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73화 (173/339)

173화

“민 과장 왔어?”

곧은 정형외과 정윤성 원장.

“안녕하십니까. 먼저 연락을 다 주시고. 감동입니다, 원장님.”

오늘 내가 곧은 정형외과에 온 이유.

바로 정 원장이 내게 먼저 연락을 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 불렀든지 간에 나는 무척 감격스러웠다.

정 원장과 진료실에서 나누는 대화 시간이 그와 친분의 척도였고, 그 시간을 늘리기 위해 항상 애썼다.

진료실에서 나누는 대화 시간이 오 분, 십 분, 삼십 분… 그렇게 점차 길어지는 것에 의의를 두며 행복해했던 게 지난주, 그리고 바로 며칠 전까지도 그랬다.

그런데 이제는 정 원장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시간이 될 때 병원에 좀 와달라는 연락이었다.

나는 정말 한걸음에 달려왔다.

“하하, 감동까지야. 얼른 앉아, 민 과장.”

“넵.”

나는 그의 앞에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로 나를 불렀을까, 하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먼저 그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다.

“원장님, 무슨 좋은 일 있으십니까? 오늘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이십니다.”

평소보다 밝은 얼굴의 정 원장.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며 덩달아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그러자 그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답했다.

“다 민 과장 덕분이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예? 그게 무슨…….”

“어제 연극 말이야.”

“아… 네. 재밌게 보고 오셨습니까?”

내가 정 원장에게 아내와의 관계를 풀 수 있도록 주었던 연극 표.

나는 그들이 연극을 보며 정말 관계를 회복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어제저녁, 정 원장의 아내가 내게 SNS에 팔로우를 걸었다가 취소한 거로 보아 그들의 관계가 개선됐음을 예측할 수는 있었다.

정 원장이 직접 말한 것이 아니라 내 추측일 뿐이기에, 나는 연극이 끝난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어, 재밌었어. 그런데 연극이 재밌었고, 그렇지 않고는 중요하지가 않았어.”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어지는 말을 경청했다.

“사실… 내가 와이프랑 관계가 조금 멀어졌었거든.”

나는 그의 아내의 SNS와 내게 하는 태도로 보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처음 듣는 양 놀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번에 우리 술 마실 때, 와이프가 내가 자상하지 않아서 좀 그래 하는 것 같다고 했었잖아.”

“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근데 이번에 오랜만에 연애 때처럼 데이트하니까, 그때로 돌아간 것 같더라고……. 와이프도 그렇고 말이야.”

나는 그의 말에 손뼉을 치며 말했다.

“정말입니까? 와, 다행입니다. 꽃다발은요?”

연극 표를 건네며 내가 정 원장에게 꽃다발까지 준비하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는 꽃다발 그런 거는 안 한다며 칠색 팔색을 했었다.

그래도 혹여나 하는 마음에 묻자, 그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와이프가 무척 좋아하더라고.”

나는 그에게 엄지를 치켜들며 답했다.

“역시. 꽃다발까지 준비하시기를 잘했네요. 다행입니다.”

“그러게. 역시 민 과장 생각이 옳았어. 그리고 와이프가 그 연극을 너무 좋아하더라고. 보고 싶었던 연극이었는데, 유행인 연극 표를 어떻게 구했냐고 하더라니까?”

“정말요? 좋아하셨다니까 제가 다 뿌듯한데요?”

“어. 민 과장이 젊은 친구라 그런가, 센스가 역시 장난이 아니야.”

“하하, 감사합니다.”

“덕분에 어제 좋은 데이트 했어.”

그는 어제를 회상하는 듯 허공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가 좋은 기분을 이어 가도록 아무런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정신을 차리고 내게 말했다.

“아, 민 과장.”

“네, 원장님.”

“나도 민 과장한테 선물 하나 주고 싶은데 말이야.”

“예? 선물이요?”

그는 내 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민 과장 덕에 좋은 시간을 보냈잖아. 이건 연극 푯값, 뭐 이런 거로 갚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가치가 더 크다고 생각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연극 표 하나 드린 건데요.”

“그래도 덕분에 아주 좋은 시간 보냈거든. 거절은 말고……. 자.”

그는 허리를 숙여 책상 아래에 있는 서랍을 열어 종이 뭉텅이를 꺼내 내게 보였다.

나는 미간을 찌푸려 그것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익숙한 표지.

내가 그에게 건넸던 카탈로그였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그에게 소리쳤다.

“어? 그건 제가 드렸던 카탈로그 아닙니까?”

“맞아. 민 과장이 내게 처음 온 날부터 주었던 카탈로그들. 거기서 내가 필요한 제품만 따로 빼서 정리했어. 이 제품들로 견적서랑 최소 발주량 적어서 보내 줘.”

“벌써 필요하신 품목들만 빼두신 겁니까?”

그는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단가만 정 원장이 생각한 것과 다르지 않다면 그대로 물건을 발주하겠다는 뜻이다.

나는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원장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자료가 좀 많은데요?”

그가 내게 건넨 카탈로그의 양은 생각보다 많았고, 나는 그에게 카탈로그 묶음을 보이며 물었다.

“어. 나 곧은 정형외과로 온 이후에 아직 아무 메디컬이랑도 발주 물건 안 텄거든.”

“예? 아직 메디컬 한 군데에서도 물건 발주 안 하셨습니까?”

그의 말에 놀란 이유.

내가 정 원장에게 처음 영업 오기 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사실 때문이다.

바로 그의 연고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그가 학연, 지연, 혈연에 강하게 끌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내가 그에게 다가가는 것이 어려웠었지.

나는 그것을 노력으로 타파해 지금 영업을 따내게 되었지만, 이번 일로 그에게 영업 성공을 한다고 해도 따낼 수 있는 품목이 많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이미 연고주의로 인해 그가 아는 메디컬 지인에게 발주를 많이 넣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현재까지 아무 메디컬 회사에도 발주를 넣지 않았고, 지금 첫 번째라고 하니 놀랄 수밖에.

“응. 민 과장한테 처음 넣는 거야. 왜 그렇게 놀라?”

“아……. 저는 이미 아시는 업체 여러 군데에 발주를 넣으셨으리라 생각했었거든요.”

그는 내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왕 할 거면 친분 있는 사람한테 발주 넣는 게 좋지.”

그가 말하는 친분이 있는 사람.

바로 연고주의를 말하는 것 같았다.

“네, 그렇죠.”

“그런 면에서 보면 민 과장한테 발주하는 게 맞지, 안 그런가?”

나는 의외의 대답에 놀랐지만, 이유를 알고 싶어 그에게 물었다.

“저야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제가 원장님께 뭐 해드리거나, 원래 알던 사이가 아니…….”

그는 내 말을 자르며 입을 열었다.

“민 과장.”

“예, 원장님.”

“만남은 인연이야.”

그의 진지한 표정에 나는 허리를 세우고, 정 원장의 움직이는 입을 바라보았다.

“세상을 살면서 만남은 항상 있지. 새로운 사람을 수도 없이 만나기도 하고, 아는 사람도 만나고. 그런 인연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돼.”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인연을 유지하고, 관계를 깊게 유지하려면 굳이 노력이라는 걸 해야 하더라.”

“그렇죠. 그렇지 않으면 관계가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응. 근데 민 과장은 내게 꾸준히 노력을 해주더라고. 물론 다른 메디컬 직원도 와서 노력이라는 걸 했지만, 모두 민 과장만큼은 아니었어.”

정 원장은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내가 그동안 물건을 발주하고 받는 데에는 친분이 중요했던 건 사실이야. 뭐, 누구나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친분 있던 사람한테 받는 게 좋을 테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민 과장한테 받아도 충분할 것 같더라고.”

뿌듯했다.

정 원장과 아무런 연고도 없던 나.

그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삐거덕거리며 거의 입구 컷을 당하기도 했었지.

그런데 이렇게 그에게 신뢰를 얻고, 제일 먼저 발주까지 얻어냈다는 사실에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 노력이, 내 영업력이 그의 오래된 신념을 바꾸고 성과를 냈다는 것에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원장님.”

그는 나를 보며 함께 미소 지었다.

그리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허리를 숙였다.

* * *

“오늘도 광주권에 납품 들어가야 할 물건이 많네?”

출근 후 제일 먼저 찾은 곳.

납품 테이블이다.

이곳에서 물건을 정리하며, 오늘 이동할 코스를 정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한태준.

나는 그의 옆에서 함께 병원을 나누며 동선을 정하고 있다.

“그러게요. 오늘 광주 쪽 물건이 많네요.”

나는 납품 테이블 위의 물건들에 붙어 있는 병원명을 빠르게 훑었다.

그중 눈에 띄는 내 담당 병원들.

“여기서 내가 모던 정형외과랑…….”

내가 갈 병원들과 한태준이 가야 할 병원을 나눴다.

“과장님, 너무 많이 가져가시는 거 아닙니까? 제가 돌아도 괜찮은데…….”

한태준은 나를 바라보며 고마운 마음 반, 걱정스러운 마음 반으로 말끝을 흐렸다.

“괜찮아. 어차피 병원들 동선대로 돌면 오늘 하루면 갈 수 있어. 태준이 요즘 많이 힘들지?”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물었다. 그러자 그는 어깨를 들었다 내려놓으며 숨을 내쉬었다.

“하. 과장님, 저희 직원 곧 뽑을 수 있는 거겠죠?”

한태준의 얼굴은 백태석이 나간 이후로 많이 상한 것이 눈에 보였다.

일이 두 배로 늘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테지.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장님한테 들어보니까, 저번에 면접 본 사람 중에 곧 출근할 사람 있다고 하더라. 빠르면 다음 주엔 출근하지 않을까 싶은데?”

내 말에 한태준의 얼굴에는 금세 미소가 번졌다.

“정말요? 다행이네요.”

그의 급격한 표정 변화가 더 마음에 쓰였다.

“태준이, 많이 힘들었구나? 조금만 더 고생하자. 밑에 새로 직원 오면 금방 적응할 거야. 그럼 태준이 너도 더 성장할 거고.”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는 말없이 그의 어깨를 몇 차례 두드렸다.

* * *

차에 가득 실려 있는 납품 물건 중, 모던 정형외과에 넣을 것만 빼내 카트에 옮겼다.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위로 털털거리며 카트를 끌고 들어가니 역시나 많은 환자로 붐비고 있었다.

그 인파를 뚫고, 나는 지금 바로 만날 수 있는 원장들 진료실을 살폈다.

내가 승진을 한 뒤, 처음 찾은 모던 정형외과.

오늘 병원을 찾은 이유도 명함을 주며 인사를 하고,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다.

똑똑.

“안녕하십니까.”

“어? 민 대리님!”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환한 미소로 나를 반기는 김사랑 원장.

“민 대리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박승호 원장.

“안녕하십니까, 원장님.”

나는 박 원장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허리를 숙였다.

박 원장은 놀란 얼굴로 내게 물었다.

“어떻게 딱 우리 같이 있을 때 왔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그럼요. 제가 다 알아보고, 곧장 김 원장님 진료실로 서둘러 들어왔습니다. 하하.”

김 원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진짜 박 원장님이랑 같이 있는 거 알고 있었어?”

“네. 조금 전에 물건 공급실에 넣고 오다가, 외래 간호사 선생님들한테 들었습니다. 박 원장님 곧 수술 들어가신다고 해서 급하게 들어왔습니다.”

박 원장은 자신의 옆에 있는 의자를 내게 밀며 말했다.

“아, 앞에 박 간호사가 말해 줬구나? 앉아, 민 대리.”

“넵.”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명함을 내밀었다.

“원장님들. 저 명함 새로 나왔습니다.”

“명함? 나 민 대리님 명함 가지고 있는데?”

그녀는 내 명함을 받기도 전에 답을 했다.

그리고 옆에 서 있는 박 원장 역시 내 명함을 받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어? 민 대리 혹시 승진했어?”

역시.

업계에 오래 있는 사람은 다르다.

명함을 준다고 할 때부터 내가 승진했다는 것을 눈치챈 박 원장.

나는 그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명함을 한 장씩 건넸다.

“네. 저 이제 민지훈 과장입니다. 하하,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 축하해, 민 대리님. 아니지. 민 과장님.”

그녀는 활짝 웃으며 내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박 원장은 내가 건넨 명함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민 과장이네. 민 과장 앞으로 승진해서 실적 좀 내려면, 내가 더 열심히 물건 팔아서 발주 많이 넣어줘야겠네.”

“네, 원장님. 앞으로 더 승승장구하셔서 발주 많이 부탁드립니다. 하하.”

나는 그의 팔을 주무르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 우리 민 과장님 매출 올려주려면 나는 얼른 돈 벌러 가야겠다.”

그가 시계를 보며 말하자, 옆에 앉아 있던 김 원장이 답했다.

“어? 그러네. 원장님 바로 수술이시죠?”

“응. 이야기는 수술 끝나고 이어서 하자고.”

“네, 고생하세요.”

“원장님,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녀와 나는 김 원장 진료실에서 나가는 박 원장을 향해 인사했다.

그리고 그곳에 남은 김 원장과 나.

김 원장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민 과장님, 진짜 축하해.”

“감사해요. 원장님은 요즘 별일은 없으시죠?”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안부를 물었다.

“그럼. 너무 아무 일도 없어서 심심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

박 원장과 함께 진료실에서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제야 한가해져 돌아본 그녀의 진료실.

그녀 바로 옆에 놓인 꽃다발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내 외침에 김 원장은 내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아… 이거?”

그녀는 옆에 놓인 꽃다발을 들어 내게 보여 주었다.

“선물 받으셨어요?”

김 원장이 들고 있는 꽃다발.

밝은 아이보리색 종이로 예쁘게 포장된 해바라기였다.

다른 꽃은 섞이지 않고, 오로지 해바라기로만 구성된 꽃다발.

“응. 나 선물 받았어.”

혹시 오늘이 그녀의 생일인가 싶어 나는 재빨리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오늘이…….”

그녀는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로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거 누가 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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