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박승호 원장의 목소리에 나는 의자에 기대고 있던 몸을 황급히 일으켰다.
그의 대답을 듣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초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전화벨 소리가 울릴 때부터 내 심장은 요동쳤다.
- 민 과장. 듣고 있나?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생각에 잠겼고, 박 원장은 나를 재차 불렀다.
“아! 네, 원장님. 듣고 있습니다.”
- 자네가 말한 인공 관절 임플란트 유효 기간 말이야.
“네, 벌써 확인 끝난 겁니까?”
- 응. 품목들이 몇 개 있어서 생각보다 간호사가 시간이 좀 걸렸어. 근데, 민 과장이 말한 임플란트들은 전부 시리얼 넘버랑 유효 기간이 불일치해.
내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진짜로 WG 메디컬에서 유효 기간을 조작한 것.
상자의 시리얼 넘버는 건드릴 수가 없다.
제조사에서 시리얼 넘버가 찍혀져 나온 것이기 때문.
그래서 그 넘버는 그대로 둔 채, 자신들이 임의로 유효 기간을 가짜로 만들어서 찍어 냈던 것.
예상을 하고 박 원장에게 말을 한 것이지만 이게 실제로 맞아떨어지다니.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나는 한숨을 내쉰 후 박 원장에게 물었다.
“원장님, 그럼 그 시리얼 넘버로 검색했을 때 진짜 유효 기간은 언제까지인 겁니까?”
- 유효 기간…….
그는 내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혼잣말을 내뱉듯 말을 읊조렸다.
그리고 탄식을 내뱉으며 답했다.
- 유효 기간이 지난 것도 있고, 며칠 남지 않은 것도 있었어. 근데 그 제품들 전부 다 한참 남은 유효 기간으로 새로 찍었더라고.
“대체 왜…….”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박 원장 역시 황당하다는 기색이 역력한 말투로 답했다.
- 이해가 안 된다. 유효 기간 지난 제품을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넣는 거지? 민 과장, 우선 나 담당 원장님들한테 좀 알려야 할 것 같아. 다음에 다시 연락할게.
“예, 알겠습니다.”
- 그래. 알려줘서 고맙네.
“아닙니다.”
그와의 전화를 끊은 후 나는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정말 왜 그랬을까?
유효 기간을 이렇게 바꾸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예상가는 것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돈.
바로 돈이지.
유효 기간이 만료되면 그 제품은 폐기 처분을 해야 한다.
음식도 마찬가지로 유효 기간이 지난 제품은 먹지 않는다.
왜냐, 먹고 탈이 나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료 기기, 즉 아픈 환자에게 사용해야 하는 수술 기구가 유효 기간이 지난다면?
그 역시 폐기 처분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의료 기기는 금액이 상당하다.
소모품의 경우 적게는 몇백 원, 몇천 원을 하는 물건들도 있다.
그에 반해 수술 기구, 특히 인공 관절 임플란트 같은 경우에는 한 제품당 금액이 몇십만 원, 몇백만 원 하는 물건이 수두룩하다.
그 제품을 폐기해야 한다는 건, 그 돈을 버리는 셈.
그 돈이 아까워 자체적으로 재소독 후 유효 기간을 바꿔 병원에 판매했다는 건데…….
대체 왜 그렇게까지 위험한 짓을 했을까 하는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나 김 대표는 이 메디컬 바닥에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사실이 불법인 것을 떠나 위험하다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생각도 내 추측일 뿐.
진짜로 김 대표가 왜 이런 일을 벌인 것인지 당사자에게 듣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 * *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사무실로 출근하니 이미 도착해 있는 박수진 주임과 신입 사원 주우진.
사무실에는 그 둘만이 자리해 있었다.
그들과 가벼운 인사를 마친 후, 나는 내 자리로 가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오전에 병원과의 일이 있던 나는 서둘러 서류 작업을 해야 했다.
모니터의 엑셀 화면에 집중하던 그때, 내 앞을 지나가는 주우진.
그는 한 손에 무언가를 든 채 내 앞을 지나갔다.
내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시야에는 그의 움직임이 다 들어왔다.
주우진은 내 앞쪽을 지나 박 주임 자리 앞에서 멈췄다.
사무실에는 우리 셋뿐이었기에, 내 귓가에는 똑똑하게 그들의 대화가 들렸다.
“주임님. 이거…….”
“이게 뭐예요?”
“마카롱이요.”
“마카롱인 건 아는데, 이걸 왜 주시는 거예요?”
“아… 여기 마카롱이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집 앞에 있는 가게인데, 오다가 샀어요. 여기 마카롱 유명하던데, 혹시 아세요?”
나는 살짝 눈동자를 굴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박 주임은 눈을 크게 뜨고는 고개를 들어 주우진을 바라보았다.
“어? 이거 그 마카롱 집이네? 여기 엄청 유명하잖아요. 나 여기 거 먹고 싶었는데, 줄 안 서면 못 먹는 곳이에요. 그래서 매번 솔드 아웃 돼서 못 먹었었는데!”
“정말요? 저는 집 앞이라 살 수 있어서……. 주임님 드세요.”
“잠깐만요. 근데 지난번 회식 때, 우진 씨 집 이 근처 아니었던 거 같은데? 우진 씨 집은 여기 마카롱 가게랑 반대 아니에요?”
그녀는 눈에 힘을 주고 주우진을 쏘아보며 물었고, 그는 그녀의 말에 어깨를 들었다 내려 놓으며 동문서답을 했다.
“네? 무슨……. 아! 이거 맛이 황치즈랑 블루베리, 그리고 뭐더라? 아무튼, 맛있게 드세요!”
“민 과장님!”
그때 박 주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조용하던 사무실이었기에 그녀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나는 그녀의 말에 놀라 모니터 위로 턱을 치켜들며 답했다.
“네?”
“과장님, 이거 드시고 하세요. 마카롱인데, 우진 씨가…….”
그녀는 내게 마카롱을 권했고, 주우진은 박 주임 옆에 서서 그녀의 말을 잘라냈다.
“아! 과장님. 오셔서 커피 드셨어요? 제가 커피 드릴게요.”
그는 박 주임에게 준 선물이 내게 오는 것을 원치 않는 모양.
“괜찮아요. 커피 제가 챙겨 마실게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주우진에게 답했다.
박 주임은 주우진의 말뜻을 이해했는지, 못했는지 마카롱을 들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탁.
웅성대는 소리와 함께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좋은 아침!”
“안녕하십니까.”
손지혁 차장과 신입 사원 권성훈, 그리고 한태준이 시끌벅적 소리를 내며 함께 사무실로 들어왔다.
나는 그들을 향해 인사한 뒤 이야기했다.
“어떻게 다 같이 들어오십니까?”
내 말에 손 차장은 고개를 문 뒤쪽으로 까딱이며 답했다.
“방금 주차장에서 만났어.”
손 차장은 내 말에 대답을 하고는 제자리에 서 있는 박 주임을 바라보았다.
“어? 뭐야? 박 주임, 나 주려고 서 있는 거야? 그게 뭐야?”
손 차장의 말에 옆에 있던 한태준과 권성훈은 그와 함께 박 주임에게 다가갔다.
“오, 마카롱? 많이도 사 오셨네요?”
한태준은 박 주임이 들고 있는 상자에 손을 뻗으며 말했다.
“이거 주우진 씨가 사 온 거예요.”
그녀의 말에 박 주임 앞에 있던 세 명의 남자들은 모두 고개를 돌려 주우진을 바라보았다.
“뭐야, 왜 박 주임님만 주는 거야? 내 거는?”
한태준은 곁눈질로 주우진을 쏘아보며, 농담 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손 차장은 한태준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왜겠어. 젊은이들 일에 우리는 빠지게 나와.”
손 차장은 능글맞은 표정과 말투로 한태준에게 말했고, 그 말을 들은 한태준은 곧바로 손 차장에게 답했다.
“아이, 차장님. 저도 이쪽이랑 맞는 젊은이입니다! 하지만 이런 장르라면 빠지겠습니다. 하하.”
그들의 말에 박 주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이거 얼른 하나씩 드세요. 딱 개수도 저희 하나씩 먹으면 끝나겠네요. 자, 여기!”
그녀는 상자에서 마카롱을 하나씩 꺼내, 직원들에게 강제로 하나씩 손에 쥐여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개를 들고 내게 걸어오는 박 주임.
“과장님, 이거 드세요.”
박 주임은 뾰로통한 얼굴로 내 책상 위에 한 개만 남은 마카롱 상자를 올려놓은 뒤 곧장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는 모니터를 바라보고, 타자를 세게 치며 말했다.
“그리고 주우진 씨랑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그녀의 말에 주우진은 머쓱한 얼굴로 억지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맞습니다. 그런 거 아닙니다. 제가 그냥 박 주임님께 드리고 싶어서 사 온 거예요.”
그의 말에 손 차장과 한태준, 그리고 권성훈의 표정은 더욱 능글맞아졌다.
“아… 우진이 마음 알겠어. 하하.”
한태준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하고는 권성훈의 몸을 밀며 자리로 돌아갔다.
주우진.
회식 때부터 박 주임에게 남자 친구의 유무에 대해 묻더니, 정말 그녀에게 마음이 있는 모양이다.
* * *
“안 원장님, 아무래도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착오요? 아니, 김 대표님. 무슨 착오가 있었길래 이렇게 유효 기간 지난 물건을 넣어줍니까? 한 상자만 그런 것도 아니고 이렇게 붕대 전량이 그런 게 착오입니까?”
모던 정형외과의 안국환 원장과 WG 메디컬의 김윤중 대표.
그리고 그 옆에서 양손을 자신의 몸 앞에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최권호 부장.
안 원장은 노발대발하며 손가락으로 붕대를 가리켰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무실에서 직원이 실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장 물건 교환해서 넣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 대표는 눈썹을 팔자로 내리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안 원장에게 답했다.
“직원 실수는 확실한 겁니까? 붕대가 유효 기간이 지난 제품과 고의적으로 섞인 것 같던데요? 그리고 인공 관절 임플란트는 또 어떻고요.”
안 원장의 말에 김 대표는 황급히 앞에 놓인 임플란트를 보며 안 원장에게 말했다.
“임플란트는 여기 상자에 날짜 보시면 아시겠지만, 유효 기간이 지난 게 아닙니다.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것…….”
안 원장은 김 대표의 말을 자르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발뺌 좀 그만하세요, 김 대표님. 제품마다 유효 기간 확인했습니다. 상자에 적힌 유효 기간과 의료 기기 안전본부에 보고된 유효 기간이 다르던데요?”
“…….”
그 종이를 본 김 대표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런 김 대표에게 말을 쏟아붓는 안 원장.
“김 대표님, 이거 범죄예요. 아시죠?”
잠시의 침묵이 흘렀고, 김 대표는 생각 정리를 마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제야 김 대표는 옆에 서 있던 최 부장과 함께 허리를 접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원장님.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물건은 당장 교환해서 새 제품으로 넣겠습니다.”
“저 진짜 배신감 듭니다. 믿고 물건 받고 있는데 이러시는 거 아니죠.”
“면목 없습니다. 물건 바로 다시 넣어드리고, 단가도 전량 대폭 낮추겠습니다.”
급하게 태세 전환하는 WG 메디컬 김 대표.
그의 태도에 안 원장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실소를 터트렸다.
“이렇게 환자 몸에 사용하는 의료 기기로 장난질하는 업체랑은 더 이상 일 못 하지.”
안 원장의 말에 김 대표는 허리를 펴, 다시 자리에 앉아 이야기했다.
“인공 관절 임플란트는 유효 기간이 막 지난 겁니다. 저희가 재소독해 놓은 상태라 사용해도 아무 문제 없을 거고요. 하물며 붕대는 몸 밖에 사용하는 거라 전혀 이상 없을 겁니다.”
“이상이 없다고요?”
“예. 붕대는 아시다시피, 상처에 거즈를 댄 후에 감싸기 위해 사용하는 제품이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문제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정말 사죄드립니다. 물건은 바로 교환 조치하겠…….”
“그럴 필요 없습니다. 물건은 지금 바로 정리해서 다 반품하겠습니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단호하게 답하는 안 원장.
그의 태도에 김 대표는 더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에게 말했다.
“저… 원장님. 혹시 식약처에 신고는…….”
와중에도 신고 걱정을 하는 그의 태도에 안 원장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환자한테 쓴 건 없는지 걱정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벌금 걱정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환자한테는 아무 이상 없을 겁니다. 임플란트는 아직 사용 안 하셨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저희 거래해 온 기간, 그동안 봐온 정이 있는데,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안 원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으로 나가라는 제스처를 하며 대답했다.
“예. 그동안 옛정을 생각해서 신고는 하지 않을게요. 얼른 정리하고 나가세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김 대표와 최 부장은 그에게 연신 허리를 접은 후 그 자리를 벗어났다.
* * *
점심 식사가 끝나고, 회사에서 지정된 점심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모던 정형외과로 출발했다.
박승호 원장이 급히 호출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었고, 나는 이미 주문해서 나온 음식을 폭풍 흡입하여 먹어치운 뒤, 차에 올라탔다.
정확한 용건은 듣지 못했지만, 아마도 WG 메디컬의 물품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그에게 알려주긴 했지만, 나와는 이제 관계가 없는 WG 메디컬.
하지만 내가 그 회사에 근무도 했었고, 생각보다 커진 일 때문에 다급히 나를 찾는 것 같았다.
똑똑.
“원장님! 안녕하십니까.”
박 원장의 부름에 급히 달려온 나.
하지만 박 원장은 무슨 일인지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진료실 문을 여는 나를 보고, 손바닥을 뻗어 전화를 받고 있음을 표한 뒤 의자를 눈으로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의자에 앉아 그의 전화가 끝나길 기다렸다.
무슨 일인지 통화를 하는 박 원장의 목소리가 꽤 심각했다.
“뭐? 알겠어. 우선 그 진료 끝나는 대로 전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