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49화 (149/339)

149화

“나는 우리 식구들이 어디 가서 욕먹는 거 싫다.”

장홍석 사장의 말에 우리 모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욕먹을 짓도 하지 말고, 그리고 욕한다고 다 듣고 있을 필요도 없다는 거야. 알겠지?”

“네.”

“갑자기 무겁게 이야기가 시작됐는데. 아무튼, 우리 이제 다 같이 한 식구 된 기념으로 가볍게 밥 먹자고 만든 자리니까 다들 맛있게 먹자.”

“예, 알겠습니다.”

“앞으로 으쌰으쌰 해서 열심히 잘해 보자. 얼른 고기 구워 먹자. 맛있겠다.”

장 사장은 앞에 놓인 고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두 테이블.

장 사장과 한태준, 백태석이 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바로 붙어 있는 테이블에는 나와 손지혁 차장, 박수진 주임이 앉아 있었다.

나는 고기를 불판 위에 올렸고, 옆 테이블에서는 한태준이 집게를 들었다.

치이익.

양 테이블 불판 위에 고기가 올라가자 룸 가득 고기 굽는 소리가 진동했다.

이어 백태석은 자신의 앞에 잔 여섯 개를 쫙 깔았다. 그리고 곧바로 소주와 맥주를 오픈해 소맥을 말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우리 모두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소맥을 타는 모습에 모두 놀란 이유.

바로 소맥을 타고 있는 자가 백태석이었기 때문이다.

백태석은 WG 메디컬 입사 당시, 회식 때 소맥 가지고 김 대표에게 꾸지람을 들었던 적이 있다.

회사의 막내니 소맥을 한 잔씩 타서 돌리라는 말에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쩔쩔매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동으로 잔을 세팅해 술을 말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석이, 이제 정말 직장인 다됐네. 하하.”

조금 전까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던 장 사장은 백태석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백태석은 그를 향해 웃으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여기 사장님 거 맛있게 말았습니다!”

그는 가장 먼저 만든 소맥 한 잔을 양손으로 들고 장 사장에게 건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장 사장은 그에게 잔을 건네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태석은 이어서 나머지 다섯 잔을 만든 뒤, 모두에게 잔을 돌렸다.

그에게 잔을 받으며 한마디씩을 건네는 직원들.

“와. 태석이 이제 사회생활 만렙이네.”

“태석 씨, 고마워요.”

나 역시 그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어디, 태석이가 만든 첫 소맥 마셔볼까? 하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장 사장이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잔들 들어볼까?”

그의 한마디에 우리는 모두 잔을 두 손으로 들고 허공에 뻗어냈다. 그리고 장 사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렇게 광주 메디컬에 식구들이 늘어서 행복하고, 날 따라와 준 식구들 다 고맙다. 나 하나 믿고 와준 만큼 나 역시 보답할게. 우리 승승장구하자, 광주 메디컬 파이팅!”

그의 선창에 우리는 잔을 부딪치며 큰소리로 외쳤다.

고깃집 룸이 떠나갈 듯이 말이다.

“광주 메디컬 파이팅!”

짠.

여섯 개의 유리잔이 하나로 부딪쳤고, 우리는 바로 입에 가져다 대고 그 술을 원샷했다.

하나둘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탄성을 자아냈다.

“오. 태석이 소맥 잘 타네.”

“그러게. 소맥 맛있다.”

백태석을 향한 칭찬 일색에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황금 비율. 민 대리님께 배운 겁니다.”

그의 말에 온 시선은 나에게 향했고,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답했다.

“나?”

그러자 백태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 WG 메디컬 첫 회식 때, 민 대리님께서 저 대신 소맥 말아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때 다들 극찬을 하시기에, 옆에서 대리님이 타시는 모습 유심히 보고 어깨너머로 배웠습니다. 다 민 대리님 덕분입니다. 하핫.”

그의 말에 우리는 모두 육성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이야. 태석이 이제 말하는 거 봐라. 선배 생각해서 대답할 줄도 알고.”

손 차장은 백태석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뼉을 연속으로 부딪쳤다.

나는 백태석을 바라보며 답했다.

“하하. 그래, 태석이한테 내 소맥 자리 넘겨줘도 되겠다. 맛있다.”

“감사합니다, 대리님!”

그는 내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접으며 오버 액션을 취했다.

그의 모습에 우리는 모두 함박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나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입사 때부터 열정만 넘치고, 눈치와 센스가 부족했던 백태석.

반면 한태준은 눈치가 빠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원체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더군다나 둘의 입사 시가는 꼴랑 몇 개월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둘은 어쩔 수 없이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고, 상대적으로 여러 면에서 뛰어났던 한태준이 늘 선배들의 예쁨을 받았었다.

백태석은 한태준에 비해 혼이 많이 났었지.

그래서 그의 성장이 굉장히 뿌듯했다.

내가 모든 면을 옆에서 이끌어 주고 가르쳐 주지는 못했지만, 그의 사회생활 첫 단계부터 봐왔던 나였기에.

나는 홀로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술이 서너 잔 들어가고, 장 사장은 나와 손지혁 차장에게 다가왔다.

“지혁아, 지훈아.”

그는 마시던 맥주잔이 아닌, 소주잔과 소주를 들고 우리 앞에 와서 술을 따라 부었다.

손 차장부터 차례로 술을 받으며 그에게 답했다.

“예, 사장님.”

“그래. 말 잘했다.”

“네?”

알 수 없는 그의 말.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되물었다.

“내가 왜 사장인 줄 아냐?”

“…….”

“너네보다 돈 많이 벌어서? 그럼 내가 왜 돈을 더 많이 벌겠냐? 그리고 지훈이보다 지혁이가 돈을 더 많이 버는 이유는?”

그는 연속으로 질문을 던져댔다.

“음…….”

장 사장은 어깨를 들었다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책임감.”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저 더 오래 살았다고, 오래 회사 다녔다고 그저 돈 더 많이 버는 거 아니야. 선임은 후배들이 저지른 일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 항상 명심해 둬. 너희 뒤에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책임 전가할 내가 있다는 거.”

그는 자신이 할 말을 내뱉은 뒤 소주잔을 높이 올렸다. 그리고 나와 손 차장은 그의 잔에 각자의 잔을 가져다 댔다.

크으.

알코올을 몸으로 내려보낸 뒤, 잔을 내려놓자 장 사장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최권호 그 새끼가 한 번 더 이상한 소리 지껄이면 들이박아. 가만히 듣고만 있지 말고. 그래도 돼. 너네는 애초에 나쁜 짓 안 했을 거 아니까, 믿어.”

장 사장은 한숨을 내쉬며 나와 손 차장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그의 불타오르는 눈빛.

오늘 나와 손 차장이 통화했던 최 부장과의 일로 걱정이 많았던 모양.

“네, 명심하겠습니다.”

손 차장이 먼저 장 사장의 말에 답했다.

나 역시 장 사장을 바라보며 답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믿어주시는 만큼 앞으로도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사장님.”

그는 내 말에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놈의 열심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살살해. 하하. 그리고 다른 곳도 아니고, WG 메디컬에서 그런 일 있었다니까 내 마음이 더 그렇더라고. 최 부장 그놈, 말 함부로 하고 말이야. 민 대리, 다음부터는 참지 마. 괜찮아. 뒤에 나 있는 거 명심하고!”

그가 나를 믿어주는 만큼, 나 역시 장 사장이 믿음직스럽고 존경스러웠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푹 숙이며 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사장님. 항상 감사합니다.”

그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들의 빈 잔을 가득 채웠다.

“사장님, 그럼 리오 정형외과 건은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아, 거기 지금 쇄골 수술 기구 한 번 들어간 거라고 했었나?”

“맞습니다. 근데 저는 이번 기회로 더 영업을 넓히려고 했던 건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리오 정형외과 천 원장과 골프를 치며 가까워진 뒤, 영업을 하려고 했었다.

애초에 골프도 영업하고 인맥을 쌓기 위해 친 것이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갑작스럽게 기회가 생겨 기구가 들어가게 되었고, 나는 그 한 번의 수술을 통해 여러 기구를 영업하려고 계획을 잡았었다.

리오 정형외과의 담당 메디컬 회사의 실수를 계기로 나는 그 틈을 파고들어 생각보다 쉽게 영업 성공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하필 그 담당 메디컬 회사가 WG 메디컬일 줄이야.

더군다나 최권호 부장이 담당일 줄이야.

다 된 밥에 WG 메디컬. 나는 앞으로 계속해서 영업해도 되는지, 아니면 기존에 함께 다니던 정이 있으니 영업을 중단해야 하는지 장 사장에게 물었다.

장 사장은 내 질문에 단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무슨 기구를 더 넣어볼지 고민이야?”

“예? 아니요, 영업을 계속해도 되는지 고민입니다.”

내 말에 그는 단호한 말투로 답했다.

“당연히 해야지. 영업에서 중요한 건 경력이 아니라 실력이라는 걸 민 대리가 보여줘. 리오 정형외과 빼앗아 와.”

예상외의 대답이었다. 더불어 내가 듣고 싶던 대답이 나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영업을 멈추라는 대답이 나올 거라고 확신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장 사장은 WG 메디컬의 김 대표와 최 부장과 오래된 연이 있었기에 단호하게 리오 정형외과 영업을 하라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앞으로 리오 정형외과를 내 담당 병원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이다.

회사에 식구들이 늘고 난 후의 첫 회식이라 그런지 모두 기분이 좋은 듯 보였다.

쌓여가는 빈 소고기 접시와 빈 술병들.

이제 불판 위에는 새로 올라오는 고기 대신, 바짝 구워져 손을 대지 않는 몇 개의 고기만이 남아 있었다.

“자, 우리 사장님을 위해서 건배 한번 할까?”

손 차장도 오늘 거나하게 술을 마셨는지, 자신의 잔에 술을 홀로 채운 뒤 술잔을 높이 들었다.

“사장님을 위하여!”

“위하여!”

연속하여 갖갖의 이유로 건배 제의를 하고 주고받는 술잔.

나는 옆에 앉아 술 한 번을 빼지 않고 마시는 박 주임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박 주임님, 술 못 마시겠으면 안 마셔도 괜찮아요. 여기는 술 강요하는 사람 없으니까. 음료수라도 시켜줄까요?”

WG 메디컬에서 회식 당시, 술을 빼는 박 주임에게 술을 강요했던 직원이 있었다.

바로 최준성 과장.

박 주임은 그때와 달리 술을 빼지 않고 모조리 먹고 있었기에, 그녀가 걱정되는 마음에 말을 내뱉은 나.

하지만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내게 답했다.

“괜찮아요, 대리님. 저 사실 술 좋아해요.”

그녀의 해맑은 표정.

손 차장의 건배 제안에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술을 원샷하는 박 주임.

나는 그녀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녀는 술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그 자리가,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박 주임은 소주를 들고 손 차장과 나에게 술을 채운 뒤 잔을 부딪쳤다.

“제가 그래서 못 쉬고 바로 일한 거죠. 하.”

고개를 돌려 옆 테이블을 보니, 백태석은 터질 듯이 빨개진 얼굴로 신세 한탄을 하고 있었다.

얼굴을 보니 술이 잔뜩 오른 모양.

그는 단지 술에 취해 헛소리하는 게 아닌, 술기운에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있는 듯 보였다.

옆에 앉은 한태준, 그리고 맞은편에 앉은 장 사장은 백태석의 이야기에 덩달아 심각해져 있었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엉덩이를 들어 바로 옆 의자로 옮겨 앉았다.

내가 자리를 옮기자 나를 바라보는 한태준.

나는 그에게 입 모양으로 무슨 일이냐는 듯이 물었고, 그 역시 내게 음 소거로 입을 움직였다.

‘태석이 취했어요.’

그의 입 움직임을 보고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굳이 한태준의 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백태석의 상태.

그는 술에 취해, 했던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고 있었다.

“제가 돈이 필요해요. 그래서 돈 많이 벌어야 하거든요. 하.”

취해서 하는 말이겠지만 그의 말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백태석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고, 나는 그에게 어떤 대답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기에 그에게 물었다.

“왜? 왜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데?”

그는 내 질문에 한숨을 길게 내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우리 아빠……. 아버지 퇴직하고, 퇴직금에 빚에, 가득 안고 사업 시작했는데 다 무너졌어요. 제가… 제가 일으켜야 해요, 우리 집…….”

퍽.

백태석은 나에게 힘이 풀린 채 대답을 하다 이내 숙이고 있던 고개를 테이블에 툭 떨어트렸다.

완전히 취해 버린 그.

그렇게 우리 6명 완전체의 첫 회식은 끝이 났다.

* * *

밝은 햇살이 이불 사이로 들어와 눈을 부시게 한다.

귀로는 잔잔하게 BGM처럼 들려오는 지저귀는 새 소리.

한적하고, 고요함이 감도는 이 평화로움.

포근하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눈 뜨는 상쾌한 아침.

오늘은 알람 없이도 눈이 자연스레 뜨였다.

알람 없이…….

알람 없이……?

침대에서 이상한 느낌에 벌떡 몸을 일으켜 휴대전화를 열자 보이는 시간.

8시 30분.

“꺄!”

박수진 주임은 소리를 지르며 헐레벌떡 침대를 벗어났다. 그리고 연신 탄성을 내뱉으며 혼잣말로 떠들어댔다.

“어쩐지 오늘 너무 상쾌하게 눈이 떠진다 했어. 어떡해, 지각이잖아!”

* * *

9시 10분.

어제 회식 자리에서 장 사장은 오전에 회의하자고 통보했었다. 그래서 오늘 오전 모두 사무실로 출근을 했으나 단 한 사람, 박수진 주임이 보이지 않았다.

어제 그녀는 평소와는 달리 술을 많이 마셨었고, 그 때문인지 9시가 넘은 지금까지도 사무실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다행히도 장 사장은 병원 한 군데를 들렀다가 온다고 하여 아직 사무실로 나오기 전이었다.

나는 잠시 사무실 앞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기 위해 한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저 앞에 멈춰서는 택시 한 대.

거기서 한 여성이 머리가 덜 마른 상태로 다급하게 차에서 내리는 게 보였다.

그 다급함에 나는 눈길이 갔고, 내 쪽으로 달려오는 그녀.

바로 박수진 주임이었다.

예상대로 그녀는 늦잠으로 지각을 했던 것.

장 사장은 출근 전이었지만, 이미 사무실에는 손 차장과 나머지 직원들이 있었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기 직전이었기에, 그 담배를 다시 담뱃갑에 넣은 뒤 그녀에게 다가갔다.

“주임님, 잠깐만요!”

박수진 주임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