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 확신과 그 이유 】
딩동.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재차 초인종을 누른 뒤 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딩동.
쾅쾅쾅쾅!
문이 부서지라 두드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손날이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힘껏 문을 두드렸다.
잠시 뒤, 안에서는 출입문 쪽으로 걸어오는 듯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죽이고, 문 가까이에 귀를 붙였다.
이내 현관 출입문의 도어락 여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여는 사람.
바로 한태준이다.
사무실에서부터 줄곧 전화를 받지 않던 한태준.
그가 전화를 받지 않자, 옆에 있던 박수진 주임이 내게 말했었다.
‘잠수 퇴사’한 거 아니냐는 말.
몇 년의 세월을 함께한 것은 아니지만, 한태준을 아끼고 봐왔던 나는 그녀와 다르게 생각했다.
미리 나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전화를 이렇게 오래 받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한태준에게는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
나는 그렇게 예상했고 확신했다.
그래서 곧장 한태준의 주소를 확인해 집으로 찾아온 것이지.
사무실에서 나와 한태준의 집으로 찾아오는 내내 그를 보면 어떤 이야기부터 해야 할지 고민을 했었다.
어떻게 된 일이든 출근 시간을 맞추지 못한 것, 말없이 회사에 늦은 것.
더불어 상사인 내가 그의 집까지 찾아오게 만든 것.
충분히 그를 꾸짖을 만한 사유였다.
여전히 한태준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분노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문이 열리고 나를 바라보는 한태준.
한태준의 키는 나와 비슷해서 항상 눈높이가 맞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몸을 한껏 수그리고 문손잡이를 잡은 채 나를 올려다보는 한태준.
나는 그의 얼굴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무척이나 헝클어져 있는 덥수룩한 머리, 강하게 풍겨오는 술 냄새.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꾹 눌러 담고 그에게 첫 마디를 던졌다.
“괜찮냐?”
그는 아무 말 없이 아랫입술을 잘근 물었다.
나는 그가 잡고 있던 문을 활짝 열었고, 문에 기대고 있던 한태준은 휘청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내게 힘이 잔뜩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과장님.”
나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영업직인 우리에게 몸 관리는 그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몸살에 걸려 아프거나 혹은 숙취에 시달릴 때, 무슨 직업이든 업무를 보는 데에 있어 힘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직업은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설득하고 마음을 사야 한다.
상대적으로 다른 직업에 비해 내 몸 상태 때문에 업무를 보지 못하는 일이 생기는 직종이기에 몸 관리가 중요하다.
한태준의 몸 상태를 보니, 지금은 씻고 준비를 한다고 해도 오늘은 영업하기 힘들 거라 판단이 됐다.
술 냄새는 풀풀 나고, 상태가 이런데 어느 병원 의사가 만나서 기분 좋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는가.
나는 한숨이 길게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아내고 그에게 말했다.
“태준아.”
“예, 과장님. 저 얼른 준비하고 나오겠습니다.”
“아니야. 오늘 병가 내고 쉬어. 차장님한테는 내가 말씀 잘 드릴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오늘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너 집에 있는 거 확인했으니 됐다.”
“…죄송합니다.”
그의 기운 빠진 모습을 보니, 단순히 어제 부어라 마셔라 했던 술로 술병이 난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어 이렇게 술을 마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상태를 보아, 이야기를 나누기는 힘들 것 같은 모습.
내일 출근한 뒤 회사에서 이야기를 나눠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런 꾸지람 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껏 봐왔던 너는 단순히 술 때문에 이런 모습 보였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한다. 몸도 마음도 잘 추스르고, 내일 보자.”
그는 내 말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나 간다. 너 때문에 오전 업무 하나도 못 했어, 인마. 해장 꼭 하고. 힘든 일 있으면 연락해. 내가 너 술 한잔을 못 사주겠냐.”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한 번 올린 후, 곧장 몸을 돌렸다.
그의 집에서 멀어져 가는 나를 향해 한태준이 소리쳤다.
“과장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됐어. 얼른 술이나 깨라. 간다.”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니, 그는 허리를 숙인 채 내게 인사하고 있었다.
* * *
한태준의 집에서 나와 병원 여러 군데를 돌고 난 후에야 사무실로 복귀할 수 있었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서류를 작성하고 있던 그때.
지이잉.
모르는 휴대전화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나는 앉은 그 자리에서 휴대전화의 수신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안녕하십니까, 민지훈 과장님.
밝은 목소리로 내게 인사하는 사람.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있었던 것 같지만, 누군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 네. 실례지만 어디서 전화 주셨을까요? 제가 번호가 저장이 되어 있지 않아서요.”
- 저 혹시 기억나십니까? 자가혈 주사 본사에서 일했었던 김만호라고…….
자가혈 주사… 김만호…….
나는 전화를 귀에 붙인 채로 서둘러 머리를 굴렸다.
아!
자가혈 주사 본사에 내가 단가를 확인할 때 통화했던 본사 직원.
김만호 과장이다.
보통 한번 통화했던 전화번호라면 내가 저장을 해뒀기에 바로 알 수가 있다.
하지만 내가 저장해 두었던 본사 사무실 전화가 아닌, 자신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주었기에 내가 알아차릴 수 없었던 것.
“아! 기억납니다, 과장님. 잘 지내셨죠?”
- 기억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하하.”
그와 짧은 안부 인사를 몇 마디 더 나눈 뒤, 그는 전화를 건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 저, 과장님. 사실 제가 이번에 자가혈 주사 본사에서 퇴사했거든요.
“정말요? 그럼 어디 다른 회사 들어가신 겁니까?”
- 아니요. 제가 좋은 아이템이 좀 생겨서, 나와서 회사를 차리게 됐습니다.
“와, 축하드려요!”
- 하하. 감사해요. 안 그래도 드릴 말씀이 좀 있는데, 지금 광주십니까?
“예. 저야 항상 광주에 있죠.”
- 그럼 시간 좀 가능하실까요? 만나 뵙고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광주에 계신 겁니까?”
- 네. 광주 메디컬 사무실 근처에 있는데, 잠깐 시간 가능하시면 뵙고 싶은데요.
김만호 과장과 약속 장소를 정한 뒤,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문득 드는 한 가지 생각.
분명 김만호 과장과 자가혈 주사에 대해 통화를 했을 때, 나는 ‘대리’ 직책이었다.
그 이후에 나는 승진을 했었는데?
나는 서둘러 옆에 올려 두었던 회사 다이어리를 펼쳤다.
그리고 앞장으로 넘기며 자가혈 주사에 대해 영업하던 때와 승진했을 때, 날짜를 확인했다.
맞았다.
나는 분명 김 과장과 통화할 당시 대리였다.
그 이후 자가혈 주사에 대해서는 사무실에서 발주를 넣었었고, 나는 김만호 과장과 연락을 했던 적이 없다.
더불어 그는 본사를 퇴사한 후, 회사를 차렸다는 것인데.
나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이지?
나는 의문을 가지고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
* * *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혼자 앉아 있는 남성이 몇 있었다.
그중 내가 연 문을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
바로 저 사람이 김만호 과장일 거라 확신이 들었다.
그와 눈을 맞추며 다가가자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
“김만호… 과장님?”
“맞습니다. 민지훈 과장님 맞으시죠?”
서로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우리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자리에 앉기 전, 곧장 명함을 건넸다. 나 역시 명함을 꺼내 그와 주고받았다.
그 뒤에야 본 김만호의 명함.
[라운드 바이오 대표 김만호]
그때 김만호가 앞의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과장님, 앉으시죠.”
“예. 김 과장… 아니, 이제 대표님이시죠?”
그는 내 말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주문한 커피가 우리의 앞에 한 잔씩 놓였다.
“부럽습니다. 이제 대표님이시네요.”
나는 그를 향해 말했고,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벌써 어디에 소속되어 있을 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요즘 광주 쪽 트렌드는 좀 어떻습니까?”
그가 묻는 트렌드는 당연히 메디컬, 병원 쪽의 의료 기기에 대한 트렌드다.
수술과 진료는 전국 어디나 같기는 하지만, 거리가 멀다 보니 지역마다도 트렌드가 조금씩은 다르기 때문에 한 질문이다.
이 트렌드는 병원에서 주로 사용하는 의료 기기 제조사 제품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요즘 광주는 여전히 IBH 제조사 제품도 많이 사용하고, 밀리 메디컬 제품…….”
커피가 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그와 병원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서울에서 굳이 광주까지 내려온 이유, 나를 만나자고 한 이유에 대해 입을 열 때가 됐는데 계속해서 메디컬 동향에 관한 이야기만 하고 있자 결국 내가 질문을 던졌다.
“혹시 지금은 계속 광주에 계신 겁니까?”
“아… 제가 광주랑 경상남도 쪽으로 해서 이번에 좋은 소식을 좀 드리고 싶어서 내려와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고, 그는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확신에 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예. 과장님, 줄기세포 연골 주사 아시죠?”
“네, 당연히 알죠.”
줄기세포 연골 주사는 관절염이 있는 환자들에게 사용하는 치료법이다.
보통 관절염과 같이 관절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관절을 많이 사용해 닳아 생기는 염증이다.
특히 60세, 70세 이상 나이가 많은, 관절을 오래 사용한 나이대에 발생하는 질병이지.
그렇게 관절에 문제가 오고, 걷기가 힘들어지게 되면 인공 관절 치환술과 같은 수술을 하고는 한다.
관절을 인공으로 된 관절로 바꿔주는 것.
말 그대로 인공으로 만든 관절이다 보니, 사람 몸에 들어갔을 때 확실히 이질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또 영구적인 것이 아니다 보니, 보편적으로는 인공 관절 치환술을 한 후 20년이 지나면 재차 새로운 인공 관절로 바꿔주어야 하는 일이 생긴다.
그래서 60세 미만인 사람에게 인공 관절 치환술을 하게 되면, 80세 혹은 그 전에 재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
관절염 같은 질병은 예전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흔히 오는 질병이었지만, 요즘 시대에는 취미로 스포츠와 같은 활동이 많다 보니 젊은 사람들에게도 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이가 상대적으로 어린 사람들에게 관절염이라는 질병이 왔을 때, 인공 관절 치환술을 한다면?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몇 번의 재수술을 해야 할지 모르는 일이지.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줄기세포 주사’다.
줄기세포 연골 복원술이라고도 불리는 주사.
“역시, 과장님은 아실 줄 알았습니다.”
“그럼요. 저도 벌써 이 직종에서 업을 한 지가 3년인데요.”
김 대표는 내 말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이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그럼 과장님은 줄기세포로 연골 복원 수술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음…….”
나는 입술을 움찔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 수술에 대해 평소 어떻게 생각했냐라…….
“뭐… 당연히 좋은 수술이죠. 그 수술이 없었더라면, 전부 인공 관절로만 수술을 해야 할 테니까요.”
“맞습니다. 그런데 단점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줄기세포 연골 복원술의 분명한 단점.
바로 회복 기간이다.
인공 관절 치환술은 수술 후 곧장 입원실 침대로 향한다.
그렇게 하루에서 이틀 후면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게 된다.
일어나 곧장 걷는 연습 등을 하며 걸을 수 있도록 재활 치료를 시작한다.
다만 인공 관절 치환술은 관절의 이질감이 조금 느껴지기도 하고,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
줄기세포 연골 복원술은 자기 관절을 살릴 수 있는 수술.
관절이 자신의 것이다 보니 수술 이후에도 충분히 자연스러운 관절 움직임을 느낄 수 있지.
줄기세포를 주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사 주입 후 기존에 딱딱하던 연골이 물이나 젤처럼 물렁물렁해진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굳어지면 걸을 수 있게 된다.
쉽게 설명하자면 시멘트와 같은 느낌이다.
처음에는 물 같은 질감이지만, 시간이 지나 굳으면 단단해지고 고정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줄기세포 연골 복원술은 무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보행을 하는 것이 힘들다.
아니, 보행할 수가 없다.
비체중부하를 지켜야 하는, 즉 자신의 체중을 싣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해 굳어지는 그 한 달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걷지 않고 입원해 누워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 기간을 힘들어하는 환자가 수두룩하다.
이게 가장 분명한 단점으로 꼽힌다.
나는 김 대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누워 있는 환자들이 답답해하는 게 사실이죠.”
그 환자들의 불편함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리자, 그는 내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 기간을 반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면! 어떠십니까?”
상상하지도 못했던 김 대표의 말.
그의 눈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