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어둠이 가득 내려앉은 밤, 고요한 집 부엌.
식탁을 가운데로 마주 보며 앉아 있는 모자.
이음 정형외과의 수간호사와 그의 아들이다.
“너 똑바로 말해, 그때 멍든 거, 넘어진 거 아니지?”
“맞다니까.”
그는 수간호사의 눈길을 피하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왜 엄마 눈 피해. 엄마 다 알고 왔으니까, 바른대로 이야기해. 괜찮아.”
아들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몰랐어, 우리 아들이 학교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거.”
그는 수간호사의 눈을 피하며, 생각에 잠겼다.
‘뭐지. 그 삼촌이 엄마한테 다 이야기해 버린 건가?’
그녀는 그런 아들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겨우 참아내며 말했다.
“엄마가 오늘 다른 학부모한테 이야기 듣지 않았으면 아직도 몰랐을 거야. 당장 이야기해. 엄마가 학교를 찾아가든, 그 집을 찾아가든…….”
수간호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들이 입을 열었다.
“이제 다시 그런 일 없을 거니까, 그냥 놔둬. 진짜야.”
그러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안해. 엄마가 바쁘다는 핑계로 신경도 못 썼어. 엄마가 아빠 없이…….”
그녀는 이야기를 끝내지 못한 채 고개를 뒤로 돌려 눈물을 훔쳤다.
그 떨리는 목소리에 아들은 눈치를 채고 숙이고 있던 고개를 빳빳이 들며 입을 열었다.
“엄마.”
그녀는 그의 부름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있었고, 그는 말을 이어 갔다.
“그렇게 생각하지 좀 마. 그런 거 아니니까. 그리고 나 학원 다녀. 내 몸 내가 알아서 지킬 수 있어. 엄마도 평생 내가 지킬 테니까, 그런 이야기 다시는 하지 마.”
그녀는 그의 이야기에 눈물을 닦아내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고 물었다.
“학원? 무슨 학원?”
“복싱 학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차 되물었다.
“복싱 학원이라니? 엄마한테 돈 달라고 한 적 없잖아. 네가 돈이 어디서 나서 학원을 다녀? 수학 학원 뺀 거야?”
그를 바라보며 다그치듯 묻는 그녀.
“왜 자꾸 거짓말해. 얼른 이야기 못 해? 어디서 돈이 나서 복싱 학원을 끊었어? 엄마한테 이야기하면 됐잖아. 엄마가 그거 못 다니게 할까 봐 걱정돼서 그렇게 간 거야?”
그녀의 계속되는 추궁과 몰아치는 이야기에 그는 고민에 잠긴 듯 숨을 몰아 내쉬었다.
그리고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수학 학원 끝나고 가는 거야. 그리고 돈 내가 안 냈어.”
“그럼?”
“삼촌.”
“무슨 삼촌!”
“아, 말하지 말기로 했단 말이야.”
“바른대로 말 못 하지, 윤하준?”
그는 옆에 내려져 있던 가방을 뒤적여 종이 한 장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어 보였다.
“이 삼촌이 도와줬어. 어쩌다가 길에서 만나게 됐는데, 아무튼 그렇게 됐어.”
“자세히 이야기해야 엄마가 알아듣지.”
“…이 삼촌이 도와줬어. 어쩌다가 길에서 만나게 됐는데, 괜히 나한테 잔소리해서 처음에는 짜증 났는데…….”
“무슨 소리야?”
“아무튼, 이 삼촌이 복싱 학원도 알려주고, 엄마. 근데 삼촌한테 뭐라고 하지 마. 엄마 병원에 오는 사람인데, 좋은 사람 같아. 그러니까 혼내지 마.”
그녀는 그것을 집어 들고 눈을 비비며 재차 명함을 확인했다.
“혼내기는…….”
그렇게 그들의 대화는 깊어 가는 밤과 함께 길게 이어졌다.
* * *
이음 정형외과 수간호사의 호출로 이곳에 왔다.
나는 영업을 하기 위해 이음 정형외과에 가게 되면 항상 기다림이 필수였고, 수간호사를 만나기 위해 수술실 층의 로비로 올라갔었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사뭇 달랐다.
수간호사에게 먼저 연락이 왔고, 그리고 장소 역시 예상 밖이었다.
수술실 층이 아닌, 병원 앞 카페.
나는 무슨 이유로 나를 불렀을까, 라는 생각으로 카페에 들어와 저 멀리 앉아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항상 기다림으로 일관했던 나.
오늘은 그녀가 카페에 미리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네, 대리님. 안녕하세요. 얼른 앉아요.”
“예.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시간 맞춰서 왔는데, 일찍 와계셨네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저 방금 왔어요.”
나는 그녀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뒤, 우리의 앞에 커피가 한 잔씩 놓였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
나는 마시려던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고마워요.”
“네? 무슨…….”
그녀의 뜬금없는 감사 인사.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고, 그녀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보였다.
바로 복싱 학원 명함과 내 명함.
“아… 하준이가 말했나 보네요.”
이야기하지 않기로 해놓고, 결국 엄마인 수간호사에게 털어놓은 모양.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에게 이어 말했다.
“괜히 나서서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녀의 아들을 도와줬지만, 괜히 민망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윤하준에게 내가 복싱 학원을 권유한 이유는 바로 그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랬을 리는 없으니까.
수간호사는 내가 자신의 아들이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을 눈치채고 도왔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내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에게는 반가웠을 리가 없을 것이다.
아들 이야기가 좋은 소식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녀에게 비밀로 하려던 것이었지.
그녀가 이 사실을 알아버렸기에 나는 수간호사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에요. 죄송하다니요, 오히려 신경 써줘서 고맙죠.”
그녀는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고, 이어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몰랐어요. 하준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아빠가 없다는 이유로 잘 섞이지 못했다는 걸……. 사실 애 아빠가 하준이 어릴 때,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거든요.”
나는 그녀의 말에 집중했고, 그녀는 말을 이어 갔다.
“내가 그 부족함을 못 느끼도록 더 열심히 키웠어야 했는데, 그걸 못했었나 봐요.”
수간호사는 내 눈을 바라보지 않고, 땅을 바라보며 눈물을 겨우 참아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나는 입을 열었다.
“그게 왜 수간호사 선생님 탓이에요. 하준이도 그렇게 생각 안 할 거예요.”
수간호사는 내 위로에도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그녀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열심히 산다고, 엄마 혼자 키우는 하준이, 부족함 없이 자라게 하기 위해서 애썼는데. 엄마 노릇도, 그렇다고 병원도 모두 엉망진창이었던 기분이에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지금 이음 정형외과에 최고로 높은 간호사가 바로 선생님, 수간호사 선생님 아닙니까. 병원에서 간호사로서도, 집에서는 하준이 엄마로서도 충분히 잘하고 계신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내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어 그녀에게 말했다.
“하준이랑 지난번에 짧게나마 이야기했었는데, 하준이도 엄마 생각 많이 하더라고요. 기특하고 멋있다고 생각해서 학원 추천해 준 거예요.”
“고마워요, 정말.”
“아닙니다.”
그녀의 눈에 맺혔던 눈물이 마를 때쯤, 그녀는 어깨를 들었다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민 대리님 앞에서 너무 별 이야기를 다 했네요. 그저 고맙다는 인사 하려고 온 건데. 우리 하준이 챙겨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이거…….”
그녀는 가방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그녀가 내민 봉투.
하얀 봉투로 비치는 지폐, 돈이었다.
“하준이 복싱 학원비예요.”
나는 내용물을 본 뒤, 곧장 그녀에게 다시 내밀었다.
“아닙니다.”
“아니긴요. 저희 아들이 다니는걸요. 추천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저도 친구가 하는 학원이라 믿고 보낸 거예요. 혹시 하준이가 몇 달 뒤에도 취미로 계속하고 싶다고 하면, 그때 학원 등록해 주세요. 이 돈은 정말 안 주셔도 됩니다.”
그녀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 그리고 선생님. 죄송한데, 저 잠시만 차에 좀 다녀와도 될까요?”
“예.”
나는 그녀에게 양해를 구한 뒤, 서둘러 주차장에 있는 차로 달려갔다.
“선생님, 이거 하준이 좀 전해 주세요.”
헐레벌떡 차에 다녀온 나는 가지고 온 물건을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지난번 카페에서 수간호사 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 그가 아빠 없이 엄마와만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었다.
더불어 이야기를 하는 동안 하준이의 얼굴을 가까이서 자세히 보게 되었었지.
그리고 그때 내가 발견한 것은 그의 얼굴에 난 상처였다.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멍이 든 상처가 아니었다.
인중과 턱에 생긴 스크래치.
남자라면 한눈에 보아도 바로 알아챌 것이다.
면도를 하다 생긴 상처라는 것을.
하준이는 이제 막 수염이 나기 시작했는지 면도를 시작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집에 성인 어른이 없어 배울 곳이 없었던 게지.
그래서 맨살에 면도날을 가져다 댔는지 긁힌 상처와 이미 이전의 상처로 딱지가 진 곳도 있었다.
“이게…….”
“쉐이빙 폼이에요.”
“예? 이걸 왜…….”
“하준이 면도하는 데 필요할 것 같아서요. 전달 좀 부탁드릴게요.”
그러자 그녀는 내가 내민 쇼핑백을 거절하듯 내게 다시 밀어냈다.
수간호사는 행동과 붙이며 입을 열었다.
“이거 제가 사주면 돼요, 괜찮아요.”
“하준이 수염이 나기 시작한 것 같더라고요. 이거 면도할 때, 얼굴에 묻힌 후에 면도기 사용하면 상처 안 날 거예요.”
“아… 그래서 하준이 턱에 긁힌 자국이 있었던 거였네.”
그녀는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는지, 혼잣말하듯 읊조렸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생각해 줘서 고마워요, 정말. 근데 이거는 내가 사서 줄게요. 마음만 받을게요, 민 대리님.”
“수간호사 선생님.”
나는 그녀의 말에 단호한 표정으로 그녀를 불렀다.
“예?”
“이거 선생님께 드리는 거 아니고, 지난번에 만났던 하준이. 제가 복싱 학원 가라고 이야기했는데, 꾸준히 잘 가서 기특해서 주는 선물이에요.”
“그래도…….”
“앞으로 꾸준하게 열심히 다니라는 뜻이기도 하고요. 별거 아니지만, 제가 하준이를 위한 선물이니까 받아주세요.”
그녀는 그제야 미소를 보이며 내 선물을 받아들었다.
“그럴게요. 하준이한테 꼭 전달해 줄게요.”
수간호사는 덧붙여 나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 우리 집 일은 병원에 비밀로 좀 해줄래요?”
그녀는 검지를 들어 자신의 입에 가져다 대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음 정형외과 수간호사와 만남을 한 뒤, 정신없이 여러 병원을 돌았다.
그리고 사무실로 복귀했을 때는 시곗바늘이 6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간이었다.
“다녀왔습니다.”
모두 영업을 나갔는지, 사무실에는 박수진 주임만이 자리해 있었다.
“고생하셨어요.”
나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내 자리로 향했다.
“민 대리님!”
자리에 앉자마자 나를 부르는 박 주임.
“네?”
“이음 정형외과에서 연락 왔었어요.”
나는 그녀의 말에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박 주임의 자리로 황급히 걸어갔다.
“예? 언제요?”
“한… 세 시간 전엔가? 왔었어요.”
“누가 전화한 거예요?”
“수간호사 선생님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발주하시겠다고, 전화 주셨어요.”
“네? 발주요?”
나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재차 되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무슨 일이냐는 듯 덩달아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네. 저도 저한테 발주 주시길래, 담당자 민 대리님이라 연락처 드리겠다고 했거든요. 근데 이미 민 대리님께 카탈로그랑 견적서 받으셨다고, 처음에 이번 건은 사무실로 직접 발주하시겠다고 하더라고요.”
수간호사는 나와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회사로 전화를 걸어 발주한 모양.
박 주임은 나에게 수간호사가 보낸 발주서를 내밀었다.
“여기, 팩스로 발주서 수량이랑 품목 기입해서 보내주셨어요.”
한눈에 보아도 여러 품목과 많은 양의 발주.
수간호사는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고, 나와 이야기를 나눈 후라 민망했던 것인지 혹은 지금처럼 놀라게 해주려 했던 것인지, 무슨 이유인지 내가 아닌 사무실로 첫 발주를 한 것이다.
나는 그녀가 보낸 발주서를 바라보며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작은 병원, 큰 병원 할 것 없이 광주에 담당 병원은 하루마다 쭉쭉 늘어 가기 시작했다.
그만큼 우리 셋, 아니 사무실 직원인 박수진 주임까지 우리 넷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나와 장홍석 사장, 손지혁 차장은 사무실에서 마주치지 못한지가 며칠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우리가 바빠진 만큼, 회사의 담당 병원 개수와 매출은 급상승하고 있었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쁘게 영업을 하던 오후.
회사 단톡방에 하나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빠짐없이, 4시까지 사무실로 집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