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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57화 (157/339)

157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백태석.

나는 콧방귀를 내쉬며 그에게 말했다.

“왜냐고?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지, 태석아. 이게 뭐야?”

내 역질문에 그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했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 백태석의 동공이 흔들렸다.

나는 백태석이 입을 열기 전 한마디를 추가로 던졌다.

“왜 이게 네 다이어리에 붙어 있어? 이 파일. 내 컴퓨터에만 저장된 거잖아.”

그는 내 말에 재빨리 입을 열었다.

“제가 먼저 돈 달라고 한 거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WG 메디컬에서 먼저 돈 줄 테니, 정보 달라고 한 겁니다. 믿어주십시오.”

나는 그저 이 종이가 왜 백태석에게 있는지에 대해 물은 것이지, 왜 스파이 짓을 했는지에 대해 물었던 것이 아니었다.

내 질문에 제 발이 저렸던 백태석은 WG 메디컬에 스파이 노릇을 했다는 것을 불어버렸다.

그의 다급한 말에 나는 코로 한숨을 내뿜으며 답했다.

“나 WG 메디컬에 정보 줬냐고 안 물어봤는데?”

그는 내 말에 자신의 답이 잘못됐음을 느끼고 변명을 하려 입을 여는 듯했다.

“그게…….”

나는 백태석의 말을 자르고 다음 질문을 던졌다.

“이제부터 똑바로 이야기해. WG 메디컬에서 돈 준다고 스파이 짓 시킨 거야?”

“…….”

“아니면, 설마 네가 정보 줄 테니 돈 달라고 했니? 후자는 정말 아니길 바란다, 태석아.”

그는 내 질문이 끝나자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고 손사래를 치며 허겁지겁 답했다.

“아닙니다. 정말 제가 먼저 한 거 아니에요. WG 메디컬에서 먼저 입찰 건 있다고 정보 알아내 주면 돈 주겠다고……. 아시다시피 제가 집에 돈이 급해서…….”

백태석은 말을 끝내고 고개를 다시 푹 숙였고, 나는 그의 말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접을 수 있는 만큼 접고 내게 외쳤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대리님. 제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저질렀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백태석이 사죄를 해야 하는 것이 맞는 일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 사과를 나 혼자 받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여전히 허리를 접고 일어나지 않고 있는 그에게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우선 앉아.”

내 말에 그는 천천히 허리를 세우고 눈을 내리깐 채로 착석했다.

나는 아무런 말 없이 내 빈 소주잔에 소주를 따라 붓기 시작했다.

그러자 백태석은 내 행동을 보고 재빨리 양손을 내밀어 내 소주병을 빼앗으려 들었다.

내가 내 잔에 술을 따르려고 하니, 자신이 따라 주려는 모양.

하지만 나는 손바닥을 내밀어 보이며, 병을 내주지 않고 내 잔에 술을 채웠다. 그리고 곧바로 그 술을 모두 들이켰다.

“태석아.”

“…네.”

“안 걸릴 줄 알았어?”

그는 내 말에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백태석은 내가 자신에게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를 줄 알았는지, 잔뜩 긴장한 자세로 있다가 내 질문에 조심스레 나를 바라보았다.

“저 이제 회사 잘리는 거죠?”

와중에도 회사에 다닐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가 중요한 모양.

나는 그의 질문에 다른 이야기를 내뱉었다.

“태석아, 내가 제안 하나 할까?”

“예?”

그는 내 말에 솔깃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회사에 이야기 안 할게.”

“정말이십니까?”

술이 한참 올라온 백태석은 내가 회사에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하자, 언제 술에 취했냐는 듯 화색이 도는 얼굴로 물었다.

그리고 그는 내게 앉은 자리에서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제가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런 백태석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답했다.

“어. 내가 직접은 말이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네가 직접 회사에 이야기해.”

내가 백태석을 몇 년을 보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와 지내온 세월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신입 시절부터 열정이 넘치게 일을 했던 것도 알고 있었고, 현재 그의 상황 또한 알고 있다.

이미 우리 광주 메디컬에 되돌릴 수 없는 만큼의 죄를 지은 것 또한 사실이다.

내가 그를 위해 마지막 배려로 해줄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다.

백태석이 직접 광주 메디컬의 장 사장, 손 차장 등 직원들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한 뒤 용서를 구하는 것.

내가 먼저 그의 만행을 밝히는 것이 아닌, 그의 입에서 먼저 사실을 고하고 진실한 용서를 구해야만 백태석이 광주 메디컬을 더 다닐 수 있으리라 결론을 냈다.

백태석은 내가 직접 이야기하라는 말에 놀란 얼굴로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앞에는 빈 생맥주잔과 소주병이 여러 개 놓여 있었고, 그 술의 양 만큼이나 백태석의 얼굴을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대리님.”

“응, 말해.”

“제가 내부에서 정보를 빼내, WG 메디컬에 준 것은 사실이지만 2차 입찰 때에는 저희 광주 메디컬이 낙찰되지 않았습니까. 이번 한 번만 대리님께서 용서를 해주시면…….”

나는 그에게 손바닥을 보이며 백태석의 말을 가로막았다.

2차 입찰에서 우리 광주 메디컬이 낙찰된 이유.

바로 우리 회사에 이미 스파이가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스파이를 통해 정보를 흘려 막은 것이지.

내가 미리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2차 입찰도 1차 입찰에서 실패했듯 WG 메디컬에게 빼앗겼을 것이다.

하지만 백태석은 그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

그저 돈을 받고, 정보를 넘긴 것. 그것만 생각했지, 그 뒤의 일은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그의 말을 막았지만,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있자 백태석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대리님. 제발요. 저 회사 못 다니면 안 돼요. 아시잖아요. 다시는, 정말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네?”

술기운이 잔뜩 올라온 그는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표정과 말투에서 가식이나 거짓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혼자 그를 용서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더불어 나는 이번 일을 눈감아 주는 것이 백태석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앞에 놓인 소주병을 집어 들었다.

딱 한 잔의 양이 남아 있는 소주.

그것을 그대로 내 빈 잔에 부으며 백태석에게 답했다.

“태석아. 나는 네가 열심히 일하고 싶다는 걸 믿었어. 그리고 네가 열정이 넘치던 모습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널 광주 메디컬로 불렀던 거야.”

그는 내 말에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번 일로 나 또한 너한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네.”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 돈이 급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지만, 이번 일은 네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아니라고 봐. 더 심한 말도 하고 싶지만, 참을게. 그리고 내가 너를 봐와서 해주는 제안이야. 내 마지막 배려라고 해두자.”

그는 고개를 푹 꺼트렸다.

백태석의 숙인 고개에 나는 그의 정수리를 바라보고 소주를 입에 털어 부었다.

탁.

소주잔을 내려놓은 뒤, 나는 직원을 바라보고 소리쳤다.

“여기, 소주 한 병만 더 주세요!”

새로 가져온 소주 뚜껑을 열어 백태석에게 따랐다.

“태석아. 이거 마시고 들어가. 그리고 잘 생각해 보고 내일 출근해서 네가 직접 마무리 지었으면 좋겠다. 계속 다니고 싶은 거라면 네가 직접 용서를 구해야 다닐 수 있지 않겠니.”

그는 내 눈을 피하며 내가 따라 주는 소주를 받았다.

“2차에서 광주 메디컬이 낙찰됐다고 그냥 쉬쉬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 잘 생각해 봐. 뭐가 네 미래를 위한 일인지 말이야. 나 먼저 들어간다.”

나는 그에게 술을 따라준 후, 병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곧바로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고개를 푹 박고 있는 백태석에게 다가가 어깨를 한 번 두드린 후 나는 계산대로 향했다.

“저기, 계산할게요.”

맥줏집에서 빠져나와 나는 어둠이 드리워진 길을 저벅저벅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애써 백태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 위해 그를 떠올렸다.

아무리 그의 관점에서 떠올려도, 돈이 궁했다지만 이건 있을 수 없는 일.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정확히 모두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닌 일.

백번 천번 양보해서 백태석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 했지만,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로 결국 집에 도착했다.

* * *

다음 날, 병원으로 직출을 하지 않고 사무실로 곧장 출근했다.

전날 술집에서 백태석에게 했던 조언의 결과를 듣기 위해서이다.

오늘 사무실에는 나를 포함해 다른 직원들도 모두 회사로 나왔다.

단 한 사람, 백태석을 제외하고.

사무실에 걸려 있는 벽시계의 시간은 9시가 훌쩍 넘어, 9시 30분을 향하고 있었다.

왜 백태석이 아직 출근을 하지 않은 거지?

병원으로 직출을 한 것인지, 혹은 전날 마신 술로 늦잠을 자는지 알 수 없었다.

장홍석 사장은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백태석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한 뒤 직원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태석이는 오늘 병원으로 직출 한다고 한 건가?”

장 사장의 물음에 직원들은 서로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고, 손 차장은 곧장 자신의 톡을 확인하는 듯했다.

사무실로 오지 않고, 직출을 하거나 무슨 일이 있을 경우 항상 손 차장에게 보고했기 때문이다.

손 차장은 자신의 휴대전화에 찍힌 문자나 톡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장 사장에게 답했다.

“어… 태석이 오늘 연락 온 게 없는데요? 전화해 보겠습니다.”

손 차장이 곧바로 휴대전화를 다시 들자, 한태준이 소리쳤다.

“차장님!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럴래? 그럼 태석이한테 바로 전화 좀 해봐. 이놈 이거 빠져서 벌써 지각하는 거야?”

“네, 바로 전화해 보겠습니다!”

한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전화를 들어 전화를 거는 듯 보였다.

장 사장은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아 내는 듯했고, 그대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때, 한쪽에서 큰 외침이 들렸다.

“어?”

모든 직원은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고, 그 사람은 바로 손 차장.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 사장 쪽으로 몸을 돌려 소리쳤다.

“사장님! 키보드 아래 좀 봐보십시오!”

그의 손에는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손 차장의 외침에 모든 직원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신들의 자리에 키보드를 들고 확인했다.

“이게 뭐야?”

곧바로 장 사장도 그 종이를 발견한 듯했다. 그리고 나도 내 책상에 있는 키보드를 왼손으로 잡고, 허공으로 들었다.

그 밑에 깔린 종이 한 장.

하얀 A4 용지로 보이는 종이는 반으로 두 번 접은 듯, 고이 접혀 키보드 밑에 딱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종이를 빼내, 곧장 펼쳐 보았다.

“사장님!”

한태준은 전화하느라 여전히 자리에 서 있었고, 그는 장 사장에게 소리쳤다.

장 사장은 그의 목소리에 눈썹을 들썩이며 한태준을 바라보았다.

“백태석, 전화가…….”

한태준의 목소리는 떨려 왔고, 장 사장은 답답하다는 듯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전화가 왜? 안 받아? 자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얼른 여러 번 해 봐.”

“아니, 그게 아니라요.”

한태준은 자신의 자리 옆으로 나와 장 사장의 자리까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장 사장 앞에 멈춰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백태석 전화번호가… 없는 번호라고 나옵니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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