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55화 (155/339)

155화

먼저 장홍석 사장.

광주 메디컬의 사장이기에 절대 스파이가 될 수 없는 인물.

너무 당연했다.

다음, 손지혁 차장.

그 역시 스파이라고 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했다.

누구보다 WG 메디컬의 김윤중 대표를 싫어했고, 그런 이유로 WG 메디컬을 나와 광주 메디컬을 함께 설립했으니까.

나는 상사들을 바라보던 고개를 돌려, 나머지 직원들을 차례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박수진 주임.’

그녀는 나에게 호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지금은 알 수가 없다.

내가 그녀의 마음을 온전히 차버렸고, 그녀는 그날 이후 나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가득한 게 눈에 보였다.

과연 그날의 그 일로 WG 메디컬의 스파이를 자처했을까?

나는 홀로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고개의 각도를 몇도 틀어, 옆을 바라보았다.

‘한태준.’

한태준은 선임들에게 항상 싹싹하고, 눈치가 빠르며 어디서나 예쁨을 받는 타입의 직원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신뢰하고,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 싶은 후임이지.

하지만 한태준은 나에게 얼마 전 호되게 혼났던 적이 있다.

내가 욕설까지 퍼부으며 혼을 냈던 건 아니었지만,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며 후임에게 그렇게 진심으로 꾸지람을 준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으니까.

한태준은 근무 시간에 거짓말하고 사적인 약속을 가졌었다. 그것을 나에게 딱 걸리고 말았고, 한 소리를 들었었지.

그러나 그런 이유로 우리 회사에 서운한 마음이 들어 스파이 짓을 했다?

그것 또한 말이 되지 않았다.

나는 한태준을 보며 떠오르는 생각을 끝낸 후 재차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태준도 그럴 리가 없지.

그리고 옆에 앉은 ‘백태석.’

백태석은 이제 자리를 잡은 직원이다.

메디컬 바닥에 드디어 3개월 이상 근무하며 돌아가는 체계도 익혔고, 사회생활의 바닥도 단단하게 다지기 시작했지.

백태석과 나, 백태석과 광주 메디컬 사이에서는 일이라는 게 발생했던 것이 단 하나도 없다.

특히나 평소 눈치가 부족했던 그는 스파이 짓을 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인물.

내가 한태준과 백태석을 데리고 오려고 했던 그때, 누구보다 절실했던 사람 또한 백태석이었다.

한태준은 메디컬계에 남고 싶어 여러 메디컬 회사에 이력서를 써왔었다.

그러나 백태석은 어디든 일을 해야 한다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표했었다.

그랬기에 백태석은 내가 우리 광주 메디컬로 기회를 주자 누구보다 기뻐했던 직원이다.

백태석 또한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눈앞에 놓인 종이에는 직원들의 이름을 차례로 적었었고, 나는 그 모든 이름 위에 커다랗게 ‘X’ 표시를 몇 번이고 덧칠했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지금 이 같은 공기를 마시며 있는 사무실. 이 안에 한 명은 내부 스파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직원들의 이름을 써놓은 종이를 뚫어질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민 대리!”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고, 나는 고개를 들었다.

“네?”

“민 대리, 몇 번이나 부르는데 뭐 하고 있어?”

장 사장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내가 생각을 하느라 그의 부름을 몇 번이고 듣지 못했던 모양.

“아, 죄송합니다!”

“얼른 그 2차 입찰 건 정리해서 가지고 와봐.”

“넵.”

스파이가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것도 중요했지만, 당장 2차 입찰이 다가온 지금.

더 중요한 것은 WG 메디컬에 우리의 입찰 단가가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우선 적으로 급한 것은 2차 입찰에 낙찰되는 것이 먼저였으니까.

나는 옆에 놓인 2차 입찰 목록을 들고 장 사장에게 다가갔다.

“사장님, 자료 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내가 내민 자료를 받아들고 눈으로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민 대리, 이거 금액이…….”

장 사장의 말을 잘라버리고 나는 그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사장님, 저랑 잠깐 담배 좀 태우시고 오실까요?”

“응? 지금?”

“네.”

내 단호한 표정과 말투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

그는 담배 연기를 내뿜음과 동시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래. 민 대리 이어서 말해 봐.”

“네. 그러니까 제 생각은 내부에서 WG 메디컬과 소통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 사장은 아무런 말도 없이 코로 긴 숨을 내뿜었다.

“나도 그 생각을 배제할 수는 없긴 한데,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네.”

장 사장은 내가 생각한 내부 배신자라는 말이 듣기 싫었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사장님. 저도 싫습니다. 더군다나 한태준, 백태석은 제가 여기에 데리고 온 아이들입니다. 그래서 더 사장님께 면목 없고요.”

“민 대리가 면목 없을 건 없지.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던 것도 아니고 말이야.”

나는 그의 말에 머리를 천천히 끄덕였다.

장 사장은 담배를 연신 마시며 내게 말을 이어 갔다.

“배신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게 믿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생각하기도 싫네. 우리 가족같이 잘 지내보자고 회식했던 게 바로 엊그젠데. 박 주임, 한태준, 백태석. 이 셋 중에 그런 무시무시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하…….”

장 사장에게 내 제안을 수긍하게 만들어야 한다.

배신자가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나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속마음을 통해 알고 있는 이 사실을 장 사장에게까지 확신을 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해 낸 2차 입찰에 성공할 수 있는 방법.

바로 ‘스파이의 역이용’이다.

2차 입찰 역시 WG 메디컬은 우리의 금액을 알아낼 것이다.

우리 회사에 있는 스파이를 통해.

그럼 우리는 그 금액을 거짓으로 알려주면 되는 것이지.

나는 이 방법을 장 사장에게 제안했지만, 장 사장은 우리 회사 내부에 그런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싫은 모양.

하지만 그의 마음을 전적으로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믿기 시작한다면 직원과의 신뢰가 모두 무너질 테니까.

나는 장 사장을 설득해야 했고,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장님. 어찌 됐든, 이번 2차 입찰 꼭 성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그럼 밑져야 본전이라고, 한 번만 저 믿고 맡겨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민 대리가 제안한 금액대로 서류를 작성해 보자, 이거지?”

나는 그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그럼 우리 회사의 그 누군가가 이 금액을 WG 메디컬에 넘길 테고, WG 메디컬에서는 그보다 더 낮은 금액으로 입찰에 들어오겠죠.”

장 사장은 담배 연기를 허공에 뱉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는 애초에 더 낮은 금액으로 입찰해 두자?”

“맞습니다. 저도 사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 걸 못 믿겠습니다. 이렇게 했는데도 WG 메디컬이 입찰에 성공한다면 제 예상이 틀린 거겠죠.”

“그래. 민 대리 말대로 밑져야 본전이니까, 한번 해보자. 이번 입찰에서도 떨어진다면 우리, 한국 병원 다시는 들어가기 힘들 거야.”

“네. 그럼 이 서류로 사무실 들어가셔서 다시 한번 이야기하시죠. 그리고 제가 사무실 서류도 이 금액으로 저장해 두겠습니다.”

장 사장은 담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응. 내일 입찰은 민 대리가 몰래 나랑 이야기했던 금액으로 진행해 둬.”

“예. 하고 나서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들어가자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씁쓸하네.”

장 사장과 나는 내가 생각한 방법으로 입찰을 하기로 결정지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곧 나올 2차 입찰 결과에 WG 메디컬이 입찰 신청 자체를 안 하길 바라는 마음이 제일 컸다.

사무실로 들어와 장 사장과 나는 아무렇지 않게 한국 병원 입찰에 대한 거짓 정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우리를 포함한 모든 직원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사무실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장 사장과 입찰 이야기를 나누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도무지 누가 우리의 이야기에 경청하고 있는가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 * *

며칠 뒤, 2차 입찰 발표 날.

지난 1차 입찰 발표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보다 더 떨리는 마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장 사장과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 그리고 그 역이용이 먹혔을 것인가에 대한 불안한 마음.

나는 천천히 마우스를 움직여 낙찰된 회사명을 보기 위해 클릭했다.

버퍼링이 걸린 듯, 화면 한가운데서 빙글빙글 도는 동그란 원 하나.

잠시 뒤, 화면이 전환되고 낙찰된 회사명이 크게 떴다.

[광주 메디컬.]

그제야 나를 비롯한 장 사장이 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숨은 안도의 한숨이자, 또 다른 고민 시작의 한숨일 것이다.

우선 2차 입찰에 낙찰되었다는 기쁨을 뒤로하고, 더욱 중요한 2순위를 보기 위해 창을 클릭했다.

2순위가 어느 메디컬인가, 얼마의 금액으로 2순위가 되었는지는 지금 나와 장 사장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WG 메디컬이 이 입찰에 참여했는지가 확인이 되어야 했기에.

2순위 회사와 금액이 동시에 열렸다.

그곳에 뜬 글자.

바로 WG 메디컬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WG 메디컬이 입찰 제시한 금액이 떠 있었다.

우리와 모두 같은 품목에 입찰을 넣었고, 그 금액은 내가 역이용하기 위해 작성한 금액에서 모두 동일하게 200원씩 낮은 금액이었다.

1차와 똑같은 패턴.

그 금액을 보는 순간 나와 장 사장은 눈이 마주쳤다. 장 사장의 표정은 단번에 알 수 없는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드는 듯했다.

“2차 입찰 성공했습니다.”

아직 이 이야기를 모르는 손 차장은 2순위 WG 메디컬이 떠 있는 창을 보지 못한 채 사무실에서 소리쳤다.

손 차장의 말에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은 모두 손뼉을 쳤다.

“저희 한국 병원 입찰 된 겁니까?”

“와! 광주 메디컬 이제 큰물로 가는 거죠? 하하.”

이렇게 환호를 지르는 직원들 가운데 한 명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모두 선한 얼굴과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한 명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내 얼굴을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나는 그들을 한 명씩 돌아가며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에게 들리는 속마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 *

다음 날,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출근했다.

믿고 있던 직원 중 한 명은 뒤통수를 친 직원일 테니.

나는 그것을 알고 있고, 회사에서 마주쳤을 때 모든 직원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자.”

“네, 고생하셨습니다.”

출근하자마자 시작한 오전 회의를 마치고, 썰물처럼 직원들은 병원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입찰 후 병원에 보내야 할 서류를 전송하기 위해 사무실에 남았다.

사무실에 남아 있는 건 나와 박수진 주임 둘뿐.

박 주임은 그날의 일로 여전히 나에게 서운한 마음이 있는지, 나에게 아무런 사적인 대화를 걸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그녀에게 사적인 대화를 시도할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나에 대한 마음을 접게 하려고 단호하게 잘라버린 것이었으니까.

“다녀오겠습니다.”

“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서류를 모두 송부한 뒤, 박 주임과 형식적인 말만을 나눈 뒤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주차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때.

내 차 앞에 떨어져 있는 무언가.

나는 눈을 찡그려 뜨고 떨어져 있는 물건을 바라보았다.

우리 광주 메디컬의 다이어리였다.

사무실에서 병원에 갈 때, 항상 챙겨 다니는 다이어리.

병원의 일정과 발주, 사무실 일정 등 적을 게 많은 영업사원은 다이어리가 필수 아이템이다.

하지만 병원에 나갈 때, 납품할 물건을 상자째로 들고 나가다 보니 떨어트리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짐을 실은 뒤, 바닥을 보고 떨어진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은 필수가 되어버렸다.

“어휴. 또 누가 칠칠찮게 흘리고 갔네.”

나는 혼잣말로 중얼대며 다이어리를 집어 들었다.

다이어리에 끼워져 있는 종이 한 장.

종이 한 장이 두 번 접혀 끼워져 있다 보니, 그 페이지가 자연스레 먼저 펼쳐졌다.

그 종이를 보고 나는 눈을 비벼 다시 바라보았다.

[한국 병원 2차 입찰 목록]

찾았다.

뒤통수를 친 내부 스파이.

내가 작성한 서류를 굳이 출력해 다이어리에까지 가지고 있다면,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황급히 다이어리 마지막 페이지로 넘겼다.

이름을 써두는 마지막 페이지.

그곳에는 이름 이니셜로 보이는 듯한 알파벳이 하나 적혀 있었다.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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