김 원장은 경찰이 아닌 나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만큼 정신이 없었다는 뜻이지.
더불어 상황 판단을 할 수 없을 만큼 겁에 질렸다는 거고.
“괜찮아요. 이제 경찰도 왔고, 금방 잡을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내 말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 둘은 내 차에 올라탔고, 몇 분의 시간이 흘렀다.
“나… 이제 좀 진정됐어. 오늘 와줘서 정말 고마워. 병원 사람들한테는 비밀로 좀 해줄래?”
“그럴게요.”
“나 몸이 좀 떨려서 운전을 못 할 거 같은데, 그냥 근처 모텔 아무 데나 좀 내려주라.”
“네?”
“잠은 자야 하니까. 아무 곳이나 상관없어.”
나는 그녀의 말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저희 집으로 가요.”
그녀는 내 말에 놀란 토끼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응? 민 과장님네 집? 괜찮아. 급하게 부른 것도 미안한데…….”
“이렇게 모텔 가는 게 더 위험해요. 범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아직 잡히지도 않았고요. 그리고 어디서 지금 원장님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다고요!”
나도 모르게 흥분된 목소리로 그녀에게 외쳤다.
그녀를 지금 어느 곳이든 혼자 놔두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이 됐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집 주소, 집 비밀번호까지 알아냈다는 건, 그녀를 지켜보며 동선을 파악하고 있을 테니까.
그녀의 현관 도어락은 손상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었다.
그놈이 직접 도어락 비밀번호를 쳐서 들어갔다는 뜻이지.
현장을 보고 온 지금 내 양손에는 땀이 차올랐다.
나 또한 이렇게 긴장되고 무서운데, 그녀의 상태는 오죽하겠는가.
평소 겁이 날 만한 상황에서도 의연한 모습을 보였던 그녀.
하지만 오늘만은 그렇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는 것이지.
우리 집으로 가자는 내 말에 그녀는 고민에 잠긴 듯 보였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재차 입을 열었다.
“지금 고민할 게 뭐 있어요. 원장님 지금 위험하다고요. 우리 집에 나랑 같이 있는 게 조금 그런 거라면 제가 나가서 잘게요. 저는 괜찮아요.”
내 다그침에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을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집으로 출발했다.
* * *
나는 혹여나 누가 따라왔을까 싶은 마음에 주변을 둘러본 후 현관문을 열었다.
“집이 조금 엉망이기는 한데…….”
그녀는 민망해하는 내 표정을 보며 그제야 옅은 미소를 지었다.
문을 열자 그녀는 빠르게 안을 살펴보는 듯했다.
“남자 혼자 사는 집이 이 정도면 엄청 깨끗한 거지.”
김 원장은 내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도 긴장이 조금은 풀린 모양.
나와 함께 같은 집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그녀가 불편할세라, 나는 서둘러 집을 설명했다.
“여기서 주무시면 되고, 화장실은 여기. 그리고 물이랑 마실 거는 여기 있고요. 잘 때, 혹시 모르니까 현관 잠금장치 하나 더 채우고 자요. 그럼 저는…….”
나는 서둘러 집을 빠져나오기 위해 몸을 돌렸다.
꽈악.
그녀는 내 한쪽 팔을 세게 붙잡았다.
김 원장의 손짓에 나는 다시 뒤를 돌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녀.
김 원장은 내게 말했다.
“민 과장님. 가지 마…….”
“네?”
“나… 사실 무서워. 혼자 못 있겠어.”
그녀의 떨리는 눈동자.
아까 그녀의 집 앞에서 보았던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우리 집은 거실에 소파, 그리고 안방에 침대가 따로 있다.
그녀는 방에, 그리고 나는 거실 소파에 잠을 청하면 되겠다는 판단을 내린 후 그녀를 바라보며 답했다.
“…알겠어요. 그럼 원장님 안에서 자고, 제가 여기 거실에서 잘게요.”
그제야 그녀는 꽉 잡고 있던 내 팔을 스르르 풀어냈다.
소파에 함께 앉아 나란히 앞을 바라보며 있는데 소파가 미세하게 떨리는 느낌이 들었다.
휴대전화 진동이 아닌, 몸 전체가 떨리는 듯한 느낌.
나는 바로 내 오른쪽에 앉아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은 떨리고 있었다.
집에 들어오니 긴장이 풀린 듯했지만, 여전히 몸의 온 신경이 곤두서 있는 모양.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차… 한잔할래요?”
그녀는 나를 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집 찬장을 뒤졌다.
다행히도 예전에 감기에 걸렸을 때, 마시려고 사놓은 녹차 티백이 여러 개 남아 있었다.
그중 하나를 꺼내 따뜻한 물에 넣고 우려냈다.
그리고 조심스레 들고 가 그녀에게 건넸다.
“뜨거워요. 조심히 마셔요.”
그녀는 내가 건넨 머그잔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 후 아무런 말 없이 티백을 손으로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천천히 차를 마시며 여러 번의 심호흡을 한 그녀는 이제야 진정이 조금 됐는지, 움츠리고 있던 몸이 펴진 듯 보였다.
“나……. 사실 오늘 너무 놀랐어.”
소파에 앉은 이후 내뱉은 그녀의 첫 마디.
“놀라는 게 당연해요. 그런 일은 제가 겪어도 김 원장님처럼 놀랐을 거예요. 그래도 침착하게 잘 대응했어요. 저한테 전화하고, 바로 신고도 됐으니까요.”
그녀에게 오늘 일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는지.
집 안에는 또 다른 이상한 흔적은 없었는지.
최근에 다른 일은 없었는지.
질문은 많았지만, 겨우 그 질문들을 꾹 삼켰다.
불과 몇 시간 전 일어난 일, 그녀는 지금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만으로도 벅찰 테니까.
오늘은 이쯤에서 멈추기로 했다.
그녀는 내 말에 머그잔을 양손으로 쥔 채, 허벅지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자, 김 원장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 것이 보였다.
괜찮아진 듯 보였지만, 긴장이 풀리며 눈물이 나는 모양.
나는 아무런 말 없이 한 손을 올려, 그녀의 어깨를 천천히 두드리듯 토닥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내 토닥임에 그녀는 몸을 돌려, 내 품에 와락 얼굴을 파묻었다.
나는 그 상태로 온몸이 굳어졌다.
너무 놀라 눈을 연신 깜빡이는 것을 빼고는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내 어깨 쪽에 얼굴을 묻은 채 울기 시작했다.
김 원장의 흐느끼는 울음소리.
그녀도 태어나 이런 일은 처음 겪을 터.
그녀의 두려움은 내 상상보다 더할 테지.
타지에 와서 주변에 아무도 없는 그녀.
그런 그녀에게 일생에 한 번도 겪기 힘든 일이 하필 이럴 때 나타나다니.
많이 놀라고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런 그녀가 걱정되고 안쓰러웠다.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한 채, 내게 안긴 그녀의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 * *
띠리리링.
띠리리링.
익숙하지만 항상 듣기 싫은 소리.
오늘도 어김없이 휴대전화의 알람이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났다.
평소와 모든 것이 똑같았지만, 내가 눈을 뜬 자리는 침대가 아닌 소파였다.
내가 잠을 자던 침대에는 내가 아닌, 김사랑 원장이 자고 있다는 것만이 달랐다.
나는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한 뒤 고양이 세수를 마친 후 안방 문으로 다가가 노크했다.
똑똑.
아무런 반응이 없자, 나는 조금 더 크게 문을 두드렸다.
쾅쾅.
이 시간에는 일어나야 씻고 출근을 할 텐데…….
“김 원장님!”
깊은 잠에 빠진 건가?
“김 원장님? 일어나셔야 하는데……. 원장님!”
나는 서둘러 현관으로 걸어가 신발을 확인했다.
현관 신발장에 있는 건, 오직 내 신발뿐.
그녀는 이미 나가고 없다는 뜻이다.
나는 재빨리 안방 문을 열었다.
안방 침대에는 이불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미 병원으로 출발을 한 모양.
김 원장이 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일어나지도 못했다는 생각에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마른세수를 했다.
출근 준비를 마친 후, 김 원장 걱정에 모던 정형외과로 직출을 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다.
사무실에 출근해 김만호에 대해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에 올라타 사무실로 향하며 김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원장님! 언제 가셨어요?”
- 아… 눈이 일찍 떠져서 평소보다 서둘러 나왔어. 민 과장님 곤히 자길래 조심히 나왔지.
“왜 이렇게 일찍 가셨어요?”
- 어차피 오늘 오전에 경찰서도 들려야 해서 병원 일 좀 보고 가려고. CCTV 좀 보러 가야 할 것 같아서.
“CCTV요? 경찰서 몇 시에 가세요? 같이 가드릴게요.”
- 아니야. 민 과장님도 일해야지. 오후에 어차피 병원 들어갈 거야. 보고 나서 이야기해 줄게.
“네. 그럼 저도 오후에 병원으로 갈게요.”
- 그래. 이따가 보자.
그녀와 통화를 하는 사이 도착한 사무실.
사무실에는 손 차장을 더불어 장 사장까지 도착해 있었다.
김만호 일로 인해 사무실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나 역시 그 일 때문에 병원이 아닌 사무실로 먼저 출근을 했으니까.
이미 손 차장은 장 사장 자리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나도 가방만 내려놓은 채 그들 앞으로 걸어갔다.
“안녕하십니까.”
나를 발견한 장 사장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 민 과장 왔어?”
“네. 김만호 이야기 중이십니까?”
“응. 조사 착수 들어갔다더라. 경남 쪽에서도 신고했다고 하더라고. 광주 쪽 병원 원장이랑 그쪽 병원 원장이 아는 사이였나 봐.”
“아……. 그래서 바로 알아차렸나 보네요.”
장 사장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
그의 휴대전화 화면이 켜지며 전화가 오기 시작했고, 그는 우리에게 눈짓을 주며 수신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 네, 광주 메디컬 맞습니다. 김만호 잡혔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