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200원.’
우리 광주 메디컬에서 입찰 신청을 했던 금액과 WG 메디컬에서 입찰을 신청했던 금액의 차액이다.
몇만 원, 몇천 원 차이도 아닌, 단 200원.
입찰을 넣었던 품목은 총 두 가지.
두 가지 전부 거짓말처럼 우리 광주 메디컬과 딱 200원이 낮은 금액으로 WG 메디컬에서 입찰에 성공했고, 그 금액을 본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누군가가 우리의 금액을 누설하지 않고는 대체 어떻게 이런 금액으로 WG 메디컬이 입찰에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내 뒤에 앉아 있는 장홍석 사장과 손지혁 차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장님, 차장님. 이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내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지.
우리가 넣은 두 가지 품목 외에 WG 메디컬에서 입찰에 성공한 품목이 있는지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오롯이 우리와 같은 두 품목만 입찰에 성공한 것이다.
나는 화면을 보며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있었고, 손 차장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입찰이라는 거, 하다 보면 이런 경우도 있어.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는 거고…….”
“그렇지만……. 우리와 같은 품목, 그리고 우리보다 딱 200원 낮은 금액이라는 것도 조금 수상하지 않습니까?”
나는 손 차장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옆에 앉은 장 사장은 나를 바라보며 손 차장 대신 대답했다.
“세상 살다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일투성이야. 우선 이번 건은 떨어졌으니, 2차 입찰에 신경 써보자고. 2차 입찰은 8개 품목이나 되는 거니까, 거기서 입찰 성공하면 됐어.”
“…네.”
나는 장 사장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차 입찰 역시 한국 병원 원장에게 금액을 받은 대로 입찰을 해야 했기에,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사장님.”
“응?”
“그럼 저희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 한국 병원 원장님이 주신 금액 그대로 입찰 넣는 겁니까?”
내 질문에 장 사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답했다.
“아니. 뭐 해, 일어나. 얼른 한국 병원은 다녀와야지.”
그는 앉아 있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고, 나는 장 사장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 서둘러 가방과 차 키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국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
나는 계속되는 찜찜한 기분에 장 사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장님. 그런데 이렇게 너무 맞아떨어지게 200원 차이로 입찰 들어왔다는 건, WG 메디컬에서 저희 금액을 아는 게 분명하겠죠?”
“글쎄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합니다. 한국 병원 원장님께서 저희에게 떨어지라고 WG 메디컬보다 높은 금액을 알려주시지는 않았을 텐데요.”
그는 내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장 사장 역시 나에게 티는 내지 않았지만, 이상한 느낌을 받았을 테니까.
그리고 나는 혹시나 드는 짐작을 그에게 표출했다.
“사장님. 혹시 저희 내부에서 배신…….”
“민 대리, 저기 앞에 세우지. 병원은 나 혼자 들어갔다 옴세.”
장 사장은 내 말을 끊어버렸다.
믿고 싶지 않은 거겠지.
나 역시 그런 마음이 크니까 말이다.
그의 말에 나는 한국 병원 정문 앞에 차를 잠시 세웠다.
“혼자 다녀오시는 겁니까?”
“응. 내가 원장님께 먼저 확인해 볼 게 있어서, 나와서 연락할게. 앞에 있어.”
“네, 다녀오십시오.”
장 사장은 먼저 차에서 내려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주차장으로 차를 옮겼다.
장 사장이 나와 함께 병원에 왔지만, 홀로 들어가는 이유.
아마 밑에 직원인 나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일까 걱정됐을 것이다.
장 사장은 바로 어제 한국 병원에 나를 데려왔었다.
자신이 다 만들어 놓은 입찰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해 나에게 교육을 해주려고 했던 것.
하지만 그 일이 어그러졌고, 왜 이렇게 됐는지 확인을 하는 과정까지는 아직 나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입찰이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이유는 딱 두 가지뿐이다.
첫 번째, 한국 병원 원장이 우리에게 잘못된 금액을 제시한 것.
이런 이유라면 대놓고 광주 메디컬 장홍석 사장에게 물을 먹이려는 속셈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그렇게까지 할 리가 만무하다.
WG 메디컬에 200원이 낮은 금액을 제시하고, 우리에게는 그보다 200원 높은 금액을 알려주는 것.
그것을 통해 한국 병원이 얻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첫 번째 이유는 납득이 조금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두 번째 이유.
바로 내부의 배신자가 존재한다는 것.
내가 지금 의심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두 번째 이유이다.
WG 메디컬에서 우리 단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당당하게 입찰에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
우리의 단가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 단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우리의 단가를 누설한 누군가가 있었다는 거겠지.
하지만 이마저도 정황상 드는 내 의심이지, 확실한 이유는 아니다.
더군다나 이 두 번째 이유는 아니길 바랄 뿐.
장 사장도 조금 전, 차에서 내 말을 잘라버린 것은 내부의 배신자가 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나는 주차를 한 뒤, 차에서 많은 생각을 하다가 답답한 마음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병원 모퉁이를 돌아가면 있는 흡연 가능 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에는 몇몇 사람들이 모두 조금씩 떨어져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허공을 바라보며 담배를 길게 마시고, 뽀얀 연기를 내뿜었다.
하얀 연기가 눈앞을 가득 메우고, 공기 중으로 흩어지자 보이는 한 사람.
멀리서 보아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를 바라보며 내 쪽으로 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었으니까.
그는 바로 WG 메디컬의 최권호 부장이었다.
나와 언성을 높이며 좋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게 불과 얼마 전.
그렇기에 그는 내게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최 부장도 나와 같은 마음일 테지.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달갑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발아래 있는, 어린 후배가 대들었으니 나를 반가워할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는 굳이 나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를 모른 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눈을 마주친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앞에 다가온 최 부장에게 고개를 까딱 숙이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나를 불편해할 줄 알았던 최 부장은 오히려 내 인사에 마치 반갑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어, 민 대리가 한국 병원에 웬일이야?”
병원에 오는 메디컬 영업 직원에게 병원에 무슨 일로 왔냐니.
나는 그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했다.
“병원에 왜 왔겠습니까, 영업하러 왔죠.”
최 부장은 내 말에 아랫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근데 광주 메디컬도 한국 병원에 입찰하려는 모양이네?”
“네.”
나는 그와 이야기를 길게 섞고 싶지 않았기에, 짧은 대답을 이어 갔다.
최 부장은 나와 생각이 다른지, 앞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려는 것 같았다.
불을 붙이고, 담배를 한 모금 마신 뒤 내게 질문을 하는 최 부장.
“근데 광주 메디컬 1차에서 입찰 된 거 한 품목도 없던데?”
‘뭐야. 우리 광주 메디컬에서 입찰 된 거 없는 건 어떻게 알았지?’
그의 말이 조금 아이러니했다.
내가 이 병원에 왜 왔냐고 묻던 최 부장.
그러나 우리 광주 메디컬이 1차 입찰에서 낙찰된 것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1차 입찰 결과가 발표 난 뒤, 어느 메디컬 회사에서 됐는지 확인을 하려면 수십 가지, 아니 수백 가지의 품목의 결과를 모두 살펴보아야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 회사명을 검색해 본다면 단번에 알 수는 있다.
그가 우리 회사명을 검색해 봤다는 뜻은 우리 회사를 견제해서였거나, 혹은 우리가 입찰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
나는 그의 말에 한쪽 입꼬리를 미세하게 올리며 답했다.
“저희 광주 메디컬에 관심이 많으신가 보네요?”
최 부장은 내 말에 담배를 황급히 입에 물며 눈을 피했다.
“아니, 뭐. 그냥 둘러보다가 봤지. 된 회사 중에 광주 메디컬은 없길래 말한 거지. 내가 뭐하러 그렇게까지 콕 집어 봤겠나?”
나는 더 이상 최 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도, 더 나눌 이야기도 없었다.
들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떨어트리고, 그것을 밟아 불씨를 꺼트렸다.
그리고 최 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저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인 뒤, 뒤를 돌았고 그는 내 뒤통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래. 열심히 영업해 봐. 영업맨답게! 하하.”
영업맨답게, 내가 지난번 그에게 했던 말이었다.
내가 했던 말로 나에게 비아냥대듯 말하며 웃는 최 부장.
순간 화가 나는 마음에 발길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뒤를 돌아 최 부장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의 눈을 쏘아보았다.
나는 그에게 한마디를 내뱉으려 입을 열었고, 그때 들려오는 그의 속마음 소리.
[아무리 네가 영업해 봐라. 너희 단가는 어차피 다 내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으니까. 하하. 2차 입찰도 떨어져 봐야 나한테 찍소리를 못하지.]
갑자기 들려오는 그의 속마음 소리에 나는 열렸던 입을 굳게 닫았다.
뭐지?
진짜로 우리 내부에 스파이가 있다는 건가?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눈동자를 빠르게 굴렸고, 최 부장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외쳤다.
“왜, 뭘 그렇게 보고 있어. 할 말 남았나?”
나는 그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뒤를 돌아 차로 돌아왔다.
고민하던 두 가지의 이유 중 두 번째, 내부의 배신자가 점점 확실해지고 있었다.
* * *
“사장님, 다녀오셨습니까.”
몇십 분이 흐르고, 장 사장은 차에 올라탔다.
“어. 오래 기다렸나?”
“아닙니다. 원장님과 이야기는 잘 나누셨습니까?”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장 사장에게 물었다.
“아니라네, 원장님은…….”
조금 전 최 부장의 속마음으로 이유를 알아버린 나는 장 사장의 표정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그에게 이야기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그에게 ‘내부 스파이가 있습니다!’라고 외칠 수는 없는 노릇.
“그럼 정말 WG 메디컬에서 저희 금액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되겠네요?”
나는 그에게 대놓고 이야기를 할 수 없었기에, 내부에 스파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했다.
하지만 장 사장은 믿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큰 것인지, 전혀 그 생각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내 말을 잘라버렸다.
“모르지. 2차 입찰 금액은 사무실 들어가서 다시 이야기해 보자. 원장님은 우리가 이번에 입찰 들어 올 8가지 품목은 그 금액 그대로 진행하라고 하시거든.”
“네. 사무실 들어가서 품목이랑 금액 정리해서 바로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이번에는 꼭 입찰 되어야 해. 1차 입찰 때, 그 두 품목은 사실 1년 매출이 얼마 안 되거든. 2차 소모품 건은 발주량이 상당할 거야. 놓쳐서는 안 돼.”
“네, 꼭 입찰 되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는 내 말에 입술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2차 입찰이 남아 있었고, 우리에게는 1차보다 2차 입찰이 더 중요했다.
2차 입찰의 품목 개수가 훨씬 많았고, 입찰의 품목은 소모품.
소모품의 발주량이 1차 입찰 품목이었던 수술 기구보다 훨씬 많을 테니까.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이 내부 스파이 일을 현명하게 넘겨야 했다.
2차 입찰에서는 우리 광주 메디컬이 낙찰이 되어야 했고, 그 입찰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수가 필요하다.
* * *
“다녀오셨습니까.”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오는 지금.
사무실로 복귀하니 온 직원이 모두 도착해 있었다.
나와 장 사장까지 각자의 자리에 앉으니, 사무실이 가득 차 보였다.
고개를 들어 파티션 너머로 보이는 직원들을 하나둘씩 살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