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80화 (180/339)

180화

나는 원장실 문이 닫히기 전,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황급히 진료실 문을 붙잡았다.

“저 부르신 겁니까, 원장님?”

“응. 잠깐 나랑 담배 한 대 피울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지와 중지를 붙여 입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예, 좋습니다.”

병원 뒤편.

흡연 구역에서 우리는 각자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병원에는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환자가 적어서인지, 흡연 구역에는 아무도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이 넓은 흡연 구역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더본 정형외과의 원장과 나 둘뿐.

그는 나에게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입을 열지 않고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원장이 그저 나와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 나를 붙잡았을 리가 없다.

“날씨가 좋네요, 원장님.”

“그러게. 밖에 나오니까 확실히 맑네.”

그와 나는 각자 하늘을 바라보며 연기를 내뿜었다.

그는 담배를 입에서 꺼내 손에 든 채 나를 불렀다.

“민 과장.”

그는 얼마 피우지 않은 담배를 옆에 있는 재떨이 통에 눌러 불씨를 껐다.

그것을 바라본 나는 그를 따라 곧장 담배의 불을 꺼트렸다.

“예, 원장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내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거 다른 데 알리지는 말고, 민 과장네만 알고 있어.”

비밀스럽게 시작하는 그의 멘트.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그의 입 쪽으로 내 귀를 가져다 댔다.

“더본 제약 말이야. 거기서 의사가 한 명 내려올 거야.”

나는 그의 말에 곧장 귀를 떼 낸 후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입니까?”

본사에서 의사를 지원해 준다는 것은 본사에서 더본 정형외과를 없애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럼 당연히 더본 정형외과가 문을 닫지 않을 것이고, 지원해 준 이상 그 매출을 뽑기 위해 지속적인 투자를 할 것이다.

그러니 현재 광주의 메디컬 회사들에서 돌고 있는 소문은 거짓이라는 뜻이지.

“응. 독고준이라고, 서울에 의사가 하나 있거든. 근데 그 의사가 더본 제약 기업이랑 이번에 손을 잡았어. 아마 곧 내려올 거야.”

어쩐지…….

삼 일 내내 나를 만나지 않던 더본 정형외과 원장이 오늘 나를 만나준 이유가 이거였다.

어젯밤 구체적인 지원 방안이 정해진 게 확실한 모양.

어쨌든, 나는 더본 정형외과가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뛸 듯이 기뻤다.

이미 다른 거래처 대부분은 발을 빼냈고, 그리고 나머지 메디컬도 소문에 의해 더본 정형외과에 물건을 더 이상 납품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이 사실을 유일하게 알게 되었으니,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소식이지.

하지만 여기서 내가 궁금한 점.

대체 이 사실을 원장이 왜 나에게 알려주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많은 메디컬 직원이 왔다 갔을 것인데 유일하게 나에게만 알려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조심스레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원장님. 그런데 그걸 갑자기 왜…….”

그는 내 말을 자르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민 과장이 유일했거든.”

“예?”

알 수 없는 그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나도 알고 있어. 우리 병원, 지금 광주에서 소문이 어떻게 나고 있는지 말이야. 기업에서 우리 손을 놓았다고 소문났다며?”

“아…….”

그도 이미 업계에 난 소문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다들 와서 입금 때문에 물건을 못 넣겠다는 둥, 입금이 언제 되냐는 둥, 그런 소리만 하더라고. 물건 하나 팔려고 애쓰던 시절은 생각 못 하고 말이야.”

그는 주머니에 있던 담뱃갑을 다시 꺼냈다. 그리고 담배를 하나 꺼내어 입에 물며 말을 이어 갔다.

“근데 오늘 민 과장은 와서 나에게 해결 방안을 주고자 의견을 내더라고. 의외였어. 자네도 당연히 입금 이야기, 소문 이야기를 할 줄 알았거든.”

“저는 당연히 병원이 잘돼야…….”

그는 내 말을 들으며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어 갔다.

“이유가 어찌 됐든, 그건 중요치 않아. 힘들 때 이런 게 유독 잘 보이더라. 그래서 나도 민 과장한테만 도움을 주려는 거야. 민 과장이 우리 병원 생각해 주는 것처럼.”

나는 그에게 허리를 접었다.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우리 병원 망할 일 없어. 어떻게든 다시 일으켜야지. 기업 얼굴도 있는데, 그리 쉽게 망하겠나.”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아무 말 없이 어깨를 두드렸다.

* * *

“확실합니다. 제가 원장님께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나는 곧장 사무실로 돌아와 장홍석 사장, 손지혁 차장과 회의실에 자리를 잡았다.

내 말에 가장 놀란 사람은 바로 손 차장이었다.

그는 여러 지인을 통해 더본 정형외과의 소문을 조사했다고 한다.

그가 알아본 결과, 더본 정형외과가 곧 문을 닫는다는 뜬소문은 기정사실화되어 많은 메디컬에 퍼져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손 차장은 내 말이 정확한 것이냐며 몇 번을 되물었다.

“와, 진짜 충격이다. 그럼 그 소문은 대체 뭐지?”

손 차장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연신 까딱였다.

나는 손 차장을 바라보며 답했다.

“아마 그 소문이 사실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일이 바로 어젯밤에 정해진 일 같거든요.”

“음… 그럼 당장 더본 정형외과가 매출이 오르는 건 아닐 수도 있어.”

장 사장은 우리의 대화를 들으며 테이블을 바라보고 혼잣말을 하듯 내뱉었다.

그의 말에 나와 손 차장은 장 사장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냥 기업에서 주는 방안이 서울에서 의사 하나 내려주는 거라며?”

“네. 아까 이름도 알려주셨습니다. 독고…….”

나는 말을 하다 마치 브레이크가 걸린 것처럼 그 말을 삼켰다.

내가 말을 멈추자 장 사장과 손 차장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원장에게 들었던 의사 이름, 독고준.

순간 떠오르는 기억.

나는 장 사장과 손 차장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곧장 휴대전화를 열었다. 그리고 인터넷 검색창에 독고준을 검색했다.

독고준은 현재 정형외과 업계에서 유명세를 올리고 있는 스타 의사 중 한 명이다.

아프지 않은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를 테지만, 막상 사람이 한 부위가 아프면 병원과 의사를 찾아보곤 한다.

그렇게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도 이름이 자주 언급되는 의사, 그 의사가 바로 ‘독고준’이다.

의료계 역시 TV 출연을 한두 번 하다 보면 업계에서는 유명 인사가 된다.

독고준은 그렇게 해서 유명해진 의사 중 한 명이다.

그런 의사가 광주에 내려온다면?

광주, 전남, 전북 지역에 소문이 퍼질 것이고, 금방 더본 정형외과는 예전 매출을 되찾을 것이다.

아니, 매출이 떨어지기 전보다 더 오를 것이다.

그야말로 대박이 나는 셈.

독고준이 계속해서 광주에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왜? 뭔데?”

“뭔데 말을 하다가 말아?”

내가 휴대전화로 검색에 열중하자, 장 사장과 손 차장은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재촉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에 뒤집어 올려 두었다.

“됐습니다!”

내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하자, 그들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의사가 누군데?”

“독고준입니다. 독고준이 광주에 내려옵니다.”

“뭐? 독고준?”

장 사장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그리고 손 차장은 테이블을 양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소리쳤다.

“정말이야? 독고준 의사가 내려온다고? 더본 기업이랑 손잡은 건가?”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아까 병원에서 똑똑히 들었습니다. 서울 기업에서 내려오기로 했다고 말입니다.”

나와 손 차장은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리고 장 사장은 옆에서 아무런 말 없이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그럼 더본 정형외과에 이제 힘써보자.”

장 사장의 말에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민 과장은 어떻게 알아낸 거야?”

손 차장은 내게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

나는 그의 질문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내게 재차 질문을 던졌다.

“원장님이 그런 특급 정보를 갑자기 준 게 신기해서. 대체 왜 갑자기 알려주신 거지?”

“원장님 말씀으로는 제가 병원을 위해 생각해 준 유일한 메디컬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다른 곳에서는 병원에 좋은 이야기를 제안하기보다 물건을 빼러만 왔었다고요.”

“그럼 민 과장은 병원을 위한 제안을 생각해서 갔다는 건가?”

장 사장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예.”

“왜?”

“저는 제가 맡은 병원의 매출은 항상 최고를 찍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그곳에 납품하는 저희 매출도 자연스레 오를 테니까요. 제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항상 노력해야겠지만요.”

장 사장은 내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래. 민 과장이 신입 사원 시절부터 포부가 대단했지. 자고로 큰 포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하잖아. 민 과장은 미래가 더 기대되는 친구야. 하하.”

“감사합니다, 사장님.”

“와. 민 과장, 인정이다. 다들 발을 빼느냐 아니냐만 생각했지. 병원을 도울 생각은 못 했을 텐데. 대단하다.”

손 차장 역시 내 칭찬을 하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우리는 그 대화를 시작으로 더본 정형외과에 어떤 품목을 추가로 영업하면 좋을지에 대한 회의를 시작했다.

* * *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흐르고, 원장의 말대로 독고준이 광주로 내려왔다.

더본 정형외과로 말이다.

현수막이 광주 지역 내에 붙었고, 홍보도 끊이지 않았다.

독고준 원장이 더본 정형외과로 온다는 것은 비밀리에 진행된 것인지 전날 밤 현수막이 붙기까지 다른 메디컬 직원들은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아침.

더본 정형외과에는 환자 수 만큼이나, 메디컬 영업사원들이 줄을 이뤘다.

환자들은 아직 독고준 원장에게 진료를 받으러 가진 않았다.

그저 더본 정형외과에 온 환자일 뿐.

하지만 메디컬 영업사원들은 소문을 듣고 득달같이 달려와 화분에, 선물에, 뭐 하나라도 들고 오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나 역시 독고준 원장에게 줄 화분을 들고 왔지만, 그를 만나기는 힘들었다.

그는 오늘 일절 영업사원을 만나지 않겠다고 한 것.

입구에서 간호사들은 영업사원들을 제지했고, 다들 리본에 메디컬 이름이 적힌 화분을 놓고는 그대로 돌아가는 듯 보였다.

나 역시 원무과 간호사에게 화분을 넘긴 후, 담당 원장 진료실로 향했다.

똑똑.

“원장님.”

“어, 민 과장 왔어?”

“네, 잘 지내셨습니까?”

“그럼. 우선 앉게.”

나는 그의 앞에 착석해 가져온 커피를 건넸다.

“원장님, 이거 드십시오. 와. 역시 독고준 원장님 오셨다고, 밖에 메디컬 직원들 진짜 많네요.”

그는 내가 건넨 커피를 받아 들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다들 우리 병원 망해 간다는 소리에 발 빼네, 영업 끊네, 하더니만 이렇게 태세 전환하는 거 보니까 참…….”

그는 내게 말을 한 뒤, 커피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아침부터 병원에 사람이 많아서 정신없으시겠습니다.”

“독고준 원장은 못 만났지?”

“네, 오늘 메디컬 직원들 안 만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내 말에 물고 있던 빨대를 입에서 떼어 내며 답했다.

“맞아. 오늘 오전에 일이 좀 있어서 그럴 거야. 다음에 내가 민 과장 이야기 한번 해야겠네.”

“그래 주시면 저야 정말 감사하죠.”

“하하. 그래. 아, 그리고 민 과장.”

“예, 원장님.”

그는 내 앞으로 종이를 내밀었다.

나는 그가 내민 종이에 시선을 고정했고, 그는 펜을 들어 종이에 글씨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종이에 쓰는 것은 다름 아닌 소모품 품명이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필기에 집중했다.

그렇게 한참을 쓰던 그는 하던 행동을 이어 가며 이야기를 내뱉었다.

“이번에 우리가 광주 메디컬에서 이 물건들 좀 받아볼까 하는데, 이 목록들 가지고 가서 물건 좀 괜찮은 거로 견적 뽑아 주겠나?”

나는 그가 써 내려간 품목명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얼마 전, 손 차장이 타 메디컬 지인들을 통해 더본 정형외과에서 거래를 끊은 곳을 알려주었었다.

거래를 끊은 메디컬에서 납품하던 물건들까지도.

나는 그 품목들을 손 차장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고, 지금 원장이 써준 품목들이 바로 거래가 끊긴 그 품목들이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원장에게 신임을 얻음과 동시에 비어 있는 품목들까지 내가 접수하게 된 것이니 말이다.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든 맡겨만 주십시오, 원장님!”

* * *

“안녕하십니까. 광주 메디컬 민지…….”

“알죠. 민지훈 과장님! 오랜만이네요?”

모던 정형외과 공급실.

병원에서 발주한 물건을 납품하기 위해 카트 가득 물건을 싣고 공급실로 들어왔다.

나는 입에 붙은 인사말인 내 소개를 자동 반사적으로 던졌고,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급실 담당 선생님이 웃으며 답했다.

“하하. 오랜만입니다, 선생님. 외우실 분도 많을 텐데, 제 이름 석 자 다 기억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아무리 많아도 어떻게 민 과장님을 잊겠어요. 와. 그런데 오늘 물건 엄청나게 많네요?”

그녀는 내가 끌고 온 카트를 보며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예. 오늘 박 원장님, 김 원장님이 말씀해 주셨던 샘플까지 있어서 좀 많네요. 원장님들께 여쭤봤는데, 몇 개는 공급실에 놔두라고 하셔서요. 여기에 두면 될까요?”

“네, 여기 두세요. 제가 정리할게요.”

“오늘 물건이 좀 무거워서요. 제가 안에 넣어드릴까요?”

“어머.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보통 물건을 가지고 오면 공급실 입구에서 물건과 거래명세서를 건넨 후 끝이 난다.

그러면 간호사들이 그 물건을 들고 공급실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에 맞게 정리하는 것이지.

그 안쪽은 메디컬 직원이 아무렇게나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같이 무겁고 짐이 많을 때, 간호사들만 있는 공급실에서 짐 정리가 힘들어 보일 때에는 그 일을 도와주고는 한다.

나에게는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고, 바쁘지 않으면 가끔 도와주는 일이다.

간호사들은 이 일로 나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그렇게 간호사들과 친분을 쌓아 두는 일이 내게 나쁠 것이 없기 때문에 필요시에는 도움을 주고는 한다.

나는 카트를 끌고 공급실 안쪽, 창고 쪽으로 들어왔다.

“여기에 두면 될까요?”

“예. 여기 앞에만 넣어 주세요.”

“넵.”

나는 카트의 짐을 풀고는 상자를 열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편에 쌓인 짐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짐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물었다.

“선생님, 이 물건들은 뭐예요?”

“오늘 입고된 물건인데, 양이 상당하죠? 정리해야 하는데, 너무 무거워서 하다가 쉬는 중이에요.”

나는 그녀의 말에 그 상자 안 물건을 바라보았고, 그 짐을 보는 순간 나는 인상이 확 찌푸려졌다.

‘어? 이게 왜 여기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