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나는 라운드 바이오 김만호 대표의 표정을 바라보며 의문이 들었다.
대체 줄기세포 연골 복원술의 회복 기간을 어떻게 반이나 줄일 수 있다는 거지?
확신에 가득 찬 그의 모습에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대체 어떻게요?”
내 질문에 그는 카탈로그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여기 아시죠, 과장님?”
그가 꺼낸 카탈로그에 대문짝만하게 적혀 있는 로고.
‘NA BIO’.
NA 바이오는 해외에서 줄기세포로 유명한 회사다.
그 회사를 모르는 메디컬 업계 사람은 아마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지.
유명한 곳인데도 내가 카탈로그를 보고 놀란 이유.
바로 NA 바이오의 제품은 아직 국내로 들어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메디컬 업계에서는 의사, 메디컬 직원 등을 모아서 열리는 큰 학회가 있다.
학회는 이름을 붙이기 나름이지만, 매년 정기적으로 하는 큰 학회들이 정해져 있다.
그 학회에서 항상 언급되는 곳이 바로 NA 바이오.
그만큼 실력은 말할 것도 없다는 뜻이지.
유명한 곳, 그리고 항상 우리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곳임에도 NA 바이오 측에서는 국내로 물건을 보내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들었다.
그 이유까지는 내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이유를 모르는 건 다른 국내 메디컬 회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를 알았다면 국내의 큰 메디컬 회사에서 NA 바이오 제품을 들여왔겠지.
그렇게 누구나 원하는 NA 바이오의 제품.
그 엄청난 회사의 카탈로그를 여기, 내 앞에 앉은 김 대표가 가지고 왔다.
그러니 놀라지 않을 수가 있으랴.
나는 카탈로그를 유심히 본 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고 물었다.
“NA 바이오……. 어떻게 된 겁니까?”
“NA 바이오의 줄기세포 연골 복원술이 회복 기간을 반으로 딱 줄일 수 있습니다. 아시죠, NA 바이오의 기술력? 그러니 제가 이렇게 확신에 찬 얼굴로 과장님을 뵈러 온 것입니다.”
이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처음 나에게 전화를 걸 때부터 당찬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던 그다.
그리고 나와 마주하고 있는 지금도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던 김 대표.
그 자신감은 모두 NA 바이오의 제품을 입수했음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NA 바이오의 제품을 손에 넣었다는 것으로 그의 자신감이 대번에 이해가 되었다.
“대체… NA 바이오 제품을 어떻게 입수하신 겁니까? 진짜 대단하십니다. 아니, 그리고 어떻게 저에게 찾아오신 거죠?”
나는 다소 흥분된 마음으로 그에게 질문 세례를 퍼부었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하하, 과장님. 하나씩이요.”
그의 말에 나 역시 웃음을 터트렸다.
“예. 제가 NA 바이오 로고를 보고 신이 나서……. 하하.”
“제가 자가혈 주사 본사에 있을 당시, NA 바이오에 컨택을 했었습니다. 담당자가 저 혼자였거든요.”
나는 그의 이야기 서두에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마치 영화의 시작에 앞서 팝콘과 콜라를 한 모금 마시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내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저희 자가혈 주사가 꽤 성공적이었던 건 아시죠?”
“그럼요. 여기 광주에서도 기기를 들여놓은 병원에서 모두 만족하고 계시고요.”
“예. 자가혈 주사가 잘돼서, NA 바이오 측에서도 믿고 컨택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다가 내부 사정, 그러니까 제 개인 사정이라 말씀드리기는 조금 곤란하지만, 그거 때문에 제가 퇴사를 하게 됐고요.”
퇴사하는 것은 어쨌든 김 대표의 사정이기에 사유까지는 묻고 싶지는 않았다.
뭐, 회사에 다니는 사람 중 사표 한 장을 품에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제가 정말 힘들게 NA 바이오 측과 컨택이 됐었는데, 이걸 회사에 두고 오기는 아쉽더라고요. 물론 처음에 NA 바이오 측의 마음을 얻는 데에는 회사가 일조했지만, 그 이후의 일은 오로지 저 혼자 해낸 거거든요. 당연히 안 될 거라는 생각에 회사에서는 도움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공감의 표시를 해준 것이다.
하지만 자가혈 주사 본사 측의 입장에서도 곤란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김 대표는 그 당시 회사의 팀장 직책에서 일을 한 것이다.
자가혈 주사 본사에 소속이 되어 있지 않았다면, 애초에 NA 바이오와의 컨택은 엄두도 못 냈겠지.
또 한편으로는 김 대표가 컨택을 이어 가는 도중, 회사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 해냈다고 생각했을 테니 두고 나오는 게 아쉬웠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구의 편을 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의 진짜 속사정을 모를뿐더러, 내가 지금 그들의 양쪽 입장을 들으며 잘잘못을 따질 것은 아니니까.
나는 그저 광주 메디컬 소속의 사람으로 우리 회사를 위해, 그리고 내가 영업할 병원들을 위해 좋은 제품을 선별해 받은 후, 환자들을 위해 병원에 그 제품을 영업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오시면서 NA 바이오 측과 좋은 관계로 이어서 나오셨다는 말씀이신가요?”
김 대표는 아까 내가 NA 바이오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잔뜩 흥분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을 했기에, 목이 탔는지 눈을 껌뻑거리며 커피를 연신 들이켰다.
컵에 담겨 있던 빨대까지 뺀 후, 커피를 몇 모금이나 마시고 얼음까지 와작 씹어 먹고서야 내게 답을 하는 김 대표.
“네. 그래서 제가 이렇게 회사를 차릴 수 있었던 겁니다.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NA 바이오 제품 하나만 독점으로 시작한다고 해도 진짜 떼돈 벌 수 있다는 거, 민 과장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의 말이 백번 맞다는 것을 알고 있다.
최근 들어 NA 바이오의 제품 기술이 부쩍 늘면서 메디컬 업계에서는 NA 바이오를 원했으니까.
우리 광주 메디컬 같은 병원 영업 쪽에서는 NA 바이오와 같은 제조 업체와 직접 연결을 하는 것이 힘들다.
아니, 우리의 영역이 아닌 거지.
우리가 물건을 받는, 그러니까 의료 기기 제조사 또는 수입을 주로 담당하는 메디컬 업계에서 해야 하는 일.
그 업계에서 물건을 받아오고, 우리는 그 회사에서 물건을 받는 것.
그래서 우리와 같은 도소매 의료 기기 업에서는 NA 바이오의 제품을 어느 회사에서 따오느냐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병원 역시 NA 바이오 제품을 원하고 있으니, 먼저 물량을 확보하는 메디컬은 무조건 돈을 벌 수 있다.
“그렇죠. 그럼 NA 바이오 측에서 라운드 바이오로, 그러니까 김 대표님께 물건을 납품하기로 한 겁니까?”
내 질문에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독점입니다.”
“독점이요?”
“네. 아마 수입이 저로 인해 뚫리고 난다면, 머지않아 독점이 풀릴 거라 예상됩니다. 그만큼 독점 시기가 짧다는 거죠. 저도 그렇고, 민 과장님 회사에서도 그렇고요.”
그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무려 독점으로 해외 물건을 수입하다니.
그의 실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NA 바이오 제품을 독점으로 받았다면, 그는 이제 돈방석에 오를 일만 남은 것이다.
나에게 카탈로그를 보여주었다는 것은 나에게도 그 기회가 오는 것.
그가 제안하는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아니, 놓쳐서는 안 된다.
여기서 궁금한 점 하나.
이걸 나에게 왜, 대체 왜 하필 내게 기회를 준 것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걸 확인하기 위해 심호흡을 해 마음을 진정시킨 후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하필 접니까?”
“예?”
“그 엄청난 NA 바이오 제품을 힘들게 받아 내셨을 텐데, 어떤 이유로 저에게 찾아오셨는지 해서요. 원래 서울에 계셨었는데, 굳이 지방까지 내려오셔서 저를 찾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내 말에 그의 눈이 요동치듯 깜빡거렸고, 이내 시선을 피하며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이유라…….”
그리고 곧장 가방에서 명함 몇 장을 꺼내 테이블 위로 올렸다.
김 대표가 꺼내 펼친 명함은 세 장.
그런데 모두 낯익은 것이었다.
바로 ‘광주 메디컬 민지훈 과장.’이라고 적힌 내 명함이었다.
“제 명함을 왜…….”
나는 내 명함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대표를 직접 만난 것은 오늘이 난생처음이었다.
그래서 내 명함을 그에게 건넸던 적은 조금 전, 바로 이곳에서 인사를 나눌 때가 처음이었지.
그런데 어떻게 그가 내 명함을 세 장이나 가지고 있는 거지?
김 대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다가 바로 입을 열었다.
“제가 퇴사 전, 본사에 있을 당시에 NA 바이오 측과 이야기가 마무리됐었습니다. 저를 따라와 주기로요. 그리고 저는 굳이 서울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더라고요.”
“그렇죠. 어차피 대표님이 회사를 차리시는 거니까요.”
“예. 그래서 고향인 전주로 내려오게 됐습니다.”
“와. 전주는 저도 자주 갔습니다. 저희가 광주, 전남, 전북까지 병원에 납품하고 있거든요.”
“멀리까지 담당하시네요. 저는 그쪽에 터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호남권, 경상남도 쪽으로만 영업을 하려고 해요. 저도 아직은 혼자 일하다 보니 먼 지역까지는 케어가 힘들 것 같아서요.”
직장인으로 일을 하다가 나와 회사를 차리면 대부분 처음에는 혼자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메디컬 쪽은 담당 병원이 많지 않으면 혼자서도 케어가 가능하기에 홀로 오랫동안 일을 하는 분들이 많다.
그렇게 혼자 움직여 영업하고, 담당 병원, 담당 메디컬을 관리하려면 근처 지역으로만 하는 것이 본인에게 수월하기에 김 대표의 말에 수긍했다.
“그러시겠네요. 딱 코스가 경상남도까지는 조금 멀어도 가능하시겠고요.”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북, 광주 쪽으로 병원과 메디컬 쪽을 알아봤습니다. 회사 차리기 전, 사전 조사를 좀 한 거죠.”
그는 앞에 놓인 명함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을 이어 갔다.
“광주 메디컬 민지훈 과장님은 본사에서 일할 때부터 알고 있어서 관심을 가지기는 했습니다만, 사전 조사를 하다 보니 민지훈 과장님 이야기가 많이 들리더라고요. 여기저기서 추천으로 명함도 건네주시고요.”
“제 이야기가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네. 아무래도 저도 NA 바이오 물품을 판매할 업체를 작은 업체로 선정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영업력이 좋으신 분, 특히 그분의 회사가 탄탄한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왜…….”
나는 그의 말에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물었고, 그는 내 목소리를 들은 뒤 답했다.
“영업력이 좋으신 분이면 당연히 제 물건을 받아 많이 판매해 주실 테니까요. 그리고 이 업계에 망하는 회사가 좀 많습니까?”
“맞습니다. 많이 생기는 만큼, 많이 사라지는 업계기도 하죠.”
“네. 저는 길게 보고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저도 처음 회사를 차린 거라서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려 합니다. 그러려면 제가 함께 일하려는 영업맨의 집인 회사도 탄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 대표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을 쉬지 않고 이어 갔다.
“그런데 광주 메디컬이 광주에서도 유명세를 타고 있더라고요. 그럼 제가 광주 메디컬의 민지훈 과장님께 이 NA 바이오 제품을 영업 안 할 이유, 기회를 드릴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에 나는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얼마 전, 관절 로봇 총판을 따올 때에도 본사 대표는 광주 지역 조사를 하다가 나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 앞에 앉은 라운드 바이오 김 대표 역시 나와 만나기 전부터 나에 대해 미리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우리 광주 메디컬이, 그리고 내가 이 지역에서 이름이 내로라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바라 왔던 광주에서 제일가는 메디컬이 점점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그때, 김 대표는 다시 한번 앞에 있는 카탈로그를 내게 밀며 말했다.
“NA 바이오 제품. 저는 지역별로 두 군데 정도만 납품하려고 합니다. 호남권에 두 군데, 경상남도에 두 군데요. 그리고 병원 원장님과의 사정이 있는 곳이 있어 제가 직납으로 하려고 합니다. 외의 병원은 마음껏 영업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그가 말하는 타 메디컬 한 군데, 그리고 병원 두 곳.
그 정도의 경쟁자가 생기는 것은 크게 타격이 되지 않는다.
내가 입술을 움찔거리며 고민에 빠져 있자, 그가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기회… 놓치시지는 않으시겠죠, 과장님?”
김 대표의 말에 나는 카탈로그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그때 바로 옆에 올려진 휴대전화의 진동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지이잉.
[발신인 : 한태준]
오전에 한태준의 상태를 본 뒤, 그에게 병가를 내라고 했었다.
그런데 출근도 하지 않은 그가 왜 이 시간에 전화를 걸었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한태준의 얼굴이 떠올랐다.
심각하고 피폐해 보이던 한태준의 얼굴.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은 채 김 대표를 향해 답했다.
“좋은 기회인데 당연히 잡아야죠. 놓치는 게 잘못된 거 아닙니까. 하하. 제가 검토해 보고 내일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늘 만나 뵙게 돼서 반가웠습니다, 대표님.”
“아닙니다. 앞으로도 저희 물건 받아주시면 오래 보실 텐데요. 내일 연락 주시고, 다음에 제가 술 한잔 사겠습니다.”
“넵.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 저는 업무 좀 보러 들어가야 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대표님.”
김 대표와의 인사를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나자 울리던 진동이 끊어졌다.
그리고 나는 곧장 카페에서 빠져나와 한태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태준아, 무슨 일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