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 뒤통수 】
연초에 불을 붙이고 그 불이 타들어 갈 때쯤 나는 입을 열었다.
“태준아.”
한태준은 들고 있던 담배를 내려놓으며 내게 답했다.
“네, 대리님.”
“오늘 어디 돌고 왔어?”
이미 한태준과의 통화를 통해서 그가 어떤 대답을 할지 알았지만, 지금 얼굴을 직접 보고 있기에 나는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통화로 나에게 거짓말을 했던 것을 바로 잡을 기회를 말이다.
“저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광주에 있다가, 점심 때쯤 여수 넘어갔다가 바로 광주 왔습니다.”
“여수 다녀온 거 맞고?”
그는 내 말에 살짝 주춤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요. 아까도 물어보시더니, 무슨 일 있으신 겁니까, 대리님?”
나는 한태준의 물음에 대답 대신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아들였다.
“하아.”
그는 내가 내뱉는 숨소리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한태준은 내 한숨이 걱정됐는지, 미간에 힘을 주고 물었다.
나는 담배를 입에서 빼낸 후, 한태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태준아.”
“예.”
“너 여수 안 간 거 알고 있어, 인마.”
한태준에게 묻는 말이 아닌, 확신을 가지고 내뱉는 말에 그는 놀란 눈으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
“사무실 오기 전 큰 사거리에 있는 통유리 2층짜리 카페.”
내가 한태준을 보았던 그 카페에 대해 이야기하자, 한태준은 황급히 들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밟아 꺼트렸다.
“대리님 그게…….”
“긴 웨이브 머리한 여자분이랑 카페에 있더라. 우연히 그 길 지나가다가 봤어. 너 보고 전화했는데, 네가 여수라고 하더라고.”
“대리님, 그러니까 그게, 그 여자가 누구냐면요…….”
나는 그의 말을 잘라버리고 대답했다.
“아니, 나는 그건 궁금하지 않아. 그걸 묻는 것도 아니고.”
한태준은 내 말에 고개를 푹 숙인 채 답했다.
“그… 제가 요즘 잘돼가고 있는 친구인데, 근처에 있다고 해서 잠깐 커피 한잔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바로 여수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애매해져 버려서요.”
“네가 여수 가는 거? 안 가도 돼. 근무 시간에 사적인 약속 잠깐 다녀오는 거? 다녀와도 돼.”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떨구었다.
숙이고 있는 한태준의 정수리를 바라보며 말을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나 그거 못하게 하는 거 아니야. 영업사원의 장점이 뭐겠냐, 온종일 나가서 업무 보는데 딴짓 좀 할 수 있지. 피곤하면 차 주차해 두고 잠도 자도 되고, 농땡이 피워도 돼.”
“…네.”
“내 말은 네가 거짓말을 했다는 거야. 뻔히 내 눈앞에, 광주에 있는 거 봤는데 나한테 여수에 있다고 하더라고. 더군다나 너 우리 회사로 온 지 몇 주도 안 됐잖냐.”
“죄송합니다. 여수에 간다고 아침 회의 시간에 말씀드렸는데, 못 갔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그는 이미 숙이고 있던 고개의 각도를 더 꺾어 냈다.
“아무도 그 일정대로 소화 못 했다고 혼내는 사람 없어. 영업 직원에게 시간, 신뢰, 약속은 제일 중요한 거잖아. 특히 우리 회사 사람들끼리는 더더욱 믿음이 중요하지 않겠어?”
“맞습니다.”
“나는 그래서 너한테 여수에 가지 않았다고도, 사적인 자리가 생겼다고도 꾸지람을 줄 생각은 없어. 그저 네가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거. 그 부분에 대해서 화가 났을 뿐이야.”
나는 담배를 길게 마신 후, 하얀 연기를 내뱉었다.
“아까 전화할 때,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길래 나는 방금 너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줬던 거였어. 우리 인간적으로 거짓말은 하고 살지 말자.”
한태준은 내 말에 팔을 자신의 몸 앞으로 포개어 모아 허리를 접었다.
“네. 대리님, 죄송합니다.”
“내가 태준이 너를 많이 믿고 있었어. 그래서 네가 WG 메디컬에서 나와서 힘들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우리 회사로 데리고 와야겠다고 생각도 했던 거고. 근데 오늘 같은 모습을 내가 아닌 사장님이나 차장님께서 보셨어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너뿐 아니라 너를 데려온 나까지 욕먹는 거야.”
“저도 항상 대리님 존경하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절대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한 번 더 허리를 숙였다 들며 내게 사과를 했다.
“그래. 농땡이 부리는 것도 좋고, 중간에 다른 약속 다녀오는 것도 뭐 괜찮아. 대신 네 업무만 차질 없이 잘한다면. 그리고 앞으로 절대 나한테, 그리고 회사에서 거짓말은 금물이야. 마지막 경고다.”
그는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며 세차게 머리를 끄덕였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한태준의 얼굴을 본 나는 입을 꾹 닫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 앞으로 지켜볼게. 근데 아까 그 여자분도 너 좋아한대?”
나는 딱딱한 분위기를 풀어내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네? 아, 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하. 좋을 때네. 나는 담배마저 피우고 들어갈 테니까, 먼저 들어가 봐.”
“넵! 대리님, 저 앞으로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는 내게 고개를 숙인 뒤, 뒤를 돌아 사무실로 향했다.
한태준과 짧은 대화를 나누며, 그의 변해 가는 표정을 본 나.
그는 내 말에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태준을 믿었던 나였기에, 오늘 일로 실망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를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했다.
같은 일을 두 번 반복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지만, 한 번의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 * *
“안녕하십니까.”
“대리님, 좋은 아침입니다!”
사무실에 출근하니 나를 반기는 백태석.
“안녕하세요.”
그리고 한 쪽에서 고개를 살짝 끄덕이듯 인사하는 박수진 주임.
어제의 일로 박 주임은 나에게 서운한 감정이 아직 남아 있는 듯 보였다.
나와 백태석, 박 주임을 제외한 직원들은 모두 병원으로 직출을 했다.
나는 장홍석 사장과 함께 병원을 가기로 했기에 사무실로 출근을 한 것이다.
장 사장을 기다리며 앉아 있던 그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 : 리오 정형외과 천성진 원장]
나는 앉은 자리에서 서둘러 수신 버튼을 눌렀다.
“원장님, 민지훈입니다.”
- 어. 민 대리, 통화 가능한가?
“그럼요. 원장님 오늘 fibula 첫 케이스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 어. 오늘 일정이 많아서 평소보다 일찍 시작했어. 방금 수술 끝나고 나왔어.
“벌써요? 역시 원장님 실력은 광주 시민들이 알아줘야 합니다. 하하.”
- 민 대리도 참. 하핫. 기구 말이야, WG 메디컬에서 넣어준 거랑 비교했는데, 결국 민 대리가 넣어준 제품으로 수술했어.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 응. WG 메디컬에서 넣어 준 IBH 제조사의 fibula 수술 기구는 한번 사용해 본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민 대리네 HS 제조사 제품 써봤어. 괜찮더라.
“다행입니다. 수술하시는 데 불편한 점은 없으셨고요?”
- 어, 근데 벤더가…….
천 원장은 기구와 수술 방법에 대해 나에게 자세하게 피드백을 내놓았고, 나는 그의 말에 따라 열심히 펜대를 굴리며 메모했다.
“그럼 제가 기구 회수하러 가면서 원장님 찾아뵙겠습니다.”
- 그래. 한동안은 WG 메디컬이랑 광주 메디컬에서 민 대리가 넣어 주는 제품이랑 같이 사용해 보면서 더 맞는 제품으로 수술하려고 해.
“예, 그렇게 하시면서 원장님께서 편한 기구 찾으시는 게 최고죠.”
-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맙네.
“아닙니다. 원장님께서 사용해 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하죠.”
- 알겠어. 하하.
“예. 일찍부터 수술하시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조금이라도 쉬십시오. 또 수술 있으시다면서요.”
- 그러게. 오늘 수술 스케줄이 많네.
“오늘도 힘내십시오, 원장님. 저는 그럼 원장님 외래 진료하시는 날에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나는 한껏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아직 내가 리오 정형외과를 담당 병원으로 따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천천히 스며들 수 있다는 것조차 뿌듯했다.
원래 스며들기 시작하면 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민 대리, 뭐래? 우리 거 사용했대?”
나는 귀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뒤를 돌았다.
“어? 사장님!”
장 사장은 언제 사무실에 들어왔는지, 내 옆에 서서 통화를 들은 모양.
“뭐래. 리오 정형외과야? 최권호 그 새끼한테서 빼앗았어?”
“열심히 노력 중입니다. 그리고 이번 수술 건은 저희 기구 사용했다고 합니다!”
장 사장은 내 말에 입술을 꾹 닫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했다. 우리도 얼른 나가자.”
“넵!”
나는 장 사장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겨 차로 이동했다.
* * *
“사장님, 한국 병원으로 가면 될까요?”
“어. 바로 한국 병원으로 가자. 간다고 미리 말씀드려뒀어.”
“넵.”
한국 병원.
우리나라의 큰 도시에 하나씩은 있는 병원이다.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는 병원이라 아무 메디컬이나 쉽게 영업을 하기 힘든 곳이다.
한국 병원의 영업은 일반 병원의 영업과는 확연히 다르다.
일반 병원의 영업이라고 함은 원장에게 기구를 소개하고, 원장에게 마음에 들게 되면 물건을 넣게 되는 구조.
하지만 한국 병원은 원장 마음에 들었다고 해서 무조건 기구를 넣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바로 ‘입찰’이라는 제도를 통해 병원에 물건을 넣을 수 있다.
입찰이라고 해서 아무 메디컬이나 참여를 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병원 의사에게 물건을 소개하며 영업한 후, 원장이 그 물건을 선택하게 되면 그 물건이 입찰 공고에 올라오게 되는 것이지.
그럼 그 공고에 따라 입찰 신청을 하는 것이다.
“사장님, 한국 병원의 원장님은 원래 아시던 분이십니까?”
나는 한국 병원으로 향하며 장 사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응. 예전에 다른 병원에 계실 때 거래 몇 번 했던 원장님이셔. 근데 이번에 입찰 시작 전에 원장님이랑 자리가 만들어진 일이 생겼어.”
“잘됐네요. 한국 병원, 사용량이 꽤 많지 않습니까?”
나는 핸들을 꺾고 전방 주시를 하면서 장 사장에게 물었다.
“그렇지. 한국 병원이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니까 병원비가 싸잖아. 그래서 환자 수도 많고, 그러니 아무래도 발주량이 상당하지.”
“그럼 이번에 저희 입찰 되게 도와주시는 겁니까?”
“그렇다고 하시네. 이야기는 다 끝났고, 민 대리가 이제 가서 금액만 이야기해서 이번에 입찰 들어가면 돼.”
“역시, 사장님 능력자이십니다. 드디어 저희도 한국 병원에 물건이 들어가네요.”
“능력은, 하하. 그래도 다행인 건 한국 병원 입찰이 금액 입찰이라 큰 이변 없으면 우리가 될 거야.”
입찰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이번에 우리가 한국 병원에 들어가는 입찰은 바로 최저가 입찰.
같은 품목이 입찰 공고에 올라오게 되면 자격을 가진 메디컬 회사가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그럼 한 품목에 자신들이 병원에 납품을 희망하는 금액으로 입찰 신청을 하는 것.
당연히 서로 제시한 금액은 오픈되지 않은 채, 입찰이 마감된다.
입찰에 참여한 수많은 메디컬 중, 가장 낮은 금액을 제시한 메디컬 회사가 그 물건을 병원에 납품할 수 있게 되는 것.
그렇다면 무조건 낮은 금액을 써서 입찰하면 되지 않겠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너무 낮은 가격을 제시한다면 판매자인 우리에게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안 파느니만 못하다는 것이지.
반대로 많이 남기자고 높은 금액을 제시하게 된다면 입찰에 성공할 확률이 희박하다.
그렇기 때문에 판매하는 우리에게도 남아야 하고, 다른 메디컬보다는 낮은 금액을 제시해야 한다.
가장 적정한 금액으로 제시를 한다는 것이 어려운 싸움인 것.
그래서 입찰 병원에 하는 영업은 입찰 금액을 서로 조율하는 것이 영업인 셈.
원장은 마음에 드는 물건을, 마음에 드는 메디컬 직원에게 입찰 금액을 제시한다.
해당 금액으로 입찰을 넣으면 성공할 것이라고 귀띔을 해주는 것.
그렇게 된다면 입찰에 실패할 확률은 거의 없다.
“큰 이변이라면 어떤…….”
“아, 민 대리 입찰 병원은 처음이구나?”
“네. 한국 병원 입찰이라는 거, 들어보기만 했지 실제로 한국 병원에 처음 가봅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대답했다.
“이변은 뭐, 배신이지. 원장님이 우리한테 제시하는 금액보다 적은 금액을 다른 메디컬에 불러줬다거나, 아니면 다른 메디컬에서 완전 모험 정신으로 낮은 금액을 올리거나.”
“아, 정말 눈치 게임이네요?”
“하하. 눈치 게임… 그렇게 봐도 되겠네. 다 왔다. 저기 바로 앞에 주차하면 돼.”
“넵.”
나는 차에서 내린 후, 한국 병원을 바라보았다.
잠깐 보아도 입구부터 북적이는 환자들.
이 병원에 입찰만 성공한다면 우리 회사 매출에도 큰 변동이 생길 것이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병원 문을 세차게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