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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94화 (194/339)

194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한태준의 숨소리.

- 과장님. 퇴근하셨습니까?

“퇴근은 무슨. 일하고 있지. 왜 무슨 일이야?”

- 퇴근 시간 다 됐습니다, 과장님.

나는 그의 말에 손목시계를 바라보자, 이미 퇴근 시간이 몇 분이나 지나 있었다.

라운드 바이오의 김 대표와 이야기가 길어져 퇴근 시간이 지난 줄은 몰랐었다.

“이놈 봐라? 출근도 안 하고 쉬게 해줬더니, 근무 시간도 아닌데 왜 전화한 거야?”

- 저… 술 한잔 사주시면 안 됩니까?

장난기를 섞어 퉁명스럽게 말한 내게 풀이 한껏 죽은 목소리로 묻는 한태준.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고, 그 힘듦을 내게 털어놓고 싶은 모양.

종일 일을 하느라 피곤했지만, 집에 들어가 쉬는 것보다 후배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술? 너 오전에도 술 덜 깼던데, 이제는 술 좀 깼나 보다? 하하.”

내 말에 한태준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 넵. 어디로 가면 될까요? 과장님 집 근처로 지금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 * *

크으.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쓰디쓴 알코올.

한태준은 전날 마신 술이 겨우 깬 듯 보였지만, 또다시 술을 들이켰다.

“야 인마, 그렇게 술만 마시면 속 버려. 젊을 때 간 잘 챙겨둬라.”

나는 앞에 있는 안주를 그의 앞쪽으로 밀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피곤하실 텐데 나와주셔서요.”

“됐어. 나 피곤한 거 알면 평소에나 잘해라.”

나는 그의 감사 인사에 퉁명스럽게 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오늘 오전에 와주신 거, 다시 한번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그래서 이제 좀 괜찮냐?”

그는 별것도 아닌 내 질문에 고개를 푹 숙였다.

빈 잔에 홀로 술을 채우려는 한태준.

나는 그가 들고 있는 술병을 빼앗아 그의 잔을 채워주며 재차 질문을 던졌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혹시… 헤어졌냐?”

한태준은 몇 주 전, 여자친구가 생겼음을 내게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그때 행복해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사회생활에서의 억지 미소가 아닌 행복해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모습.

한창 연애가 자신의 가장 큰 일일 나이인 한태준.

그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이유를 고민해 보니, 추측이 가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제일 먼저 짚이는 게 연애였다.

한태준은 내 물음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정말 헤어진 게 맞는 모양.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앞에 가득 차 있는 술잔을 들어 올렸다.

나는 재빨리 그의 잔에 내 잔을 부딪친 후 한태준과 함께 술을 마셔주었다.

술자리가 시작하고 연달아 마신 술에 속이 싸해지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전날 과음을 한 한태준 역시 천천히 눈을 깜빡이는 게 나와 같은 느낌이 드는 듯 보였다.

그는 몇 번의 한숨을 내쉰 뒤에야 입을 열었다.

“과장님.”

그의 부름에 나는 시선을 그의 눈으로 옮겼다.

한태준과 눈을 맞추고 내 눈썹을 들썩이자, 그는 어깨를 들었다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 이렇게 헤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원래 연애라는 게, 끝은 결혼 아니면 헤어짐이야.”

“그러네요, 정말. 연애의 끝은 결혼 아니면… 이별……. 그런데 저는 그 끝이 이별이 됐네요.”

한태준의 힘듦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어떤 연애든 끝이 난다는 것은 슬프고 힘든 일이니까.

세상이 무너지는 그 느낌을 나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그가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거로 알고 있었다.

뭐 연애라는 거, 그리고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시간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태준의 슬픔에 비해 연애 기간이 짧은 것은 사실이다.

얼마나 깊은 사랑을 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슬퍼하는 게 조금은 의아했다.

“이별이 다 힘들지. 힘들지 않은 헤어짐이 어디 있겠냐. 그걸 또 이겨 내야 하는 거고.”

“맞죠. 이겨 내야죠. 그런데 너무 힘들어요, 과장님.”

그는 연거푸 술을 마셨고, 나는 그의 술잔을 붙잡으며 물었다.

“그만 마셔, 태준아. 힘든 거 이해 못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너 연애 기간도 짧았는데,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야?”

내 물음에 그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저… 그 여자 친구랑 청춘을 다 보냈어요.”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지난번 한태준이 카페에서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때는 여자 친구가 아니라고 했었다.

그리고 결국 그 여자와 사귀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그의 말에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한태준은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사실 저 그 여자 친구 어릴 적부터 만나던 친구였습니다. 중간에 헤어졌던 적이 있었지만요.”

“아… 그럼 그때 카페에서 둘이 만났을 때, 내가 본 그날. 그때는 헤어져 있을 때였던 거야?”

“네. 헤어지고 잊고 살아가려고 했는데, 20대의 긴 시간을 함께 보내온 친구라 잘 안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다시 만나게 됐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다시 만났는데, 대체 왜 이렇게 금방 헤어진 거야?”

내 질문에 그는 한참이나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자신의 힘든 기억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힘들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며, 나는 내 질문에 대한 답을 막았다.

“아니야.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

나는 그와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잠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가 아닌 빈 술잔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래가… 안 보인대요. 저한테서…….”

시끄러운 술집 안.

한태준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내 귓가에는 선명히 들려왔다.

그리고 그는 말을 이어 갔다.

“그 친구도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는데, 여기저기 돈 잘 벌고, 집도 잘사는 애들 보면서 제가 한심스러워 보였나 봐요. 저와 길게 만나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대요. 하…….”

그의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한태준의 집안 사정도, 그들의 관계도 자세히 모르지만 내가 그에 대해 아는 확실한 한 가지는 있다.

바로 그의 가능성이었다.

한태준은 내가 신입 시절부터 봐왔던 사람이다.

그가 일하는 태도,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보이는 모습.

그것만 보아도 한태준의 미래가 눈앞에 선명히 펼쳐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능력치가 높아져 갈 것이라는 걸 말이다.

그런 그가 여자 친구의 마지막 이별을 고하는 말로 인해 인생의 나락으로 향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한태준에게 영혼 없는, 이 상황만을 해결할 위로는 하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헤어지자고 하는 말이었을 거야’, ‘잊어버리고 새 사람 만나’와 같은 말은 할 생각이 없었다.

진심 어린 조언으로 그가 현재 있는 어둠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다.

왜냐, 한태준은 메디컬 업계에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친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태준아.”

그는 내 부름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예, 과장님.”

“이제 어떻게 하고 싶어? 계속 이렇게 술만 마시면서 점점 더 구렁텅이로 내려가고 싶은 거야?”

그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닙니다. 그런데 그 말에 제가 한없이 작아지더라고요. 저는 뭣도 할 수 없는 놈인가, 이렇게 계속 발버둥 치며 살아봤자 밑바닥인 놈인가 하고요.”

“그래서, 원하는 게 그 말처럼 계속 밑바닥에 있는 거야?”

“하……. 사실 헤어지고 친구들 통해 들은 이야기인데, 사업하는 놈을 만나는 것 같더라고요. 부모 돈으로 가게 하는 것 같은데, 그것도 뭐 자기 능력이잖습니까.”

그는 말을 하는 동시에 술을 따라 부은 후, 곧바로 입에 털어 부었다.

탁.

그리고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읊조렸다.

“…복수하고 싶어요.”

복수…….

복수라는 건 그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대갚음하는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 후 복수를 하고 싶다라…….

“어떻게 복수가 하고 싶은데?”

“아직 모르겠습니다. 바로 다른 남자를 만났다는 건, 저를 만나면서 연락을 하고 있었다는 건데. 너무 분한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복수를 하겠다고 네 시간을 허비하지 마.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뭐야? 행복? 성취감?”

“그냥 그 친구가 저 때문에 슬퍼했으면 좋겠어요. 저를 놓친 걸 후회하고.”

“그럼 방법이 딱 하나 있네.”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고, 내 확신에 찬 표정을 보며 한태준은 눈을 연신 깜빡였다.

“네? 어떻게 말입니까?”

한태준의 눈은 내 답을 듣기 위해 반짝거렸고, 나는 입을 열었다.

“성공.”

“예? 성공이요?”

나는 눈썹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성공.”

“무슨 성공을 말씀하시는 건지…….”

“헤어지는 이유가 태준이 네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라며? 그럼 그 미래가 얼마나 잘났는지 보여주는 게 최고의 복수 아니겠어?”

그는 내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네가 진정 복수를 하는 건, 네가 성공하는 거야. 이렇게 망가져 있는 건 그들에게, 그리고 그 여자 친구의 말대로 되는 거잖아. 꼭 성공해서 보여줘. 네가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 말이야.”

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잠시 뒤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후 입을 열었다.

“다시 그 여자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수없이 했어요. 그렇게 모질게 말하고 상처를 줬는데도 그 생각을 한 제가 비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다시 만나고 안 만나고는 성공 후,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아. 지금은 태준이 너에게 집중해.”

한태준은 내 말에 생각이 많아진 듯 보였다.

달아오르는 얼굴, 그리고 금세 바뀐 눈빛.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네가 이 악물고, 이 분야에서 성공하는 거. 그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자, 유일한 복수야.”

나는 채워진 술잔을 그의 눈앞으로 들었다.

그리고 한태준은 내 잔 앞으로 자신의 잔을 들고 와 부딪쳤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이어 우리는 그 잔을 깔끔하게 털어 마셨다.

* * *

“오셨습니까!”

다음 날 아침.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사무실로 도착한 나는 내게 인사하는 직원을 보며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바로 전날 나와 함께 술을 마신 한태준.

“뭐야?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어제 출근도 못 했는데, 오늘은 남들보다 일찍 와서 준비해야죠. 그리고 성공의 첫걸음이 바로 ‘성실’ 아니겠습니까, 과장님?”

한태준의 달라진 눈빛.

어제 오전 그의 집에서 보았던 눈빛과는 사뭇 다른 반짝임이었다.

나와의 술자리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더니, 밤새 고민 끝에 결심한 모양.

“다들 벌써 왔네?”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지혁 차장.

“오셨습니까, 차장님?”

나는 뒤를 돌아 손 차장에게 인사했고, 한태준 역시 허리를 접으며 그를 반겼다.

손 차장은 한태준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태준이 몸은 괜찮냐? 많이 아팠다면서? 다들 걱정 많이 했다.”

그의 질문에 한태준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예, 지금은 괜찮습니다. 어제는 말씀 못 드리고 그런 행동을 보여 죄송합니다.”

“뭐, 아파서 그런 거라니까. 혼자 사는 놈이 몸 관리 잘해. 혼자 살 때 아픈 게 제일 서러운 거야.”

“넵!”

손 차장은 그의 어깨에 손을 한 번 올린 후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곧이어 장홍석 사장도 사무실에 도착하고, 손 차장과 장 사장은 나눌 이야기가 있는지 함께 회의실로 향했다.

전날 라운드 바이오 김 대표와의 이야기를 보고해야 했기에, 나는 그들의 대화에 낄 자리를 살피고 있었다.

회의실 안, 그들의 대화는 무슨 주제이기에 한참이고 대화가 끊이지 않는 듯 보였다.

회의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나는 그 문틈으로 그들과 내 책상 위를 번갈아 가며 보고 있었다.

김 대표에게 받았던 NA 바이오 카탈로그와 관련 자료를 챙겨 품에 안은 채 미어캣마냥 몸을 움직이며 회의실 열린 문 사이를 살폈다.

머지않아 장 사장이 자신의 앞에 놓인 다이어리를 닫았고, 그들의 이야기가 마무리된 걸 확인됐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의실로 재빨리 다가갔다.

똑똑.

문은 열려 있었지만, 그 열린 문에 노크하자 장 사장과 손 차장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장 사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자 장 사장은 눈을 크게 뜨고 내게 되물었다.

“또 무슨 소식이야? 민 과장이 가져온 소식이라면 좋은 일임이 분명한데?”

그들은 동시에 내가 품에 들고 있는 자료에 시선을 돌렸고, 나는 곧장 회의실 문을 닫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예. 좋은 소식인 것 같습니다.”

나는 회의실 테이블 위에 카탈로그를 올리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줄기세포 연골 복원술입니다.”

장 사장과 손 차장은 귀로는 내 말을, 눈으로는 테이블 위 카탈로그를 보았다.

“NA 바이오 제품 입수했습니다!”

장 사장은 두 배쯤은 커진 눈과 목소리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뭐? NA 바이오 제품을 입수하는 게 말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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