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 인생 선배 】
나는 김사랑 원장과 쇼핑백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선물이야. 얼른 열어봐.”
“선물이요?”
“응.”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쇼핑백 안을 열어 얇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상자를 천천히 열자 안에는 의외의 물건이 들어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물건을 펼쳐 들었다.
“이거 옷 아니에요?”
그녀가 나에게 선물로 건넨 것은 바로 옷이었다.
나는 옷을 펼치며 그녀를 바라보았고, 김 원장은 나에게 답했다.
“맞아. 골프 옷.”
“이걸 왜…….”
옷을 보고 골프 티셔츠라는 것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옷을 나에게 준 의도를 묻기 위해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우문현답을 던졌다.
“골프 할 때 입으라고!”
나는 그녀의 대답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리고 웃음을 지워내며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러니까, 골프 할 때 입을 옷을 왜 저한테 주시느냐 이거죠.”
“곧 박 원장님이랑 필드 나간다며.”
모던 정형외과의 박승호 원장.
그가 나에게 지난주 술자리에서 필드에 데리고 가겠노라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그 자리에 김 원장도 있었기에, 그 이야기를 하는 모양.
“예. 그렇긴 하죠.”
“인생에 첫 필드라며. 그래서 주는 선물이야.”
티셔츠 한 장이었지만, 골프 옷 자체가 비싸기도 했고 게다가 김 원장이 준 옷은 브랜드까지 있는 옷이었다.
나는 내 담당 거래처인 원장에게 선물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더불어 미안함과 부담감까지 공존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선물을 선뜻 받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진 뒤, 선물의 상자를 닫고 김 원장 쪽으로 밀며 입을 열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왜?”
그녀는 내 대답에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경 써주셔서 정말 감사한데요. 제가 원장님께 선물을 받는다는 게 죄송하기도 하고…….”
그녀는 나를 쏘아보며 말했다.
“민 대리님. 뭐야, 친구끼리 선물 하나도 못 해주는 거야?”
친구…….
그녀는 나를 항상 남자 사람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 역시 김 원장을 사적으로는 그저 병원 원장, 거래처 사람이 아닌 인간 김사랑으로 대하려 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이유는 내가 사적이 아닌, 공적인 관계에서는 을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녀는 나를 진정 친구로 대하고 있었다.
오늘뿐만이 아니라, 나를 알게 된 그 날 이후부터 쭉.
그렇기에 이렇게 나를 쏘아보며 서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가 대답을 하기 전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나는 친구가 처음으로 골프에서 머리 올린다고 하길래, 선물 하나 해주고 싶어서 열심히 골라서 가지고 온 건데. 안 받으면 진짜 서운할 것 같아.”
“마음은 정말 감사한데…….”
“그럼 받으면 되지.”
“하지만 저는 그동안 이렇게 병원에 오면서 해드린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어서요.”
그녀는 입술을 움찔거리며 답했다.
“응? 왜 해준 게 없어. 나랑 그동안 밥도 먹고, 술도 같이 마셔주고. 그리고 영화도 봐줬었잖아. 타지에서 친구 생겼다는 것 자체가 나한테는 기쁜 일이었어.”
그녀의 진지한 표정과 말투에 나는 김 원장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나 역시 그때의 일들을 떠올렸다.
과연 그 행동들이 그녀만을 위했던 것이었을까?
나 역시 사적으로 그녀를 만났을 때, 친구를 만나듯 대하지는 않았던가?
그저 그녀를 사적으로 만났을 때, 공적으로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했던 행동이었던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공적으로 그녀와의 친분을 통해 영업하려던 의도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최근 들어서는 그런 생각조차 없었다.
친구인 그녀가 타지에서 외로워하고 있을 때면,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을 때면, 위로가 돼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즉, 나 역시 그녀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왜 해준 거라고 생각해요? 나도 친구로서 좋아서 했던 건데요.”
내 말에 그녀는 그제야 웃음을 되찾았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놓인 상자를 내게 다시금 밀어내며 말했다.
“그럼 이거 받아. 처음으로 주는 선물이네.”
김 원장은 순간 정색을 하며 나를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거절은 거절이야!”
나는 더 이상 그 선물을 밀어낼 수 없었고, 그녀를 향해 답했다.
“그럼 고마워요. 이거 입고 필드 나갈게요.”
“그래. 실력 많이 키워와. 다음에 박 원장님 갈 때 나도 한번 따라가야겠다. 그때 나한테 상대가 되려면 열심히 해야 할걸? 하하.”
“예, 물론입니다. 우리 김 원장님 상대하려면 제가 밤낮으로 연습해야겠네요. 하핫.”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맞다. 그리고 박 원장님이랑 같이 필드 나간다는 그 모임 있잖아.”
“네. 제약 회사 직원 한 명이랑 박 원장님 포함해서 총 네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응. 거기에 원장님 한 분이 리오 정형외과 원장님이라고 하더라고.”
나는 그녀의 말에 허공을 바라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리오 정형외과…….
영업을 가본 적은 없지만, 익히 알고 있는 병원이었다.
광주 도로를 돌아다니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본 적이 있는 병원 이름.
아마 광주 시민들의 기억 속에 없다면, 광주 사람이 아니라고 할 정도.
리오 정형외과는 광주를 대표하는 큰 병원은 아니다. 하지만 광주 시민들이 모두 알 수밖에 없는 이유.
바로 광고다.
도로에 다니는 시내버스와 택시, 그곳에 붙어 있는 광고. 그 대부분이 리오 정형외과의 광고였기 때문이다.
세뇌 교육을 당하듯 길을 돌아다니며 항상 보이는 광고에 병원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이지.
규모가 엄청난 병원은 아니었지만, 한 지역구를 대표할 정도의 병원이다.
실력 또한 겸비하고 있어 환자들도 꾸준히 있는 병원.
그 병원의 원장이 박 원장의 필드 모임 사람이었던 것.
“리오 정형외과에 영업 간 적은 없지만, 알고는 있습니다.”
“그렇지. 광주에 온 지 얼마 안 된 나도 알고 있으니까, 민 대리님은 당연히 알고 있겠지.”
“거기에 원장님 두 분 계신 거로 알고 있는데, 천 원장님이시겠죠?”
그녀는 내 물음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 어떻게 알았어? 내가 그거 알려주려고 한 건데.”
내가 아는 리오 정형외과에는 원장님이 총 두 분이 있다.
한 분은 나이가 굉장히 연로하신 분. 그리고 나머지 한 분은 박승호 원장님과 비슷한 연배였기에, 당연히 천 원장님이라 예상했다.
“나이가 그럴 것 같아서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네. 그 원장님이 골프를 엄청나게 좋아하신다더라. 그리고 승부욕도 엄청 강하시대.”
“정말요?”
“응. 골프를 엄청 잘 치시는 것까지는 모르겠는데, 자주 다니시나 봐. 승부욕이 엄청나다고 하니까, 꼭 져드려.”
보통 병원의 의사들과 골프를 치러 필드에 영업사원이 함께 나가게 된다면, 승리는 무조건 의사들이다.
영업사원이 많지 않은 월급으로 골프를 치고, 필드까지 나가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당연히 영업이지.
그렇기 때문에 영업의 상대인 의사를 이기기는 쉽지가 않다.
의사도 사람인지라 게임에서 진다면 유쾌하지는 않을 터.
자신들이 게임에서 지기 위해 영업사원을 부르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천 원장같이 승부욕이 센 사람이라면 더더욱 자신이 게임에서 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게임에서 자신이 지는 순간, 그 영업사원은 바로 아웃이겠지.
나는 그녀의 조언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야겠네요. 그래도 첫 필드이니만큼 가서 민폐가 되지 않으려면, 연습 열심히 해서 가야겠어요. 아무튼, 원장님 정보 감사합니다. 그리고 선물도 진짜 감사해요. 잘 입을게요.”
그녀의 미소를 마지막으로 병원을 빠져나왔다.
* * *
“원장님 좀 뵐 수 있을까요?”
“원장님이요? 어디서 오셨을까요?”
“저 광주 메디컬 민지훈 대리라고 합니다.”
나는 질문을 하는 간호사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이 병원은 ‘이음 정형외과’.
기존의 거래처 병원 관리는 서둘러 마친 뒤, 새로운 거래처를 뚫기 위해 온 병원이다.
광주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큰 병원들은 이제 광주 메디컬, 그러니까 우리 회사에서 대부분 담당을 맡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안주해 있을 수는 없다. 질도 중요했지만, 양적으로도 풍부해야 했기에.
내 현재 목표이자, 우리 회사의 목표.
바로 광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광주의 대부분의 병원을 우리 거래처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지금 담당하고 있는 병원들이 대기업이라고 친다면, 오늘 영업을 하러 온 이곳, 이음 정형외과는 중견 기업 정도로 해당하는 병원이다.
원장이 한 명뿐인 이곳.
한 명임에도 중견 기업 정도라고 하는 이유는 이 병원의 환자 수 때문이다.
환자의 수는 항상 넘쳤고, 수술도 잦은 병원이기에 간호사의 수가 엄청나다.
보통 이런 병원의 특징은 수간호사 선생님의 파워가 세다는 것.
의사가 한 명 뿐이기에, 그 아래 직원들을 통솔하고 정리해 줄 인원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이런 병원은 수간호사 선생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이지.
수간호사 선생님의 역할이 크면 클수록 병원에 미치는 파워는 거의 의사와 비슷하다고까지 볼 수 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원무과 간호사는 내 명함을 찬찬히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
“광주 메디컬이요? 잠시만요.”
그녀는 병원 전화 수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원무과인데요. 수술실에 수술 끝났을까요? 아, 수쌤은요? 예. 지금 메디컬에서 오셨는데, 네. 지금 올라가라고 할게요.”
전화를 끊은 그녀.
내용을 들어보니 수간호사 선생님과 나를 만나게 하려는 모양이다.
나는 병원의 의사인 원장님을 찾았지만, 수간호사 선생님을 연결해 주는 것을 보니, 역시 예상대로 수간호사 선생님의 파워가 센 병원이 맞았다.
“수술실 층으로 올라가시면, 수간호사 선생님 계실 거예요. 말씀은 드려놨으니까 수간호사 선생님 먼저 만나시면 될 것 같아요.”
“네, 감사합니다.”
친절한 원무과 간호사에게 눈인사를 보낸 뒤, 나는 곧바로 수술실 층으로 향했다.
띵.
엘리베이터는 수술실 층에 도착해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감도는 싸한 공기.
수술실 층에서 나는 강한 소독약 냄새와 수술실에서 흔히 나는 차가운 공기였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그녀를 찾으려고 했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수간호사로 보이는 듯한 포스.
카리스마가 넘치는 수간호사는 수술실 외부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광주 메디컬 민지훈 대리라고 합니다.”
“아… 예. 조금 전에 연락받았습니다.”
그녀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녀에게 급히 명함을 건넸다.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원장님, 오늘 외부에서 오시는 손님은 없는 거로 아는데요?”
“따로 약속을 잡고 온 건 아니고요. 저희 제품들 소개 좀 드리고자 찾아왔습니다. 진료 시간 끝나는 거 기다렸다가 뵙고 말씀 좀 드리고 싶어서요.”
나는 최대한 공손한 말투로 그녀에게 이야기했고, 그녀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답했다.
“그러시구나. 자료 주세요. 제가 확인해 보고 괜찮은 거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나는 들고 있던 가방을 열어 카탈로그 파일을 꺼냈다.
“여기 저희 회사 제품들입니다. 그럼 원장님은 언제 뵐 수…….”
그녀는 내가 건넨 카탈로그를 받고,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제가 연락드릴게요.”
“아, 예. 알겠습니다.”
그녀의 단호한 말에 나는 재차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원장님을 만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그리고 이렇게 수간호사의 파워가 센 병원은 간호사의 결정대로 물건을 받거나, 자르는 것 또한 가능했기에.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어? 벌써 왔어? 여기!”
그녀는 내 뒤, 먼 곳을 바라보며 손을 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내가 수술실 층에 온 이후로 줄곧 지친 얼굴과 거의 화난 듯한 무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의 얼굴에 누가 미소를 짓게 하는가.
나는 그녀의 환한 미소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