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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56화 (156/339)

156화

“백태석, 아직도 전화 안 받아?”

WG 메디컬 김윤중 대표는 최권호 부장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어제부터 계속했는데, 다시 한번 바로 해보겠습니다.”

최 부장은 한숨을 참아 내며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를 바라보는 김 대표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내가 말을 안 해도 최 부장이 알아서 확인해야지, 뭐 하는 거야. 제대로 일 처리하겠다며? 지금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야?”

“죄송합니다.”

“죄송한 게 문제가 아니라, 대체 일을……. 하. 빨리 전화해 봐.”

“네…….”

최 부장은 그에게 허리를 접어 숙인 뒤, 한쪽으로 자리를 옮겨 전화를 걸었다.

한참을 서 있는 것을 보니,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는 모양.

그는 한숨을 연달아 내쉬며, 곧바로 다시 발신 버튼을 눌러댔다.

“여보세요?”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는지, 그는 쪼그리고 있던 허리를 펴고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전화를 왜 이제 받아! 대체 너 뭐 하는 거야!”

최 부장의 큰 소리에 김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 통화를 하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김 대표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통화를 이어갔다.

“너 돈은 돈대로 받고, 일은 이따위로 해? 뭐? 몰라? 네가 준 금액 믿고 입찰 넣었는데, 광주 메디컬이 낙찰된 거 몰랐다고? 이런 식으로 발뺌하면 우리가 알았다고 할 줄 알았어? 2차 입찰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최 부장은 자신의 전화를 붙들고 사무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다.

그의 얼굴은 곧 터질 것처럼 붉게 타올랐다.

“지금 어디야? 만나서 이야기하게, 어딘지 똑바로 말해. 네가 지금 광주 메디컬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야? 야! 백태석! 야! 이 새끼야! 여보세요, 여보세요?”

최 부장은 귀에 붙이고 있던 휴대전화를 눈앞으로 옮겼다.

통화가 종료된 그의 휴대전화.

그는 재빨리 백태석 글씨 옆 발신 버튼을 눌렀다.

-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돼…….

최 부장의 휴대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백태석이 전화를 거절하고 있는 듯했다.

“악!”

최 부장은 종료 버튼을 누른 뒤 허공을 바라보며 고함을 질렀다.

그의 모습을 본 김 대표는 긴 한숨을 내쉬며 저벅저벅 걸어갔다.

“뭐래.”

바닥 깊숙한 저음의 목소리로 묻는 김 대표.

그의 말에 최 부장은 언제 소리를 질렀냐는 듯 자세를 고쳐 잡고, 자신의 얼굴을 수차례 손으로 쓸어내렸다.

“…죄송합니다.”

“…….”

“태석이 이 새끼는 자기가 준 자료가 정확했다면서, 광주 메디컬에서 낙찰됐다는 것도 저를 통해서 방금 들었다면서…….”

최 부장의 말에 김 대표는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서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백태석 그 새끼 믿으라며, 돈 주면 된다며, 그 돈 어쩔 거야!”

“제가 다시 연락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하, 권호야. 이제 알아봐서 어떻게 하게. 2차 입찰 나가리 됐잖아. 이미 끝났다고. 백태석 이놈 우리한테 일부러 다른 금액 흘린 거야.”

김 대표는 자신의 앞 테이블에 놓여 있는 종이를 모두 밀쳐 내며 소리쳤다.

* * *

[T]

이니셜이 적혀 있는 다이어리.

내부 스파이가 박수진 주임, 한태준, 백태석 중 누구일까, 한참 생각했었다.

지금 내 손에 들려있는 다이어리로 볼 때, 우선 박 주임은 아니었다.

T……. 한태준의 ‘태’, 백태석의 ‘태’. 두 명 중 한 명이 분명했다.

나는 서둘러 앞 장으로 넘겨 다이어리에 적힌 다른 내용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장을 넘기지 않아 나는 다이어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담당 병원과 매일 한 일을 체크한 내용을 보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다이어리를 떨어트린 사람이 ‘백태석’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그대로 차에 올라타 생각에 잠겼다.

얼마 전 최권호 부장과 한국 병원에서 마주쳤을 때, 이미 내부 스파이가 있다는 사실은 알아냈었지만,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었다.

그래서 우리 회사를 상대로 뒤통수를 친 장본인이 누구인가가 제일 궁금했고, 하루빨리 밝혀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낸 지금,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 것인가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곧바로 장홍석 사장과 손지혁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을 먼저 말해야 할지, 백태석을 먼저 만난 후 윗선에 보고를 올려야 할지.

섣불리 판단하기 전에 나는 우선 고민을 먼저 해보기로 했다.

오후. 내 몸은 병원을 돌고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백태석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퇴근 전, 백태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대리님.

“태석아. 어디니?”

- 저 마무리하고 들어가려 하고 있습니다.

“퇴근하고 일 있어?”

- 아니요. 바로 집 들어갑니다. 무슨 일 있으세요?

“회사 옆 골목에 맥줏집 알지?”

- 네, 모퉁이 돌면 바로 있는 맥줏집 말씀하시는 거죠?

“어. 정리하는 대로 거기로 좀 올래?”

- 예. 그럼 사장님이랑 차장님, 나머지 직원은 제가 연락하면 될까요?

“아니. 너 혼자만.”

아직까지 한 번도 백태석과 단둘이 술을 마셔본 적은 없었기에, 그는 당황스러워하는 말투로 내게 되물었다.

- 네? 저 혼자 말씀이십니까?

“어. 바로 올 수 있지?”

- 아……. 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백태석은 내가 왜 자신을 부르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목소리였다.

자신이 다이어리를 떨어트렸는지도, 내가 자신이 내부 스파이인 것을 아는지도 전혀 모르는 듯한 말투.

나는 분노가 차올랐지만,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우리 회사를 배신했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이건 그냥 지나가는 실수가 아니기에, 그를 용서할 마음으로 만나는 것 또한 아니다.

하지만 내가 제안을 해서 데려온 후임이었고, 어찌 됐든 윗선에 보고하기 전 내가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백태석이 이렇게 우리에게 뒤통수를 친 이유를.

WG 메디컬이 싫어 나온 그가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이다.

그 이유가 어떤 사유든 정당화될 수는 없을 테지만.

* * *

미리 자리에 도착한 나는 먼저 생맥주를 주문해 들이켰다.

도저히 홀로 생각해도 이유다운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우리 회사에 서운할 일도, 배신을 할 만한 이유도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또다시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켠 후, 백태석을 안주 삼아 머리를 굴렸다.

그때, 술집의 출입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백태석.

술집의 규모가 작았기에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사람을 바로 보기에 충분했다.

“태석아, 여기!”

백태석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당히 초췌해 보이는 몰골을 하고 나타났다.

항상 깔끔하게 다녀야 하는 우리 직업.

그렇기에 머리 스타일까지 신경 써야 하는 우리는 항상 단정하게 커트를 하거나, 왁스나 스프레이를 통해 머리를 정돈했다.

백태석 역시 매일 같이 스프레이를 뿌리고 다녔다.

하지만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스프레이를 뿌려 스타일링이 된 머리를 연신 쥐어뜯은 듯 보였다.

스프레이로 굳어 있던 머리를 스스로 헝클어트린 탓에 머리가 엉망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머리를 다시 정돈하기 위해 손으로 연신 만졌는지 떡이 진 듯했다.

그는 나를 발견하고 출입문 앞에서 내 쪽을 바라보며 허리를 숙였다.

나는 그의 인사에 눈썹을 들썩이며 손으로 다가오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대리님.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아니야. 얼른 앉아.”

“넵.”

그는 내 앞에 의자를 빼내어 자리했다.

“사장님! 여기 맥주 한 잔 더 주세요.”

나는 손을 번쩍 들어 주문한 뒤, 백태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태석아,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예?”

나는 그저 그의 몰골을 보고 제일 먼저 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다는 듯한 얼굴과 말투로 놀라 내게 되물었다.

“너 머리도 다 헝클어지고, 얼굴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보여서.”

“아……. 아닙니다. 아무 일 없습니다.”

“그래? 확실하지?”

“그럼요. 오늘 병원을 여러 군데 돌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때 백태석 앞에 생맥주 한 잔이 놓였다.

“맛있게 드세요.”

종업원이 맥주를 두고 자리를 뜨자마자 나는 백태석에게 말했다.

“오늘도 고생했다, 한잔해.”

“네. 대리님도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나는 백태석을 훑어본 뒤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잔을 내려놓은 뒤, 물었다.

“태석아.”

“네, 대리님.”

“광주 메디컬로 오니까 어때, 다닐 만해?”

“WG 메디컬 다닐 때보다 훨씬 좋습니다.”

“그래? 요즘 힘든 일은 없고?”

“힘든 일…은 딱히 없습니다.”

“응. 오늘은 어디 병원 다녀왔어?”

얼굴을 보아 분명 무슨 일이 있어 보이는데, 쉽사리 입을 열지 않는 백태석.

그리고 나 역시도 그에게 곧바로 다이어리 이야기, WG 메디컬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아무래도 봐왔던 세월이 있기에, 어떤 식으로 이야기의 물꼬를 터야 하나 싶은 마음이었다.

맥주를 한두 잔 마신 뒤, 우리 테이블에는 안주와 소주병이 올라와 있었다.

우리가 소주로 바꿔 마시고, 빈 소주병이 2병이 될 때쯤, 나는 백태석에게 같은 질문을 다시 한번 던졌다.

“태석아, 요즘 무슨 일 없어?”

“음, 무슨 일…이요?”

질문을 던진 건 나였지만, 내 질문에 떠오른 것 또한 역시 나였다.

백태석은 지난번 회식 자리에서 자신의 집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정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생겼다며 힘들어하던 백태석.

나는 술잔을 어루만지고 있는 백태석에게 질문을 바꿔 물었다.

“어. 지난번에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했던 적 있잖아.”

그는 살짝 풀린 눈에 겨우 힘을 주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쪽 입꼬리를 옅게 올리며 답했다.

“해결됐습니다.”

“어? 어떻게 벌써 해결이 됐어?”

나는 그의 의미심장한 표정에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백태석은 내 질문에 답하기 곤란하다는 말투로 얼버무리며 말을 흐렸다.

“뭐…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보태서 급한 불은 끌 수 있게 됐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동시에 드는 생각, 이상하다는 마음.

백태석은 분명 돈이 급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돈을 월급쟁이인 백태석이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주식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그가 주식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요즘 주변을 돌아보면 주식에 코인에, 되려 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게 빠른 세상이다.

그래서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도 그런 유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백태석 홀로 고개를 가로저었었다.

자신이 어떻게 번 돈인데, 그걸 한순간에 잃을 수 있느냐며 주식과 코인을 부정했다.

돈이 배로 불어날 수도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도 그는 잃을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백태석은 자신의 돈이 1원이라도 없어지는 것을 볼 수 없다며 절대적으로 그 세계를 꺼려 했다.

그렇기에 백태석이 이렇게 갑자기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그건 로또와 같은 갑작스럽게 생긴 돈일 것이다.

나는 백태석이 WG 메디컬의 스파이 노릇을 한 걸 알고 있기에, 그가 꼬임을 당한 방법이 ‘돈’일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나는 테이블 위에 술병과 잔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가방을 뒤적여 다이어리를 꺼내 그 위로 올려놓았다.

난 곧바로 고개를 들어 백태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태석아.”

“예, 대리님.”

“이거 다이어리. 주차장에 흘렸더라.”

나는 올려놓은 다이어리를 백태석 쪽으로 밀며 말했고, 그는 다이어리를 보며 손뼉을 부딪쳤다.

“아! 다이어리. 한참을 찾았는데, 거기에 떨어트렸었네요. 감사합니다.”

그는 다이어리에 어떠한 내용이 들어 있는지는 잊은 것인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것인지 그저 잃어버린 다이어리를 찾았다는 생각에 기뻐하고 있었다.

“항상 물건 들고 나갈 때, 빠트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했잖아. 물건 차에 가지고 가다가 흘렸나 보더라.”

“네, 주의하겠습니다. 대리님 아니었으면, 못 찾을 뻔했습니다.”

전혀 상황 파악을 못 하는 듯한 그에게 나는 그 다이어리에서 나온 입찰 견적 종이를 꺼내 옆에 펼쳐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본 백태석은 마치 처음 본다는 듯한 얼굴로 종이와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걸 왜 갑자기 보여 주시는 거예요, 대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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