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무슨 일이야?”
나의 부름에 급하게 회의실로 들어오는 장홍석 사장.
그는 이제 막 사무실에 도착했는지 가방을 내려놓지도 못한 채 둘러 들어왔다.
손 차장과 나의 급한 부름이니,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뭐든 하나 터졌다고 생각을 하는 모양.
“사장님, 오셨습니까?”
장 사장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손 차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접었다.
나 역시 장 사장에게 재차 허리를 접은 후 자리로 돌아갔다.
“어, 뭔데? 무섭게 왜 그래? 무슨 일 터졌어?”
“더본 정형외과 말입니다.”
“더본? 그 WG 메디컬에서 가지고 나온 병원 말하는 거지?”
“네, 맞습니다.”
장 사장은 그제야 손 차장 옆의 의자를 빼내어 앉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근데 그거 민 과장 담당으로 넘어간 병원 아니야?”
나는 그의 질문에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지금은 제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근데 문제가 좀 생겨서…….”
내 말에 장 사장은 얼굴을 일그러뜨렸고, 손 차장은 내 대답을 가로막았다.
“네. 근데 지금 거기 핵심 원장이 빠졌다고 합니다.”
손 차장이 하고자 하는 말.
핵심 원장이 빠졌다는 것까지는 나 또한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 원장이 더본 정형외과에서 나가 개인 병원을 차려, 더본 정형외과의 매출이 반 토막이 났으니까.
그것 때문에 지금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다.
장 사장은 손 차장의 이야기가 끝나자 바로 그에게 되물었다.
“그래서 지금 더본 정형외과에 매출이 팍 떨어졌다, 이 말이야?”
그의 질문에 손 차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 사장은 곧바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입금은?”
“지난달 금액이 아직 입금 안 됐습니다.”
“병원에 확인해 봤고?”
장 사장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다.
“네. 어제 오전에 병원 들렀는데, 원장님은 자꾸 만남을 회피하시는 것 같고 총무과장님만 만나고 왔습니다. 매출이 떨어져서 그렇다, 죄송하다, 이번 달에는 입금해 주시겠다는 이야기 듣고 왔습니다.”
그는 내 말을 들으며 한쪽 손으로 자신의 턱을 어루만졌다.
“근데 더본 정형외과가 기업 병원이잖아. 그럼 자금 문제는 금방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손 차장은 어떻게 생각해?”
기업 병원.
기업에서 만든 병원을 기업 병원이라고 한다.
병원은 환자의 발길이 떨어지면 그대로 매출이 떨어진다.
그렇게 환자가 없어지면 병원은 여느 사업과 마찬가지로 망해서 없어지게 되는 것이지.
하지만 기업 병원의 특징은 이 병원의 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돈 문제로 인해 절대적으로 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 만들어둔 병원이 힘들 때, 도와줄 수 있는 뿌리, 부모와 같은 존재의 기업이 있다는 것이지.
“더본 정형외과에 납품하던 메디컬 회사가 많은 건 아시죠?”
손 차장은 그의 질문에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응, 알지.”
“방금 다른 거래처 지인과 통화를 했는데, 거기는 벌써 발을 뺐다고 하더라고요.”
“벌써?”
“네. 더본 제약 기업 본사에서 더본 정형외과를 포기한다는 말이 돌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벌써 몇 군데 메디컬은 발 빼고 있다고 전화 받았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놀라 물었다.
“그럼 아까 통화하신 게 그 내용인 겁니까?”
“어. 예전에 내가 다른 정보 줬던 적이 있는 친구거든. 근데 이걸 내가 물어볼 때까지 말을 안 해줬네, 이 새끼가. 우리 광주 메디컬에서 더본 정형외과 거래하고 있는 거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하.”
“근데 지난번에도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더본 정형외과가 망할 뻔했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때는 어떻게 해결된 겁니까?”
나는 손 차장이 이야기했던 과거 이야기의 해결 방법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때는 더본 제약에서 지원을 해줬었지.”
“그런 거면 이번에도 지원해 주는 거 아닐까요? 그래도 벌써 광주에 이렇게 몇 년간 자리 잡은 병원인데, 이대로 무너뜨리기에는 기업 입장에서도 아쉬울 것 같은데…….”
내 말에 손 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이런 문제가 몇 년 동안 계속 있었던 것도 아니고, 게다가 이번에는 지난번과는 다른 문제의 경영난이니까. 하지만 소문이 났다고 하니까, 불안한 건 사실이지.”
“그런데 말입니다. 본사인 더본 제약 기업에서 도와주지 않아, 망한다고 하더라도 저희가 돈은 다 돌려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어차피 기업에서 수금은 받을 수 있으니까요.”
가끔 경영난에 힘들어하다가 망해서 파산 신청을 하는 병원이 있다.
그럴 경우에는 돈을 돌려받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해서 메디컬 회사까지 자금난에 시달리는 경우도 몇 번 봤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기업이 탄탄하게 있는 병원이 망한다면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기업에서 만든 아주 극히 작은 일부의 병원이 망한다고 하더라도, 그 돈을 돌려줄 능력이 충분히 되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 광주 메디컬은 다른 메디컬 회사들처럼 미리 더본 정형외과에서 발을 빼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 과장 말이 맞지. 수금으로만 본다면 말이야.”
“네? 그럼…….”
손 차장은 내 말에 어깨를 들었다가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지금 더본 정형외과는 광주에 있지. 거기에 근무하고 있는 원장님들도 광주 사람들이고. 근데 지금 눈치껏 빠지지 않으면, 나중에 정말 위기가 닥쳤을 때, 그때 가서는 우리도 발을 빼기가 힘들어.”
그는 손짓으로 허공을 가르며 말을 이어 갔다.
“왜냐, 의사들도 사람인지라 자신들이 정말 위기에 처했을 때 빠지는 메디컬 회사가 눈에 딱 보일 거거든. 지금은 몇 군데의 메디컬 회사만 나가고 있으니까 티가 안 날 거야.”
우리의 말을 듣고만 있던 장 사장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래서 손 차장 생각은 우리도 지금 발을 빼자?”
“네. 나중에 더 심한 위기가 왔을 때, 손을 뗀다면 저 원장님들과 다른 병원에서 마주치더라도 영업하기 힘들 겁니다. 지금은 저희가 물건도 많이 넣고 있지 않고, 한두 달의 자금 문제로 빠진다고 하면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힘들게 영업했지만, 꼴랑 한두 달의 자금 문제로 병원과의 거래를 끊는 게 말이 되냐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현재 더본 정형외과에 많은 품목을 넣고 있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돈은 받지 못하고 물건만 납품을 이어간다면 그 금액은 계속해서 불어나겠지.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묶인 금액이 없을 것이고, 현재 미수금만 받으면 된다.
그 미수금을 받기 위해서는 의사와 협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총무과만 닦달하면 되는 것.
즉, 의사와는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으로 그 의사들과 다른 병원에서 영업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고, 이쪽 업계에서는 어느 병원과도 나쁘게 마무리를 지어서 좋을 것이 없다.
업계가 좁고, 의사들은 병원을 돌고 돌기 때문이지.
하지만 더본 정형외과와 거래를 이어 간다면 앞으로 물건을 넣으면서 담당 의사와 수금 문제도 주고받아야 하는 일이 생긴다.
돈 문제라 총무과 관할이기는 하지만, 담당 의사가 물건을 발주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사와도 돈 문제를 이야기 안 할 수는 없는 것.
손 차장의 생각은 그런 먼 미래까지 생각해 볼 때, 지금 하루라도 빨리 발을 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과연 더본 정형외과가 망할까?
더본 제약 기업 회사가 든든하게 뒤에 마크하고 있는데도?
나는 혹여나 기업 회사에서 병원의 손을 놓아버린다고 해도, 지금 이렇게 더본 정형외과와 거래를 끊는 것은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민 과장은?”
“예?”
장 사장은 나를 보며 물었다.
“민 과장 생각은 어떻냐고. 그래도 WG 메디컬에서 나온 이후로는 민 과장이 쭉 담당으로 맡아서 일했었잖아.”
그의 질문에 그들의 시선은 모두 나를 향했다.
그리고 나는 손 차장과는 반대되는 의견, 내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아직 거래를 이어 가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더본 제약에서 지원을 끊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조금은 더 지켜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내 말에 장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고, 손 차장은 바로 입을 열었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 하지만 소문처럼 지원이 딱 끊기고 나면 그제야 우리가 발을 빼기에는 민 과장이 곤란할까 봐 그래.”
장 사장은 우리의 대화로 고민에 잠긴 듯 한참을 말없이 있었다.
회의실에는 정적만이 가득했다.
손 차장도, 나도, 내 생각이 맞는 것일까, 더 좋은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에 잠겼다.
똑딱똑딱.
회의실 벽에 붙은 시계 초침 소리만 가득한 이곳.
그렇게 몇 번의 초침 소리가 울리고, 장 사장이 입을 열었다.
“둘 다 일리가 있는 말이야. 그럼 둘 다 알아봐.”
“네?”
나와 손 차장은 동시에 대답했다.
“둘 다 알아봐. 어떻게 흘러가는지. 손 차장은 그 소문이 확실한지, 그리고 어느 메디컬에서 어느 품목을 뺐는지 알아봐.”
“네. 거래처들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손 차장은 더본 정형외과 담당을 넘겼으니, 다시 가는 건 좀 그렇고. 민 과장이 병원에서 잘 조사해 봐. 아무리 기업에만 소문이 났다고 해도 병원 내부 기업 관계자들은 알고 있을 테니까.”
“예. 병원 가서 원장님 꼭 만나보고 오겠습니다.”
“그래.”
* * *
회의실을 나오자마자 손 차장은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소문의 사실 여부를 기업이나, 병원에 직접 물어볼 수는 없다.
직접 물어본다고 한들, 우리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해 줄 리가 없으니까.
손 차장이 택한 방법은 정보력 싸움.
그가 지금껏 메디컬 업계 생활을 하며 쌓아온 지인들이 많을 것이다.
그 여러 자리에 있는 지인들을 통해 정보를 얻어낼 모양.
나는 손 차장과는 달리 그런 지인이 많지 않다.
의사와 병원 관계자 외에 같은 메디컬 업계 종사자 중에는 높은 직책의 지인이 거의 없는 편이다.
내가 많은 메디컬 회사에 발을 담그고 있었던 세월도 없고, 또한 대부분이 경쟁자이기 때문에 각자 정보를 스스럼없이 꺼내 놓을 관계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직접 발로 뛰어 알아내는 것.
나는 사무실에서 나와 곧장 더본 정형외과로 달려갔다.
직접 보고 들으며 알아내야 했기 때문이지.
더본 정형외과에 차를 주차하고, 정문으로 들어가자 느껴지는 싸한 느낌.
이 싸한 느낌은 환자가 없음에서 다가오는 것이었다.
전날 왔을 때보다 더 환자가 없는 듯한 느낌은 기분 탓이 아닌 사실이었다.
아직 직접적으로 더본 제약 기업에서 더본 정형외과를 포기하겠다는 소문의 정황을 알아내기 전이었지만,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이 병원 분위기를 통해서.
나는 서둘러 의사를 만나기 위해 발길을 옮겼다.
“오늘 선생님 만나시는 게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외래 간호사는 나에게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어제와 같은 반응, 어제와 같은 멘트.
원장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그저 메디컬 회사 직원과의 만남을 꺼리고 있을 뿐.
어쩌면 더본 정형외과의 원장들도 지금 이 상황이 정리되지 않아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유명하고 매출이 높은 의사가 개인 병원으로 나갔지, 기업에서 포기한다는 소문이 있지, 그로 인해 메디컬 회사들에서는 눈치를 보며 발을 빼고 있지.
자신들도 현재 상황에서 각자 생각에 잠겨 만나지 않고 싶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원장을 만나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지만, 끝내 원장을 만날 수는 없었다.
* * *
다음 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출근했다.
사무실이 아닌 더본 정형외과로 말이다.
또다시 간호사에게 같은 멘트를 들은 후, 막무가내로 원장을 기다리겠노라.
아침 일찍 찾아와 기다리고 있는데, 한 번 정도는 원장을 마주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온 것이다.
하지만 지난밤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늘은 저 멀리서 보아도 간호사의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광주 메디컬입니다.”
“네, 알죠.”
단지 출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표정이 뚱한 것을 제외하고는 어제와 달랐다.
“혹시 오늘도 원장님 뵐 수 없을까요?”
나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고, 그녀는 단칼에 거절하지 않았다.
“잠시만요. 원장님 확인을 좀 해야 해서요.”
“네.”
그녀는 내게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원장의 진료실로 향했다.
그렇게 짧은 시간이 흐르고, 내게 걸어오는 간호사.
“들어오시래요.”
무슨 일이지?
원장을 만나러 왔지만, 삼 일 만에 나를 만나주는 원장의 태도에 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똑똑.
“안녕하십니까.”
진료실 문을 열자마자 나는 문 앞에서 허리를 접었다.
그리고 천천히 허리와 고개를 들자 보이는 원장.
그의 표정은 꽤 비장했다.
무표정한 얼굴, 꾹 다문 입술까지.
그러다 나를 애써 반기는 듯한 표정을 지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인사를 받았다.
“어, 왔어?”
“잘 지내셨습니까?”
나는 얼굴 가득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