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83화 (183/339)

183화

나는 WG 메디컬의 임플란트가 담긴 큰 상자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하나씩 임플란트를 꺼내 확인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모던 정형외과 공급실 간호사.

그녀는 내 옆에서 입으로 쓰읍 소리를 내며 나를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과장님. 제가 정확히 몰라서 아직 원장님께 보고는 안 드렸는데요. 과장님도 WG 메디컬에 계셨잖아요.”

“예, 그렇죠.”

“근데 임플란트가 좀 이상한 거 같지 않아요?”

나는 눈으로는 임플란트 상자들을 바라보고, 귀로는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이상하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서둘러 임플란트를 자세히 보았다. 그중 포장이 멀쩡한 제품과 상자, 그리고 겉 비닐에 훼손이 있는 제품을 나눴다.

우선 훼손이 되어 있는 제품을 하나씩 열어 보니, 내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유효 기간.

그 숫자를 보자마자 나는 휴대전화를 열어 날짜를 확인했다.

소모품과 마찬가지로, 이 제품들 역시 아직 유효 기간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 한 가지.

상자가 훼손된 제품들만 유효 기간 표시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마치 일부러 찍어낸 듯.

나는 옆에 있는 겉 비닐 포장까지 완벽한 상자의 유효 기간 글씨와 곧장 비교해 보았다.

바로 옆에 두고 비교해 보니 정확히 알 수 있었다.

훼손된 제품에 찍혀 있는 유효 기간은 WG 메디컬에서 다시금 찍어 냈다는 것을.

숫자의 글씨체도, 포인트도 달랐다.

유통 회사에서 가끔 범죄 행위처럼 뉴스에 오르는 ‘박스 갈이’라는 말이 있다.

물건의 유효 기간이 지났거나, 물건을 바꿔치기하기 위해서 하는 박스 갈이.

말 그대로 물건을 원래의 상자가 아닌, 다른 상자로 바꿨다는 뜻이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좋은 이유로 한 행위는 아닐 것이다.

유효 기간이 새로 찍힌 임플란트들은 본사에서 새로 찍은 게 절대 아닌 것 같았다.

본사에서 새로 유효 기간을 찍어 내려 보내준 물건들이라면 겉 포장까지 완벽히 되어 있었을 테니까.

이건 임의로 바꾼 것이 분명했다.

“이거 이상하네요.”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그렇죠? 원래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얼마 전에 WG 메디컬에서 임플란트를 이렇게 넣어주셨더라고요.”

“그래서 아무 말은 없던가요?”

“제가 물어봤는데, 제일 안에 임플란트 속 포장만 소독 잘 되어 있으면 사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녀는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며 내게 말을 이어 갔다.

“제가 모던 정형외과에서만 일한 게 몇 년인데, 어떤 메디컬 회사에서도 이렇게 임플란트 넣어 줬던 적이 없거든요. 근데 WG 메디컬에서 이상이 없다고 하니까, 맞겠지 싶으면서도 혹시 몰라서 민 과장님께 여쭤보는 거예요.”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담당 메디컬에서 이상이 없다고 했으니, 직접 물어본다고 한들 다른 대답이 나오지는 않겠죠.”

“네. 아무래도 물건이 훼손된 게 이상한데, 사실 어떤 게 이상한지는 딱히 모르겠더라고요. 아무리 봐도 속포장은 그대로라, 이상이 없는 게 맞을 수도 있어서요.”

나는 휴대전화를 그녀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이거 사진 좀 찍어 가도 될까요?”

그녀는 내 물음에 눈을 몇 번 깜빡이고는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그럼요!”

나는 수차례 임플란트 사진을 찍은 뒤 공급실에서 빠져나왔다.

아무래도 간호사와 내가 생각하는 이상한 점이 다른 것 같았다.

간호사는 물건 임플란트 포장 상태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유효 기간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박스 갈이처럼, 유효 기간이 지난 임플란트를 재소독해서 재포장한 것이라면?

그렇게 한 후에 겉에 유효 기간을 임의로 적은 것이라면?

이건 범죄 행위다.

나는 찍어온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똑똑.

“안녕하십니까.”

“민 과장 왔어?”

박승호 원장의 진료실.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되자마자 나는 그의 진료실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네. 요즘 많이 바쁘시네요, 원장님.”

“그러게. 어제도 진료 늦게 끝나서 말이야. 이틀 연속으로 병원에 왔네?”

“예. 모던 정형외과는 매일 와도 만나 뵐 분이 많아서 좋습니다. 하하.”

“얼른 앉아서 이야기하지. 든 것도 많네.”

그는 내 양손 가득 들려 있는 샘플을 바라본 후 의자에 시선을 고정했다.

나는 샘플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는 의자에 앉았다.

“어제 김 원장님한테도 샘플 보여드렸었는데…….”

그는 내 말에 손가락을 튕기며 답했다.

“어! 안 그래도 김 원장이 어제 나 진료 끝나고 나니까 찾아와서 샘플 보여주더라고. 괜찮은 것 같다면서.”

김사랑 원장이 어제 내가 보여준 샘플을 박 원장에게 소개한 모양.

“그럼 설명도 들으신 겁니까?”

“어. 설명은 따로 안 해줘도 되고, 물건 관련해 궁금한 게 있어서…….”

그와 나는 앞에 놓인 샘플을 이리저리 만지며, 질문과 대답을 반복했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쏟아낸 후, 나는 그에게 다른 주제를 던졌다.

“원장님.”

“어. 민 과장.”

“WG 메디컬 물건 말입니다…….”

나는 그에게 WG 메디컬 물건에 관한 이야기하기로 결심했다.

박 원장을 만나러 들어오기 전.

나는 인공 관절 임플란트 제조사에 문의 전화를 했다.

유효 기간에 대해, 임플란트 포장에 대해서 말이다.

본사에서는 임플란트를 유효 기간이나 포장 훼손에 의해 교환을 하게 되면, 정상적인 새 제품으로 교환해 준다고 했다.

더불어 유효 기간 글자의 글씨체가 달라질 일은 절대 없다는 것도 확인했다.

공장에서 직접 찍어 내기에 글씨체가 다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공급실에서 보았던 WG 메디컬 제품들은 일반 새 제품과 달리, 상자가 훼손되어 있고 속 포장에 유효 기간도 다르게 찍혀 있었다.

어떤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제조사와의 통화를 통해 WG 메디컬이 자체적으로 박스 갈이를 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모던 정형외과에는 원장의 수가 많다.

내가 WG 메디컬에서 근무할 당시, 모던 정형외과는 모두 내 담당이었다.

하지만 WG 메디컬에서 퇴사를 할 때, WG 메디컬은 내가 병원을 갖고 나가지 못하게 했었지.

광주 메디컬로 이직한 이후 나를 따라 메디컬 회사를 바꿔준 사람은 박승호 원장과 김사랑 원장, 그리고 이동석 원장뿐이었다.

같은 모던 정형외과의 안국환 원장과도 교류가 있었으나 안 원장은 내가 아닌 WG 메디컬과 지속해서 관계를 이어 오고 있다.

모던 정형외과에 현재 들어오는 WG 메디컬 물건은 안 원장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당연히 안 원장에게 달려가 이야기해 줘야 하는 것이 맞는 일.

하지만 지금 내가 안 원장을 찾아가 이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그가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지가 의문이었다.

현재 WG 메디컬과 광주 메디컬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모던 정형외과 내부에서도 알고 있기 때문이지.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모던 정형외과에서 가장 친분이 있는 박승호 원장에게 먼저 이야기를 하기로 생각한 것.

“WG 메디컬?”

“예. 안 원장님과 다른 원장님도 모두 쓰시는 거죠?”

“그렇지? 나랑 이 원장, 김 원장 빼고는 WG 메디컬 제품 쓰고 있지. 왜? 무슨 문제 있어?”

“다름이 아니라, 공급실을 갔다가 WG 메디컬에서 납품한 물건을 좀 봤습니다. 소모품과 임플란트에…….”

나는 그에게 어제와 오늘, 내가 보았던 일과 본사를 통해 듣게 된 일을 모조리 털어놓았다.

샘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보다 더 심각하고 더 길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할수록 박 원장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다.

물건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박 원장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민 과장이 직접 안 원장님과 나머지 원장님들께 가서 말로만 이야기했으면, 안 먹혔을 수도 있겠다, 이거지?”

“예. 제가 지금 본사에 문의한 게, 이 물건들을 직접 보내서 확인시켰던 건 아니니까요. 심증은 확실하고, 물증도… 확실하긴 한데. WG 메디컬 물건들이다 보니, 제 마음대로 물건을 빼서 본사에 보내볼 수가 없어서…….”

“하. 내가 말하고 빼 올 수는 있어. 그걸 본사에 보내보면 되는 건가?”

박 원장은 나를 돕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내 말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런데 원장님, 소모품은 그렇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마 정확히 유효 기간 문제가 맞는 것 같고요.”

“임플란트도 포장이 훼손되어 있다면서?”

그는 심각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사실 소모품보다 임플란트가 더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이지.

소모품은 수술이 끝난 후, 환자의 몸 밖에 감는 붕대이다.

하지만 임플란트는 사람 몸 안에 넣는 인공 관절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물건이라면 수술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예, 맞습니다.”

“근데 상자 훼손은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는 거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박 원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말을 자르고 답했다.

“그럼 괜히 태클 걸었다가 밉보일 수도 있어. 안에 들어 있는 인공 관절 임플란트만 멀쩡하면 수술이 가능하니까.”

“그런데 제 생각에는 다른 문제 같습니다.”

“다른 문제? 훼손 문제가 아니라는 거야?”

“네. 아무래도 유효 기간이 지난 임플란트 같습니다.”

“뭐?”

그는 내가 소모품 유효 기간 이야기를 했을 때와는 다른 표정이었다.

훨씬 더 충격을 받은 표정.

그리고 박 원장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은 얼굴로 내게 재차 되물었다.

“유효 기간이 지난 임플란트가 어떻게 들어와? 그리고 민 과장은 그걸 어떻게 알아차린 거고?”

“상자에 유효 기간이 많이 남은 거로 적혀져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 유효 기간이 새로 찍힌 상자는 모두 포장이 훼손되어 있던 상자였습니다. 게다가 본사 측에서는 그렇게 유효 기간을 찍었던 적이 없다고 하고요.”

“확실한 거네.”

“지금까지는요. 그런데 알아보니, 유효 기간이 온전히 지나지 않은 임플란트는 자체적인 소독을 통해 기간을 조금 늘려서 사용 가능하다고 합니다. 합법적으로 본사에서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요.”

“그럼 WG 메디컬에서 자체적으로 소독을 한 것 같다는 거지?”

“네. 그런데 중요한 건… 날짜가 얼마나 지났냐는 거죠. 하루 이틀 정도 지난 것도 사실상 안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없다고 하는데, 혹여나 한참 지난 임플란트라면… 수술 후 이상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확인해 봐야겠네. WG 메디컬에 당장 연락을 해서…….”

나는 WG 메디컬에서 넣어 둔 인공 관절 임플란트가 아직 사용 전이라는 것을 간호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지만, 그 여부는 환자에게 사용하기 전에 꼭 알아내야 한다.

나는 그걸 정확히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냈기에, 박 원장의 말을 잘랐다.

“지금 먼저 확인 가능합니다.”

“응?”

“물품의 시리얼 넘버로 유효 기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내 말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병원에서는 신고를 하지 않기에 원장님이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 시행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요. 메디컬에서는 추적 관리 대상인 인공 관절 임플란트를 모두 국가 사이트에 등록하고 있습니다.”

환자에게 사용하는 것인 만큼, 국가에서는 의료 기기에 대한 추적 관리를 시행한다.

제품이 어디서 제조되었고, 그 제품이 어떻게 유통되는지, 그 제품이 만들어져 환자 몸속에 가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말이다.

즉, 이 물건의 유통 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

박 원장은 내가 말한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그는 내 말에 손가락을 튕기며,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내가 그 생각은 못 했어. 민 과장. 바로 내가 간호사 통해서 확인해 보고 바로 이야기해 줄게.”

“네. 바로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해결 방안 모색을 끝으로 나는 모던 정형외과를 빠져나왔다.

병원에서 나온 뒤, 나는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차에 시동을 걸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마 박 원장이 간호사를 통해 인공 관절 임플란트의 유효 기간을 확인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본 임플란트 상자에 쓰여 있던 날짜.

그것이 진짜인지, WG 메디컬에서 임의로 작성한 것인지만 확인하면 상황은 종료되겠지.

소모품인 붕대를 시작으로 인공 관절까지……. 나는 마음이 복잡했다.

내가 예상한 대로라면 WG 메디컬은 유효 기간을 속이고 물건을 납품한 것이 된다.

아무리 WG 메디컬의 김윤중 대표가 돈을 좋아한다지만, 과연 이렇게까지 했을까?

나는 한때 그의 밑에서 일을 했었고, 그를 믿었었다.

무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금은 그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건은 단순하게 돈으로 사람 마음을 사는 것을 넘어 그 도를 지나쳤다.

한편으로는 내 예상이 틀리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사람 몸에 들어가는, 아픈 환자들에게 사용하는 의료 기기에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인다는 게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는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박 원장의 연락을 기다렸다.

둘 중 어떠한 대답이 나올까.

그리고 잠시 뒤, 휴대전화가 울렸다.

바로 박 원장에게서 걸려오는 전화.

- 민 과장. 말한 거 확인됐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