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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75화 (175/339)

175화

입을 동그랗게 말아 내뱉은 하얀 연기.

그 연기가 공중에 흩어지자 입을 여는 손지혁 차장.

“새롭네. 요즘 젊은이는…….”

“자기 환영회에 빠진다니, 입사 첫날부터 무슨 약속이길래 그럴까요. 아, 차장님 참고로 저는 그런 젊은이 아닙니다. 아시죠?”

한태준은 손 차장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알지. 뭐 환영회야 내일로 미뤄졌으니까 내일 하면 되지만, 입사 첫날부터 약속 잡아 오는 신입은 또 처음이네.”

띠리리.

어디선가 들리는 벨 소리.

손 차장은 자신의 바지 주머니를 만져 진동을 확인한 뒤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나와 한태준에게 휴대전화를 보여주며 한쪽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

“태준아.”

“네, 과장님.”

“이제 태준이, 막내 탈출했네? 축하한다.”

“하하, 감사합니다. 몇 주 동안 막내 한다고 회사에 온 예쁨은 제가 받았던 것 같은데, 이제 막내들 들어와서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그는 아랫입술을 내밀며 어깨를 들었다 내려놓았다.

“그래? 그럼 태준이한테도 여전히 막내들처럼 일 시켜야겠네.”

“아? 그런 뜻이 아닙니다, 과장님!”

그는 나를 다급하게 말렸고, 나는 웃으며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앞으로 오전에는 나랑 같이 병원 돌면서 영업하자. 그리고 오후에 사무실 들어와서 신입 교육하고.”

“네!”

한태준은 영업 경험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WG 메디컬에 있을 당시, 담당 병원이 몇 군데 생기면서 그곳 관리를 했었다.

그리고 새로운 병원 영업도 시도는 했었지.

하지만 그가 했던 병원 영업은 그저 현실에 부딪쳐 보는 것일 뿐이지, 그가 거래처를 따올 능력이 있었던 건 아니다.

새로운 거래처를 뚫는다는 것은 다른 메디컬 회사와 거래를 잘하던 것을 뚫고 들어가 따내는 것인데, 그걸 신입 시절에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직급이 과장인 나 역시 모든 거래처를 마음먹은 대로 가져올 수 없는 일인데, 한태준에게는 더욱더 어려운 일이지.

더군다나 많은 영업사원을 마주하는 병원 의사들. 그들은 영업사원과 한마디, 아니 처음 인사만으로도 초짜와 경력자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렇기에 초짜에 나이도 어린 한태준에게 기회를 주는 곳은 많지 않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영업사원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기존에 받던 제품보다 더 질이 좋은 제품, 혹은 단가라도 더 저렴하게 해야 물건을 받을 것이다.

그런 조율은 회사에 몸을 오래 담지 않은 직원에게서는 쉽게 나오기 힘든 것.

당연히 직책이 높고, 경험이 많은 직원이 영업하러 가는 게 의사들 입장에서는 더 편하다.

경험이 많은 직원과 이야기하는 게 일을 빠르게 조율할 수 있기 때문이지.

신입 직원들은 무조건 회사에 제안을 올리고, 결재가 난 후에야 뒷이야기가 이루어지니까.

내가 한태준에게 교육한다고 해도 추후에 한태준이 홀로 영업에 모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태준은 지금까지 처음 가는 병원에 영업다운 영업을 가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 직접 듣지 않았어도 그 시절, 직원은 그럴 수밖에 없다.

혼자 신규 거래처에 간다면 대부분은 의사를 만나지 못하고 오거나, 혹은 만난다고 해도 오 분도 자리하지 못하고 나오기 마련이니까.

나를 따라다니며, 내가 하는 것을 배울 단계는 지난 한태준.

그에게는 이제 내가 옆에서 그의 영업하는 모습을 보고 피드백을 해줄 단계다.

“이야기 다 했니?”

그때 손 차장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며 물었다.

나는 그의 말에 재빨리 입을 열었다.

“네, 통화 끝나셨습니까?”

“응. 나 잠깐 민 과장한테 할 이야기 있어서 그러는데, 태준이 먼저 사무실 들어갈래?”

손 차장은 한태준을 바라보며 이야기했고, 그는 손 차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숙였다.

한태준은 곧장 뒤를 돌아 사무실 입구로 걸어갔고, 나는 다시 손 차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차장님?”

손 차장은 한태준이 사무실 문을 여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얼굴에 웃음기를 쫙 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민 과장. 아니, 지훈아.”

직책이 아닌 내 이름을 부르는 손 차장.

손 차장이 내게 심각한 이야기, 혹은 사적인 이야기를 꺼낼 때 하는 버릇이다.

나는 그의 말에 덩달아 심각해진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네, 차장님.”

“IBH 메디컬에서 연락 왔었다며?”

그곳의 인사팀장이 스카우트하고 싶다며 연락했지만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런데 손 차장이 그 이야기를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가 내게 묻는 의도는 스카우트에 대한 질문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혹여나 다른 의도의 질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어떤 연락 말씀이십니까?”

내 질문에 손 차장은 턱을 치켜들며 답했다.

“거기 인사과에서 스카우트 제안했는데, 네가 단번에 거절했다며?”

나는 재빨리 그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그의 말에 대답을 바로 하지 않자, 손 차장이 말을 이어 갔다.

“조금 전에 IBH 메디컬 영업 담당자랑 우리 회사 물건 때문에 통화하다가 들었어.”

“아… 말씀 못 드린 건 죄송합니다.”

“아니야, 죄송하긴. 그 영업 담당자가 그러더라. 광주 메디컬에 연봉이랑 복지가 얼마나 좋으면, 직원이 단번에 거절하냐고.”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진지하게 생각해 본 거야? 왜 거절했어?”

“저는 아직 광주 메디컬에서 하고 싶은 게 많습니다.”

“더 큰물로 가면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거, 민 과장도 알잖아.”

그의 이야기가 맞다.

나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을 했었지만, 결론적으로는 광주 메디컬에 남기로 한 것이지.

손 차장은 IBH 메디컬에서 온 좋은 기회를 단숨에 거절한 걸 안타깝게 여기는 듯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며 대답했다.

“네. 그렇지만 저는 애초에 광주 메디컬로 온 이유가 손 차장님과 장 사장님을 보고 함께 일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리고 병원 영업 쪽으로 남고 싶었고요. 여기서 더 일하고 싶습니다.”

그는 내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대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연초가 불에 타들어 가고 있었고, 그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렇게 몇 번의 담배 연기가 공중에 차올랐다가 흩어지고, 손 차장은 내가 아닌 앞 건물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큰 결심해 줘서 고맙다, 지훈아. 너도 많이 흔들렸을 텐데… 쉽지 않았을 거 알아.”

나는 그의 말에 곧장 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광주 메디컬이…….”

그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재차 입을 열었다.

“근데 말이야. 혹시 다음에…….”

“예?”

“좋은 기회가 온다면 말이야.”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네 선임을 떠나, 너를 오래 본 인생 선배로서 이야기해 주자면. 네 인생의 큰 결정에서 회사는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네 앞날, 커리어… 그런 것만 생각하고 결정해.”

“…….”

의외의 대답이었다.

손 차장은 내 입사 때부터 함께했던 선임이었기에, 내가 다른 회사에 스카우트되어 가는 것을 원치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래 직원이 다른 회사로 간다고 하는데, 좋아하는 상사가 어디 있으랴.

겉으로는 축하해 줘도 속으로는 회사를 버리고 갔다며 괘씸해하거나, 배신자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손 차장의 조언은 자신과 회사를 배제하고, 오로지 나만을 생각한 말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아무 말 없이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내 표정을 보며 웃음을 피식 터트렸다.

“뭐야, 그 표정은.”

“그렇게 말씀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너 아직 결혼도 안 했고, 나이도 어리잖냐. 무슨 선택을 하든, 너무 회사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야. 앞으로 무슨 일 생겼을 때, 고민되면 선임을 떠나 인생 선배라고 생각하고 털어놔도 돼.”

그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돌려 다시 허공을 바라보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나는 그런 손 차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깊게 숙였다.

“감사합니다, 차장님.”

* * *

다음 날, 9시.

한태준과 사무실이 아닌, 병원 앞에서 만났다.

“민 과장님, 안녕하십니까.”

그는 어딘지 모르게 설레는 얼굴을 한 채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의 모습에서 내 신입 시절, 처음 영업을 나가던 모습이 겹쳐 보였다.

“태준이. 오늘 머리에만 힘을 준 게 아니라, 어깨에도 힘이 잔뜩 들어갔네?”

“그럼요. 오늘은 드디어 제가 병원 거래에 성공할 수도 있는 날 아닙니까. 하하.”

그의 당찬 포부.

그리고 저 기대에 가득 찬 얼굴.

나는 아무 말 없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그의 어깨에 손을 턱 하고 올려놓았다.

“그래. 꼭 성공했으면 좋겠네.”

“넵. 오늘은 과장님께서 옆에서 지켜봐 주시니까, 꼭 성공해 보고 싶습니다.”

나 또한 한태준이 거래처를 따내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첫 성공의 기쁨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한태준이 들고 있는 자료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어제 내가 말한 자료는 여러 번 공부했지?”

“네. 항상 보던 자료고, 담당 병원에서도 여러 번 설명했었던 기구인데도 어제 진짜 많이 공부했습니다.”

“그래. 이게 처음 만나는 원장님 앞에서는 알던 것도 긴장해서 잘 안 나올 수도 있으니까, 정말 많이 공부해야 해.”

그는 내 말에 결의에 찬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WG 메디컬에 있을 때부터 선임들 따라서 새로운 병원은 많이 들어가 봤었지?”

“네, 많이 가봤습니다. 옆에서 하시는 것도 많이 봤었고요.”

“그래. 그럼 같이 들어가서 태준이 네가 준비한 대로 한번 해보자. 어렵거나, 모르면 바로 나 쳐다보고. 막히면 내가 바로 이어 갈 테니까.”

“예. 제가 준비한 대로, 보고 배운 대로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치고,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실 안의 의자에 앉아 있는 한태준.

그리고 나는 그 옆에 서 있었고, 우리의 앞에는 나이가 지긋한 원장님이 앉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가는 병원에서는 우선 진료실에 들어와 앞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까지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의자에 앉아, 원장과 마주 보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거의 절반은 먹힌 것이지.

다행히도 우리는 그 단계까지 왔고, 한태준은 몇 마디의 사담을 나눈 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카탈로그를 꺼내 책상 위에 펼쳐놓았다.

“설명 좀 드려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원장님?”

“네. 아직 그 기구는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요.”

“아, 네. 그럼 이 카탈로그 보시면…….”

한태준은 기구에 대한 설명을 한참이고 펼쳤다.

그리고 그 설명에 대한 피드백이 쏟아졌다.

“그럼 저 기구를 사용할 때, 그 각도로만 들어가야 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 nail 사이즈에 맞는 각도로만 들어가셔야…….”

한태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원장.

자신의 손으로 볼펜을 들고 여러 각도로 기울여 모션을 취하며 말하는 그.

“그런데 제가 예전에 했던 다른 수술에서는 그 각도를 틀어서 들어가도 되던데, 이 기구는 무조건 그 각도로밖에 사용 못 한다는 거죠?”

“아니죠. 그렇게 사용하셔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게 사이즈 별로 각도가 따로 정해져…….”

한태준은 원장에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재차 설명을 이어 갔다.

하지만 앞에 앉은 원장의 표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들의 대화에 끼어 내가 설명을 하려 했지만, 이미 상황이 종료되어 가는 듯 보였다.

게다가 한태준이 처음으로 나를 옆에 세워 두고 영업하는 자리인데, 이번만큼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혼자의 힘으로 해내는 걸 보고 싶었다.

더불어 내가 지금 대화에 참여해 상황을 해결한다면, 한태준은 자신이 무엇으로 인해 실패했는지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

이론으로 설명을 할 때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 몸으로 부딪쳐 보아야, 어떤 점이 잘못되었고 또 어떤 점은 잘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나는 한태준이 단번에 성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를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너무 당연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한태준이 지금 이 영업에서 실패할 걸 앎에도 지켜만 보고 있었던 것은, 그의 실패 요인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문제점을 찾았기에, 이번 시도는 가히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태준과 앞에 앉은 원장 간 여러 번의 대화가 오간 끝에, 자리가 마무리되었다.

그는 우리에게 자료를 본 뒤 연락을 주겠다고 마무리했지만 나는 그가 절대 연락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의 표정, 말투 그리고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우리가 건넸던 카탈로그와 명함을 함께 접어 책상 아래로 내려놓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뜻이지.

나는 그의 행동에 고개를 끄덕이며,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태준아.”

“네, 과장님.”

한태준은 첫 시도를 끝냈다는 것만으로도 벅찬 마음인지, 여전히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미소 짓는 한태준.

나는 우선 힘들게 첫 시도를 한 그에게 칭찬을 건넸다.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 혼자 한 건 완전 처음이지? 고생했다. 첫 시도치고는 좋았어.”

“감사합니다!”

“근데 말이야, 방금 이 병원에서 문제점이 뭐였다고 생각해?”

“문제점이요……?”

그는 급격히 웃음기를 지워 내고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에 잠겼다.

하지만 도저히 모르겠다는 그의 얼굴.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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