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한국 병원에서 나온 장홍석 사장과 나.
장 사장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환하게 피어 있었고, 내 손에는 투명 파일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이 투명 파일 안에는 단 한 장의 종이만 있지만 이건 단순한 일반 종이가 아니다.
입찰에 참여할 품목 리스트가 기재되어 있는 아주 중요한 문서이지.
나는 이 품목 리스트를 잃어버릴세라 내 양손으로 꽉 쥔 채, 조심스레 차로 이동했다.
“와. 사장님, 그럼 저희 정말 한국 병원에 들어오는 거죠?”
장 사장은 내 떨리는 목소리에 보답하듯 숨을 끊어 내쉬며 답했다.
“그래. 드디어 우리 광주 메디컬이 국가 병원에 들어가네! 입찰은 내가 예전에… 아니, 거의 칠팔 년 전인가? 아무튼, 굉장히 예전에 해본 적이 있긴 한데.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야.”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안 그래도 아까 원장님께서 알려주신 병원의 입찰 담당 선생님 명함이랑 잘 받아왔습니다. 제가 사무실 들어가는 대로 담당 선생님과 통화해서 입찰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게 배워두겠습니다.”
그는 여전히 떨리는지, 어깨를 들었다가 내려놓으며 내 팔뚝을 천천히 두드렸다.
“그래. 입찰 금액까지 받았는데, 입찰에서 떨어지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지. 민 대리가 실수로 금액을 잘못 기입하지만 않으면 말이야.”
“걱정 마십시오, 사장님. 제가 두 눈 부릅뜨고 숫자 몇십 번도 더 확인해서 입찰하겠습니다.”
“응. 민 대리, 믿지. 하하. 절대 숫자 잘못 적는 그런 어이없는 실수는 하면 안 돼. 얼른 차 타자.”
“넵.”
나와 장 사장은 차에 올라타 입찰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사장님. 그럼 저희 이번에 품목은 딱 열 가지만 들어가는 겁니까?”
“어. 그중에 내일 마감인 1차 입찰은 2건, 그리고 1차 입찰 결과 발표 후에 며칠 있다가 2차 입찰이 있을 거야. 그때는 나머지 8건이 들어갈 거야.”
“아, 2건은 수술 재료고, 8건은 소모품이라서 따로 진행되는 거죠?”
“응. 1차 때는 수술 관련 품목만 모아서 하는 거라, 이게 병원에서 나눠진 대로 진행되거든.”
우리가 이번에 한국 병원에 들어갈 품목. 아니, 한국 병원 입찰에 참여할 품목은 총 10개의 품목이다.
당연히 그 10개의 품목 모두 우리 메디컬이 입찰에 성공할 것이기에, 우리 메디컬에서 들어갈 품목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조금 전 병원에서 들고 온 품목 리스트는 그 10개의 품목이 기재되어 있는 종이.
그리고 그 종이에는 10개의 품목 리스트와 각각의 입찰 금액이 적혀 있다.
입찰 금액이 적혀 있다는 것은 한국 병원에서 우리 광주 메디컬에게 입찰 단가로 들어오라고 알려준 금액.
병원 원장이 직접 지시를 해준 금액이기에, 우리 회사가 입찰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네. 우선 두 가지만 입찰 진행이니까, 차질 없이 진행해 보겠습니다.”
나와 장 사장이 타고 있는 차는 기대에 부푼 마음을 안고, 금방 사무실에 도착했다.
“다녀오셨습니까.”
“고생하셨습니다.”
사무실에 복귀하니 여전히 백태석은 자리에 남아 있었다.
거래처를 돌고 들어 온 한태준, 그리고 사무실에 항상 있어야 하는 박수진 주임까지.
세 명 모두 사무실 자리에 앉아 우리에게 인사했다.
장 사장은 그들의 인사를 대답 대신 눈인사로 화답한 후 곧바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나 역시 자리로 돌아가자마자 들고 온 서류를 꺼내 들었다.
[광주 메디컬 ― 입찰 참여 리스트]
splint : 41,500원
붕대 : 8,900원
……
……
총 10개의 품목에 모두 입찰 들어갈 금액이 적혀 있었고, 나는 그 금액을 하나씩 천천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당장 1차 입찰이 내일 마감이었고, 입찰은 지금 이 시간에도 진행 중이다.
나는 내일 마감 시간을 혹여나 놓칠 수도 있다는 불안함에 지금 당장 입찰 신청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재빨리 입찰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받아온 명함을 꺼내 담당 선생님에게 통화를 시도했다.
“…네, 선생님. 그러고 난 후에 마지막에 저 파란색 ‘완료’ 버튼만 누르면 끝난다는 거죠?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알았습니다. 네. 오늘 두 가지 품목 입찰해 두겠습니다. 네, 입찰 결과 난 후에 곧바로 찾아뵙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담당 선생님과 한참의 통화 끝에 입찰 방법을 설명 듣고 나서야 전화의 종료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사이트에 집중한 눈과 그것을 클릭하기 위해 움직인 내 손과 마우스.
그리고 통화 내용에 열중한 내 귀 덕에 휴대전화는 불타오를 것처럼 뜨거워져 있었다.
나는 방법을 모두 확인한 뒤, 그제야 숨을 몰아 내쉬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찰 공고를 한 번 더 확인한 뒤, 다시 내 앞에 놓인 종이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목록과 금액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2차 입찰에 들어갈 소모품의 금액들은 끝자리가 애매하게 끝이나 있었다.
41,500원, 8,900원, 115,200원 등…….
하지만 내일 마감인 1차 입찰 품목 단 두 가지.
그 품목의 금액은 이상하리만큼 딱 맞아떨어지는 금액.
500,000원과 750,000원이었다.
이 두 가지는 소모품이 아닌, 수술 재료였기에 금액 단위가 높았다.
그럼에도 너무 딱 맞아떨어지는 단위에 나도 모르게 표정이 일그러졌다. 동시에 갑자기 엄습하는 불안한 기운.
무슨 느낌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최저 금액이 낙찰되는 이번 입찰 건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는 펜대를 굴리기 시작했다.
한국 병원에서 제시한 금액 옆에 나는 새로운 금액을 적어 냈다.
작성 완료 후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장 사장에게 저벅저벅 걸어갔다.
“사장님.”
“어, 민 대리.”
장 사장은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옆에 서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작성한 서류를 장 사장에게 내밀며 입을 열었다.
“사장님, 원장님께 이번 입찰 최저 금액 받았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우리가 최저 금액이 맞나 싶어서요.”
장 사장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야?”
“한국 병원에 원장님께서 적어 주신 금액이요. 저희한테 최저가, 당연히 입찰에 성공할 수 있는 금액을 주셨겠지만, 혹여나 다른 메디컬 회사에서 저희보다 적은 금액으로 들어오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요.”
그는 내 말을 들은 후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내 말이 전혀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잘게 끄덕였다.
그러더니 장 사장은 내가 내민 종이를 말없이 눈으로 훑어보고 있었다.
“그래서 옆에 적은 금액은 민 대리가 적은 거야?”
“네. 내일 마감인 1차 입찰 말입니다. 두 가지 품목에서 몇천 원 정도 빠지는 건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요. 원장님께서 적어 주신 금액이 너무 딱 떨어지는 금액이길래,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그는 내 말을 들으며 종이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러네. 유독 수술 품목만 금액이 너무 깔끔하게 떨어지기는 하네.”
“그렇죠? 물론 한국 병원 원장님께서 일부러 저희에게 입찰에서 떨어질 금액을 제시하신 건 아니시겠지만, 괜히 다른 메디컬에서 애매한 금액으로 들어올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장 사장은 잠깐의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원장님이 우리한테 소모품만 낙찰되게 하시려고 그랬을 리는 없어.”
내가 제안한 말에 반대 의견을 내놓는 장 사장.
그의 말이 틀렸고, 내 말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었기에 나는 그의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나는 장 사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너무 길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럼 오십만 원과 칠십오만 원 그대로 입찰 넣겠습니다.”
“그래.”
나는 그에 앞에 놓인 종이를 들고 그에게 고개를 숙인 뒤, 뒤를 돌아 자리로 걸어갔다.
의자를 빼내 착석하자마자 나를 부르는 목소리.
“민 대리!”
나는 그 목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는 장 사장이었고, 그는 나에게 황급히 걸어오고 있었다.
“네, 사장님.”
“민 대리가 조금 전에 말했던 대로…….”
그는 금방 내 옆으로 다가와 내가 적었던 금액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딱 이천 원씩 뺀 금액으로 입찰 넣어보자고.”
방금까지 내가 낸 의견에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던 장 사장.
그도 나처럼 찜찜한 마음이 남아 있었는지, 내가 제시했던 금액대로 입찰 진행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네, 혹시 모르니까요. 딱 이천 원씩만 뺀 금액으로 바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내가 원장님께는 연락드릴 테니까, 그대로 진행해.”
“넵!”
나는 그에게 대답한 뒤 그대로 자리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와, 사장님. 우리 회사, 한국 병원 들어가는 겁니까?”
장 사장이 내 옆에 서서 이야기가 끝나자 입을 여는 직원.
바로 백태석이었다.
그는 놀란 얼굴로 장 사장에게 물었고, 장 사장은 그에 화답하듯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응. 우리 이제 한국 병원에 들어간다.”
그의 말에 한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뼉을 부딪쳤다.
“우리 회사 너무 잘나가는 거 아닙니까? 하하. 이게 다 우리 장홍석 사장님이 잘나셨기 때문입니다. 회사 설립 후에 벌써 한국 병원이라니요!”
한태준의 말투에 사무실에 있던 우리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장 사장은 한태준을 바라보며 답했다.
“그래. 내가 다 잘나서 그렇다. 잘난 사장 밑에서 계속 일하고 싶으면 태준이 너도 열심히 해.”
한태준은 장 사장의 말에 밉지 않은 너스레를 떨며 외쳤다.
“넵! 잘난 저 한태준은 광주 메디컬에 뼈를 묻겠습니다!”
“뼈를 묻기는……. 됐다, 됐어. 하하.”
화기애애한 사무실, 나는 그 분위기에 빠지지 않고 정신을 온통 입찰 사이트에 집중했다.
차근차근 버튼을 누르며 진행했고, 마침내 파란색의 ‘완료’ 버튼을 꾹 눌렀다.
* * *
다음 날.
정오에 맞춰 1차 입찰 마감이 됐고, 몇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2시가 넘기 전 서둘러 사무실로 복귀했다.
이유는 2시에 1차 입찰 결과 발표가 있기 때문이었다.
사무실에 시간 맞춰 도착하니, 이미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는 장홍석 사장과 손지혁 차장.
“다녀왔습니다.”
“어, 민 대리 얼른 와. 곧 발표다.”
“네.”
나는 그들의 말에 내 자리에 있는 컴퓨터를 켜 입찰 사이트에 접속했다.
1시 58분.
1시 59분.
째깍째깍 흐르는 시계 초침 소리.
긴장감이 넘치는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2시 정각.
장 사장, 손 차장은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재빨리 입찰 확인 버튼을 눌렀다.
당연히 입찰란에 ‘광주 메디컬’이 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이었다.
누구의 소리랄 것도 없이 침을 삼켜내는 소리와 다리를 떠는 소리는 사무실에 몇 번이고 반복해 들려왔다.
화면이 넘어가는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
그 버퍼링이 1분 같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화면이 전환되었고, 나는 우리 광주 메디컬에서 입찰했던 품목을 검색했다.
전날 두 가지의 품목을 입찰 신청했었고, 그 품목에 대한 낙찰된 회사명이 화면에 띄워졌다.
우리 셋은 화면에 뜬 회사명을 보고 순간 아무 소리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세 명 모두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화면에 선명하게 뜬 다섯 글자.
[WG 메디컬]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
대체 왜, 대체 어떻게 WG 메디컬이 입찰에 성공한 거지?
두 가지의 품목 중, 어떤 한 개의 품목이 아니었다.
두 가지 품목 모두 WG 메디컬에서 입찰에 성공했고, 나는 스크롤을 내려 WG 메디컬이 얼마의 금액으로 입찰 됐는지 재빨리 확인에 나섰다.
그리고 그 금액을 본 나는 충격과 동시에 뒷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