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장홍석 사장은 빨리 이야기를 하라며 손지혁 차장과 나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손 차장과 나는 서로의 눈치를 보며 입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뭔데 최권호가 전화해서 지랄했다는 거야? 바른대로 말해!”
장 사장은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대충 이야기의 흐름을 알고 있는 듯했다.
손 차장은 그에게 숨길 수 없었기에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지훈이가 어제…….”
손 차장은 나를 한 번 바라보고 나서 입을 열었고, 내 이야기였기에 나는 장 사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장 사장은 내 말을 가로막으며 답했다.
“상황 다 알고 있는 거면 손 차장이 대답해. 민 대리는 당사자니까, 손 차장이 객관적으로 양쪽 입장 먼저 이야기해 봐. 그다음에 민 대리 이야기 들을게.”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손 차장이 늘어놓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손 차장은 내가 했던 이야기, 그리고 나와 최 부장이 통화한 이야기, 최 부장이 자신에게까지 전화를 건 이야기를 모두 쏟아냈다.
그리고 장 사장은 중간에 단 한마디도 끼어들지 않은 채 그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듣고 있었다.
“그래서 손 차장한테도 전화해서 뭐라고 했어?”
“그냥 욕이죠, 뭐. 후배 관리 똑바로 하라는 둥, 메디컬 업계가 좁은데 상도덕은 지키자, 예의 차려라. 뭐 그런…….”
“그래서?”
“우선 저는 앞뒤 상황도 몰랐고, 무엇보다도 최 부장 이야기가 아닌, 민 대리 이야기를 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해서 확인해 본 뒤에 다시 연락한다고 하고 끊었습니다.”
“잘했다.”
“물론 민 대리가 욕먹을 짓 할 리 없다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 사무실에서 방금 이야기 나누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장 사장은 손 차장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민 대리.”
“예, 사장님.”
“손 차장이 이야기한 거 모두 사실이야?”
“맞습니다. 저는 리오 정형외과가 WG 메디컬 거래처인 줄 정말 몰랐습니다. 괜히 일 크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장 사장은 내 이야기에도 표정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무표정 그대로를 유지한 채.
아니, 어쩌면 화가 잔뜩 난 표정보다 더 무서워 보였다.
이내 장 사장은 나지막이 한마디를 허공에 내던졌다.
“…미친.”
나와 손 차장은 장 사장의 작은 한마디에 놀랐고, 장 사장은 허공을 바라보던 눈의 초점을 나에게 맞추고 다시 한번 물었다.
“민 대리. 리오 정형외과, 확실히 모르고 한 거지?”
“예?”
“WG 메디컬. 최권호가 담당하고 있었다는 거 말이야.”
나는 그의 질문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답했다.
“네. 정말 몰랐습니다. IBH 제조사 제품 사용한다고 했는데, 그 제품 쓰는 곳이 광주에 WG 메디컬만 있는 것도 아니고요.”
제조사는 메디컬인 판매 회사만큼 많지 않다.
물론 제조사가 한둘이 아니지만, 판매 회사에 비해 개수가 월등히 적다.
그렇기에 많은 메디컬 회사들이 같은 제조사 제품을 취급하고, 병원에 판매하게 되는 것이다.
같은 제조사 제품을 모두 사용하면 대체 영업을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면?
그중 경쟁력이 있는, 말 그대로 영업 잘하는 회사가 많이 판매하게 돼서 담당 병원을 많이 차지하는 것이지.
다른 제조사 제품으로 영업해 경쟁력을 높일 수도 있지만, 제품이 워낙 비슷하고 동일한 제조사의 제품이 많다. 판매처인 메디컬 회사도 널려 있기에 메디컬 회사 영업 직원의 영업력이 중요한 셈.
이번 리오 정형외과만 보아도 그렇다.
리오 정형외과 천 원장이 자신의 담당 메디컬에서 IBH 제조사 제품을 넣어 준다고 했을 때.
IBH 제조사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WG 메디컬을 한 번에 떠올리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광주에 IBH 제조사 제품을 사용하는 곳이 WG 메디컬 한 군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광주에 여러 군데의 메디컬 회사 중 IBH 제조사 제품을 사용하는 곳은 수두룩하니까.
쉽게 설명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예로 들어보자면, 휴대전화를 만드는 제조사는 모두 알다시피, 유명한 곳들이 있다.
해외 제조사인 A사, 국내 제조사인 S사 등.
하지만 그 제조사에서 만드는 휴대전화를 취급하고 판매하는 영업처는 전국에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있다.
어떤 사람이 광주에서 A사의 휴대전화를 샀다고 했을 때, 곧바로 어느 판매점에서 샀는지 유추할 수가 없는 것처럼.
나 역시 천 원장이 리오 정형외과에서 IBH 제조사 제품을 사용한다고 말했을 때, 바로 WG 메디컬을 떠올릴 수 없었던 이유다.
당연히 떠올릴 수가 없었던 거지.
예를 든 휴대전화와는 물론 스케일 자체가 다르기는 하다.
광주 바닥이 워낙 좁고, 특히 메디컬 회사의 수도 짐작이 가능할 정도이기에 대충 어느 메디컬 회사에서 어느 제조사 제품을 쓰는지 찾아내려면 찾을 수는 있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찾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즉, 내가 리오 정형외과의 담당 메디컬이 WG 메디컬이었다는 것을 눈치로 알아낼 수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장 사장은 내 말에 코로 긴 숨을 내쉬었다.
마치 그 콧김에는 화가 잔뜩 담긴 시뻘건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WG 메디컬 최 부장에게 욕을 먹은 것은 나, 그리고 나로 인해 선임인 손 차장까지 전화로 욕을 들었지만, 우리보다 더 화난 것은 바로 장 사장 같았다.
손 차장은 장 사장의 얼굴을 보고 서둘러 입을 열었다.
“사장님.”
장 사장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대답 대신 눈썹을 들썩였다.
“제가 최 부장이랑 통화 다시 하겠습니다. 제가 민 대리한테 이야기 듣고, 확인한 후에 다시 통화하기로 했거든요. 바쁘실 텐데 제 선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장 사장이 분노에 차오른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손 차장.
그를 오랜 기간 지켜봐 왔기에, 손 차장은 자신의 선에서 끝내겠노라 이야기했다.
하지만 장 사장은 그의 말에 단호히 답했다.
“아니. 기다려 봐.”
단호한 얼굴로 손 차장에게 답한 그는, 곧바로 휴대전화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신호음이 얼마 울리지 않아 전화를 받은 상대방.
“김 대표님. 아니, 윤중이 형.”
바로 WG 메디컬의 김윤중 대표.
그는 최권호 부장이 아닌, 김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와 손 차장은 장 사장의 전화에 쥐죽은 듯 가만히 통화를 듣고 있었다.
장 사장과 김 대표 둘의 관계.
둘은 굉장히 오래된 관계다.
WG 메디컬 당시 사장과 이사 사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퇴사 후 이제는 각자의 길을 걷고 있고, 둘의 사이에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기에 장 사장은 김 대표에게 ‘형’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에 충분했다.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화가 났지만, 그것을 스스로 억누르며 말하는 듯한 장 사장.
그의 목소리에 나와 손 차장은 숨소리조차 들릴세라, 숨죽이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래서인지 고요한 회의실에는 그들의 통화 내용이 모두 들려왔다.
김 대표의 목소리가 장 사장의 귀와 휴대전화 사이, 그 틈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 다짜고짜 오랜만에 전화해서 무슨 소리냐, 홍석아.
“제가 지금 최권호한테 전화하려고 하다가, 형님한테 전화드렸습니다. 형님께 먼저 연락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
- 무슨 일인데?
“리오 정형외과 가지고 지금 최권호가 우리 애들한테 전화해서 욕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애들이 왜 그런 욕을 들어야 합니까.”
- 리오 정형외과? 어. 나도 들었어. 권호가 홧김에 욕한 건 잘못됐지만, 민 대리가 잘못한 거지.
“지훈이가 뭘요. 거래처를 빼앗았습니까, 뭘 했습니까? 권호가, 아니 최 부장이 기구 제때 못 넣어서, 병원에서 일 생길 것 같아 병원 원장과 이야기해 급하게 주말에 넣었다는데. 덕분에 수술 잘 마쳤고요.”
- 그건…….
김 대표의 변명을 들을 새도 없이 장 사장은 말을 이어갔다.
“그럼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 그건 아니지. 우리 회사에서 기구 챙겨서 들어갔는데, 이미 민 대리가 넣은 기구로 수술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고마워하겠냐. 우리가 담당하고 있는 병원인 거 알고 일부러 기구 넣은 거잖아.
“하. 지훈이, 리오 정형외과가 WG 메디컬 병원인 줄, 최 부장 담당 병원인 줄 몰랐답니다. 그리고 형님.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저희가 설사 빼앗았다고 한들 왜 전화로 욕까지 먹어야 하는 겁니까? 영업이라는 게 뺏고 빼앗기는 거 아닙니까? 그럼 대체 뭘 어떻게 영업합니까.”
- 야, 장홍석. 너 점점 말이 심해진다?
“그리고 저희 회사 차리자마자 거래처 반 토막 난 거 아시죠? 아니, 모르실 수가 없지. 다 WG 메디컬에서 가져가신 거 저도 다 알고 있습니다.”
- 누가 거래처 가져갔다고 그래?
“형님도 그러시는 거 아니죠. 동생들 나가서 회사 차린다고 할 때, 다시 빼앗으실 거였으면 차라리 거래처 쥐여주시지 마셨어야죠.”
- 야! 너 말 그따위로 할래?!
김 대표의 큰소리.
그 소리는 전화기를 뚫고 나와 회의실 가득 들려왔다.
잠시의 정적이 흘렀고 장 사장은 휴대전화를 귀에서 뗀 후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눈을 꽉 감았다가 뜬 뒤 휴대전화를 다시 귀에 붙였다.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합니다, 형님. 근데 저도 제 새끼들 욕먹으니까 기분 나쁘더라고요. 앞으로 이런 일로 서로 부딪힐 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하. 그래. 권호한테는 내가 이야기할 테니까, 연락은 마. 그래도 우리가 한때 같이 일했던 사이인데, 저만치 발아래 있는 대리가 최 부장 병원 가서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니까 눈 돌았나 보더라고. 오해가 있었나 보네.
“제가 최 부장한테 전화해서 한 소리 하려고 했는데, 형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저도 따로 연락은 안 하겠습니다.”
- 그래.
“저도 이제 한 회사 대표입니다. 저도 제 새끼들 욕먹는 거 싫고, 혼내도 제가 혼냅니다. 최 부장한테 손지혁, 민지훈, 아직도 최 부장 후임 아니라고 좀 전해 주십쇼. 또다시 이런 일 일어나면 저도 참지 않겠다고요. 형님,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장 사장은 곧장 전화를 끊고 천천히, 그리고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나와 손 차장 역시 참고 있던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장 사장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은 뒤, 우리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할까, 나 역시 그를 바라보았는데 장 사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눈으로 나와 손 차장을 번갈아 쳐다본 후 곧바로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 * *
몇 시간 뒤, 사무실에는 온 직원이 자리해 있었다.
퇴근 시간이 30분 남은 그때.
장 사장은 직원들 책상 앞으로 다가와 우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할 일 끝났으면 정리해.”
그의 말에 손 차장은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며 답했다.
“예? 아직 시간이…….”
장 사장은 고개를 잘게 끄덕이며 말했다.
“다들 오늘 시간 어때? 저녁 간단히 먹을 수 있나?”
“네!”
“예, 저도 가능합니다.”
“넵!”
장 사장의 말에 단 한 명의 직원도 빠짐없이 답했다.
“그래. 그럼 건너편에 한웃집 있지? 거기 지금 룸으로 갈 수 있는지 전화 좀 해봐.”
그는 백태석을 바라보며 말을 하고는 곧바로 담배를 챙겨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리오 정형외과 일로 오후 내내 기분이 안 좋았던 장 사장.
그는 무슨 영문인지 회식을, 그리고 온 직원이 가는 첫 회식으로 한웃집을 초이스했다.
* * *
회사 건너편 한웃집.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곳.
외관부터 프리미엄으로 곳곳에 티를 내놓은 이 집은 메뉴판을 보기 전에도 예상할 수 있었다.
굉장히 비싼 곳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쪽부터 차례로 자리를 잡았다.
회사가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금세 직원이 늘어 벌써 여섯 명.
이제 회식을 할 때 두 테이블을 잡아야 한다.
다 함께 사무실 업무를 정리하고 왔기에 우리 여섯 명은 우르르 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안쪽부터 차례로 자리를 잡는데, 박수진 주임은 입구에서 뭉그적대며 자리 선정을 미루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그리고 내가 들어가자 곧장 따라 들어와 내 옆자리를 선점하는 그녀.
옆에 자리를 잡고 홀로 뿌듯한 미소를 짓는 박 주임.
그런 모습이 티가 났지만, 나는 애써 그 모습을 모른 척했다.
드르륵.
종업원이 룸 문을 열고 들어와 주문한 한우와 술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와. 마블링 죽인다.”
한태준은 자신의 앞에 놓인 소고기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맛있게 드세요.”
종업원은 음식을 모두 세팅한 뒤 자리를 빠져나갔고, 장 사장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내가 오늘 갑자기 회식하자고 한 이유는 말이야. 할 말이 있어서야…….”
그의 말에 우리 다섯 명의 직원은 자세를 고쳐 잡고 앉아 하나같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