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 행운은 어디서 찾아올지 모른다 】
동명 정형외과.
내가 광주 메디컬에서 영업했던 병원 중 하나.
이 병원은 작은 진찰 진료보다는 수술이 굉장히 많은 곳이다.
고관절 쪽 수술을 잘하는 것으로 유명한 동명 정형외과는 항상 수술 환자들이 줄을 이루곤 한다.
그런 곳에서 다급하게 전화가 올 일.
전혀 예상되지 않았다.
진료는 일주일 중 휴진 일인 일요일을 제외하고 6일.
그 6일 안에도 수술이 많을 때는 매일 수술이 있었고, 적을 때에도 최소 4번 정도는 수술이 있었다.
그래서 동명 정형외과에는 우리 메디컬에서 미리 넣어둔 수술 기구가 있다.
보통 병원에서 수술이 잡히게 되면, 수술 전에 미리 기구를 넣어준다.
하지만 동명 정형외과처럼 수술 횟수가 잦다면, 기구를 병원에 가납을 해주는 형식이지.
관리 자체를 병원에서 하는 것.
때문에 수술실에서 급하게 내게 전화를 걸어 기구를 물어볼 일이 없을 거란 생각이었다.
- 민 과장님. 저희 기구가 급한데 바로 가능할까요? 아! 오늘 토요일인데, 과장님 쉬시는 날이죠?
“아… 네. 쉬는 날이긴 한데, 어떤 기구요? 병원에 다 들어가 있잖아요. 오늘 수술이 많으셔서 그 기구로는 부족하다는 말씀이실까요?”
나는 다급한 간호사의 목소리에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내용을 물었다.
- 아니요. 그거 아니고, long nail로 필요해요. 환자 엑스레이 사진으로 볼 때는 가능했는데, 지금 수술 들어가서 확인하니까 환자 상태가…….
그녀는 내게 환자의 상태를 읊기 시작했다.
써전은 수술실에서 집도를 시작했기에 나와 직접 통화를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간호사는 수술실 안에서 한 이야기를 내게 전달할 뿐이었다.
이미 수술은 시작했고, 환자의 상태가 심각하다 보니 중간에 새로운 수술 기구가 추가로 필요한 모양.
내가 기구를 당장 넣어주지 못한다면, 환자는 급히 응급조치만 마무리한 후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어야 한다.
병원에 있는 기구 말고 다른 기구가 급히 필요한 상황인 듯 보였다.
“선생님. 저 지금 사무실 근처라서 바로 챙겨서 병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 네.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토요일 오전까지는 근무하는 병원이 많다.
그렇기에 병원에서 전화가 오는 일이 가끔 있는 편.
하지만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 병원에서 이 일로 수술이 딜레이되어 아직까지도 수술을 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내가 기구를 넣어주지 않으면 수술이 중단되어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서둘러 사무실로 향했다.
한 사람의 생사가 오가는 가운데, 지금 휴무라는 게 내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 * *
나는 사무실에서 급히 기구를 챙겨 동명 정형외과로 출발했다.
이미 수술이 시작한 뒤, 나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이 얼마나 급박한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보통 급하게 병원에 들어가야 한다면, 차보다 빠른 오토바이 퀵을 쓰고는 한다.
하지만 혹여나 퀵 기사의 실수로 기구가 떨어지거나,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직접 납품을 가는 편이다.
동명 정형외과 입구로 들어와 주차장에 차만 주차를 하고 들어가면 상황 종료.
나는 서둘러 핸들을 꺾어 최대한 입구와 가까운 주차장으로 향했다.
빈자리를 확인하고 후진 기어로 바꾸고, 후진하는 그 순간.
퍽.
젠장.
접촉 사고다.
하필 이럴 때.
내가 차를 후진으로 주차하고 있을 때, 주차되어 있던 차가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와 부딪친 것.
나는 급하게 주차 기어로 변경 후, 차에서 내렸다.
상대방 차주도 나와 거의 동시에 차에서 나왔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제일 먼저 접촉 사고가 난 쪽을 확인했다.
범퍼가 찌그러지거나 후미등이 깨지지도 않은 아주 경미한 사고였다.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허리를 펴고 상대방 차주를 바라보았다.
그는 한눈에 보아도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보였고, 차림새를 보니 환자로 온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나를 위아래로 쓱 훑어보더니 이내 큰소리를 쳤다.
“아니, 운전을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떻게 합니까?”
분명 나는 상대 차가 시동을 끄고 있는 것을 확인 후, 비상 깜빡이를 켜고 후진을 조심스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 차가 무슨 일인지 급격히 시동을 걸고 핸들을 꺾어 튀어나왔던 것.
“저는 주차하고 있었고, 제 차를 보지 못하고 튀어나오신 건 차주분…….”
접촉 사고였기에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 이야기하다, 그와의 언쟁이 시작될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말을 이어 가려다 트렁크에 실려 있는 수술 기구가 떠올랐다.
지금 가장 급한 건 병원에 기구를 넣는 것이다.
바로 몇 발자국만 가면 동명 정형외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의료진과 특히 수술대에 올라와 있는 환자는 마취가 되어 있는 상태로 나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터.
나는 그와 마찬가지로 미간을 찌푸리고 눈썹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표정을 풀어내고, 그에게 말했다.
“제가 병원에 급하게 물건을 넣을 일이 있어서 왔는데, 중요한 일이라서요. 빨리 기구만 넣고 와서 마무리 지었으면 하는데…….”
그러자 그는 화가 잔뜩 난 목소리와 눈을 크게 부라리며 내 말을 잘라냈다.
“지금 도망가시려고? 이게 도망간다고 될 일입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바로 입구에 기구만 넣고 오겠습니다. 지금 수술하고 있는 분이 절실하게…….”
그는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이 사고 때문인 건지, 개인적인 일이 있었던 건지 그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는 듯했다.
지이잉.
주머니에서 세차게 울리는 진동.
[발신인 : 동명 정형외과 수술실]
나는 고개를 돌려 휴대전화의 수신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
- 과장님! 어디세요? 거의 다 오신 건가요? 저희 지금 급해요!
수간호사는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동시에 말을 쏟아냈다.
“선생님. 저 지금 병원 입구 앞 주차장인데요. 여기서 접촉 사고가 나서요.”
- 아……. 안 되는데, 저희 진짜 급해요. 기구만 빨리 좀…….
“네. 그래서 지금 바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어요. 2분이면 됩니다. 바로 갈게요.”
- 예. 빨리 부탁드려요.
그때 내 옆에서 언성을 높이는 차주.
“어딜 도망가시려고! 나도 이쪽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딱 봐도 메디컬 사람 같지도 않은데, 도망갈 생각 마시죠?”
토요일 오후.
쉬다가 기구 때문에 급하게 나온 내 옷차림은 전혀 메디컬 업계 사람 같지 않았다.
정장이 아닌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전화를 받았을 당시 옷을 차려입고 올 새가 없었다.
“옷은… 아니, 지금 상황이 급해요. 제가 명함 드리고, 차 시동도 끄지 않고 아주 잠깐만 다녀온다니까요?”
“어디 소속이십니까? 저도 의료 쪽에 아는 사람 많아요. 의사도 아니면서 지금 여기서 의료인인 척하는 겁니까? 글쎄 상황 해결하고 가시라고요!”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
나는 그를 무시한 채 트렁크를 열어 수술 기구를 꺼냈다.
기구는 큰 상자 안에 담겨 있었고, 상자에서 꺼내 그에게 수술 기구를 보여주며 말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나는 그대로 상자를 들고 병원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는 내 어깨를 턱하고 잡고 내게로 몸을 가까이 밀착했다.
그리고 그는 한쪽 입꼬리를 씩 올렸다.
“어? 술 냄새도 나는 것 같은데?”
“술이라니요. 이건 기구 소독 냄새…….”
그때 병원 입구에서 달려오는 간호사.
바로 수간호사였다.
저 멀리서 나를 향해 소리치는 그녀.
“과장님!”
나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팔을 뿌리친 채 그녀에게 다가갔다.
“죄송해요. 여기 정리가 안 돼서… 기구 여기 있어요. 들고 가실 수 있죠?”
“네, 감사해요. 고생하셨습니다, 과장님.”
그녀는 내가 들고 있는 기구를 양손으로 받아 든 후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 옆에 있는 남성을 바라보며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어? 보호자분!”
* * *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말 죄송합니다.”
수술실 앞.
나를 향해 허리를 연신 접는 이 사람.
바로 나와 접촉 사고가 났던 상대 차주다.
수술은 내가 기구를 넣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무사히 끝났고, 담당 의사도 이 앞을 지나갔다.
“안에 장모님이 수술 중이셨는데, 수술도 길어지고 제가 개인적인 일까지 있어서 눈이 돌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보다 연배가 한참 되어 보이는 그.
그는 주차장에서의 일을 사과하며 계속해서 허리를 접었고, 옆에 있던 그의 아내까지 내게 고개를 숙였다.
이미 상황 설명은 그에게 몇 차례를 들었고, 이 부부가 내게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조아린다고 해서 내 기분이 좋아질 일은 없었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내게 계속해 이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졌다.
내 길을 막으며 의심했지만, 그보다 더한 일을 한 것은 아니었기에 말이다.
나는 그의 허리를 일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오해였다고 하시고, 사과도 이 정도 하셨으니 됐습니다.”
“아까도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저는 음주 운전을 한 뒤 도망가시는 줄 알고…….”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 했던 이야기.
술 냄새였다.
나는 탄식을 내뱉으며 답했다.
“술 냄새… 소독한 기구를 들고 있어서 그 알코올 냄새를 술 냄새로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의료계 계통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 쪽은 소독하는 일이 없어 제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연신 눈썹에 힘을 주고 있던 그는 이제 눈썹을 팔자로 내리고 눈을 깜빡였다.
“장모님께서 급히 수술이 생겨 서울에서 바로 내려왔거든요.”
그리고 명함 지갑을 꺼내어 내게 명함을 한 장 건넸다.
“저는 서울에서 메디컬 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가 건넨 명함을 눈앞까지 들어 올려 확인했다.
로보틱스 메디컬 대표.
로보틱스라면?
들어본 적이 있는 회사다.
오래되거나 메디컬 쪽 대기업 회사는 아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메디컬계에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회사였다.
관절 수술 로봇을 만든 회사로, 조금씩 입지를 쌓아가며 상장 중인 회사로 알고 있다.
명함을 본 내 눈이 커지자, 그는 내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혹시 어디 메디컬에 계십니까?”
그의 밝은 표정에 나는 턱을 당겨냈다.
그리고 명함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광주 메디컬에서 근무 중입니다.”
로보틱스 메디컬 대표는 내 명함을 받으며 입을 벌렸다.
“아! 광주 메디컬 민지훈 과장님이셨군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되물었다.
“저를 아십니까?”
“예, 그럼요.”
광주 사람도 아닌, 서울에 있는 메디컬 대표가 나를 알 리가 있나?
나는 미심쩍은 마음에 눈을 작게 치켜뜨고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를 어떻게…….”
“혹시 저희 로보틱스 메디컬에서 개발한 관절 로봇 알고 계실까요?”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예, 들어봤습니다. 광주 쪽에서도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었고요.”
“정말요?”
그는 지금껏 봐온 얼굴 중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저희는 계속 개발만 하던 작은 기업이었습니다. 이번 개발에 성공 후 영업 쪽이 발달 되지 않아 서울 근교에만 판매하던 중이었거든요.”
나는 그의 말에 경청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광역시들 쪽으로 영업해 볼까, 하는 생각에 각 지역에서 메디컬계를 좀 조사했었습니다. 그러다가 광주 메디컬도 알게 되었고, 민지훈 과장님도 알고 있었습니다.”
“저를 어떻게…….”
“저희가 기존 제품들과는 달리, IT 로봇계의 제품이 많다 보니 젊은 분 중 영업에서 내로라하시는 분들로 찾고 있었습니다. 그중 광주 메디컬이 광주 내에서 입지가 다져졌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광주 메디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곳에 민지훈 과장님이 영업력이 뛰어나시다는 걸 듣게 됐습니다. 성이 특이하셔서 외우고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저희 회사에서 조만간 컨택을 하려고 했었거든요.”
그는 급히 차로 달려가 내게 관절 로봇 카탈로그를 내밀며 기기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나 역시 관심 가지고 있던 분야였기에, 흥미로운 마음으로 그의 설명에 집중했다.
그렇게 그와 자리에 앉아 대화를 주고받으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과장님. 말씀드렸다시피, 저희가 지금 광역시에 총판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 제품을 지속적으로 파셔야 하는 것도 아니고, 관절 로봇인데 총판을 찾으시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총판은 본사에서 여러 작은 업체를 관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만들어 두는 중간 다리 역할 같은 것이다.
총판을 맡게 된다면 무조건 우리 회사를 통해 물건을 사야 하기에, 우리가 중간 마진을 남겨 먹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잘 나갈 물건의 총판을 맡게 된다면 앉아서 돈을 버는 셈.
하지만 관절 로봇은 지속적으로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비싸게 기계 하나를 사고 나면 고장 날 때까지 쓰는 것.
총판에서는 물건을 팔아야 돈이 남기 때문에, 굳이 총판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저희 관절 로봇은 부품을 지속적으로 교체해 주어야 합니다. 더불어 저희는 광역시마다 총판을 찾는 중이 아닙니다. 전국에 총판을 단 한 군데만 지정하려고 합니다.”
“예? 전국에 한 군데요?”
“네. 서울, 경기 쪽은 저희 본사에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지만, 그 아래로는 저희의 손이 닿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는 개발에 힘을 쓰는 회사다 보니……”
그리고 그는 새로운 종이 묶음을 꺼내 내게 건넸다.
종이를 펼쳐 본 순간, 내 눈동자가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