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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91화 (191/339)

191화

“민 과장 들어왔어? 고생했다.”

“다녀왔습니다.”

사무실에서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기는 손지혁 차장.

그 역시 사무실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아직 책상에 짐을 풀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내 자리에 내려놓은 후 그에게 다가갔다.

“차장님.”

“응?”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관절 로봇 어떻게 됐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럼.”

그는 내게 짧게 대답을 한 뒤 고개를 탕비실 쪽으로 까닥이며 말했다.

그리고 손 차장은 곧장 들고 있던 카탈로그를 책상에 내려놓은 뒤 탕비실로 걸어갔다.

그의 뒤를 따라갔지만, 나는 탕비실에 들어서자마자 재빨리 정수기 앞으로 걸어갔다.

“차장님. 믹스 드실 거죠?”

“좋지.”

“넵.”

그의 취향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이미 컵에 커피 믹스 가루를 털어내고 있었다.

종이컵에 쪼르르 뜨거운 물을 담아 휘저은 뒤 양손에 컵을 하나씩 들고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여기 있습니다, 차장님.”

“고마워, 잘 마실게.”

그는 내가 건넨 커피를 조심스레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내게 물었다.

“모던 정형외과는 어떻게 됐어? 계약하신대?”

나는 의자를 테이블 쪽으로 끌어당겨 앉으며 답했다.

“예. 근데 광주에서 선발대가 되길 원하십니다.”

“선발대?”

“네. 다른 병원에 관절 로봇이 들어가기 전에 모던 정형외과에서 먼저 받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손 차장은 아랫입술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독점을 원하는 건 아니지?”

독점을 원한다는 것.

말 그대로 독점, 혼자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것이다.

아직은 서울, 경기 지역밖에 없는 관절 로봇.

광주를 포함해 지방 어느 병원에도 관절 로봇은 들어오지 않았다.

이때, 모던 정형외과가 독점을 요구하고 우리가 그 요구를 들어준다면?

일정 계약 기간 동안은 다른 병원에 판매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니요. 독점을 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독점이라는 것은 다른 병원에 기구가 가지 못하도록 막기 위함이다.

다른 병원에는 없으니, 이용하고 싶으면 무조건 자신들의 병원으로 오라는 것.

하지만 병원에서도 쉽사리 독점을 달라고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다.

우리는 한 병원에 한 대의 기구를 넣으면 그 한 대의 값만 벌 수 있다.

하지만 여러 대의 기구를 넣으면 그만큼 돈을 버는 것이지.

그런데 그것을 감안하면서까지 돈을 포기하며 모던 정형외과에만 독점을 줘야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모던 정형외과가 우리에게 보상을 해줘야겠지.

모던 정형외과가 그렇게 해서까지 얻는 것이 있으려면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독점을 요구하는 곳은 많지 않다.

“독점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네. 독점이라면 다른 병원에 영업하던 거 모두 중단해야 하니까 말이야.”

“예, 그저 선발대를 원하셨습니다.”

“선발대라…….”

그는 커피를 입에 가져다 대며 혼잣말로 읊조렸다.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차장님 담당 병원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나는 지금 두 군데만 영업 중이거든.”

“그 병원 두 군데가 가장 큰 병원 아닙니까?”

“맞지. 근데 한 군데는 벌써 언제 기기 설치가 가능하냐고 난리야.”

나는 입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광주에서도 최첨단 장비를 기다리는 병원이 꽤 많았나 봅니다.”

“그러게 말이야. 다들 신식 기구는 빨리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해.”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차 물었다.

“그럼 나머지 병원은요?”

내 질문에 손 차장은 눈썹을 들썩이며 답했다.

“거기 원장님들까지는 내가 다 어제 영업 끝냈었거든? 그래서 오늘 견적서 딱 들고, 병원장님 만나러 갔다 왔어.”

나는 손 차장의 말에 집중한 채, 들고 있던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근데 병원장님이 모험을 안 좋아하는 분이더라고.”

“모험이요?”

“어. 이제 막 나온 제품을 뭘 믿고 벌써 계약하겠냐, 하시더라고.”

“아……. 그럼 대중화된 후에 계약하고 싶으신 건가 보네요.”

그는 내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른 원장님들은 그제야 기구를 들이면 늦다는 반응인데, 병원장님이 허가를 안 해주시면 어차피 들일 수가 없잖냐.”

“그렇죠. 제일 높으신 분이 도장을 안 찍어주신다는데 말입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관절 로봇이라는 게 단가가 워낙 높은 기기다 보니, 손 차장에게서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했다.

광주의 큰 병원, 손 차장의 담당 병원 중 큰 곳이 가능성이 높기에 찾아가서 영업한 것인데, 병원장의 반대로 영업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와 나의 대화가 멈춘 후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때 드는 생각.

어쩌면 모던 정형외과 안국환 원장이 원하는 대로 선발대를 맞추기가 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생각 정리가 끝나자마자 손 차장에게 소리쳤다.

“차장님! 그럼 다른 병원으로도 영업 가시나요?”

“미리 계획 짠 후에 시작해야지. 기기가 워낙 비싸다 보니, 일반 작은 병원에 영업 갈 수는 없고 말이야.”

“그럼… 모던 정형외과 먼저 계약 받아도 되겠습니까?”

“벌써?”

“네. 모던 정형외과에서 원하는 건 선발 주자가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차장님 담당 병원 중 한 곳도 계약을 원하시잖습니까. 이번 첫 계약은 딱 두 군데 병원에만 하는 겁니다.”

그는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내 말은 즉, 다른 병원에 관절 로봇 영업을 잠시 중단하자는 뜻이니까.

모던 정형외과에 선발대로 관절 로봇을 넣고, 그 기구로 환자들을 만족시키려면 지금 다른 병원에는 기구가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입소문이라는 게 무서운 이유.

모던 정형외과와 손 차장 담당 병원 단 한 군데에만, 그러니까 광주에서 단 두 개의 병원에만 관절 로봇 기구가 들어가면 금방 소문이 날 테지.

순차적으로 여러 병원에 깔리게 되면 그 소문은 점점 힘이 약해질 것이다.

왜냐, 여기저기 널리고 대중화된 것은 소문이 잘 나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하고 소수의 것들이 더 입에 오르내리기 쉽다.

어쨌든 기구가 들어간 초반, 모던 정형외과와 손 차장의 담당 병원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을 것이다.

그 후 병원의 환자와 매출이 오르고, 추후 많은 병원들도 대세를 따르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관절 로봇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게 내가 예상하는 가장 이상적인 큰 그림이다.

손 차장이 내 말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나는 그에게 내 생각과 계획을 자세하게 풀어놓았다.

그는 내 이야기에 딴지를 걸지 않고 차분히 경청해 주었다.

그리고 잠시 뒤, 이야기가 끝나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나쁘지 않아. 좋은 생각이네. 보고는 내가 올려볼 테니 사인 떨어지면 바로 진행해 보자고.”

“예. 감사합니다.”

“물 들어올 때, 우리 회사가 총판 시작할 때 많이 팔 생각만 할 텐데. 이렇게 입소문 마케팅으로 자연스레 홍보해서 영업이라……. 역시 민 과장이야.”

그 역시 내 생각에 힘을 실어주었다.

나는 그의 말에 양쪽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에게 내 영업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어깨가 자꾸 올라갈 듯이 뿌듯했다.

* * *

다음 날, 장홍석 사장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그리고 내가 계획하고 예상했던 대로 모던 정형외과는 관절 로봇 기계의 광주 선발 주자가 되었다.

모던 정형외과 안 원장이 원하는 그림, 더불어 내가 원하는 그림까지 모두 만족하는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기에 모던 정형외과는 관절 로봇 계약서에 도장을 꾹 찍었다.

그렇게 나는 모던 정형외과 안 원장, 그리고 나머지 원장들의 신임도 얻을 수 있었다.

왜냐, 그들이 원하는 것을 내가 주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그들을 위해 내가 다른 병원을 2순위로 밀어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모던 정형외과를 위한 일을 하면서도, 나도 앞으로의 영업을 생각한 일이지.

그것만으로도 이번 총판의 스타트는 가히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 *

“안녕하십니까.”

“오셨습니까?”

평범한 출근 시간.

평소와 다름없이 인사를 나누고, 또 평소와 같이 각자의 출근 후 루틴으로 아침을 열었다.

“오늘 우진이가 나 좀 따라가자.”

손지혁 차장은 납품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상자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상자를 가리키며 큰소리로 외쳤다.

오늘 여기저기 병원에 샘플 소개할 것이 많은 모양.

신입 사원인 주우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 차장이 가리키고 있는 상자를 집어 들고 말했다.

“넵. 이거 전부 차장님 차에 실으면 될까요?”

“응. 카탈로그는 내가 다 챙겼으니까, 샘플만 실으면 될 거야.”

“예, 알겠습니다.”

앉아서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여는 또 다른 신입 사원 권성훈.

그는 앉은 자리에서 쭈뼛쭈뼛 눈치를 보며 내게 물었다.

“저… 민 과장님.”

“응?”

그의 부름에 나는 뒤를 돌아 권성훈을 바라보았다.

“저는 오늘 뭐 하면 될까요?”

며칠 전부터 한태준을 따라 다니며 일을 배우던 그.

그는 한태준의 빈자리를 보며 내게 물었고, 나는 턱으로 주우진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선 태준이 올 때까지 할 일 딱히 없으면, 우진이 도와서 짐 싣는 것 좀 같이할래?”

“아… 네!”

권성훈은 늘 그렇듯 자신에게 시키지 않는 일은 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늘 어김없이 해내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아직까지는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는 내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우진에게 다가갔고, 쌓여 있는 상자를 차에 옮겼다.

그리고 나는 곧장 고개를 돌려 한태준의 책상을 바라보았다.

시선은 그대로 내 손목시계로 옮겨왔고, 시곗바늘을 보니 짧은 바늘은 숫자 10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 앉아 있는 손 차장에게 다가갔다.

“차장님. 혹시 태준이 병원으로 직출한다고 차장님께 보고 올렸을까요?”

시간이 10시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우리의 출근 시간은 9시.

하지만 내게는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고, 사무실의 한태준 책상은 비어 있다.

혹시 내가 아닌 손 차장에게 보고를 올렸을까, 하는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

그리고 손 차장은 내 질문에 대답 대신 곧장 자신의 휴대전화를 열었다.

한태준에게서 온 연락이 있는지 확인을 하는 모양.

짧은 순간 그의 손가락은 이곳저곳을 터치하며 문자와 톡을 확인하는 듯했고, 이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연락 온 거 없는데? 너한테도 연락 안 온 거야?”

“네. 뭐지, 태준이 회식을 그렇게 해도 아직까지 한 번도 지각은 한 적이 없는 놈인데 말입니다.”

손 차장은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빼꼼 들어 장홍석 사장의 자리를 살폈다.

장 사장은 아직 사무실에 오지 않은 상태.

그는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며 내게 말했다.

“사장님, 오늘 병원 원장님들이랑 식사하고 오실 거야. 그전까지 태준이 오면 되니까, 연락해 보고 민 과장 선에서 이야기 끝내. 처음 지각하는 거니까, 굳이 내 선까지는 안 올라와도 돼.”

“예, 알겠습니다.”

한 번도 지각을 한 적이 없던 한태준.

아직 회사 생활이 1년이 채 되지 않았으니, 그럴 만했다.

보통 직장인들이 지각을 하더라도 1시간은 채 넘지 않는다.

대부분 알람을 꺼버렸거나, 알람을 조금씩 미루며 5분만 더, 10분만 더를 외치다가 지각을 하기 마련이니까.

그러다 보면 아무리 지각을 하더라도 출근 시간에서 10분, 혹은 30분을 오버해서 도착하고는 한다.

하지만 지금 시간은 곧 1시간이 넘어가는 상황.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하는 마음에 재빨리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장 휴대전화를 들고 한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귀에 맴도는 신호음.

-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전화를 받지 않는 한태준.

나는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곧바로 다시 발신 버튼을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이 반복되고, 또다시 들리는 안내 멘트.

한태준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나는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앉아 있던 의자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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