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내 이름을 똑바로 부르는 박수진 주임의 목소리.
룸 가득 지글지글 고기 굽는 소리로 가득하던 이곳이 그녀의 목소리로 인해 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나를 제외한 여섯 명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쏟아졌고, 나는 그 싸한 느낌에 고기를 바라보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네? 저요?”
그러자 박 주임은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녀의 태도에 옆에 있는 주우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한번 박 주임에게 질문을 던졌다.
“주임님……. 민지훈 과장님이 남자 친구예요?”
그리고 곧장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는 주우진.
주우진은 내가 박 주임의 남자 친구라 확신을 하고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제야 박 주임은 주우진을 향해 답했다.
“아니요? 저 남자 친구 없는데요?”
주우진은 그녀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듯했다.
그리고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박 주임에게 묻는 그.
“그럼 민 과장님은 왜…….”
그녀는 곧바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민 과장님. 저 술 없는데, 과장님 옆에 있는 술병 좀 주세요.”
“아… 네!”
나는 그녀의 말에 재빨리 옆에 있는 술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사이, 옆에 있던 손지혁 차장이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뭐야, 박 주임. 순간 둘이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잖아.”
손 차장의 말에 덧붙여 한태준이 말을 더했다.
“그러게요. 저도 우리 회사에 사내 커플 탄생한 줄 알았어요. 짧은 순간에 숨이 막혔어요!”
그들의 말에 박 주임은 술잔을 들어 입에 가져다 댔다.
가득 따라져 있는 술을 한입에 털어내는 그녀.
모두가 그녀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 주임이 하는 말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술잔을 테이블에 탁 내려놓고는 눈웃음을 지으며 손 차장과 한태준에게 답했다.
“그랬나요?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본의 아니게 오해하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그녀는 대답 후 나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재차 올렸다.
확실히 의도적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주우진에게 관심을 끄라는 듯한 행동을 날림과 동시에 내게 자신의 마음을 한 번 더 표하는 듯한 말투.
이미 그녀에게 내 마음을 모두 전한 후였기에, 나는 곧장 대화 주제를 바꾸려 했다.
“우진이랑 성훈이는 짧긴 했지만, 사회생활 시작하니까 어때?”
주우진과 권성훈에게는 첫날, 그러니까 어제 출근 이후 말을 편하게 하기로 했다.
앞으로 가장 많이 부딪쳐야 할 한태준, 그리고 나.
하루에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말을 편하게 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직 어렵긴 한데, 열심히 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도…….”
내 질문에 대화의 판도는 넘어갔다.
환영회인 만큼, 자리를 1차 고깃집에서 끝낼 수는 없었다.
화요일이라는 점을 감안해 평소라면 1차에서 끝내고 집에 갔겠지만, 사회생활이 처음인, 그리고 첫 회식인 그들에게 최소 2차의 회식은 보여 주어야 하지 않겠냐는 장 사장의 의견이었다.
사장인 그의 말을 누가 무시하랴.
하지만 2차에 들어오는 그 중간 길에서 장 사장은 소리소문없이 집으로 먼저 귀가했다.
상사인 자신이 빠져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장 사장.
그렇게 손 차장을 필두로 우리는 2차 맥줏집에 도착했다.
고기를 식도까지 채워 넣고 왔지만, 법인 카드라는 무기 덕분에 테이블에는 3개의 안주가 올라왔다.
맥주 역시 아끼지 않고 시켜 테이블에 줄을 이뤘다.
1차에서부터 술을 많이 마셨지만, 유일하게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한 사람.
권성훈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이미 취기가 잔뜩 올라와 있는 것이 보였지만, 듬직한 몸에 정자세로 앉아 있는 그.
첫날인 어제부터 난 그가 궁금했었다.
지각하지는 않았지만, 첫날부터 9시가 거의 되어 갈 때쯤 도착하는 것부터, 선약 때문에 자신의 환영회를 거절하는 것.
단 이틀간, 그와 나눈 대화와 지켜본 시간은 굉장히 짧다.
하지만 지금까지를 보자면 권성훈은 자신이 맡은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 같았다.
업무를 쥐여 주면 그 흔한 농땡이를 잠깐도 피우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러 나가지도 않았고, 한눈을 팔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주어진 일만을 할 뿐.
하지만 9시 출근, 6시 퇴근이라면 첫날부터 그 시간을 칼같이 지켰다.
출근이 9시였을 때, 보통 빠르면 8시 40분에서 8시 50분까지는 출근을 하는 편이다.
권성훈은 8시 58분, 59분, 이런 식으로 거의 정시에 도착했다.
퇴근 역시 6시가 땡 울리자마자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가장 먼저 들어가겠다는 말을 외쳤다.
무려 입사 첫날부터.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원래 야근이라는 것이 회사 근무 시간 내 하던 일을 다 하지 못했을 때, 남아서 하는 것을 야근이라고 부르니까.
야근이 필수도 아니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 출퇴근 시간을 강요하거나 꾸지람을 줄 생각은 없다.
그는 그 나머지 시간인 근무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고, 나는 단지 권성훈이라는 사람, 그가 궁금했다.
“성훈이랑 우진이는 담배 태우나?”
손지혁 차장은 신입 사원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저는 피웁니다.”
주우진이 먼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리고 시선은 권성훈에게 넘어갔다.
“저는 담배는 안 태웁니다.”
그의 대답에 한태준이 물었다.
“원래? 아니면 피우다가 끊은 거야?”
“대학교 다닐 때, 한 번 입에 댔었는데 저는 못 피우겠더라고요. 왜 피우는지도 모르겠고 해서…….”
그의 말에 모두는 각자 다른 반응을 보였다.
나는 그의 말이 이해가 됐다.
나도 대학교 시절부터 담배를 입에 대기 시작했으니까.
그때 나 역시 담배가 입에 맞지 않았다.
친구들을 따라 호기심에 의해 피우기 시작했지만 술을 마시거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만 피우다 그대로 호기심만 풀어내고 담배를 끊었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며 어느 순간 다시 담배를 찾게 되었다.
흔히 말해 ‘담탐’, 담배 타임이라고 부르는 그 시간에 나 혼자 덩그러니 있는 기분이 싫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업사원이 병원에 갔을 때, 의사와 함께 담배를 피우러 나갈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가끔 한 대씩을 꺼내 피우다 보니, 자연스레 다시 담배는 내 주머니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손 차장은 그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권성훈에게 재차 질문을 던졌다.
“그럼 성훈이는 술도 안 좋아하고, 담배도 안 피우면 무슨 재미로 사나?”
술과 담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하지만 나 역시 궁금했다.
권성훈이 어떤 재미로 사는지가.
그가 술과 담배 없이 사는 게 궁금한 게 아니었다.
그저 그의 생활이 궁금했다.
“저는 퇴근하고 할 일이 많습니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요.”
권성훈은 손 차장을 바라보며 답했고, 그때 손 차장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어… 잠깐만. 이야기 나누고 있어. 나 전화 좀 받고 올게.”
그는 그렇게 자리를 벗어났고, 우리의 이야기는 공중으로 흩어지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흩어지는 대화를 붙잡고, 권성훈에게 물었다.
“무슨 일?”
“아… 대단한 건 아니고, 그저 취미 생활입니다. 저는 워라밸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워라밸.
워크 라이프 밸런스(work life balance)로 일과 삶의 균형을 말하는 용어.
몇 년 전부터 직장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용어 중 하나다.
누구나 워라밸을 꿈꾼다.
일과 삶의 균형을…….
하지만 대부분은 하루의 절반을 일에 열정을 쏟아부어, 퇴근하고 나면 삶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 균형이 깨지고, 일에만 힘을 쏟아붓는 삶을 살다 보니 지친다는 것이지.
그 밸런스를 맞추려면 체력이 좋아야 한다든지, 또는 일에 열정을 덜 쏟으라는 말도 있다.
그래야 내 삶에 쏟을 열정이 남아 있을 테니까…라는 말을 종종 듣고는 한다.
“워라밸……. 좋지.”
한태준은 권성훈의 말을 읊조렸다.
그때 권성훈은 나를 보며 물었다.
“과장님도 워라밸 잘 지키고 계십니까?”
그의 질문에 나는 검지를 뻗어 나를 가리켰다.
“나?”
“네. 제가 볼 때 회사에서 가장 열정이 넘치신다고 해야 하나? 아직 이틀밖에 못 뵙기는 했지만, 회사에서 가장 열심히 하시는 것 같아서요. 과장님도 밸런스를 맞추면서 사십니까?”
그의 질문에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나를 되돌아보았다.
내가 라이프에도 밸런스를 맞췄던가?
하지만 굳이 내 열정을 라이프에 쓰기 위해 일에다 덜 쏟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글쎄다? 나는 굳이 그 밸런스를 맞추고 살지는 않는 것 같아.”
“왜요? 다들 삶도 소중히 하는데, 그렇게 일에만 열정적으로 사시면 나중에 후회하실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나는 앞에 놓인 술잔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워라밸……. 좋다고 생각해. 근데 그렇게 남들이랑 다 똑같이 일하고 쉬고, 더 투자하지 않으면 승진도, 성공도 남들과 함께 가는 거 아닐까?”
함께 있는 모든 직원은 내 말에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술잔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난 그보다 더 투자해서 남들보다 빠르고, 남들보다 더 위로 오르고 싶어.”
옆에 앉은 한태준은 내 말이 끝나자 탄성을 내뱉었다.
“워라밸이 맞지 않는 삶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맞추며 사는 게 좋지, 그게 행복할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 결과에 더 만족하는 성향이거든. 뭐가 맞다, 틀렸다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그래.”
내 말이 끝나자 권성훈은 입을 열었다.
“멋있으십니다, 과장님.”
나는 그의 말에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리고 그는 말을 이어 갔다.
“저는 아직 사회생활이 처음이라, 당연히 워라밸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첫 회사를 들어가면 무조건 그거 하나는 꼭 지켜야지, 하고요. 그런데 과장님처럼 사는 삶… 존경스럽습니다.”
180이 넘는 키에 덩치도 있는 권성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 키 때문에 쭈욱 한참을 일어나, 하는 행동에 우리는 모두 그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바로 그 큰 몸에서 손 두 개를 뻗어 엄지를 치켜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우리의 회식 자리는 이어졌다.
* * *
“차장님, 바로 나가십니까?”
오늘은 사무실로 직출을 했다.
어제 돌아봤던 더본 정형외과에 대한 일로 자문을 구해야 했다.
더본 정형외과는 자본 문제에 허덕이고 있었고, 그 일을 보고한 뒤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했기 때문이다.
더본 정형외과의 원래 담당자는 손지혁 차장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 마음대로 판단하고 위에 보고를 올리는 것보다는 손 차장에게 먼저 말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아니. 어제 술을 많이 마셨더니, 오늘은 오전에 사무실에 있으려고. 왜, 무슨 일 있어?”
“저 그럼 잠시 회의실에서 말씀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러자.”
주변에는 신입 사원들과 한태준, 그리고 박 주임까지 모두 있었기에 병원 자금난에 관해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러웠다.
“넵. 제가 커피 타서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웃으며 탕비실을 가리켰다.
손 차장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실로 먼저 들어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장님, 오늘은 달달하게 커피믹스로 타왔습니다.”
“역시, 민 과장 센스는 아주 알아줘야 한다니까?”
“하하, 감사합니다.”
나는 그에게 한 손에 있는 종이컵을 건넸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내게 물었다.
“근데 무슨 일이야?”
“더본 정형외과 말입니다.”
“더본? 응. 거기 왜? 문제 있어?”
나는 들고 있던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결제 텀 때문에…….”
“또?”
무슨 일인지 묻는 게 아니라, ‘또?’라는 말에 나는 놀라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라니요? 거기 결제 때문에 이전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말씀이세요?”
손 차장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응.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바로 회복은 됐어.”
“아… 그럼 이번에도 문제없이 마무리될 수 있겠네요?”
“아마 그러지 않을까 싶은데… 잠깐만!”
그는 내 앞에 앉아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신호음이 얼마 울리지 않아 전화를 받는 상대방.
“여보세요. 어, 나 손지혁. 응. 더본 정형외과 때문에… 뭐? 알고 있었어? 그래서 다 발 뺀다고? 그럼 나한테도 이야기를 해줬어야지! 확실한 거야?”
데시벨을 그러데이션으로 점점 올리는 손 차장.
그의 얼굴은 점점 붉어졌고, 나는 순간 이상함을 감지했다.
손 차장은 전화를 끊자마자 다 마신 후 비어 있는 종이컵을 한 손으로 세차게 구겼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차장님. 더본 정형외과에 무슨 일 있는 겁니까?”
“응.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사장님 사무실 나오셨나? 같이 말씀 좀 드려야 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