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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85화 (185/339)

185화

모던 정형외과 박승호 원장은 내 앞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WG 메디컬에서 모두 인정했다.”

나는 그의 말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박 원장에게 되물었다.

“예? 그럼 WG 메디컬에서 유효 기간을 속여서 물건 팔았던 게 맞았다는 말씀이세요?”

모든 의심이 확실시되는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WG 메디컬 김윤중 대표가 왜 그런 짓까지 한 거지?

대체 왜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진 거지?

정말 그 이유가 돈 때문인 건가?

나는 박 원장의 이야기에 그 짧은 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김 대표가 유효 기간을 속여, 박스 갈이를 했다고 예상했을 때에도 설마 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픈 환자에게 사용하는 의료 기기, 의료 계통에서 종사하는 사람이, 게다가 대표라는 사람이 돈 때문에 그런 짓까지 벌일 수 있다는 걸까.

박 원장은 내 물음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게. 안 믿기지? 나도 민 과장이 이야기했을 때, 설마 싶었는데……. 게다가 안 원장님도 설마 하면서 물건 본사에 전화해서 의뢰해 보셨다고 하더라고.”

“아…….”

WG 메디컬 김 대표의 담당 의사가 바로 모던 정형외과의 안국환 원장이다.

외에도 많은 의사가 WG 메디컬에서 담당하고 있지만, 대표적인 원장은 안 원장이지.

그 역시 내가 제보했던 유효 기간 건에 대해서 조사를 샅샅이 한 모양.

“그럼 안 원장님이 조사하신 후에 바로 WG 메디컬에서 인정을 한 겁니까?”

“아니. 끝까지 발뺌했다고 하더라. 민 과장이 말한 대로 국가에서 인증한 자료를 증거로 보여줬고, 안 원장님이 본사에서 의뢰한 자료까지 내미니까. 그제야 인정한 거지. 그 자료들을 내미는데 어떻게 발뺌하겠어.”

“하… 정말 유효 기간 속여서 물건을 팔았다는 게 맞다 하니, 찾아내서 다행이긴 한데 같은 업계 종사자로서 마음이 좀 그렇네요.”

그는 내 말에 아무런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썹을 내리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박 원장은 내가 WG 메디컬에서 근무했던 것을 알기에, 내 마음을 헤아려 주는 했다.

“그럼 WG 메디컬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 답했다.

“안 원장님이 그래도 지내온 세월과 정이 있으니 신고는 안 한다고 하셨나 봐. 오늘 물건은 전량 회수해 갔고…….”

박 원장은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신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가지고도 병원 내에서 말이 많았는데, WG 메디컬 김 대표 말처럼 붕대 사용한 환자한테도 아무 이상도 없었고 그래서 이번에는 넘어가기로 했어.”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박 원장은 자신의 양손으로 깍지를 끼고, 팔꿈치를 책상 위에 얹으며 말했다.

“이번에 민 과장 아니었으면 우리 병원 큰일 날 뻔했어. 임플란트도 모르고 썼다가 나중에 유효 기간 지난 거 알게 됐어 봐. 환자 몸에 이미 들어갔으면, 후……. 뒷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게요. 그제야 환자 몸 다시 열어서 뺄 수도 없는 일이고 말입니다.”

“안 원장님께서 민 과장한테 엄청나게 고마워하고 계셔.”

나는 박 원장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다른 메디컬 직원이 창고에서 그 물건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저처럼 원장님께 말씀드렸을 겁니다.”

“그랬으려나? 하지만 민 과장처럼 애초에 발견을 못 했을 것 같은데?”

“제가 대단한 일 한 것도 아닌데요. 민망합니다.”

그는 내 말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니야. 정말 큰일 했어. 안 원장님께서도 고마워서 민 과장한테 WG 메디컬에서 받던 물품 그대로 광주 메디컬로 발주하고 싶으시다네?”

나는 그의 말에 놀라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예? 전 품목을요?”

WG 메디컬에서는 안 원장과 다른 원장들에게 많은 물건을 납품하고 있었다.

내가 WG 메디컬에 있을 당시에도 영업했던 물품들이 꽤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광주 메디컬로 옮기고 나서는 모던 정형외과의 담당 원장님과 병원에 들어가는 품목이 WG 메디컬과 나뉘게 되었다.

그래서 WG 메디컬에서도 모던 정형외과 매출이 우리 광주 메디컬과 나누어지게 되자, 공격적인 영업을 했다고 들었다.

그 결과, WG 메디컬에서 모던 정형외과에 많은 품목을 늘리게 되었고, 그들이 넣고 있던 품목의 종류는 수십여 가지가 된다고 들었다.

“응. 어차피 WG 메디컬에서 받던 물건들을 다른 메디컬에 발주해야 하잖아. 그걸 여기저기 나눌 바에, 차라리 광주 메디컬에서 전부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하셨나 봐. 민 과장이 그걸 찾아내 줬고.”

“그렇지만, 제가 WG 메디컬 물건을 빼앗고 영업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괜히 제가 그것 때문에 꼬투리 잡으려고 한 것처럼 보일까 걱정됩니다.”

그는 내 말에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아니, 그런 걱정은 마. 민 과장 아니었으면 더 큰일이 났을 거야. 그리고 안 원장님이랑 다른 원장님들도 민 과장한테 고마운 마음에 무작정 발주하실 분들은 아니셔.”

그는 손짓으로 제스처를 취하며 말을 이어갔다.

“이 업계에서 나보다 훨씬 더 오래되신 베테랑들이시잖아. 이미 김 원장, 이 원장이 민 과장한테 물건 받고 있었으니까. 단가랑 품질 알고 계셨으니까 광주 메디컬로 택하신 거야.”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면 다행입니다”

“예전에도 몇 번 이야기하셨었어. 그런데 WG 메디컬 때문에 못 바꾸셨던 거지. 거기랑 무슨 인연이 있으신지는 몰라도 관계가 있으셨었나 봐.”

나는 그의 말에 머리를 끄덕였다.

“아무튼, 민 과장이 우리 모던 정형외과 전체 담당하게 생겼네? 내가 다 기쁘다.”

“저도 정말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나 역시 박 원장과 김 원장, 이 원장에게 품목을 늘렸지만, 확실히 병원 전체를 담당으로 넣을 때와는 매출 금액이 현저히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 WG 메디컬에서 넣던 물건들까지 내가 가지고 온다면 그 매출은 가히 상당할 것이다.

나는 모던 정형외과 전체를 담당하게 되어 기뻤다.

내 손으로 WG 메디컬을 밀어내고 모던 정형외과를 차지하게 되었다면 조금 마음이 안 좋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작은 욕심에 눈이 멀어 큰 것을 놓친 것.

자신들이 직접 화를 불러온 것이지.

내가 영업했던 이 병원을 다시 찾아왔다는 사실에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나도 가끔 다른 품목 필요할 때도 있었는데, 다른 원장님들이 물건 공급실에 넣어두시면 이것저것 써 볼 수 있겠다.”

“그러시겠네요. 원장님들마다 선호도가 많이 다르지 않습니까?”

“맞아. 특히 우리 원장님들은 나이대도 많이 다르시잖냐. 좋아하는 품목이 워낙 달라야 말이지. 민 과장도 공급실 가봐서 알겠지만, 우리 물품 종류가 다른 병원보다 꽤 많지?”

모던 정형외과는 타 병원들과 달리 원장님들의 나이대가 무척 다양한 편이다.

가장 젊은 의사인 김사랑 원장부터, 가장 연로한 안국환 원장까지.

게다가 모던 정형외과가 광주에서 실력으로 유명한 병원인 만큼 병원에 있는 의사들은 각자 타 병원에서 한 실력 하던 분들이다.

그래서 각자 선호하는 품목 범위가 좁혀지지 않는다.

각자 추구하는 진료, 물품이 확고한 편이지.

공급실, 그리고 수술실에 가보면 겹치는 물건을 오히려 찾기 힘들 정도.

“예. 붕대만 봐도 종류가 꽤 많았던 거로 기억합니다.”

“맞아. 대부분 품목이 그러니까 말이야.”

“그래도 원장님들께서 선호하시는 대로 사용하셔야 환자한테도 쓰기 편하시죠. 제가 원장님들 입맛에 다 잘 맞춰서 넣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내 말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안 원장님 오늘 기분 영 아니시니까, 곧 물건 정리해서 따로 연락 주실 거야. 안 원장님이 물품 정리하신다고 했거든.”

“예, 알겠습니다.”

띠리리.

그때 책상 위에 올라와 있는 병원 전화가 울렸다.

“잠깐만.”

“네, 편하게 받으십시오.”

그는 내 말에 눈을 한 번 깜빡이고는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받았다.

“어. 진료 끝났어? 다른 환자도 마찬가지고? 응. 확실한 거지? 알겠어, 곧 갈게. 안 원장님께는 내가 말씀드릴게.”

박 원장은 짧은 통화를 마치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통화 내용과 눈빛에 곧바로 입을 열었다.

“원장님, 일 있으시면 가셔도 됩니다. 저도 일어나 보겠습니다.”

“응. 나도 지금 가 봐야겠다.”

나는 진료실을 나가기 위해 옆에 있는 가방과 꺼내져 있는 자료를 챙기기 시작했다.

박 원장의 표정이 좋지 않음을 깨닫고 나는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원장님, 그런데 무슨 일 있으신 겁니까? 심각한 일 있으신 거예요?”

내 질문에 그는 쓰읍 소리를 내며 답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긴 한데……. 안 원장님 환자분 말이야.”

나는 그의 말에 정리하던 짐을 그대로 멈춰둔 채로 집중했다.

“며칠 전에 와서 진찰 후에 갑자기 몸에 진물이 났다고 했던 환자가 있거든.”

“진물이요?”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 대수롭지 않았는데, 조금 전에 온 환자도 같은 증상이라고 하네? 오늘만 해도 몇 명이 왔다고 하고.”

나는 박 원장의 말에 덩달아 심각한 얼굴로 답했다.

“그럼 다 같은 수술받았던 환자인 건가요?”

온 환자가 같은 증상.

자칫 잘못하면 병원에 컴플레인이 크게 들어올 수도 있는 일이다.

모든 수술에는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같은 증상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나다니…….

박 원장은 내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니야. 수술한 곳도 다르고, 그저 안 원장님이 진료했다는 거. 오늘 안 원장님 WG 메디컬이랑 한바탕 일이 있었던 후라 휴진하고 계셔서, 김 원장이 환자 대신 보고 있거든.”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말을 하듯 입을 열었다.

“이상하네요. 다른 수술인데 같은 증상이라……. 게다가 환자들이 같이 모여서 있던 것도 아닌데, 상처 부위에 진물이…….”

나는 순간 무언가가 떠올랐고, 말을 하다가 멈춘 채 입을 떡하고 벌렸다.

내 표정을 바라본 박 원장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서둘러 책상 위의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조금 전에 말했던 안 원장님 환자분들 차트 좀 정리해 줘. 바로 갈게.”

박 원장은 수화기를 귀에 댄 채로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났다.

내가 예상하는 것.

WG 메디컬에서 유효 기간이 지난 제품인 붕대.

그 붕대를 안 원장이 환자에게 사용해 같은 증상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박 원장도 나와 같은 생각인 듯, 환자들 차트를 간호사에게 요청한 모양.

그는 통화를 마치자마자 수화기를 내려놓았고, 나 역시 그를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짧게 물었다.

“원장님. 붕대 맞죠?”

내 말에 박 원장은 길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거 같은데, 가서 바로 확인해 보려고.”

“제가 붕대 본사에 문의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는 내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집중했다.

“뭐래?”

“안 원장님이 사용하시는 그 붕대는 약품 처리가 되어 있어서, 유효 기간이 지나면 무조건 폐기 처분 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사용하게 되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요.”

박 원장은 입술을 말아 넣은 채,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하……. 그럼 붕대 유효 기간으로 인한 부작용이 맞겠네.”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WG 메디컬에 김 대표가 붕대 이상 없을 거라더니, 부작용이 맞다면 안 원장님 가만히 계시지 않으실 거야.”

안 원장이 WG 메디컬 김 대표를 신고하지 않은 건, 그 물건들로 인해 환자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대표의 말과는 반대로 환자들에게서 이상 현상이 보이기 시작했기에, 안 원장은 WG 메디컬을 상대로 어떤 대응이든 할 것이다.

박 원장은 일어나 있던 상태에서 내게 시선을 한 번 보낸 후 곧장 진료실 문으로 걸어갔다.

나 역시 그를 따라 진료실을 함께 빠져나왔다.

“원장님. 저도 나가서 붕대 본사에 재차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래. 나중에 다시 연락하자.”

“네, 고생하십시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한 번 올려놓은 후, 곧장 진료실을 나와 반대편으로 급히 걸어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 * *

모던 정형외과에서 나온 지 10분 정도가 흘렀을 때쯤.

나는 차에 올라타 박 원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던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바로 붕대 본사에 재차 확인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휴대전화 주소록에 들어가 붕대 본사를 검색하던 그때.

화면이 전환되고, 내게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지이잉.

[발신인 : 백승원]

내 기자 친구인 백승원.

그에게 연락이 오는 화면을 보고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백승원에게 전화가 온다는 것은 그저 평범한 안부 전화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근무 시간에 오는 전화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메디컬계 기자이기 때문에 나와 관련된 병원 일이나 혹은 병원에서 무슨 일이 터졌을 때 연락을 하고는 했다.

그래서 나는 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에 수신 버튼을 꾹 눌렀다.

“여보세요?”

- 지훈아, 어디야?

그의 다급한 목소리.

무슨 일이 터진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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